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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건국의 수수께끼, 나정은 알고 있다 - HD역사스페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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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신라로 들어오자. 신라의 건국 신화에는 박혁거세가 왕이 되는 과정을 자세히 그리고 있다. 박혁거세가 왕이 되기 전 여섯 촌장이 있었는데 어느날 나정 옆 숲 사이에서 말이 울어 봤더니 큰 알이 있었고 그 알을 깨고 나온 갓난 아이가 바로 박혁거세라는 것이다. 박혁거세가 13살이 되자 여섯 촌장들은 그들을 왕으로 모신다. 이것도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박혁거세 탄생지 나정에서 백여미터 떨어진 곳에 양산재가 있다.

양산재는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한 여섯 촌장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유리왕 9년 봄에 6부(6촌)의 이름을 고치고 성을 내렸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제 3대 유리왕이 여섯 촌장의 건국 공로를 기리기 위해 성을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이, 최, 손, 정, 배, 설 이렇게 여섯 성씨가 바로 그 것이다.

지금도 여섯 촌장의 후손들은 각기 위패 앞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알천양산촌장은 경주 이씨 시조다.

시조 제사는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전통으로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이씨의 시조 알천양산촌장이 하늘에서 내려와 정착한 곳이라는 표암재. 

전설에 따르면 이곳에서 여섯 촌장들이 회의를 하는데 나정에서 이상한 기운이 돌아 가보았더니 알이 있었고 그 알에서 나온 박혁거세를 키워 13살 되던 해에 임금으로 모셨다는 것이다. 

이종택 ㅣ 경주이씨 표암화수회장: 여섯 할아버지들이 다같이 박혁거세를 이쁘고 곱게 잘 키우셔서 13살 잡수던 해에 신라를 건국하고 개국하면서 초대 임금으로 모셨다, 이건 신라사기나 유사나 고서에 그대로 나옵니다.

나정 숲에서 말이 울고 있어 가보니 말이 사라지고 큰 알이 있었다. 가보니 말은 사라지고 큰 알이 있었다. 그 알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6촌사람들이 그 출생을 신기하게 생각해 높이 받들어 임금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여섯 촌장들은 왜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한 것일까? 삼국사기 신라의 건국신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혁거세와 말이 함께 등장한다는 점이다.

신화를 통해 민족의 이동 루트를 분석하는 연구를 하고 있는 김화경 교수. 그는 박혁거세가 북방에서 이주한 세력이라는 것은 말이 시사하고 있다고 한다.

김화경 교수 ㅣ 영남대 국어국문학과: 박혁거세 신화에 말이 나오거든요. 말이라는 것은 지상의 세계와 천상의 세계를 매개해주는 동물입니다. 박혁거세는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 곧 천당신화를 가진 인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민족은 동북아시아에서는 유목, 수렵 문화를 갖고 있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박혁거세는 다른 곳에서 들어온 유목, 수렵 문화를 가진 민족이었다고 볼 수 있죠. 

나정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는 선도산. 이곳에서도 박혁거세와 관련된 전설이 내려온다. 

선도산 정상에는 삼도산신의 성모를 모셔놓은 사당이 있다. 이 사당의 주인인 성모가 바로 박혁거세를 낳은 어머니라는 것이다. 

박혁거세가 북방에서 이주해 온 세력이라는 것은 성모에 대한 전설을 통해서도 추정해볼 수 있다. 

채무기 사무국장 ㅣ 경주문화원: 성모에 관련해서는 삼국유사에 얘기가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성모는 중국 황제의 딸이었는데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이곳에 왔다고 합니다. 성스러운 능력으로 아들을 하나 두었는데 그 아들이 박혁거세 왕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박씨 집안의 딸들이 모여서 한달에 두번씩 성모사에서 제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박혁거세와 관련된 신화들은 그가 북방에서 이주해 왔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박혁거세가 북방 이주 세력이라는 것은 고고학적으로도 설명이 된다.

박혁거세 건국 시기와 일치하는 구정동, 조양동 등 경주의 여러 고분에서는 철제품과 철제무기가 다량으로 출토됐다. 

그 중 주목할 철기가 있다. 철제 마구가 바로 그것이다. 경주에서 마구는 청동기 유물로는 없던 것이다. 이것은 경주 지역에 기마 세력이 등장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조유전 교수 ㅣ 동아대 고고미술사학과: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가 육부촌장의 추대를 받는 기록이 나오지만 이 세력이 말과 결부된다면 첫째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말을 탈 수 있는 집단이 아닐까 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죠. 보병과 기마는 천지차이입니다. 말을 탄 집단이 등장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철기와 함께 기동력 확보를 할 수 있는걸로 봐서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고 나아가서 이런 사람들이 초대 왕으로 추대될 수 있는 소지가 말, 기마집단과 관련있지 않는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북방 이주민이었던 박혁거세가 경주에 정착한 뒤 어떻게 왕이 될 수 있었을까? 경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알영정. 알영정은 박혁거세 왕비인 알영의 탄생지로 알려진 곳이다. 

전설에 따르면 박혁거세 왕비 알영도 우물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알영의 탄생지인 알영정에는 우물이라고 전해진 곳에 화강암을 덮어 우물 표지석을 해두었다. 

알영정에 용이 나타나 오른쪽 갈비뼈에서 여자아이를 낳았다. 한 노파가 이상히 여겨 데려다 길렀는데 우물 이름을 따서 알영이라고 불렀다. 자라면서 덕기가 있으니 왕이 이를 듣고 왕비로 삼았다.

알영의 탄생신화는 삼국유사에 전한다. 알영정에 용이 나타나 오른쪽 갈비뼈에서 여자아이를 낳았는데 알영왕비라는 것이다. 용에게서 난 알영은 먼저 정착한 선주민으로 해석된다. 

이종욱 교수 ㅣ 서강대 사학과: 나정 마을 세력과 알영정 마을 세력들이 혼인을 통한 동맹관계를 맺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나정마을과 알영정마을은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이웃한 마을이었습니다. 두 마을 세력이 혼인을 통한 동맹을 맺고 그 힘을 바탕으로 경주 지역에 있던 육촌 세력과 군림하면서 새로운 정치발전 단계인 국가단계로 성장한 것입니다. 그때 만들어진 나라가 서라벌 또는 사로국이라는 나라가 되겠습니다. 

강력한 철제무기와 기마문화를 가지고 북방에서 이주해 온 박혁거세. 그는 경주의 육촌장 사회를 하나로 통합하고 새로운 국가의 시대를 열었다. 신라는 그렇게 시작됐다.

박혁거세 집단이 경주로 이동해서 정착한 마을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마을 중심에 우물이 자리하고 있고 그 주위에는 집들이 모여 있다. 고대에는 우물이 마을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다. 우물 파는 방법을 알고부터 사람들은 강가에서 벗어나 넓은 들로 나가서 농경이나 목축을 하고 마을을 이루고 살 수 있었다. 박혁거세 이주 집단 역시 나정 우물이 있는 이곳에 정착해 마을을 이루었다. 박혁거세는 나정에서 신라의 건국 기반을 잡았던 것이다. 2천여년 전 박혁거세가 나라를 건국해 왕이 됐다면 왕궁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왕궁은 어디에 있었을까? 

남산 서쪽 기슭(지금의 창림사)에 궁실을 짓고 성스러운 두 아이 (박혁거세와 알영)를 길렀다.

그 실마리는 삼국유사에 있다. 남산 서쪽 기슭에 궁실을 짓고 두 아이를 길렀는데 그 곳이 창림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창림사는 어디에 있을까? 

경주 지역에서 발굴된 유적과 유물을 조사해 그린 지도에 따르면 신라 초기 유적과 유물은 나정을 중심으로 흩어져 있다. 

오춘영 학예연구사 ㅣ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여기가 현재 경주시가지입니다. 박씨 왕조의 유물이 집중 분포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국유사는 창림사가 남산 서쪽 기슭에 있다고 했다. 나정에서 직선거리라 불과 200여미터 떨어진 곳. 창림사가 있다는 남산 서쪽 기슭이다. 

그런데 남쪽 서쪽 기슭 초입부터 예사롭지 않은 돌들이 발견된다.

바로 주춧돌이다.

이 거대한 주춧돌들은 숲속 여기저기에 수없이 많이 흩어져 있다. 이 주춧돌은 남산 기슭에 거대한 건물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춧돌입니다. 저희가 초석이라고 부르는 것들이죠. 굉장히 많이 주변에 흩어져 있습니다. 초석이 가공된 상태를 보면 다른 지역의 초석보다 잘 만들어진 초석인걸 알 수 있습니다. 절이 공을 들여서 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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