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첫 숙직 날 사표를 쓰다 (1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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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첫 숙직 날 사표를 쓰다 (1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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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숙직 날 사표를 쓰다 (14회)

  제3장 대학 진학과 방송국 입문




지루하고 힘든 아나운서 교육을 마치고 콜사인 또는 동보연락(洞報連絡)으로 불리는 각 지방 방송국에 알리는 초보 방송을 끝내고 나면 마치 한 사람의 아나운서로 인정되어 소속이 되고 숙직도 하게 된다.


다른 직장에서는 숙직이 달가울 리 없지만, 그 시절의 아나운서들에게 숙직은 하나의 기회였다. 라디오만 있을 때다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와 아침 6시부터 9시까지가 ‘골든아워’였는데, 숙직을 해야만 이 시간에 방송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나운서는 모두가 숙직을 좋아했다.


나는 첫 숙직방송을 황우겸(黃祐謙) 아나운서를 선임으로 모시고 하게 되었다. 집에서는 일가들에게, 낮에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 내가 오늘 저녁방송을 한다고 잔뜩 선전을 한 뒤 저녁 7시에 출근을 했다.


출근 시간은 8시였으나 내게 어떤 방송이 배정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1시간 일찍 나온 것이다. 내게는 중간 중간에 나가는 콜사인과 방송이 끝나는 멘트, 내일 시작하는 멘트가 배정되어 있었는데 방송 같은 방송은 10시 50분부터 11시까지 10분간 진행되는 내일의 방송순서였다.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8시쯤부터 내일의 방송순서 예고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방송시작 직전까지 같은 원고를 백번도 넘게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철저한 준비 끝에 드디어 스튜디오에 들어갔다. 밖에서는 엔지니어가 잘하라고 손짓을 해주었고 나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마침내 ‘ON-AIR'라는 빨간 불이 들어오고 나는 “내일의 방송순서를 예고해드리겠습니다. 5시 아침음악, 5시 30분 메모...” 하면서 방송을 시작했다.


나는 긴장하면서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막상 마이크를 잡고 나서는 스스로에게 ‘내가 왜 이렇게 잘하지?’ 하고 묻고 싶을 정도로 멋지게 방송을 이어갔다.


“이상 내일의 방송순서를 마치겠습니다. KBS." 하고 시계를 보내 11시 15초 전, 정확하게 시간까지 맞추었다. ”여기는 서울 중앙방송국입니다. HLKA.'를 마치자 곧바로 ‘삐삐삑’ 하고 시보가 울렸다. 나는 신이 나서 밖에 있는 엔지니어를 쳐다보았고 그는 두 손가락을 동그랗게 해보이며 성공을 축하해주었다.

 

어깨를 으쓱대며 주조정실로 들어가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칭찬 전화벨이 걸려오기 시작하나보다 하고 전화 쪽을 쳐다보았는데 엔지니어가 지금 ‘순서예고’를 한 아나운서를 바꿔달라면서 수화기를 넘기는 것이었다.


“제가 지금 방송한 아나운서입니다만...”

나는 자신만만하게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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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범 실장 때의 아나운서 식구들 / 강익수, 강찬선, 황우겸, 임택근, 최계환, 강인숙, 김인숙, 최세훈, 이광재, 인동순 아나운서들이 보인다. 나는 윗줄 왼쪽이다


“나는 드라마를 쓰는 이경제입니다.”

저쪽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일 밤 8시 반에는 내가 쓴 방송극이 나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 이서구 선생 이름이 나온 것 같아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나는 숨을 죽이고 재빨리 순서 예고지를 보았다. 내가 맞았다. 나는 휴우! 하고 한 숨을 내쉬며 “그 시간에 이서구 선생의 방송극이 나가는 게 맞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다시 이경제 씨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확인해보시죠. 내일이 며칠이고 무슨 요일인지...”


아뿔싸! 나는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다. 나는 내일이 아니라 그 다음날의 순서예고지를 들고 있었다. 아나운서 계장의 결재함에는 사나흘 분량의 순서예고지가 들어있었는데 나는 그것들이 모두 내일 것인지 알고 들고 나와 방송을 했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방송이 잘못되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수화기를 내려놓았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이 빠져 있었다.


당시는 방송국이 정동에 있던 때로 남산으로 옮겨가기 전이어서 숙직실의 분위기가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황 선배의 침구를 아나운서실 책상 위에 펼쳐놓고 스튜디오 속으로 들어가 고민을 거듭했다. 숙고 끝에 결론이 나왔다. 사표를 쓰기로 한 것이다. 사표를 써서 속주머니에 넣고 소파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첫 숙직의 흥분으로 잠을 못 이룰 판이었는데, 사표를 써서 가슴에 안고 누워있으니 죽을 맛이었다. 그렇게도 하고 싶었던 아나운서의 꿈을 가까스로 이루어 마침내 숙직까지 배당받았는데, 그 첫 숙직에 사표를 써서 안고 있다니, 스스로의 모습이 한심하기만 했다.


다음날 방송을 어찌어찌 끝내고 9시에 맞추어 과장 서리실 앞에서 윤길구 선배님의 출근을 기다렸다. 윤길구 과장서리는 그 당시 아나운서 최고참 선배였다. 몸통을 유난히 흔드는 윤 선배가 출근하면서 인사를 하는 나를 보고는, “어제 숙직이었지? 할 만 하던가? 그런데 웬일이야?” 하고 물었다.


나는 잠깐 드릴 말씀이 있다면서 방으로 따라 들어갔고 어제의 방송사고를 보고한 뒤 사표를 제출했다. 그러자 윤 선배는 나를 뻔히 쳐다보면서 “이봐 미스터 박, 오늘의 방송순서인지 내일 것인지 그걸 누가 알 수 있겠어? 앞으로는 날짜 잘 보고 방송해.” 하더니 사표를 북북 찢어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긴장이 한 순간에 풀리며 저절로 긴 숨이 토해졌다. 평생 잊지 못할 첫 숙직의 날 사표는 통큰 선배의 애정어린 꾸중 한 마디로 그렇게 철회되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기 시작했는데 하루 종일 자고, 또 자고 다음날 아침에야 일어났다. 24시간을 잔 것이다. 어머니는 긴 잠에서 깬 나를 보시더니 “방송이 정말 힘든가 보구나!” 하시며 걱정스런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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