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찾아서] 한국의 성씨 이야기 박씨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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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를 찾아서] 한국의 성씨 이야기 <25> 박씨의 유래

관리자 0 1593

박씨, 박혁거세 유일 시조이자 우리나라에만 있는 고유 성씨
박씨 인구 389만5000명… 성씨 중 3위
밀성대군파 밀양박씨 전체 70∼80%
신라시대 박혁거세 등 10명 왕위 올라

박씨(朴氏)는

박씨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많은 인구를 갖고 있는 성씨이다. 2000년 국세조사에서는 121만5000가구에 389만5000명으로 286성 중 제3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전체 인구의 8% 내외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그중 흔히 밀양을 본관으로 하는 밀성대군파(密城大君派)의 밀양박씨(密陽朴氏)가 전체 박씨 인구의 70∼80%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외에 반남(潘南), 죽산(竹山), 함양(咸陽), 순천(順天), 고령(高靈), 무안(務安), 충주(忠州)박씨가 주류를 차지해 이를 ‘8박’이라고 부른다.

박씨의 본관은 ‘조선씨족통보’, ‘증보문헌비고’, ‘박씨선원대보’ 등에 300본 이상이 기록되고 있으나 그중 시조가 분명하게 밝혀지고 후손이 현존하는 본관은 70여 본이다. 위의 8박 외에 박씨의 주요 본관은 상주(尙州), 창원(昌原), 음성(陰城), 영해(寧海), 영암(靈巖), 진원(珍原), 고성(固城), 울산(蔚山), 운봉(雲峰), 춘천(春川), 비안(比安), 강릉(江陵), 월성(月城), 태인(泰仁), 면천(沔川), 삼척(三陟), 문의(文義), 장성(長城)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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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형제를 두어 주요 박씨의 실질적인 시조가 된 신라 경명왕의 능(경주 배동 삼릉).

신라는 박(朴)·석(昔)·김(金)에 의해 왕위가 교체되었는데, 그중 박씨 왕은 시조인 박혁거세를 비롯해 모두 10명이다. 박씨는 신라 초기에 7명이 왕위에 올랐으며, 신라 말기 신덕왕과 경명왕, 경애왕 등 3명이 왕위에 올랐다. 박씨는 혁거세의 증손인 파사왕(婆娑王)과 일성왕(逸聖王) 대(代)에서 갈라졌다. 파사왕계는 뒤에 영해·면천·강릉 등으로 분적(貫籍)했고, 비안·우봉(牛峰)·이산(尼山)·해주(海州)박씨 등도 파사왕의 후손이라 한다.

그리고 일성왕계는 그의 25대손인 경명왕(景明王), 경애왕(景哀王) 대에서 갈라졌다. 경명왕은 아들로 9형제를 두었는데, 밀성대군파(密城大君派·밀양박씨), 고양대군파(高陽大君派·고령박씨), 속함대군파(速咸大君派·함양, 삼척박씨 등), 죽성대군파(竹城大君派·죽산, 음성, 고성박씨), 사벌대군파(沙伐大君派·상주, 충주박씨), 완산대군파(完山大君派·전주, 무안박씨), 강남대군파(江南大君派·순천, 춘천박씨 등), 월성대군파(月城大君派·경주박씨)의 8대군파와 국상공파(國相公派·울산박씨)로 분파되었다. 그 외 경애왕 후손은 계림대군파(鷄林大君派)가 있다.

우리나라의 3대 성씨는 김씨·이씨·박씨인데, 이들은 약간씩 다른 특징이 있다. 김씨가 가야계의 김수로왕 계통과 신라계 김씨로 나뉜다면, 이씨는 한두 계통이 아닌 아주 다양한 시조를 받들고 있다. 하지만, 박씨는 김씨나 이씨와 달리 단일 시조를 받들고 있다. 모든 박씨가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유일한 시조로 받들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아직도 박씨끼리는 되도록 혼인하지 않으려는 관습이 있다.

또한 박씨는 김씨나 이씨와 달리 우리나라에만 있는 성씨이다. 김씨나 이씨는 중국이나 베트남 등에도 존재한다. 하지만, 박씨는 중국에 비슷한 음을 갖고 있는 번씨나 판씨가 존재하긴 하나, 박(朴)이라고 쓰는 성씨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고유의 성씨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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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거세 천강설화가 서린 경주시 탑동에 있는 우물 나정(蘿井). 이곳에는 박혁거세를 기리는 유허비를 비롯하여 신궁터로 추정되는 팔각건물지, 우물지, 담장지, 부속건물지, 배수로 등이 남아 있다.

박씨의 유래와 기원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모든 박씨들은 박혁거세를 유일시조로 받들고 있다. 따라서 박씨의 유래와 기원을 이야기하면서 박혁거세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가 없다. 박혁거세에 관한 신화 또는 기록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제왕운기에 실려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소벌도리공이 정씨의 시조인가, 최씨의 시조인가만 다를 뿐 내용은 대동소이한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진한(辰韓) 땅에는 여섯 마을이 있었다. 첫 번째가 이씨의 조상인 알평이 다스리는 알천 양산촌인데, 알평은 하늘에서 표암봉으로 내려왔다. 두 번째는 정씨의 조상인 소벌도리가 다스리는 돌산 고허촌으로, 소벌도리는 하늘에서 형산으로 내려왔다. 세 번째가 손씨의 조상인 구례마가 다스리는 무산 대수촌으로, 구례마는 하늘에서 이 산으로 내려왔다. 네 번째가 최씨의 조상인 지백호가 다스리는 취산 전지촌인데 지백호는 하늘에서 화산으로 내려왔다. 다섯 번째가 배씨의 조상인 지타가 다스리는 금산 가리촌으로, 지타는 하늘에서 명활산으로 내려왔다. 여섯 번째는 설씨의 조상인 호진이 다스리는 명활산 고야촌인데 호진은 하늘에서 금강산(경주 북쪽에 있는 산)으로 내려왔다.

기원전 69년 3월 초하룻날 여섯 마을의 족장들이 자식들을 데리고 알천 언덕에 모여 회의를 하였다.

“우리에겐 백성을 다스릴 임금이 없소. 그래서 백성들은 제멋대로 행동하여 질서가 잡히지 않고 있소. 이제 우리에게도 임금님이 있어야겠소.”

“그래야지요. 임금님을 모시고 나라를 세워 도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 임금님은 마음이 어질고 슬기롭고 덕과 용기를 갖춘 인물이라야 하오.” “그런데 그런 인물을 어디서 찾는단 말이오?” 이런 논의를 하고 있을 때였다. 회의 장소인 알천 언덕에서 남쪽으로 그다지 멀지 않은 양산 기슭에 이상한 기운이 보였다.

“저것이 무엇이오?”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봅시다.” “앗! 저기 양산촌 나정 우물가에 신비한 오색 광채가 뻗치고 있소.” “흰 말 한 마리가 거기에 대고 절을 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무슨 징조일까?” 그들은 오색 광채가 뻗치고 있는 곳으로 몰려갔다. 흰 말이 절하고 있는 곳으로 다가가 보니 자줏빛 알 하나가 놓여 있었다. 말은 몰려온 사람들을 보더니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사람들이 그 알을 깨어 보니 생김새가 단정하고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나왔다. 모든 사람들은 놀랍고 신기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선 목욕부터 시킵시다.” 누군가 말하자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알에서 나온 아기를 데리고 가서 동천 냇물에 목욕을 시켰다. 깨끗이 씻긴 아기의 몸에서는 광채가 났고 새와 짐승들이 모여들어 춤을 추었다. 그뿐이 아니라 하늘과 땅이 흔들리고 햇빛과 달빛이 더욱 밝아지기까지 하였다. 그러자 아기의 이름을 ‘혁거세(赫居世)’라고 지었다. 여섯 마을 사람들은 하늘이 임금님을 내려 주었다고 생각을 했다.

“이제 임금님이 내려오셨으니 마땅히 덕이 있는 왕후를 찾아 짝을 지어야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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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의 70∼80%를 차지하는 밀양박씨의 시조 박언침의 단소(檀所).
백성들의 바람대로 같은 날 사량리에 있는 알영 우물가에 한 마리 계룡(鷄龍)이 나타나 왼쪽 갈비에서 여자아이를 낳았다. 그 아기의 얼굴은 무척 아름다웠지만 입술이 마치 닭의 부리와 같이 생겨서 사람들이 곧 아기를 월성 북쪽에 있는 냇물로 데려가 목욕을 시켰더니 그 부리가 떨어졌다. 부리가 빠진 시냇물이라 해서 시내의 이름을 발천이라고 했습니다. 여섯 마을의 족장들은 남산 서쪽 기슭에 궁궐을 짓고 성스러운 두 아기를 받들어 길렀다. 사내아이가 태어난 알의 모양이 박과 같았기 때문에 성을 박씨라고 지었고, 여자아이는 그가 나온 우물 이름을 따서 알영이라 지었다. 13세가 되던 해 여섯 마을 족장들은 박혁거세를 왕으로 받들고 알영을 왕비로 삼아 나라를 세우니 기원전 57년 신라가 건국되었다.

처음에 나라 이름을 ‘서라벌’ ‘서벌’ ‘사라’ ‘사로’라고 하다가 ‘계림국’이라고도 고쳤으나 후세에 와서 ‘신라’라는 이름으로 정했다. 혁거세 왕은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째 되던 어느 날 하늘로 올라간 뒤 7일 만에 죽은 몸이 땅으로 떨어졌다. 그 후 왕비도 왕을 따라 곧 세상을 떠났다. 이에 백성들은 땅에 흩어진 왕의 몸을 한자리에 모아 장사를 지내려 하였다. 그런데 큰 뱀이 나타나 쫓아다니며 왕의 몸을 한자리에 모으지 못하게 방해했다. 그래서 백성들은 혁거세 왕의 머리와 팔다리를 따로따로 다섯 개의 무덤을 만들고 그것을 사릉(蛇陵)이라고 했다. 혁거세 왕의 뒤를 이어 태자 남해가 왕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이상이 박혁거세와 그의 부인 알영에 관한 신화의 내용이다. 여기서 박혁거세의 이름을 혁거세, 또는 불구내(弗矩內·‘붉은 해’의 이두식 표현)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박씨가 된 이유로 박과 같은 알에서 나왔다거나 ‘밝다’는 의미에서 박씨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박혁거세는 그 자체가 ‘밝은 밝은 해’, 또는 ‘박에서 태어난 밝은 해’라는 이상한 말이 된다. 마치 ‘역전(驛前)앞’이라는 단어처럼…. 따라서 박혁거세가 박씨였다는 것은 성씨가 일반화된 후대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성씨의 시작은 백제의 근초고왕, 고구려의 장수왕, 그리고 신라에서는 진흥왕 때부터라는 것이 일반적인 이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박혁거세가 박씨의 시조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신라 하대에 신덕왕, 경명왕, 경애왕 등으로 박씨 왕위가 계승된 것은 박씨족이 계속해서 씨족을 유지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신라는 17대 내물왕 이후 박, 석, 김의 왕조에서 김-박 연합왕조로 변천되는데, 이는 내물왕 이후부터 석씨에 관한 기록이 사라진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박씨는 내물왕 이후에도 왕비 등을 배출하며 씨족의 명맥을 유지했지만, 석씨는 완전히 몰락하여 역사에서 사라졌던 것이다. 따라서 박혁거세가 박씨 성을 썼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가 박씨의 시조라고 하는 주장은 그다지 틀린 주장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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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거세 남해왕 유리왕 파사왕 등 신라 초기 네 박씨 임금과 박혁거세의 왕후인 알영의 무덤으로 알려진 오릉(일명 蛇陵).박혁거세는 토착민인가? 이주민인가?

김부식의 삼국사기나 일연의 삼국유사에서는 박씨 성을 쓰게 된 이유로 “혁거세가 ‘박과 같은 알에서 나왔다’고 해서, 또는 ‘밝다’라는 뜻에서 박씨 성을 쓰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박씨 성을 얻은 과정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박혁거세가 토착민 출신인가, 아니면 이주민 출신인가에 대한 대답은 찾을 수 없다.

그런데, 박혁거세의 탄생배경과 관련하여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재미있는 기록이 있다. 김부식은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겪은 일을 삼국사기 신라본기 맨 마지막에 적고 있는데, “송나라 사람 왕보(王?)가 한 사당에 걸린 선녀의 초상을 보여주는데, 이이는 고려의 신이라 하며, ‘옛날 어느 제왕가의 딸이 남편 없이 임신해 사람의 의심을 받게 되자, 곧 바다를 건너 진한에 도착해 아들을 낳았는데, 곧 해동의 첫 임금이다…(하략)”라는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선도산 신모는 본디 중국 황실의 딸로 이름은 사소(娑蘇)였다. 어려서 신선의 술법을 익혀 동쪽 나라에 와서 살더니, 오래도록 돌아가지 않았다…(중략)…신모가 처음 진한에 왔을 때, 성스러운 아들을 낳아 동국의 첫 임금이 되게 하였으니, 혁거세와 알영 두 성인이 그렇게 나왔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혁거세는 중국 황실의 딸 사소의 아들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록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긴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박혁거세의 신화 내용만으로 본다면, 남방계 농경민의 난생설화와 북방계 유목민의 천강설화가 결합되어 있다. 오색구름과 말은 천강설화를 상징하는 것이고, 알은 난생설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런데, 난생설화의 분포도를 보면 중국 광둥성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동남아, 그리고 북쪽으로 만주까지 해양을 중심으로 퍼져 있다. 반면 천강설화는 중앙아시아와 몽골에서 한반도 남쪽까지 걸쳐 있다. 따라서 박혁거세 신화는 한반도에 먼저 진출한 남방계 토착 농경민 사회에 새로운 지배층으로 등장한 북방 이주민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이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 등 중국의 고서에서 신라 6부족의 기원을 ‘고조선의 유민’이라거나, ‘진나라 유민’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따라서 박씨는 우리나라 고유의 성씨이긴 하지만, 그 시조인 박혁거세는 북쪽에서 한반도로 온 이주민 출신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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