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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박씨 고흥파보 2003年 癸未, 편집후기(編輯後記) - 박정희(朴正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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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후기(編輯後記)

드디어 창원박씨 (昌原朴氏) 고흥파보(高興派譜)를 출간(出刊)하게 되었다。
염수재(念修齋) 문중 회의에서 족보(族譜) 발행을 위한 발의(發議)를 거쳐서 여러 번의 회의를 가진 후에 족보 발행위원(發行委員)을 선정하고 수단(收單) 유사 (有司)까지 위촉하여 족보 발행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후 수단 유사들로 하여금 자손록(子孫錄)을 작성토록 했으며, 한편 각 문원(門員)들에게 뿐만 아니라 광주(光州)와 서울 등 타지(他地)에 거주하는 문원들에게도 족보 발행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 참여하고 협조해 달라는 호소(呼訴)의 글을 발송했다.
 

창원박씨 고흥파보는 창원박씨 족보(族譜)나 다름 없다. 

창원박씨의 전국(全國) 분포(分布) 상황을 살펴보면 곧 알 수 있다。
중시조(中始祖) 「령(齡)」조의 손자 네 분이 정착(定着) 한 곳을 살펴보면 첫째「홍간(弘幹)」은 경기도 포천에, 둘째「홍직(弘直)」은 함경남도 정평에, 셋째 「홍신(弘信)」은 경기도 장단에, 넷째「동지(東智)」는 전남 고흥에 정착 (定着)하신 우리의 입향(入鄕) 파조이시다.

현실적으로 정평과 장단은 북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알 수가 없으며 남쪽으로는 포천과 고흥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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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1930년에 전국 집성촌(集姓村) 가구(家口) 통계에 의하면 포천에 21가구, 정평에 37가구, 장단에 21가구, 고흥에 97가구로 되어 있다.
서기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 조사(人口調査) (남한) 자료에 의하면 창원박씨는 전국에 1,422 가구에 인구는 약 6,000명 정도인데,
전남에 2,539명, 서울에 1,642명, 경기도에 779명이고 나머지는 기타 여러 지역에 산재해 있다.
1930년대는 농경사회(農耕社會)인 관계로 일정 지역에 모여 살았으나 1985년에는 산업사회(産業社會)로 바뀌어서 인구 유동(流動)이 심하여 분포 지역이 넓은 편이다. 성씨(姓氏)에 관한 어떤 서적(書籍)을 살펴도 창원박씨의 집성촌(集姓村)은 전남(全南) 고흥(高興)으로 되어 있다.


시류(時流)에 따라서 한글 세대(世代)인 후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친근(親近)한 족보(族譜)를 편집해 보려고 시도(試圖) 했다.
족보의 모든 기재(記載) 사항에 국한문(國漢文)을 병용하도록 범례(凡例)를 규정했으며, 사적기(事蹟記)나 구보서(舊譜序) 등은 가능하면 원문(原文)과 역문(譯文)을 동시에 넣도록 했다.
여러 가지로 되어 있는 연대(年代) 표기는 원래 표기(表記)대로 기재하되 괄호 안에 서기(西紀)로 표기해서 이해가 쉽도록 했다.

객관적(客觀的)인 참고(參考)나 고증(考證)을 통하여 편집하려고 노력했다.


한문(漢文) 위주의 과거의 족보가 아니라 어떤 후손들이나 읽고 이해할 수 있는 현대(現代)의 족보는 어떻게 편집해야 하는지 알아 보고 싶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奎章閣), 국립중앙도서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등에 들러서 여러 자료들을 살펴볼 기회(機會)가 있었다.
족보의 체계(體系)나 기술(記述) 방법이나 선원세계(璿源世系)를 비교해 보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창원박씨 족보 발간(發刊)의 역사(歷史)를 추적(追跡)해 보았다. 

국립중앙도서관 고전자료실(古典資料室)에서 창원박씨 족보로 가장 오래 된 것은 창원박씨세보(숭정오경진(崇禎五庚辰, 서기1880년) 이었고, 종친회원 박영구(동강), 박점수(광주) 족원이 보존(保存)하고 있는 것은 의창박씨세보(상지이십팔년무자(上之二十八年戊子, 서기 1828년)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으로 가장 오래 된 무자보 (戊子譜: 1828년)의 「구초보발(舊草譜跋」에 숭정기원후삼 기유(崇禎紀元後三 己酉)로 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무자보(戊子譜: 1828년) 이전에 기유보(己酉譜: 1789년)가 발행 되었다고 추론(推論) 할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기유보(己酉譜: 1789년), 무자보(戊子譜:1828년), 경진보(庚辰譜: 1880년), 병진보(丙辰譜: 1916년), 경진보(庚辰譜: 1940년 ), 을미보(乙未譜: 1955년), 임자보 (壬子譜: 1972년), 정묘보(丁卯譜: 1987년) 등 지금까지 확인된 것으로 보아 여덟 번 째까지 발간(發刊)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쉽게도 미흡(未洽)한 점, 궁금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미흡했던 점은 넓게 이해해 주기 바라며 풀리지 않는 궁금한 사항들은 연구과제로 후손들에게 넘길 수 밖에 없다.
비조(鼻祖)「기(奇)」조와 「령(齡)」조의 관계(關係)나 배경(背景)을 명백히 규명(糾明)하지 못했던 점이 가슴 아프다. 

국한문(國漢文)을 병용(竝用)한다고 했으나 한자(漢字)가 너무 많아서 한글 세대인 후손들이 족보(族譜)를 멀리 할까 싶어서 두렵다.
남녀(男女) 차별(差別)이 없고 남녀평등법까지 제정(制定)된 사회인데도 여성(女性)의 행적(行蹟)을 기재하는데 소홀히 해서 나중에 조소(嘲笑)를 받을까 걱정이다.


그 동안 족보 발행(發行)에 노심초사(勞心焦思) 애쓰신 도유사님, 총무유사님, 재무유사님, 편집위원님, 정서담당님, 수단유사님들께 뜨거운 감사(感謝)의 마음을 올립니다. 그리고 앞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적극 후원해 주신 종친회 고문님들, 임원님들 모든 족원님들께 엎드려 감사드립니다.


2003年 癸未 月 日


창원박씨 21세손 朴正熙 삼가는 마음으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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