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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건국의 수수께끼, 나정은 알고 있다 - HD역사스페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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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도면과 고건축 전문가의 고증을 바탕으로 복원한 박혁거세의 탄생지 나정이다. 이렇게 숲속에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는데 목책이 가로막고 있다. 우물에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울타리를 쳐두었다. 안으로 들어가려면 출입문을 이용해야 한다. 

목책 안으로 들어오면 큰 도랑을 만나게 된다. 도랑의 폭은 2미터 정도 되고 깊이는 1.5미터 정도 파서 물을 채워두었다. 이 도랑과 목책은 우물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시설이다. 우물로 가려면 도랑 사이에 난 작은 길을 이용해야 한다. 

불순물이 들어가지 못하게 쳐놓은 움막 한 가운데에는 이런 우물이 있다. 우물을 지키는 사람이 있어서 깨끗하게 관리한듯 하다. 우물을 신성시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사람들은 우물에 왜 이런 시설을 만들었을까?

우리는 그 의문에 대한 단서를 대형 팔각건물터에서 찾을 수 있다. 대형 팔각 건물터는 우물을 덮고 그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대형 팔각건물터의 정체는 무엇일까?

나정에서 출토된 유물은 총 1,200여 점에 이른다. 기와와 토기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토기와 자기류도 나왔다. 그 중 팔각 건물터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는 토기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팔각 건물터에서 출토되는 토기는 깨진채 발견됐다. 의례용으로 쓰고 버린 제기다. 

등잔 역시 제사용품이다. 

오세진 연구원 중앙문화재연구원: 보시는 유물들이 팔각 건물터에서 출토된 토기류입니다. 제사 관련된 유물은 등잔, 잔, 잔받침 등이 제사관련 유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팔각건물터는 제사와 관련된 유적인 것일까.

삼국시대 산성인 경기도 이천의 설봉산성. 이곳에서 팔각건물터가 발견됐다.

설봉산성 팔각건물터에서도 신장상을 비롯해 의례용으로 쓰인 제기들이 출토됐다. 팔각건물터는 제사시설인 것이다. 

이태호 학예연구사 경기이천시립박물관: 토기로 만들어진 작은 파편들이 발굴됐습니다. 다른 제사유적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그런 걸로 유추해볼 때, 설봉산성의 팔각 제단터는 제사용이나 제의용으로 쓰여졌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사용으로 만들어진 대형팔각터는 언제 만들어진 것일까. 팔각 건물터에서 출토되는 기와에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연꽃무늬와 사자무늬는 신라 왕실과 관련된 건물에 주로 사용되던 것이다.

의봉 4년이라고 새겨진 기와는 팔각건물터가 왕실 건물이라는 사실과 함께 축조연대를 알려주는 결정적인 증거다. 의봉은 당 고종이 반포해 사용하기 시작한 연호로 의봉 4년은 679년, 통일신라 문무왕 19년에 해당한다.

김성구 관장 ㅣ 국립경주박물관: 의봉 4년 기와는 이제까지 월성이나 안압지 동궁터에서만 나왔거든요. 궁궐과 관련된 왕실 유적에서만 나왔습니다. 의봉 4년 기와가 나정에서 나왔다는건 나정이란 유적이 왕실과 큰 관련이 있지 않나 생각되고 있고요.

문무왕 19년에 왕실 시설을 크게 고쳤다 <삼국사기>

삼국사기에는 문무왕 19년에 왕실 시설을 크게 고쳤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팔각 건물터는 개축한 건물일까 팔각건물터에서는 生자가 새겨진 기와가 백여점 가량 출토되었는데 生자 명문의 기와가 그 의문을 풀어준다.

김성구 관장 ㅣ 국립경주박물관: 의미는 아직가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탄생적인 의미가 내포되지 않나 싶고 수요처가 나정 뿐이기 때문에 나정 유적과 깊은 관련이 있는 문자 기와로 볼 수 있겠고 담장에서 많이 출토됐습니다만 담장에서 함께 나온 다른 수막새들과 달리 8세기 중엽경에 해당됩니다. 나정에 출토된 문자 기와나 담장은 8세기 중엽 경에 크게 확장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개축하기 전 처음 팔각건물이 지어질 때는 언제일까? 

새로 확인된 우물에 단서가 있다. 팔각건물터는 우물을 흙으로 단단하게 메우고 그 이후에 세운 것이다. 

그런데 우물을 메울 때 다른 재료를 섞어넣었다.

바로 숯이었다.

정재훈 교수 ㅣ 한국전통문화학교: 황토와 숯을 섞어서 다진 흙으로 메웠어요. 벌레, 세균, 지렁이, 두더쥐가 파고 들어가지 못하게 신성하게 웅덩이를 보호하는 시설로 메웠던 겁니다. 

팔각건물은 우물을 메운 뒤에 세운 것이다. 우물이 메워진 때를 알면 팔각건물이 세워진 때를 알 수 있다. 

우물을 채울 때 섞어넣은 숯의 절대 연대를 측정해보기로 했다. 

김종찬 교수 서울대 물리학과: 중심연대는 서기 500년으로 나타났으며 우리가 해석할 때 대개 500년에서 50년을 플러스 마이너스 하는데 450년부터 550년까지로 하면 무난하겠습니다.

소지왕 9년(487년) 2월 나을에 신궁을 지었는데 나을은 시조가 태어난 곳이다 <삼국사기>

삼국사기는 소지왕 9년(487년) 시조가 태어난 나을에 신궁을 지었다고 적고있는데 소지왕 9년은 487년이다. 절대연대 분석 결과와 그 시기가 거의 일치한다. 

그렇다면 팔각건물 이전에 존재했던 이 우물 시설은 언제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을까? 

새로 발견된 우물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기둥에서 중요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형토기가 바로 그것이다.

두형토기는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 전후시기까지 유행하던 제사용 그릇이다. 원래는 굽이 긴 다리에 사발이 얹어진 형태다. 이 두형토기의 출토는 우물 시설이 기원 전후한 시기에 존재한 제사시설임을 말해주고 있다. 

윤형원 학예연구실장 ㅣ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다리가 길어지고 접시가 얕아지는 두형토기는 기원전 3세기부터 5세기까지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나정에서 출토된 두형토기 역시 그런 범주의 토기로 제작되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제2대 남해왕3년 봄에 시조 혁거세 사당을 세우고 사계절 제사를 지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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