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박씨 고흥파 집성촌 및 마을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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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박씨 고흥파 집성촌 및 마을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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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박씨 고흥파 집성촌

 

밀성박씨 삼사좌윤공 대동보에 의하면 관향조 휘 령(齡)의 묘소가 창원부(昌原府) 남산(南山) 임좌(壬坐)에 기록되어 있으며,

아들 휘 손(蓀) 역시 창원부 남산 선영하에 있는 것으로 보아 선대조께서 밀양에서 창원으로 이거하여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휘 손(蓀, 관향조 령(齡) 손자 4형제가 각각
ㅇ포천(長男 弘幹), 

ㅇ함경남도 정평, 단천, 함흥(次男 弘直), 

ㅇ경기도 장단(三男 弘信), 

ㅇ전라남도 고흥(四男 東智 본명 弘智)으로 입향하여 세거 하였다.

 

휘 동지의 후손들은 전남 고흥군 동강면, 대서면, 두원면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며,
지난 2000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전국에 1,897가구 6,121명이 거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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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대서면 연혁

- 백제시대 : 비사현

- 고려시대 : 보성군 태강현

- 조선세종 23년 : 흥양현

- 조선후기 : 남서면과 태서면 분리

- 1914. 3. 15 남서면과 태서면을 통합 대서면으로 개칭

ㅇ지역특성

- 지리적  :  고흥군의 북서단에 위치하며 보성군과 연접하고 와우형인 고흥군의 지형중에 입부분에 해당됨

- 사업 경제적 : 미곡 위주의 1차산업에 의존하고 있는 관계로 경제적 구조는 빈약함

- 면 민 성 :   전통적으로 근면함과 순박함으로 보수적인 성향이 강함

ㅇ행정구역 : 7개리, 자연마을 29개


ㅇ상남리(上南里)


남양(南陽) : 고려 말경 남양 방씨가 설촌 하였기 때문에 남양이라고 칭하며, 조선 초기 昌原朴氏 입향조 휘동지조가 입촌하여 주변의 여러 마을로 넓게 후손들이 집성촌을 형성 함


동편(東便) : 남양 마을에 속해 있을 때는 새마을이라고 부르다가 1937년 왜정 때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양 으로부터 분리되면서 남양마을 동편에 위치한다 하여 동편이라 개칭.
 

금곡(琴谷) : 마을 앞에 가야금처럼 생긴 동산이 있고 밤이면 가야금 소리가 들렸다고 하여 개골이라 칭하였으나 1930년경 가야로 불렀다가 1948년 금곡으로 개명.


ㅇ송강리(松江里)
 

하남(下南) : 남서면과 와용산 아랫 마을로 한때 하남양 또는 와용산 남쪽에 있는 마을로 용남이라 불렀으나 1926년 일제 때 하남으로 칭함.


송강(松江) : 마을 형성 당시 마을의 산에 푸른 소나무가 울창하고 마을 앞에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져 마을 명을 송강이라 칭함.


ㅇ남정리(南亭里)


축동(築洞) : 高麗 明宗때인 1200년경에 金海金氏가 設村하였고 朝鮮中葉 昌原朴氏가 入村하면서 地形이 소(牛)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蓄洞이라 부르다가 그후 松院, 西航, 寶津 등으로 改稱하였다가 조선 고종 때는 松亭이라 칭했고, 1956년에 長田마을과 兩分되면서 다시 마을명을 築洞이라 칭함. 구전에 박씨 부자(冨者)가 살았는데 마을 주위에 성을 쌓고 살았다 하여 축동이라 불렀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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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동강면 연혁

- 백제시대 : 비사현

- 통일신라시대 : 백주현

- 고려시대 : 보성군 태강현

- 조선세종시대 : 흥양현

- 조선후기 흥양현 태강, 태동면에 해당

- 1914. 3. 1 : 행정구역 개편시 동면, 대강면, 보성군 남하면의 일부를 합하여 현 동강면을 이룸

- 1983. 2. 15 : 동강면 장도리가 보성군 벌교읍으로 편입

ㅇ지역특성 

- 지리적 : 고흥군 최북단 평야지로 북고남저형의 지형 보성군과 경계를 이룸 

- 역사적 : 유적비와 정려가 많아 충효 의식 높음 

ㅇ행정구역 : 10개리 자연마을 33마을


ㅇ대강리(大江里)
 

사서(社西) : 泰江縣(태강현)의 大江里에 속한 마을로서 李朝高宗 32년 乙未改革으로 因하여 大江이라 稱하였으나 日帝때 옛 社倉이 이곳에 있어 社倉 서쪽에 위치한다 하여 社西라고 改稱하여 변동 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동(社東) : 李朝高宗 32년 乙未改革으로 因하여 대강리에 속한 마을로서 이곳에 있었던 社倉을 중심으로 동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마을 명을 社東으로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두산(斗山) : 斗傍山 아래 위치한 마을로서 옛날 연못에서 龍이 산으로 올라 등천했다하여 산 이름을 「용각산」이라 불렀고 이 용각산 등성이에는 용뿔이라는 삼각형 긴 바위 두 개가 서 있으며, 李朝英祖때 泰江을 斜橋里(사교리)라 칭하였으나 高宗 32년 을미개혁에 따라 泰江을 大江으로 改稱하고 본 마을은 斗傍山 중앙에 위치한다하여 斗山이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평촌(坪村) : 대강리에 속한 마을인데 백제때 比史(비사), 신라때 柏州(백주), 고려때 泰江(태강)이라 칭하였는데 옛 태강현의 縣(현)터로서 李朝高宗 32년 乙未改革후 들 가운데 위치한다 하여 「샘밭」이라 불리어 오다가 日帝때 행정구역 개편당시 평탄한 곳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坪村으로 개칭 오늘에 이르고 있다


ㅇ노동리(魯東里)

병동(屛洞) : 옛날 풍수지리설에 左靑龍 右白虎 嶝이 마을을 형성하고 있어 “골안”이라 불렸으며 또 금반옥지의 玉이 마지막 山 끝에 뻗었다고 하여 山勢를 보아 玉山이란 마을이 생겼고 元屛洞(원병동)은 병풍처럼 마을을 감싸있어 이조말기부터 屛風山의 정기 받은 마을이라 하여 원병동과 옥산 마을을 합하여 “병동”으로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죽산(竹山) : 이조시대 仁祖때(1630)까지는 岱山(대산)으로 불러왔으나 그후로는 마을에 대나무가 무성하여 마을 명을 竹山으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ㅇ매곡리(梅谷里)

당곡(當谷) : 매곡리에 속한 마을로서 李朝中葉 이전까지는 마을 명을 「땅골」이라 불렀으며 그후 棠谷이라고 命名한 뒤 변동 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쌍암(雙岩) : 昇平朴氏 비문에 의하면 서기 1636년 李朝仁祖 병자호란 당시에는 마을이름을 九都洞이라 칭하였고 그후 貴德골이라 부르다가 별칭 귀뚝골이라 하였으나, 순조(1880년)때 마을뒤 큰 연못가에 큰 바위 두 개가 있어 그 바위에서 낚시질을 하였다고 하여 쌍암이라 칭하여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ㅇ마륜리(馬輪里)


마서(馬西)
: 마륜리는 흥양군 대강면 지역으로 옛날 선비들이 말을 타고 出入하는 말발굽 소리가 수레바퀴처럼 끊임이 없었다 하여 馬輪(마륜)으로 불렀다 함. 1956년 지방 행정구역 개편시 마륜리의 서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馬西라 칭함. 동강면의 가장 서쪽 끝에 있는 마을로 대서면과 인접하고 있다.


축내(築內) : 李朝中葉 흥양현감과 관원들이 炭浦(탄포), 築內(축내), 斜只谷(사지곡)을 經由하는 도중 휴식처겸 飮馬池(음마지) 또는 旱害防止(한해방지)를 위해 이곳에다 6,000여평의 방죽을 築造하여 俗稱 「방죽안」이라 불리어 오다가 日帝때 蓮築內(연축내)로 改稱하였으나 1947년에 다시 마을 이름을 築內라 稱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원등(阮燈) : 옛 태강현의 근처에 위치한 마을인데 종계산의 한 줄기가 뻗어 고흥반도를 形成한 원맥이 이곳에서 始發한 곳으로 부근에 院이 있었으며 등성이에 있다 하여 院嶝이라 이름하고 1956년 리동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륜리에서 分洞된 이후 변동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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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남양면 연혁

본면(本面)은 삼한시대(三韓時代) 는 마한고지(馬韓古地)로서 백제(百濟)때는 분차군(分嵯郡) 분령군(分嶺郡)에 속(屬)한 조조례현(助助禮縣) 이었으며, 신라(新羅) 때는 경덕왕18년(景德王十六年) 정서(丁酉)(西紀 757年)에 충렬현(忠烈懸) 이라 칭(稱)하여 분령군(지금의 낙안)의 속현(屬縣)이었으며, 고려(高麗) 때는 현종9년(顯宗九年) 戊午(西紀 1018年) 에 남양현(南陽懸) 이라 개칭(改稱) 하여 보성군(寶城郡)에 속(屬)했다가 이조세종23년(李朝世宗二十三年)辛酉(西紀 1441年)에 남양현(興陽懸) 이라 하였다가  광무10년(光武十年) 丙午(西紀1906年) 칙령제49호(勅令弟四十九號)에 의(依)하여 지방행정구역(地方行 政區域)을 면동리(面洞里)로 변경(變更)하여 흥양현남양면(興陽懸 南陽面) 이라 칭(稱)하다가 적치대정3년(敵治大正三年) 甲寅(西紀 1914年) 지방제도개혁령(地方制度改革令)에 의(依)하여 현(縣)을 군(郡)으로 고침과 동시(同時)에 남서면(南西面)의 월정리(月亭里) 망주리(望珠里) 침교리등(沈僑里 等) 3개리(三個里)를 남양면(南陽面)으로 편입(編入)하여 고흥군(高興郡) 님양면 (南陽面) 이라 칭(稱)하였고 광복후(光復後) 西紀 1973年 7月 1日 대통령령(大統領令) 弟6542號에 의하여 과역면도천리우도(過驛面道川里牛島) 유인도(有人島) 1개 (一個)와 무인도(無人島) 5개(五個)를 남양리(南陽里)에 편입(編入)하여 장담리(長潭里) 신흥리(新興里) 대곡리(大谷里) 남양리(南陽里) 중산리(中山里) 월정리(月亭里) 망주리(望珠里) 침교리(沈橋里) 등(等) 행정구역(行政區域) 8개리(八個里)에 34 개(三十四個)의 자연부락(自然部落)을 관할(管轄) 하며 현재(現在)에 이르고 있음

ㅇ지역특성 : 

- 지역여건 군소재지로부터 북쪽으로 19km 떨어진 농어촌 지역

- 산업경제 미맥위주의 영농과 잠재적인 수산자원 풍부

- 면민성 전통적으로 온순·순박하며 보수적 성향임

ㅇ행정구역 : 8리, 자연마을 34개


ㅇ침교리(沈橋里)
 

화담(花潭) : 본동(本洞)의 부락명(部落名)은 옛날에 고담(古潭)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그는 약3백여년전에(約三百餘年前)에 장고담(長古潭)이라는 고(古)터에서 황금도등3씨족(黃金都等三氏族)이 살면서 장담고(長古潭)라는 소지명(所地名)을 따서 장자(長字)를 떼버리고 고담(古潭)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 후(後) 여산송씨(礪山宋氏)가 입기(入基)하여 화담(花潭)이라 개칭(改稱)한 것인데 이는 현부락(現部落)의 지형(地形)이 꽃을 보고 날아드는 나비 형국(形局)이라고 하는데 채일봉(峰)과 양애 등(嶝)을 나비의 양쪽 날개로 보고 마을 전체(全體)를 몸둥이로 보며 촌전(村前)앞 당산등(堂山嶝)을 꽃으로 보고 그 당시(當時)의 선인(先人)들이 화담(花潭)이라 개칭(改稱)한 것인데 이는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에 의(依)한 부락(部落)의 지형(地形)을 동명(洞名)에 내포(內包)시킨 것으로 구전(口傳)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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