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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박씨(昌原朴氏) 과거급제자(科擧及第者)

관리자 0 568

창원박씨(昌原朴氏) 과거급제자(科擧及第者) 


[편집자 註] : 아래에 적시된 과거급제자의 기록만으로 창원박씨 전체 과거급제자 숫자를 확인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비록 본 자료의 출처인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에 정리된 자료들은 국조방목을 기초자료로 하고 있는데 방목에 기록되지 않은 비정기 과거시험을 통한 인재등용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와그너 하버드大 교수와 宋俊浩(송준호) 전북대교수가 연구한 논문에 따르면 실제로 조선시대에 시행된 정기시험인 식년시 文科는 168회, 임시 특별시험인 비정기 文科는 581회, 정기와 비정기의 비율이 22대 78로 비정기가 월등 우세하다. 조선시대 특별 시험은 나라의 경사를 지식층과 함께 기뻐하자는 뜻에서 「慶科(경과)」라고 불렀고, 유생들을 위로한다는 페스티벌 성격으로 王權이 집권 양반층에게 타협을 강요당했다는 증거이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만4607명 중 200명 이상 급제자를 배출한 씨족은 12개. 전주 李씨가 844명으로 으뜸을 차지했고, 다음이 안동 權씨(358명), 파평 尹씨(338명), 남양 洪씨(322명), 안동 金씨(309명), 청주 韓씨(275명), 밀양 朴씨(258명), 광산 金씨 253명, 연안 李씨(243명), 여흥 閔씨(234명) 순이다.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특정 가문에서 대량의 급제자가 배출됐다는 점. 안동 金씨 金克孝(김극효)의 후손에서 130명, 반남 朴씨인 朴紹(박소)의 후손에서 129명, 대구 徐씨인 徐(서성)의 후손에서 120명, 풍산 洪씨인 洪麟祥(홍인상)의 후손에서 111명이나 문과 급제했다.  


조선시대는 무엇보다 개인의 혈통을 우선했다. 대대로 높은 벼슬을 지낸 가문 출신이라는 혈통의 고귀성이 최고의 가치였고, 다음으로 개인의 학문적 성과를 꼽을 수 있었다. 여기에 과거급제 여부, 관직을 어디까지 지냈느냐 하는 것이 요구되는 조선시대 지배 엘리트로 인정 받으려면 혈통·학문·科擧·관직 등 네 가지 조건이 요구된 사회이다.
 

조선시대의 엘리트 사회에서 혈통을 중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조상들은 통치기구에 참여하여 국가 지도자로 활동한 사람, 왕이나 왕조 치하에서 벼슬한 사람을 귀하게 여겼다. 이것은 孟子(맹자) 이전부터 이어온 중국의 전통적 관념이다. 역사를 보면 어떤 왕조를 막론하고 폭력을 동원하여 왕조가 성립되면 왕권의 정통성 확립과, 그 존재를 신성시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입니다. 이 과정에서 왕족이나 벼슬한 사람을 귀하게 보는 전통이 생겨난 것이다. 그 귀한 혈통을 물려받은 사람을 귀족, 양반이라 부르는 사회다. 혈통이 귀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구분하기 위해 姓을 쓰기 시작했고, 같은 姓씨들이 한 장소에 오래 살면서 씨족집단이 생겨났다. 세월이 흘러 씨족집단의 수가 점차 늘자 本貫이란 것을 사용하여 다른 성씨와 차별화를 시도했고, 세월이 더 흐르면 같은 本貫 속에서도 어느 마을의 어떤 가문이냐를 가름하는 제2의 본관제도가 생겨난 것이다. 이 때문에 나이가 50~60대에 이르러서도 문과에 급제 하려고 과거에 응시했던 많은 사례를 살필 수 있고, 우리 족보에서도 고려말 조선 초기의 기록에는 명문 가문끼리 서로 혼인맥을 잇다보니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시아버지의 후처로 아들의 정실로 자매가 기록된 경우도 종종 나타나게 되는 연유이다.
     
따라서 앞으로 입향조들이 거주 하였던 포천, 장단, 정평, 고흥과 그 주변 지역 향교의 옛 기록들을 고찰 한다면 더 많은 과거급제자들의 기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뿐만아니라 현재 확인된 과거급제자 숫자를 창원박씨 전체 인구 대비하여 보면 결코 다른 성씨에 비하여 작은 숫자가 아닌 것이다.
 - 양정공 21세손 두현 글 -   [참조] 文科榜目(문과방목) 프로젝트 - 조선시대 文科 급제자 1만4600명 분석  
 


박개(朴開) : 고려사마시(高麗司馬試)

[출전 : 선광7년정사3월일문생진[사시방목](宣光七年丁巳三月日門生進[士試榜目])』(『고문서집성(古文書集成)』 23책[거창 초계정씨篇])


조선 문과(文科)

박경(朴璟) : 문과 성종10年(1479) 別試乙科 급제

박사문(朴師文) (1712 임진생) : 문과 영조38年(1762) 식년시 병과 급제

조선 무과(武科)

박정(朴矴) (1593 계사생) : 무과 인조15年(1637) 별시 병과 급제

박정립(朴貞立) (1584 갑신생) : 무과 인조15年(1637) 별시 병과 급제

박률(朴硉) (1598 무술생) : 무과 인조15年(1637) 별시 병과 급제

박진종(朴振宗) (1543 계묘생) : 무과 선조16年(1583) 별시 병과 급제

박후익(朴後益) (1624 갑자생) : 무과 효종2年(1651) 별시 병과 급제

박대곤(朴大鯤) (1624 갑자생) : 무과 명종19年(1564) 식년시 병과 급제

박동상(朴東祥) (1701 신사생) : 무과 영조(英祖)4년(1728) 무신(戊申) 별시(別試) 병과(丙科)

박홍기(朴弘器) (1577 임자생) : 무과 선조(宣祖)10년(1577) 정축(丁丑) 별시(別試) 병과(丙科) 3위

생원(生員)

박문기(朴文紀) (1777 정유생) : 사마시 정조(正祖)19년(1795) 을묘(乙卯) 식년시(式年試) 3등 급제

박찬형(朴贊馨) (1811 신미생) : 사마시 헌종12年(1846) 식년시 3등 급제

박세갑(朴世甲) (1690 庚午生) : 사마시 숙종40년(1714) 증광시 3등(等) 급제

진사(進士)

박연(朴?) (1554 갑인생) : 진사 선조(宣祖)23년(1590) 경인(庚寅) 증광시(增廣試) 2등 급제

박종률(朴鍾律) (1866 병인생) : 진사 고종(高宗)19년(1882) 임오(壬午) 증광시(增廣試) 3등 급제

과거 급제자 모두 17명(문과 3명, 무과 8명, 생원 3명, 진사 2명)


ㅇ출처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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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과거 제도와 교육기관 이해하기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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