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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건국의 수수께끼, 나정은 알고 있다 - HD역사스페셜 (3)

관리자 0 1202 0

삼국사기에는 남해왕 3년에 시조 혁거세 사당을 세우기로 했다는 기록이 있다. 남해왕 3년은 기원 후 6년에 해당한다. 이것은 두형토기의 편명과 일치하는 시기이다. 우물 시설물은 신라 건국 시조 박혁거세를 모신 사당인 것이다. 삼국사기의 기록과 놀랍도록 일치하고 있는 나정 발굴. 그것은 신라 건국 신화를 역사로 다가서게 하고 있다. 

발굴을 토대로 고건축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팔각건물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복원해보았다. 이 팔각건물 앞에 서있으니 사람이 작게 느껴진다. 크기는 동서로 20미터 남북으로도 20미터나 된다고 한다. 건물의 높이는 3층 건물 정도로 추정되고 당시에 이런 건물을 짓는다는게 쉽지 않았을텐데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를 모시기 위해 이런 거대한 팔각 건물을 지었던 것이다. 

신라의 왕들은 시조에 대한 제사를 직접 주관하고 빠짐없이 지냈다고 한다. 그만큼 시조에 대한 제사를 중요시 했다. 왜냐하면 시조를 받들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정통성을 보장받고 그와 더불어 왕권을 강화시켜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정에서 시조를 모시는 제사를 지냈다는 것을 보면 박혁거세의 신화가 과장된 것은 있을지 몰라도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생각이 든다. 삼국사기의 신라 건국 신화에 의하면 기원전 57년에 박혁거세가 신라를 건국했다고 하는데 그 때가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이다. 그 옛날 박혁거세는 과연 국가를 건국할 수 있었을까? 

우물 건물터 외곽 가장 아래층에서 새로운 유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직사각형의 집자리 유적이다.

바닥 가장자리에는 집 기둥을 세운 흔적도 보인다. 배수를 위한 외부 돌출구도 확인된다.

박혁거세 탄생지 나정에서 전형적인 청동기 집자리 유적이 발견된 것이다. 청동기 집자리는 박혁거세 이전에 마을을 이루어 사람들이 살았다는 증거다. 

이문형 연구원 ㅣ 중앙문화재연구원: 지금 보시는게 청동시대 주거지입니다. 주거지가 담장 하부와 북쪽에서 모두 5동이 확인되었습니다. 따라서 자정 주변에 청동시대 마을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들 청동기 유물은 박혁거세가 등장하기 이전에 이미 나정 일대에는 발달된 농기구와 농사 기술을 가진 농경민들의 정착마을이 존재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종욱 교수 서강대 사학과: 나정 근처에 마을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하나의 국가인 소국인 서라국, 서라벌이라는 나라를 세울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 있었다는 증거가 되겠습니다.

경주 전역에서 발견되는 거대한 고인돌.

지배세력의 등장을 알리는 고인돌은 신라 건국 이전에 이미 나라를 세울 정치적 세력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박혁거세는 경주에 퍼져있던 청동기 시대 지배세력을 모아 나라를 건국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보다 앞서 조선유민이 산골짜기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박혁거세 이전에 조선 유민이 산골짜기에 촌을 이루어 살았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뒷받침 하고 있다.

지난 1977년 경주 조양동에서는 놀라운 발견이 있었다. 

이상구 학예연구사 ㅣ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절개된 면에서 흔적이 보여서 80년도부터 발굴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동경도 나오고 철기도 나오고 와질 토기도 상당히 많이 출토되었습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는 기원전 57년에 건국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런 갈증은 조양동 고분이 발견됨으로써 풀리기 시작했다.

철제 농기구를 비롯한 철기류와 함께 신라 건국 시기와 일치하는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청동기 무문토기에 이은 새로운 형태의 와질 토기가 새롭게 등장했다. 

토기의 모양도 매우 특이한데 양쪽에 소뿔 모양의 손잡이를 붙이 와질토기는 무문토기와 결합된 과도기적 성격의 토기로 기원전후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조양동 유물들은 이미 기원전 1세기 경 경주지역 문화가 고도의 문명단계에 들어섰음을 입증한다. 

윤형원 학예연구실장 ㅣ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1980년도에 이 조양동이 발굴 조사됨으로써 경주 내 청동기 시대와 4세기 이후 적석목곽분 시기 사이에 해당하는 공백시대를 메울 수 있는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양동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기록에서만 보이던 신라 초기 모습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조양동 고분에 이어 경주 각지에서 발굴된 기원전 1세기에서 3세기의 보물들은 당시 경주가 국가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특히 조양동 고분에서 출토된 중국 전한시대 동경은 기원전 1세기에 신라가 중국과 무역을 할 정도로 성장해있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조유전 교수 ㅣ 동아대 고고미술사학과: 중국에서도 귀하게 여기는 물건이기 때문에 교역집단이 아니면 서로 주고받는 정치체제가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유물이란 얘기입니다. 이런 유물들이 조양동에서 나온걸로 봐서 이미 강력한 집단체제가 있었다는 것을 고고학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는 선진문물인 철기 문화를 가진 집단이었을 것이다. 

철기의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박혁거세는 청동기 문화를 가진 지배세력들을 통합하고 신라를 건국했을 것이다. 

이종욱 교수 ㅣ 서강대 사학과: 박혁거세 집단이 경주 지역에 이주했을 때 지석묘를 축조하는 세력이랄까 이런 권력구조가 없었다면 나라를 세울 수 없었을 겁니다. 이 권력 구조 위에 한단계 더 높은 권력 구조를 만들고 최고의 권력 구조를 박혁거세 이주민 세력이 장악함으로써 국가가 탄생하게 된 것이죠. 

박혁거세가 신라를 세웠다는 기원전 1세기,  경주에는 국가를 세울 수 있는 강력한 철기문화를 가진 세력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나정의 발굴로 우리는 신라의 건국 신화가 상당부분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고대 국가에는 건국신화가 있는데 공통점을 보면 주인공을 모두 영웅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내용이 어떤 것은 너무 과장되고 황당한 것도 있지만 그래도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신화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그리스 로마 신화다. 그리스 로마 신화 시대로 국제관을 꾸며보았다. 신들의 왕 제우스 그리고 태양의 신 아폴로도 보인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욱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여기를 보면 늑대의 젖을 먹고 있는 쌍둥이 형제 조각상이 있다. 이 쌍둥이는 로마 건국신화의 주인공이다. 강물에 버려진 쌍둥이를 암 늑대가 발견하고 젖을 먹여 키웠다고 하는데 늑대가 젖을 먹여 사람을 키웠다니 역시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이 대리석에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쌍둥이가 커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싸우는 장면을 조각해두었다. 결말은 형인 로물루스가 싸움에서 이기고 로마를 건국한다는 것이다. 또한 로마 건국 신화는 기원전 753년 4월 21일에 로마가 건국됐다고 정확하게 날짜까지 적고 있다. 이것은 믿을 수 있을까?

최근에 로마 건국 초기 왕궁유적이 발굴됐는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왕궁은 기원전 8세기에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신화가 말하는 기원전 753년과 일치하는 시기다. 이렇게 과장된 이야기를 빼고 보면 신화는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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