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내 고향 도라산(都羅山)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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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내 고향 도라산(都羅山)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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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도라산(都羅山) (1회)
 
  제1장 내 고향 도라산



역사의 거센 변전(變轉) 속에서 오랜 세월 경계지대의 역할을 맡아온 장단(長端)에는 임진강이 흐른다.
길이 272km로 우리나라에서 일곱 번째로 큰 이 강은 허리를 동강내며 지나는 휴전선이 말해 주듯 우리의 현실을 증언하며 민족분단 역사의 한 복판을 흐르는 강이다.

장단의 복동쪽 산악에서 발원한 사미천(沙尾川), 사천(砂川) 등 크고 작은 수많은 내들이 이 강으로 흘러드는데, 유역의 습지는 따뜻한 지하수가 솟아나면서 겨울에도 얼지 않아 큰고니, 흰비오리, 민물도요, 두루미를 비롯한 겨울철새들의 도래지로 유명하다.

휴전 이후 50년이 넘도록 사람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던 이 습지들은 생물의 다양성이 어느 곳보다도 풍부하고, 생태계가 완벽에 가까운 상태로 보존되어 세계적인 관찰의 대상으로 떠올라 있기도 하다. 

특히 임진강 연안의 기름진 평야에서는 갖가지 밭작물들이 풍성하게 재배되는데, 그 중에서도 장단의 콩은 장단백목(메주태) 또는 장연대두(長漣大豆)로 불리며 전국적으로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이 임진강이 흐르는 아름답고 포근한 평야를 굽어보며 우뚝 솟아있는 산이 도라산(都羅山)이다. 장단이라는 지명은 한국전쟁 당시 우리 해병대가 사천(砂川)을 사이에 둔 격전 끝에 중공군 정예사단의 공격을 물리친 ‘장단지구 전투’ 때문에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지만, 그러나 장단을 아는 사람 가운데도 휴전선 가운데 묻혀 지뢰만 널려 있는 도라산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던 도라산이 세상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 것은 이곳에 도라산역이 세워지면서부터다.

경의선(京義線) 복원공사가 시작되면서 경의선 남측구간의 마지막 역으로, 비무장지대를 불과 300m 남겨놓은 곳에 지어진 이 도라산역은, 2002년 2월 20일 우리나라 대통령과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방문함으로써 한반도 분단의 상징적 장소로 부각되면서 세계 언론의 각광을 받기도 했다.

이곳에서 일단 멈추었던 철로는 2003년 6월 민족의 동맥으로 불리는 경의선이 연결되면서 북한의 봉동역(鳳東驛)으로 이어졌는데, 이 철로 위로 열차가 자유롭게 달리는 날이 오면 도라산역은 신의주, 더 나아가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으로 진출하는 ‘철의 실크로드’ 남측 시발점이 될 전망이다.

서울에서 56km, 평양까지 205km라는 표지판이 서 있는 도라산역에는 2002년 설날, 임진강 철로를 건너 특별 망배열차(望拜列車)가 들어온 이후 지금은 하루 두 차례 실향민을 비롯한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현재는 운행이 중단된 상태임)   
 
▲ 도라산역 [출처 ; 파주시청]


높이는 300m가 안 되지만 임진강 유역의 넒은 벌 한 가운데에 자리 잡은 도라산은 경관이 아름다워 예로부터 명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 이름의 유례에도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천하가 혼란스럽던 나말여초(羅末麗初), 신라의 경순왕은 천년 사직의 신라를 삼한을 통일한 왕건에게 고려에 바치고 귀부했다. 이에 왕건은 자신의 딸 낙랑공주(樂浪公主)와 경순왕을 결혼시키는 등 극진한 대접을 했지만, 나라를 잃은 왕의 슬픔이 쉽게 달래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낙랑공주는 슬픔에 잠긴 지아비를 위로하고자 도라산 북쪽 중턱에 영수암(永守庵)이라는 암자를 지었는데, 경순왕은 조석으로 이곳에 올라 멀리 신라의 도읍 경주를 돌아보며 망국의 한에 젖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산의 이름이 도라산(都羅山)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이곳 도라산 마루에는 조선 초기 이후 국난 시의 위급 상황을 봉화를 통해 한양으로 전달하던 봉화대(烽火臺)가 설치되어 있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경순왕을 위로하기 위해 지어진 한때 창화사(昌和寺)로 불리기도 했던 영수암, 그리고 봉화대마저 없어진 도라산에 1986년 9월 새로운 건축물이 하나 들어섰다. 송악OP라고 불리던, 장단의 송악산에 있던 대북관측소가 폐쇄되면서 이곳에 도라전망대가 설치된 것이다.

북한의 생활상을 일부나마 바라볼 수 있는 남측의 최북단 전망대인 이곳에서는 개성(開城)시가지와 김일성 동상, 경의선을 달리던 증기화차가 누워있는 장단역, 금안골의 협동농장 등을 망원경을 통해 바라볼 수 있다.

인근의 제3땅굴, 판문점과 함께 대표적인 안보 관광코스가 된 이 전망대는 개성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과, 도라산역까지 생겼으나 장단역을 눈앞에 두고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장단 사람들, 특히 내 고향 도람산(도라산의 방언)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달래주는 곳이기도 하다.

1천여년 전 신라 경순왕이 남쪽 경주를 향해 합장하며 고향을 그리워했던 도라산이 지금은 실향민이 북쪽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합장을 하는 장소로 변해있으나,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곳이 아닐 수 없다.

이곳 도라산이 내 고향이다. 나는 1935년 을해(乙亥), 음력 8월 22일 경기도 장단군 장단면 도라산리 112번지에서 아버지 박교준(朴敎駿) 씨와 어머니 이금순(李金順) 여사의 4남으로 태어났는데, 어려서 자(字)를 명유(鳴有)라 했다. 아들로는 막내면서 6남매의 중간인 내게는 위로 세 분의 형님[종국鍾國, 종억鍾億, 종원鍾元]이 계시고 아래로 누이동생 두 명[정순丁順, 경순庚順]이 있다.

장단은 한국전쟁 이후 행정구역이 남북으로 갈리면서 북쪽 지역은 황해도에 소속되고 남쪽은 파주군에 편입되어 지금은 장단((長端)이라는 이름만 남아있다.

내 유년의 기억 속에 높이 솟아 있는 도라산도, 봉화대가 있던 정상이 밋밋하게 둥글어지고 자동차까지 오르내리는 전망대로 변하고 말았지만, 산 아래 작은 개울 석포천(昔浦川)은 오늘도 예대로 흐르면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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