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어우름이 돋보이는 고구려 건국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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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어우름이 돋보이는 고구려 건국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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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어우름이 돋보이는 고구려 건국신화


△ 평양에 있는 동명왕릉

하늘의 정령 물의 정령 받아
알에서 태어난 주몽

지구상의 어디든, 고대 국가의 건국과정은 대부분 신화로 윤색되어 전해오고 있다. 신화의 주인공은 예외없이 건국자이며, 신화의 구성은 대체로 건국의 기틀이 마련된 후에 완성되며, 그때까지를 ‘신화시대’라고 한다. 따라서 건국신화의 내용은 건국의 과정을 때로는 사실적으로, 때로는 상징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건국신화는 오래 전승되는 ‘왜곡 없는 윤색’이니, ‘강요하지 않는 신앙’이니 하는 평을 받는다.

고대 국가의 건국과정이 신화로 엮어지는 까닭은 건국과정을 신비의 힘을 빌어 합법화하고 신성시하며 그 정체성을 믿게하기 위해서이다. 그 ‘신비의 힘’이란 신화를 꾸미는 요소, 즉 신화소(神話素)인데, 나라마다 건국의 역사적 배경이 다르므로 이러한 신화소도 다르게 설정된다.


천제와 하백의 딸이 부모

의아스러운 것은 무지몽매한 그 옛날에야 하늘에서 내려왔다느니, 알에서 태어났다느니하는 신화가 그런대로 먹혀들어갈 수 있었겠지만, 오늘의 이 개명천지에서도 아직 그런 류의 신화가 버젓이 나돌고 있다는 사실이다. 필리핀 대통령궁 박물관에는 쫓겨난 독재자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영부인 이멜다의 탄생신화를 그린 한 장의 현란한 벽화가 진열되어 있다. 바다속 진주 조개에서 태어나 요염한 인어처럼 헤엄쳐 인간의 세계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난생’신화의 현대판이다. 3천 컬레의 구두 주인으로 세간의 화제를 모은 그녀는 75년 전에 보통인간으로 출생한 스페인계 혼혈인이다. 영달에 환장한 인간들의 이러한 꾸며냄 때문에 신화는 일시적 ‘신뢰를 얻고 있는 허위’에 불과하다고 폄하되기도 한다.


여러 가지 신화 가운데서 건국신화는 무에서 유의 창조과정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이나 얼개에서 상통하는 보편성을 공유하고 있다. 즉 건국자의 천강(天降:하늘에서 내림)이나 난생(卵生:알에서 태어남) 같은 비정상적인 탄생과 고귀한 혈통, 비범한 자질, 신비의 힘에 의한 구제, 건국이란 영광의 획득 등 내용을 대체로 공유하고 있다. 또한 첫머리를 열고 그 뜻을 이어받아 전개하는 과정에서 일대 전기를 맞이하고나서 유종의 미(건국)를 보는 이른바 ‘기승전결’의 짜임새도 엇비슷하다. 그러나 신화소의 표현형태나 상호관계에서는 나름의 차이성(개별성)을 나타내고 있다.


천신의 하강은 유목민신앙 난생은 남방 농경민신앙
두 요소 어우러져 장엄한 고구려건국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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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몽 영정 

우리에게는 단군신화를 모태로 한 가야의 수로왕신화, 고구려의 주몽신화, 신라의 박혁거세신화와 석탈해신화를 비롯해 조대마다 건국에 관한 크고 작은 신화들이 전해오고 있다. 그 중에서 고구려의 건국신화는 내용에서 풍부한 신화소들을 잘 어우르고 있을뿐만 아니라, 짜임새에서도 완벽함을 보여주는 대표적 건국신화다. 얼마간의 시차를 두고 엮인 로마의 건국신화와 견주어 보면, 그 특색이 더욱 돋보인다.


천제인 해모수(解慕水)가 햇빛으로 물의 신인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를 어루만지고 뱃속을 비추니 그녀에게 태기가 생겨 마침내 알 하나를 낳는다. 깨뜨릴 수도 없고 짐승들이 범접하지도 않는 이 신기한 알에서 영특한 아이 하나가 껍질을 깨고 나왔는데, 그가 바로 주몽이다. 나이 겨우 일곱 살에 활을 만들어 백발백중의 명사수가 되니 ‘주몽’(‘활을 잘 쏘는 사람’이란 뜻)이라고 불렀다. 부여 왕자들이나 신하들의 모해가 우려된다는 어머니의 권유를 받고 주몽은 세 동료들과 함께 기듯 부여를 떠난다. 엄체수(掩遞水)란 큰 강에 이르렀을 때 활로 물고기와 자라를 불러 다리를 만들게 하여 강을 무사히 건너고 추격자들을 따돌린다. 신력을 발휘한 셈이다. 졸본(卒本) 땅에 이르러 그곳의 지배자 송양왕(松讓王)과 서로의 능력을 검증하는 일련의 대결 끝에 그를 제압한다. 그리곤 그곳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하였으며 성을 고씨로 삼았다. 주몽은 기원전 37년, 약관을 갓 벗어난 나이에 등극한 후 주변국들을 병합해 대국 고구려의 터전을 닦아놓았다.


늑대젖 빼면 허술한
로마건국신화와 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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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부터) 오녀산성에서 발견된 왕궁터·로마의 건국신화 동상(늑대의 젖을 먹는 로물루스) 

한편, 고대 서양에서의 대표적인 건국신화로는 로마 건국신화를 꼽는데, 그 주역은 에네아스와 로물루스이다. 소아시아 서북부에 자리한 트로이가 망하자 왕자 에네아스는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념에 추종자들을 이끌고 탈출하여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 표착했다가 이탈리아의 티베르 강가에 돌아온다. 그는 전쟁으로 주변 여러 왕족들의 도전을 물리치고 지배자가 된다. 그로부터 13대 후손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왕위 쟁탈전에서 아우 아물리루스는 형을 국외로 추방하고 조카딸 실비아를 신전의 무녀로 만들어 평생 처녀로 살게 한다. 어느날 실비아는 숲에 갔다가 늑대를 만나 동굴로 피했는데, 거기서 그녀의 마르스 신을 만나 쌍둥이 형제를 낳는다. 겁에 질린 왕(삼촌)의 명에 따라 쌍둥이는 광주리에 담겨 티베르강가에 버려진다. 마침 암늑대가 그들을 거두어 젖을 먹여 살리고, 양치기가 양자로 삼아 키운다. 양치기로부터 자신들의 처지를 알게 된 형제는 아물리루스를 몰아내고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게획을 세우던 중 의견이 엇갈려 형 로물루스는 동생을 죽이고 혼자서 카피톨 언덕 위에 도시를 세운다. 그것이 바로 로마이고, 이로써 로마제국은 건국의 주춧돌을 놓게 되었다.

 

보다시피, 두 건국신화의 내용이나 구조를 비교해 보면 신화의 보편성에서 오는 공통점도 있으나, 뚜렷한 차이점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고구려 건국신화는 다양한 신화소를 갈무리하고 있다. 천강소인 하늘의 신(해모수)과 물의 신(하백)의 결합은 천지조화를 말하며, 여기에 난생소가 얹히는데, 원래 천강은 북방 유목민들의 신앙이고 난생은 남방 농경민들의 신앙이나, 주몽신화에서는 그것이 하나로 어우러진다. 게다가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놓아주는 기적소도 곁든다. 한마디로 하늘의 도움과 신의 보우를 받는 천조신우(天助神佑)의 신화소가 대단히 돋보이는 복합신화이다. 이에 비해 로마의 건국신화에는 신화소가 빈약하다. 실비아가 동굴에서 마르스 신을 만나 쌍둥이 형제를 낳고,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난 것 말고는 별다른 신화소가 없다.


상쟁보다는 상생의 신화

다음으로, 그 차이점은 이념적 지향점에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상대를 눌러 이겨야 권력을 잡고 나라를 세울 수 있는 것이 건국인만큼 그 과정에 갈등과 분쟁이 없을 수는 없지만, 이것을 풀어나가는 길에서는 서로가 그렇게 다를 수가 없다. 주몽은 오이(烏伊) 등 세 죽마고우들과 끝까지 시련을 함께 이겨내면서 건국의 위업을 달성하고, ‘구르는 돌과 박힌 돌 사이’인 송양왕과의 관계에서도 어디까지나 활쏘기나 변신술의 대결, 그리고 비를 다스리는 신력 등 지혜와 능력의 검증을 통해 그를 설복시킴으로써 상생과 합일로 건국에 이른다. 이에 반해 에네아스는 오로지 전쟁수단으로 주변세력들을 물리치고 지배자가 되며, 그 후예들도 형제간에 권력을 둘러싸고 골육상잔을 벌임으로써 상극과 분열로 건국의 목적을 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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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의 첫 도읍지였던 오녀산성 

고구려는 고조선의 옛터에서 중국의 한나라가 설치했던 군현들을 쫓아내고 부여계 종족들을 규합하여 나라를 세웠는데, 그 과정이 건국신화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그 주역인 주몽은 신성한 능력을 갖춘 신화적 존재이자 강인한 의지를 지닌 역사적 인물이다. 그에 의해 엮인 건국신화는 불시에 어디서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고조선 단군의 개국신화를 내용이나 구조면에서 계승 발전시킨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 겨레의 건국신화전통을 이은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애당초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 건국신화와는 차원이 다른 독자적인 건국신화의 주인공으로 신화무대에 등장하였다. 후대에 이르러 곳곳에 시조 주몽신을 모시는 사당이 건립되어 주몽은 고구려 중심의 천하를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승화되었다. 아울러 앞선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건국된 강력한 고구려는 내내 명실상부한 동북아시아의 대강국으로서 나름의 천하관과 국가관을 가지고 한 시대를 풍미한 자주적인 나라였다. 이렇게 개국부터 다른 천하를 가꾸어 온 고구려가 중국의 ‘변방 속국’이라니, 이것이야말로 역사에 대한 어이없는 왜곡이요, 어불성설이다. 왜곡된 ‘역사’는 역사가 아니다.


더불어, 우리는 일본건국신화의 기조로 강조되는 이른바 ‘팔굉일우’(八紘一宇:팔방을 덮어 집을 삼다), 즉 ‘온 세상을 일본 천하에 둔다’는 팽창주의 망령에도 경각심을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한때 이 망령에 덩달아 춤춘 사람들이 더러 있었으며, 오늘도 우리 주변에서 어슬렁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가 뭐라고 해도 조화와 상생, 합일의 이념과 철학에 바탕한 우리 고유의 신화전통, 문화전통을 굳건히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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