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박씨의 事蹟 등을 기록한 박유원의 방유정집『 放遊亭集 』1冊 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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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박씨의 事蹟 등을 기록한 박유원의 방유정집『 放遊亭集 』1冊 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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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박씨의 事蹟 등을 기록한 방유정집『 放遊亭集 』1冊 單


조선 태종 때 문과에 급제, 헌납, 예조참의 등을 지내고, 세종 때 이조참판에 이르렀으나 당시의 집권자들과 뜻이 맞지 않아 사퇴하고 고향(현재 고흥군 대서면 남양리)으로 돌아와서 호를 방유정이라 짓고 스스로 <放遊亭 序>를 썼으며 그 풀이대로 산수를 즐기면서 여생을 보낸 放遊亭 朴由元(1388년~1450)의 淸節之稟을 그린 事蹟과 정유재란(丁酉再亂) 당시에 금갑도(金甲島, 현재 진도)를 수비하면서 이순신(李舜臣)을 따라 왜적으로 토벌하였고, 보성(寶城) 예교(曳橋)의 전투에서 전공을 많이 세웠으며, 順天 왜교(倭橋)의 전투에서 전사한 찬성공 박홍세(贊成公 朴弘世)의 충절지품(忠節之稟)을 그린 事蹟 등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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末尾 4통의 향교(鄕校) 통문<通文>에서는 두 분의 청절(淸節)과 충절지품(忠節之稟)을 유가(儒家)에서 본 받도록 장보(獎褒)하는 내용이다.
<放遊亭 韻>에서는 방유정 박유원과 교류가 있었던 南在, 趙俊, 孟思誠, 陽村 權近, 佔畢齋 金宗直 등과 주고 받았던 詩가 수록되어 있다.
1831년 지은 <放遊亭記>와 <參判公 放遊亭 朴由元 事蹟>, <放遊亭 朴由元 自序>, <放遊亭 韻>, <僉正公 朴駘壽 事蹟>, <贊成公 朴弘世 事蹟>, 4통의 <通文>의 順으로 내용을 이룬다. 잘 보이지 않는 것으로 희소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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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昌原 朴氏 : 중조 박령(朴齡) 이후 손자인 진사 朴東智가 아들 3형제 박유원(朴由元)·박유정(朴由貞)·박유창(朴由昌)을 데리고 지금의 고흥의 속면인 흥양으로 낙향하면서 관적지인 창원보다 전라남도 고흥 일대에 집단을 이루고 살고 있는데, 그래서 고흥 일대의 창원박씨 후손들은 그를 입향 파조로 삼고 있다.

[참고] 박홍세(朴弘世) - 1550∼1598년(선조 31).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여회(汝恢) 현감 박만근(縣監 朴萬根)의 손자이다. 선조(宣祖) 대 정유재란(丁酉再亂) 당시에 금갑도(金甲島)를 수비하면서 李舜臣을 따라 왜적으로 토벌하였고, 寶城 예교(曳橋)의 전투에서 전공을 많이 세웠다. 順天 倭橋의 전투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 左贊成을 추증하였고, 宣武의 녹훈을 받았다. 선조 대에 이루어진 宣武功臣은 총 18명으로, 이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다만, 1604년 선무공신에 들지 못한 사람들 중 1605년(선조 38) 9,060명을 녹훈하였던 宣武原從功臣錄券에 포함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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