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5월 16일 새벽에 방송국에 들이닥친 군인들 (1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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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5월 16일 새벽에 방송국에 들이닥친 군인들 (1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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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6일 새벽에 방송국에 들이닥친 군인들 (18회)

  제4장 정치격변과 고교야구중계




1961년 5월 15일, 나는 야구 중계방송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숙직을 하기 위해 남산 KBS 방송국으로 출근을 했다. 초여름에 접어드는 따가운 햇볕아래서 몇 시간을 악을 쓰면서 중계방송을 했던 터라 온 몸이 축 늘어지고 거기다 입술까지 터져서 기분이 아주 좋지 않았다.


나는 샛길 아래쪽에 있는 약국에서 약을 사 먹고 아나운서실로 들어왔다.


나와 같은 팀인 후배 송영규 아나운서와 저녁, 밤 방송을 마치고 새벽 한 시를 넘어선 시간에 나는 숙직실로 올라갔다. 몹시 지쳐있던 나는 몇 번을 뒤척이다가 잠에 떨어졌다. 얼마나 잤을까. 우리는 숙직실로 올라온 수위 아저씨가 소리를 질러대는 바람에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다.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1층 현관으로 나갔더니 헌병들이 들어와 있었고 그 중 책임자인 듯한 대위가 숙직 책임자를 찾는 것이었다. 그날 밤 숙직자 중에는 나이가 많은 도상보 음악PD가 있었지만 방송국 직급으로는 내가 책임자인 셈이었다.


헌병 대위는 앞으로 나선 나에게, “지금 정체불명의 군인들이 김포 방면에서 서울을 향해 진격하고 있습니다. 북괴군 같기도 하고 반란군 같기도 한데 그들이 서울에 들어오면 먼저 KBS를 접수하고자 할 것입니다. 우리 헌병부대가 지키러 왔으니까 별일은 없겠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주기 바랍니다.” 하는 요지의 말을 건넨 뒤 방송국 곳곳에 헌병을 배치하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이 안됐지만 상황이 긴박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걱정에 휩싸였다. 그렇게 웅성거리며 10분이 지났을까. 방송국에 배치되었던 헌병들이 허둥지둥 트럭에 올라타더니 명동 쪽을 향해 도망치듯 내달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헌병들이 사라지고 채 5분도 안 지났는데 또 다른 군 트럭들이 남산 쪽에서 방송국 앞으로 들이닥치더니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들은 단숨에 방송국 담을 뛰어넘으면서 일제히 총을 쏘아댔고 우리는 그 자리에 주저 앉을 정도로 겁에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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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설을 하는 군복차림의 박정희 의장과 중계방송을 하는 나 / 박 의장 뒤에 박종규 실장이 보인다


군인들의 총구가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지만, 삼태기 모양의 KBS 남산연주소(南山 演奏所) 앞은 군인들의 난입과 어지러운 총소리, 총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으로 한 순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그 새벽에 우리는 귀를 찢는 총성 속에서 금방이라도 온몸이 벌집이 되는 것 같은 공포감으로 꼼짝도 하지 못하고 현관 앞 큰 유리문 앞에 몰려 있었다.

 

그때 도상보 PD가 자기를 따르라면서 뛰기 시작했다. 도상보 PD는 우리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았고 6.25때 수색중대장으로 복무를 했다고 해서 ‘도 대위’라는 별명을 가진 분이었는데, 우리는 그를 따라 1층 아나운서실을 지나, 한번 꺾인 벽면으로 막혀있는 보도실(報道室)로 뛰어 들어갔다.


보도실로 우루루 밀려 든 우리는 다시 방 한쪽 구석에 칸을 막아 만든 텔레타이프(teletype)실 문을 열고 그 안으로 숨어들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런데 앞장섰던 도상보 PD는 거기도 안심이 안 되는지 잠시 바깥 동정을 살핀 후 우리에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창문을 훌쩍 뛰어 넘었다. 그 순간 창밖에서 “손들어!‘ 하는 고함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우리는 다시 극도의 공포에 휩싸여 텔레타이프 뒤의 그 좁은 공간으로 들어가 웅크리고 앉았다. 언뜻 6.25당시 납치당한 윤영노, 전인국 등 선배 아나운서들의 이름이 떠올랐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지 나는 아나운서라는 흔적을 없애기 위해 부랴부랴 신분증, 출입증, 방송메모 등이 들어 있는 양복 상의를 벗어 둘둘 말아서 창문 밖으로 던져버렸다.

 

그때 누군가가 텔레타이프실 문을 두드렸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바짝 엎드렸다. 그 사람은 반응이 없자 문을 몇 번 흔들어 잠긴 것을 확인 하더니, “거기 박종세 아나운서 있습니까?” 하고 나를 찾았다. 이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어떤 안도감을 느꼈다. ‘거기 박종세 있어? 나와!’ 했으면 나는 아마 자지러졌을 것이다. 그런데 나를 찾는 목소리는 위해감(危害感)이 느껴지지 않았고, 정중하기 까지 했던 것이다. 아무리 비상상황이라 해도 말을 전문으로 하는 아나운서가 그것을 구별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나는 텔레타이프 뒤에서 나와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공수부대 복장의 소령  한 사람과 대위 두 사람이 서 있었는데, 소령은 나를 알아보는 눈치였다. 그는 “같이 가시지요.” 하면서 앞장을 섰는데, 나는 괜히 졸아들어서 우물거리고 서 있었다. 그때 내 뒤로 다가선 대위 두 사람이 앞으로 따라가라는 턱짓을 하며 기관단총으로 등을 쿡쿡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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