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문헌
홈 > 뿌리알기 > 참고문헌
참고문헌

신라 건국의 수수께끼, 나정은 알고 있다 - HD역사스페셜 (5)

관리자 0 859 0

dc13530f6a0a0d5bac0b0db74a5dc6e2_1538448185_7041.jpg

주춧돌입니다. 저희가 초석이라고 부르는 것들이죠. 굉장히 많이 주변에 흩어져 있습니다. 초석이 가공된 상태를 보면 다른 지역의 초석보다 잘 만들어진 초석인걸 알 수 있습니다. 절이 공을 들여서 만든 큰 절이라는걸 알 수 있습니다.

주춧돌이 흩어져있는 근처에는 거대한 석탑 하나가 서있다. 높이가 7미터에 이르는 3층 석탑이다. 절터에서 이 절의 이름을 밝히는 중요한 유물이 발견됐다. 절터의 이름이 새겨져있는 명문기와다. 

바로 창림사다. 박혁거세가 궁실을 지었다는 바로 그곳인 것이다. 

박혁거세가 왕위에 오를 때 머문 장소가 나정을 중심으로 한 그 근처였다고 생각됩니다. 창림사도 그곳에서 불과 얼마 안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초기 혁거세가 축조한 궁실이나 혁거세가 자랐던 궁실이나 거의 비슷한 위치에 있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창림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진 절이다.

창림사터에서 발견된 유물만 보더라도 창림사가 차지했던 비중을 알 수 있다.

창림사가 들어서기 전 이 곳에는 박혁거세와 그의 왕비가 거처했던 궁실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궁실이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웅장한 규모의 건물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건국신화를 보면 주몽도 부여에서 남쪽으로 내려와서 나라를 세우고 초막을 지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 예로 미루어서 혁거세가 지었던 궁실도 큰 규모는 아니었을 거고 청동기 시대 주거지보다는 규모가 더 클 것이고 초가집 비슷한 것이고 규모는 컸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박혁거세가 건국한 왕국은 어디에서 어떤 규모로 시작되었던 것일까? 신라의 고대사를 추적하는 이종욱 교수. 

그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을 바탕으로 박혁거세가 세운 왕국의 영역을 밝히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웃한 소국들과의 경계를 치면 자동적으로 사로국의 영역은 나올 수 있습니다. 현재 영천 지역의 골벌국, 청도지역의 이서국, 울산지역에 있던 우시산국 등 소국의 영역을 생각하면 현재 경주시 지역이 대체로 사로국 또는 서라벌 소국의 영역이 되겠습니다. 

기원전 1세기, 박혁거세가 세운 신라의 모체 사로국의 영역은 경주 전체를 합친 정도다. 

삼국사기에는 박혁거세가 국가를 세울 당시 지역명이 정확이 기록되어 있다. 활산 고야촌, 금산가리촌, 무산대수촌, 자산진지촌, 돌산고허촌, 알천양산촌 이 지명은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한 여섯 촌장의 촌락의 이름이다. 이 지명은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했던 여섯 촌장이 다스렸던 촌락의 이름이다. 

신라 개국 전에 진한, 마한, 변한 삼국이 있지 않았습니까? 여기는 진한 땅이에요. 그때에 6촌이 구성되서 맡아서 살았습니다.

여섯 명의 촌장이 나누어 다스렸다는 여섯 촌락. 그 촌락을 찾으려면 현재 경주 지역의 지형과 지명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채무기 사무국장 ㅣ 경주문화원: 지금도 경주에는 명활산, 알천이라고 불리는 북천이 있고 소금강산이 남아있습니다. 그 지역들이 알천양산촌, 명활산고야촌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 옛날 촌락 이름이 지금의 경주 지명에 남아있었다. 이렇게 두개의 촌락이 찾아졌다. 

또 경주의 지형을 보면 산 또는 매화 같은 자연조건에 의해 크게 여섯 지역으로 나뉘고 있다.

위성 사진으로 보면 그 경계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여섯 개의 산골짜기 촌을 이루고 살았던 것이다. 

남아있는 지명과 기록을 근거로 산골짜기에 촌락을 이룬 여섯 촌락의 위치를 비정해볼 수 있다. 

공간이 대체로 현재로 따지면 천 평방 정도, 30리 또는 40킬로 되는 공간입니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기록에는 방 100리라는 영역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방 100리의 공간을 소국 영역으로 이야기하고 그 안에는 대체로 1만 명 정도 사는걸로 보면 좋겠습니다.

이 교수가 3~40킬로미터 안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는 인구는 만 명. 이것은 소국의 인구를 만 명이라고 한 삼국유사의 기록과 일치한다. 

신라는 경주의 작은 소국으로 시작된 나라다. 그 나라를 세운 시조 박혁거세는 나정 우물을 근거로 세력을 넓혔다. 

여섯 촌장이 다스리던 촌락을 장악하고 그 위에 강력한 왕으로 군림한 박혁거세. 신라인들은 그런 그를 신화로 그리며 기억해온 것이다.

신라 건국 신화를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난걸 어떻게 믿을 수 있냐. 일본학자들이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굉장히 과학적으로 해석한 걸로 들리지만 그들이 신화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거나 악의적으로 한국의 건국신화를 못 믿을 것으로 만들어낸 것으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나정이 발굴됨으로써 신라의 건국 신화 현장이 그대로 드러난거죠. 조선시대까지 유지되어 오던 삼국사기, 삼국유사 책이랄까 원래의 역사가 이번 나정이 발굴됨으로써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나정 발굴로 박혁거세와 그가 세운 나라 신라는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나정에서 시작된 신라 건국 이야기. 그것은 이제 역사가 되어 우리 앞에 다가서고 있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박혁거세의 신라 건국 신화를 포함한 삼국사기 초기 기록의 상당부분을 신빙성 없는 이야기로 여겨왔다. 그런데 나정 발굴로 삼국사기에 기록된 신라 건국 신화가 역사적 사실로 밝혀지면서 이를 계기로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재검토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나정 발굴을 계기로 학계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의 신빙성 문제를 놓고 또 다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은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서 한국 역사는 달라질 수 있다. 2천여 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박혁거세의 탄생지 나정. 나정을 통해 우리 고대사가 한층 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서길 기대해 본다.

 

Social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