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의 기원과 발명을 둘러싸고 한국과 중국 사이에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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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의 기원과 발명을 둘러싸고 한국과 중국 사이에 논쟁

관리자 0 1327
원로 국어학자 진태하 교수 주장
中언론 “오류 투성이” 잇단 반박
韓·中 네티즌 발명 논쟁 불러
  • 한자의 기원과 발명을 둘러싸고 한국과 중국 사이에 논쟁이 불붙을 조짐이다.

    이 논쟁은 원로 국어학자인 진태하(사진) 인제대 석좌교수가 “한자는 우리글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촉발됐다. 진 교수는 지난 4월 중순 한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자는 중국 문자가 아니라 우리 조상 동이(東夷)족이 만든 우리글이며 중국 학계에서도 이런 사실을 인정하는데 우리만 모른다”고 지적했다. 진 교수 주장의 핵심은 동이족의 문자가 3400년 전 은나라 때 갑골문에서 발전한 문자이며 이것이 바로 한자라는 것이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가 진 교수의 발언을 소개하면서 뜨거운 논쟁이 중국에 일고 있다. 이 글은 신화통신에도 실렸다. 중국 인터넷뉴스사이트 21CN은 25일 홈페이지에서 ‘중국 문화는 왜 늘 한국에 당하는가’라는 제하의 머리기사를 통해 반박하고 나섰다. 21CN은 특히 한국이 공자와 이백(李白·이태백), 서시(西施·춘추시대 말기 월나라의 미인) 등 유명인의 국적과 활자인쇄술, 혼천의의 발명, 단오절, 중의학, 풍수와 같은 전문가 말을 인용, ‘동이족’이란 고대 동방민족의 통칭으로, 많은 부족이 포함돼 있다며 동이족이 한국인의 선조라고 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한자가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하기까지는 오랜 역사 과정을 겪었다며 동이족이 기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한자의 발명자가 동이족이라는 말은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화민족’이라는 개념도 들고 나왔다. 동이족이 이미 중화민족에 흡수됐다는 것. 21CN은 동이족이 주거했던 땅도 산둥(山東)성 등 중국의 동방지역이며 이곳은 지금은 중국 영토라고 덧붙였다.

    21CN은 또 진 교수가 ‘중국의 임어당(林語堂)과 사학자 왕옥철(王玉哲)도 중국의 문자는 모두 동이족이 창조했고 공자도 동이족의 후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고 주장한 데 대해 두 사람이 중국학계를 대표할 수 없다는 반론을 제기했다. 이 매체는 “진 교수의 주장이 오류투성이고 허점도 끝이 없다”며 “한국인이 이처럼 중국과 각종 전통문화 소유권을 놓고 다투는 까닭은 한국 문화 자체가 중화민족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고 그 계승자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비꼬았다.

    베이징=주춘렬 특파원
    한자의 기원 둘러싼 한중 학계 주요 쟁점과 입장
    쟁점 진태하 교수측 중국 학계
    동이족 우리 조상 고대중국의 동방민족 통칭, 중화민족에 편입
    한자
    발명
    동이족이 갑골문을 바탕으로 만든 문자 갑골문도 이미 성숙한 중국문자, 한자발명은 과장
    한자
    기원
    3400년전 은나라때 8000여년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한자명칭 한나라때도 한자 명칭이 없었다 한나라 전의 한자 역사 말살하는 행위
    중국학계
    평가
    임어당, 왕옥철 등도 동이족의 한자 창조 인정 이미 작고한 인물로, 학계 대표할 수 없다
    자료: 뉴데일리, 21CN

 

 

 

갑골문자는 중국 고대 상(商·BC 1600~1046년)나라의 수도인 은허(殷墟·허난성 안양현)에서 1899년 처음 발견된 이후 중국 최초의 문자로 인정받아 왔다.

산둥(山東)대 고고미술학연구소 류펑쥔(劉鳳君) 소장이 최근 중국 고고학 관계자들을 초청한 세미나에서 갑골문자 이전에 다른 형태의 골각(骨刻)문자가 산둥성 창러(昌樂)현 지역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밝혔다고 홍콩 문회보(文匯報)가 21일 보도했다. 류 소장은 중국 고고미술학의 창시자로 학계의 명망이 깊은 학자다. 이 자리에 참석한 사회과학원 왕위신(王宇信) 교수 등 은상문화협회(殷商文化協會) 관계자 5명은 모두 류 소장의 학설에 동의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세미나에서 이 문자는 ‘창러골각문’으로 이름 붙여졌다.

 

류 소장은 산둥성 민간 소장가인 샤오광더(肖廣德)가 2004년부터 최근까지 창러현 지역 주변에서 수집한 수백 개의 골각문자를 연구한 결과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류 소장에 따르면 이들 도안은 소의 어깨뼈와 사슴·코끼리 뼈에 새겨져 있었다.

도안의 형태는 다양했다. 뼈 한 곳에 100여 개의 서로 다른 도안이 새겨진 것도 있고, 1~2개의 도안만 새겨진 뼈도 있다. 여러 개의 도안은 세로로 정렬돼 있어 특정 사안을 기록한 문자로 봐야 한다는 게 류 소장의 주장이다. 단순한 그림일 경우 이처럼 정렬된 형태로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이다. 점복(占卜)기록인 갑골문자와 달리 골각문자에선 점복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다.

류 소장은 “뼈의 색깔과 석화(石化) 상태를 판단해 볼 때 문자를 새긴 연대는 4000~4500년 전으로 보이며, 이는 중국 산둥성의 룽산(龍山) 신석기 시대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함께 출토된 뼈로 만든 칼과 송곳은 전형적인 룽산 중·후기 시대의 도구들이었다.

중국 고고학자들은 당시 산둥 지역은 한민족을 포함한 동이(東夷)족들이 집단으로 거주했기 때문에 이 골각문자는 동이문자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 소장은 “문자의 모양도 고대 상형문자인 동이문자 계열에 속한다”고 지적했다. 류 소장은 이어 “안양(安陽)을 중심으로 한 은허 지역에서 발견됐던 갑골문자도 동이족의 골각문자가 발전한 형태일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20세기 중국 고고학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 갑골문자 발견이었다면 이번 골각문자 발견은 중국 역사를 지금보다 1000년 이전으로 돌리는 21세기 중국 고고학의 역사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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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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