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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60주년-독립운동 사적지를 가다 ① ]상하이 임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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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60주년-독립운동 사적지를 가다 ① ]상하이 임시정부 윤봉길 의사
홍커우 공원 거사로 임정 존재와 영향력 과시
주택가에 남은 청사 문화재로 관리…내부는 새로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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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를 기려 94년 건립된 상하이 루쉰 공원 내 매정(梅亭).


 

1919년 4월 13일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32년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의 윤봉길 의사 의거 이후 일본군의 압박이 심해지자 항주, 가흥, 진강, 장사, 광주, 유주, 기강을 거쳐 1940년 충칭에 이르기까지 1만3000리의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광복6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와 광복회는 임시정부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을 기획했다. 4월 12일부터 일주일간 진행된 이번 탐방을 통해 생존 독립유공자 및 유족들과 함께 유적지를 살펴보고 옛 선열들의 독립을 향한 뜨거운 의지와 열망을 되짚어 본다. <편집자 주>



상하이 노만구 마당로 306롱 4호. 상하이 시절 임시정부가 마지막으로 사용한 청사가 주택가 속에 들어앉아 있다. 

노만구 인민정부가 지난 1990년부터 문화재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는 이 청사는 주변 건물들이 낡았을 뿐 청사 자체와 내부는 새로 단장한 모습이다. 

임정 요원들의 사진과 함께 누렇게 바랜 태극기가 걸린 현관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집무실이며 부엌이며 1926년 당시 모습 그대로 복원돼 마치 70여 년 전 젊은 김구 선생이 반가운 얼굴로 걸어나올 것만 같다. 

“상하이 임시정부가 가장 어려웠던 때였지. 윤 의사 의거가 없었더라면 아마 임시정부는 유지하기 힘들었을지도 몰라.” 광복회 생존 애국지사들과 유족들은 엄숙한 얼굴로 전시물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감회에 젖었다. 

지금은 옛 허름한 모습을 찾기 어려우나 이 마당로 청사에서의 임정 생활은 궁핍 그 자체였다. 한때 1000여명에 달하던 상해 독립운동가의 수가 차차 줄어들어 겨우 수십 명에 불과한 시절, 독립 운동가들이 굶주리는 것을 가슴 아파했던 백범 선생의 어머니는 밤늦게 채소장수가 버린 배춧잎을 주워 소금물에 절여 김치를 만들어 내놨다고 한다. 

백범이 “찾아오는 이라고는 경찰과 세금 독촉하러 오는 사람 뿐”이라고 말했던 이곳은 이제는 연 25만명에 달하는 방문객이 찾는 관광명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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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2층에 복원된 김구 선생 집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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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입구에 걸린 태극기(태극무늬가 세로다)와 부엌 내부(오른쪽).



임시정부 청사가 이렇듯 사랑받는 장소가 된 데는 한국과 중국 정부가 함께 기울인 복원 노력의 공이 크다. 양국 정부는 임시정부가 떠난 지 60년만인 1993년 4월 13일 청사를 복원했다. 

2층 김구선생 집무실에서 내려가는 방향으로는 각 피난 시기 임정 활동을 알리는 전시물이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2001년 보수 확장 때 독립기념관이 나서서 전시 내용을 많이 보강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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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복원 과정을 담은 전시물.



비록 궁핍한 시절이었지만 마당로 청사 시절의 임정이 큰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를 통해 임시정부의 존재와 영향력을 세계만방에 알렸기 때문이다. 

만주사변으로 중국 대륙에 항일운동이 들불같이 퍼져나던 시기에 일본은 보란 듯이 각 열강의 조계지가 있던 국제도시 상하이에서도 사변을 일으켰다. 피투성이가 된 상하이에서 일본은 천황의 생일을 맞아 버젓이 승전기념 행사를 치르려 했고 이곳에 조선인 청년 한명이 폭탄을 투척, 일본군 요인을 폭살함으로써 충격을 안겨준 것이다. 장제스(蔣介石)가 “중국의 100만 대군이 못하는 일을 한국의 한 의사(義士)가 해냈다”며 격찬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한때 한국인에 대해 반감을 가졌던 중국인들의 태도가 일거에 바뀐 것은 물론 중국 정부는 임시정부를 후대해 피난시기 내내 원조를 아끼지 않았다. 

중국정부와 중국인들은 이를 기려 1994년 루쉰 공원(옛 홍커우 공원)안에 매헌 윤봉길의 호를 딴 ‘매정(梅亭)’이라는 이름의 정자를 지었다. 이들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자신들의 항일 운동과 밀접하게 생각하고 관련 유적들을 복원하는 데 적극적이다. 

홍커우구 인민정부와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는 이 정자를 한 차원 승격시켜 2003년 12월 4일 '윤봉길의사 생애사적전시관'으로 재개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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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공원(옛 홍커우 공원) 내 세워진 윤봉길 의사 기념비.



지상 2층 건물 규모의 기념관에는 윤봉길 의사 흉상과 함께 출생에서부터 의거 때까지의 활동상, 이후 독립운동에 끼친 영향을 소개하는 전시물들이 사진과 함께 걸려있고 전문 안내원이 상주하면서 방문객들을 상대로 설명도 해준다. 

대학졸업 후 2년간 안내원을 했다는 중국인 정씨는 “중국에도 항일 유공자들이 많지만 평소 많은 한국인들이 전시관을 방문하고 윤봉길 선생을 존경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말한다. 

특히 이날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와 홍커우 공원 방문에는 대규모 인원이 동행했다. 광복회 일행이 상하이를 찾은 4월 13일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꼭 86년째 되는 날. 이날 정부공식 행사로는 광복 60년 만에 처음으로 상해현지에서 임시정부 수립 기념행사가 치러졌다. 기념식장에는 정부 대표단 뿐 아니라 교민, 유학생,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들, 상해시 관계자, 임시정부에 관심을 가진 중국인들이 다수 참석해 축하했다. 이 참석자들이 모두 함께 청사와 공원을 다녀간 것이다. 

중국과 한국에서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과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시도 등으로 각지에서 반일 시위가 벌어지던 때였기에 독립운동 사적지에서 만난 중국인들이 한국인에게 보이는 우호의 감정은 더욱 선명해진 듯 했다. 한류로 한중관계가 가까워졌다지만 문화적 유행 이전에 이미 양국 사이에는 공통된 역사의식이라는 보이지 않는 실이 연결돼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탐방 길이었다. 

강만길 광복 6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임시정부가 고난의 행보에도 불구하고 광복때까지 무사히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중국 정부와 국민들의 공이 크다”며 “광복 60주년을 계기로 한·중 우호 관계를 돈독히 해 동북아 평화를 실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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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정 2층 전시관 내부.


 

<인터뷰> 한국 독립운동사 소설로 알리는 중국인 작가 샤녠성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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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작가 샤녠셩씨.
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열린 제86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기념일 행사장에서 특별한 중국인을 한 명 만났다. 

한국과 중국의 관련 유적지를 직접 조사하는 뜨거운 열정으로 김구선생과 윤봉길 의사 등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를 소설로 집필한 그의 이름은 샤녠성(夏輦生). 가흥일보(嘉興日報)의 편집인이자 인기 드라마 작가와 아동문학 작가로 활동 중이다. 

그는 “한국의 독립운동사는 중국과 한국이 함께 기억해야할 중요한 역사이므로 후손들에게도 이러한 역사를 알리고 싶어 작품을 쓰게 됐다”고 말한다. 

샤녠성씨가 독립운동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복합적이다. 독립운동이 활발했던 난징과 다롄에서 나고 자라기도 했지만 그의 형부가 김구 선생 경호원이었던 유평파·송정헌 부부의 아들이라는 특별한 인연도 있다. 그는 가흥일보 편집인을 지내면서 한국에서 학술조사차 가흥의 임시정부 유적지를 방문한 학자들을 여러 차례 안내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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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출간된 '선월'.
그가 독립운동을 소재로 쓴 작품으로는 김구 선생의 자싱(嘉興)시 피난시절 처녀 뱃사공과의 사랑을 다룬 ‘船月’, 전기소설인 ‘處步流亡-金九在中國’, 윤봉길 의사를 소재로 한 ‘回歸天堂’,‘韓流三部曲’ 등 여러 편이 있다. 이 가운데 ‘선월’과 ‘회귀천당’은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다. 

현재 ‘선월’을 소재로 한 드라마 또는 영화 제작이 상하이 총영사관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추진 중이므로 머지않아 이들 작품을 TV나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 전했다. 

샤녠성씨는 “요즘처럼 일본의 역사인식이 왜곡되고 평화를 위협받는 때일수록 젊은 세대들의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고 바른 역사관을 갖게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평소 대학 등을 방문할 때 학생들에게 윤봉길 의사를 소개하고 소설도 읽힐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인이면서 한국 독립운동사를 소설에 녹여 대중에 알리는 일을 하는 샤녠성씨. 그의 관심과 노력은 ‘한·중 우호’를 강조하는 숱한 수사보다 훨씬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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