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조선인들의 눈에 비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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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조선인들의 눈에 비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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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조선인들의 눈에 비친 세계

△ 1883년 미국에 도착한 보빙사 일행 (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유길준, <서유견문>, 서해문집, 2004,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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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세계 향한 당당한 ‘앎의 추구’

500년 조선조는 말엽에 와서 외세의 시달림을 받다가 끝내 일제 강점으로 망국이란 비운을 맞았다. 그러다보니 마냥 파행만을 거듭한 처진 나라로 비쳐져 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느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조선도 시종 내재한 자율적 힘에 의해 근대화의 고지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톱아올라갔다는 사실이다. 그 힘의 정신적 원천은 독창적 우주관과 탈중화적이며 개방적인 세계관에 있었다.

조선인들은 서양의 근대 천문지리 지식을 동양의 전통 우주론으로 재해석하거나 서로를 조화시키는 지혜를 발휘했다. 동양에서 우주구조론이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3세기 무렵이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 난 평면으로서 서로가 8만리 거리로 마주하고 있다는 이른바 ‘천원지방(天圓地方)’이 최초의 우주관이며, 이것을 ‘개천설’이라고 한다. 그러다가 달걀 껍질이 노른자를 감싸고 있는 것처럼, 공 모양의 하늘이 땅을 둘러싸고 있다는 ‘혼천설’이 나왔는데, 이 설에 의하면 하늘은 알 껍질처럼 땅을 감싸고 평면인 땅은 물 위에 떠있으며 태양이 낮에 땅 위를 지나다가 밤에는 물 속에 잠긴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천문관찰 의기로 만들어낸 혼천의의 원리는 바로 이 ‘혼천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철학 바탕 독창적 우주관

이러한 ‘혼천설’에 입각한 우주관은 서양의 근대적 천문지리가 소개되고 유입되면서 신이한 철학적 해석으로 치장된다. 일찍이 세 번이나 중국에 사행하면서 현지 서양문물에 감응한 이수광은 조선 최초의 백과사전이라는 <지봉유설>(1614년)에서 땅은 네모나지 않고 둥글다는 ‘지원설’을 주장한다. 두 세기 뒤 성리학자이며 과학자인 최한기는 명저 <지구전요>(1857년)에서 기철학에 바탕해 독창적인 ‘조선식 우주론’을 제시한다. 그는 재중 선교사들의 저서를 통해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과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접하고 수긍한다. 그러나 원리에 대한 해석은 전혀 다르다.


최한기는 <신기통>(1836년)과 <성기운화>(1867년) 같은 철학서에서 천체운동과 우주현상에 대한 자신의 기철학을 피력한다. 모든 천체는 둘레에 지구의 대기권과 같은 공기층인 기륜(氣輪)이 있어 항상 서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는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이 우주의 운동현상을 적시하고는 있지만, 그 원인은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다고 지적하면서 중력 작용은 천체를 둘러싸고 있는 기륜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생기는 것이며, 지구에 아침저녁이 생기는 것은 지구와 달의 기륜이 서로 접촉하고 작용한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는 빛, 소리, 온도와 같은 물리현상에 관한 서양의 과학지식을 소개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기철학을 세우는 과학적 기초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흙, 물, 불, 공기로 우주 변화를 설명한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을 부정하면서 우주에 있는 근원적인 기가 변해 흙, 물, 불, 공기가 된 것이므로 이 4원소를 근본물질로는 볼 수 없다고 통박한다. 이렇듯 그는 서양의 과학지식을 만물의 근원인 기의 운동이나 성질을 설명하는 논리로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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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길준의 <서유견문> 원본, 보빙사 시절의 유길준  



이런 독창적 우주관과 더불어 조선인들은 고질적인 중화주의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넓은 세계로 눈을 돌리는 거시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세계관은 그들이 써내거나 그린 지리서나 세계지도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몇 년 전 미국 콜럼비아 대학의 한 교수가 펴낸 <지도학의 역사>란 책은 표지로 조선 초에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152×122cm, 1402년)를 선정했다. 당시의 세계지도로는 가장 뛰어나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지도는 좌정승과 우정승 등 고관대작들과 학자들의 공동참여 아래 중국과 한국, 일본과 아랍에서 출간된 여러 지도들을 참고하여 국가사업으로 만들어낸, 당시로서는 가장 우수한 세계세도였다. 이 지도의 중요한 특징은 종래 세상을 문명세계인 ‘중화’와 오랑캐세계‘인 ’이(夷)‘로 나누는 이른바 ’화이관‘에서 출발해 중국을 중심에 놓고 그 주변에 몇 개 나라를 배치하던 중화주의적 지리관에서 탈피하고 조선의 ’심리적 크기‘를 강조한 것이다. 물론 중국을 가운데에 크게 배치한 점으로 보아 중화주의 사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 서쪽에 유럽과 아랍 및 아프리카를 그려넣고 있다. 100여 개의 유럽 지명과 약 35개의 아프리카 지명을 기재하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로서는 대단한 일이다. 이 지도에는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4배 정도 크게 그려져 있다. 그밖에 지중해가 바다 아닌 강으로 표시된다든가, 인도차이나의 여러 나라들이 바다 위의 섬으로 되어있다든가 하는 오류도 발견된다.


당대최고 세계지도 ‘혼일강리도’

이러한 경향은 이수광의 <지봉유설>이나 최한기의 <지구전요>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유길준의 <서유견문>(1895년)에서는 개화사상으로 굳어진다. 임진왜란과 정유왜란, 정묘호란, 그리고 남북인 간의 갈등 등 혼란이 심해 많은 사람들이 중국만 바라보면서 사대를 일삼던 시대에 이수광은 과감하게 중화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시야를 넓힌다. 총 10책 20권으로 된 <지봉유설>에는 천문, 지리, 경서, 문자, 언어, 복식, 심지어 곤충 같은 인문지리나 자연과학의 세세한 부문까지를 설명할뿐만 아니라, 안남(베트남), 섬라(타이), 자바, 말라카, 불랑기(佛狼機: 포르투갈), 영결리(永結利: 영국) 등 여러 나라들에 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총 3,435항목에 거론되는 인명만도 2,265명에 이르니 그 규모를 가히 짐작할 수가 있다. 같은 시대의 학자 김현성은 이 책을 평가해 “마치 귀머거리에게 세 귀가 생기고, 장님에게 네 눈이 얻어짐과 같아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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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부터) 이수광의 <지봉유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일본 교또 류코쿠 대학 도서관 소장 

우리 겨레사에서 가장 뛰어난 학자의 한분인 최한기는 평생을 생원이라는 하찮은 양반으로 지내면서 오로지 학문에만 잠심몰두해서 1천여 권의 책(남아 있는 것은 <명남루전집>을 비롯한 120권뿐)을 지었다. 조선에 들어오는 중국 서적은 먼저 그의 손을 거쳐야할 정도로 새로운 학문과 책에 열중했다. 책값이 비싸다고 푸념하는 한 지인을 두고 “책을 지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천리라도 불구하고 찾아가야 하지만, 지금 이 책으로 나는 아무 수고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그를 만날 수 있으니, 식량을 싸가지고 먼 여행을 떠나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겠는가”라고 일깨워주기도 했다. 그의 독창적인 우주관과 세계관을 집약한 <지구전요>는 총 7책 13권으로서 우주구조와 지구상의 인문지리 현상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 특히 후반부에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남북 아메리카의 6대주 5대양에 관해 총론을 펴고, 그 밑에는 매 주에 속한 각 지방과 국가의 강역, 풍토, 물산, 생활, 상공업, 정치, 재정, 왕실, 관직제도, 예절, 형벌, 교육, 풍속, 병제 등에 관해 상술하고 있다. 그밖에 최한기는 중국인 장정부가 만든 양반구형 세계지도를 들여다 지인인 김정호더러 나무판에 새기도록 했는데, 그것이 10도 간격으로 경도와 위도가, 그리고 적도를 중심으로 남북극선과 남북회귀선이 표시된 유명한 ‘지구전후도’(42×88cm, 1834년)이다.


동서문물 백과사전 ‘지봉유설’

근대화를 향한 잉태 속에서 이수광과 최한기가 그 주춧돌을 놓은 새로운 세계관의 바톤을 넘겨받은 유길준은 개화의 산고 속에서 그것을 다져나갔다. 최초의 일본 유학생이자 미국 유학생이기도 한 개화운동가 유길준은 미국에서 돌아오면서 유럽을 순방하고 나서 국한문 혼합체로 된 여행 견문기 <서유견문>을 투옥 등 우여곡절 끝에 집필 10년만에 출간했다. 총 20편으로 구성된 이 책의 내용은 크게 여행기록과 서양문물에 대한 소개, 그리고 개화사상의 전개 등 세 부분으로 나눠진다. 내용의 대부분은 세계지리와 서양문물의 소개지만, 그 행간 사이사이에는 개화사상을 관류시키고 있다. 따라서 그가 이 책을 쓴 목적은 근대화로의 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개화사상을 고취시키려는 데 있다. 그래서 비록 저자 자신은 이 책이 “영원히 전해지기를 바라고 쓴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신문지의 대용품으로나 이바지하고자 한 것”이라고 겸허를 토하지만, 그것을 훨씬 넘어 개화사상의 ‘교본’이라는 높은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넓은 세계로 향한 이들의 우주관이나 세계관을 살펴보면, 모두가 새 것을 통째로 삼키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그리고 실정에 맞게 유익한 것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다들 서양의 선진문물에 매료되어 그것을 적극 받아들이고 있지만, 동양적 전통사상에 의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유길준의 경우. 서양의 것을 너무 긍정하는 편향이 없지는 않지만, 그는 개화를 하는 데서 외국문화를 자국의 실정에 맞추어 수용하고 소화하여 자국의 우수한 문화도 계승해야 하고, 정치제도의 선택도 자유에 맡겨야 함을 지적하고 있으며, 국가평등주의를 특별히 강조하기도 한다. 그는 “나라 위에 나라가 없고, 나라 아래 나라가 없다”고 하면서 아무리 약소국의 군주라고 하더라도 강대국의 군주와 동등한 예를 주고받아야 하며, 강대국에서 파견된 사신이 약소국의 국왕과 대등한 행동을 하는 것은 잘못된 행위라고 비판한다.


주체적 지식혼 근대로 이어져

우리겨레의 역사에서 세계에 대한 앎을 추구하고 세계와 삶을 더불어하는 세계정신은 한국의 첫 세계인인 신라시대의 혜초로부터 발원된 후 고려시대의 온축기를 거쳐 조선시대에 와서 ‘세계화 서적’을 줄줄이 펴낸 지봉 이수광과 혜강 최한기, 구당 유길준으로 맥이 이어졌으며, 오늘은 또 수많은 새내기 ‘세계인’에 의해 더 알차게 영글어가고 있다. 이 세계정신이야말로 미래를 향한 우리 겨레의 비상을 가능케하는 정신적 자양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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