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징집 (2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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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징집 (2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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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집 (22회)

  제4장 정치격변과 고교야구중계




제1차 징집 대상


1961년은 내게 아주 뜻 깊은 해였다. 역사에 남을 혁명방송을 한데 이어 군에 입대를 했기 때문이다. 5.16군사혁명이 일어나고 한 달이 지난 6월 18일, 나는 논산훈련소행 입소 열차를 타야했다.


그동안 나는 특수요원(特殊要員)으로 분리되어 입대가 보류되어 있었다. 특수요원이란 6.25같은 전쟁 발발 시, 관악산 임시 방송실이라든가, 송신소, 연주소 등에 배치되는 아나운서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임택근 선배, 전영우 선배, 그리고 내가 거기에 해당이 되었는데, 그동안 세 사람의 군대문제는 임 선배가 대표로 국방부 등을 오가며 해결을 했다.


그런데 임 선배는 나이 관계로 완전히 면제가 되었고, 전 선배는 공군장교로 입대를 해서 공군사관학교 교관으로 근무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나만 군입대 보류자로 남게 되고 말았는데 그러던 차에 5.16이 일어나고, 군 입대가 보류되었던 교사, 공무원 등 특수요원들이 모두 징집이 되는 상황이 오고 만 것이다.


나는 그때 전영우 선배가 공사 교관을 끝내는 일 년 뒤 공군장교로 입대, 전 선배에 이어 스피치과목을 강의하기로 내부적으로 결정이 되어 나를 지목해 입대 명령을 내렸고, 나는 5.16 후의 특수요원 제1차 입대 대열에 끼게 되었다.

 

나는 수색에서 입대열차를 타고 논산에 도착, 머리를 깎은 후 25연대(聯隊)에 입소했다. 그런데 나는 머리도 일반 훈련병과는 달리 상고머리로 깎았고, 군복도 비교적 새것으로 지급받았다. 전체 훈련병의 대표로 앞에 나가 선서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도 내 몸은 뚱뚱한 편이어서 대표선서를 하고 난 뒤 ‘장군훈병’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때 나와 함께 중앙대 교수였던 백영훈(白英勳) 박사가 훈련병 대표를 맡았는데, 기자들이 5.16이후 달라진 논산훈련소의 모습을 취재하며 오거나, 고위층 인사들이 시찰을 나올 때면 나와 백 박사가 훈련병 대표로 나가 달라진 훈련소를 홍보하고 군인의 각오를 얘기하곤 했다.


백 박사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박학다식 했는데, 외부인사를 상대로 훈련소 상황을 조리 있게 설명할 때는 나도 경청할 정도였다. 그는 얼마 후 박정희 대통령의 독일 순방을 수행해 양국 정상회담의 퉁역을 맡는 등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특히 독일의 고속도로 아우토반(Autobahn)을 시찰할 때에는 고속도로의 필요성을 역설, 박 대통령으로 하여금 우리나라 고속도로 건설의 뜻을 굳히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나중의 일이고, 나와 훈련병 백영훈은 가만히 서 있기도 버거운 뙤약볕 아래서 실시되는 신병 훈련을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더 엄격하게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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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에 입대했을 당시 / 앞쪽 왼쪽에 정용문 엔지니어가 보인다 (앞줄 오른쪽이 나다) 


훈련소에 있는 동안 어머니와 두 누이동생이 면회를 왔다. 면회소에 들어오는데 마치 내 목소리의 방송이 들리자 안심을 하셨다가, 막상 까맣게 탄 얼굴에 버짐이 번지고 입술이 터진 내 모습에 그만 눈물을 흘리시던 어머니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 방송국 쪽에서는 최두헌, 김동만 아나운서, 정용문, 김무기 엔지니어가 나와 함께 임대했고, 내가 사회에 나가 가장 가깝게 지내게 되는 광고계의 대부 김명하(金明河)회장과도 같이 입대하는 인연을 가졌다.


공군사관학교 강의


훈련을 마친 나는 육군본부 최고회의 파견, 중앙방송 근무의 형식으로 KBS에서 방송을 하게 되었고, 백영훈 박사는 육군본보 최고회의 파견, 최고회의 의장 보좌관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그 당시 나에게 따뜻한 관심과 격려의 말씀을 주신 박병권 국방부장관, 육군본부인력관리처장 김유복 장군, 논산훈련소 김동민 소장 등이 생각난다.


내가 KBS에 근무를 하고 있는데, 공군사관학교에서 강의를 하던 전영우 선배가 전역을 했다. 그 자리를 내가 이어 받기로 결정이 나 있던 일은 내가 육군에 입대함으로써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는데, 어느 날 공사(空士)에서 연락이 왔다. 관계관들이 회의를 가진 결과, 일주일에 한 시간 하는 스피커 강의를 나에게 맡기기로 했다는 것이다. 다만, 내가 육군사병이라는 것은 감추기로 했다는 전언이었다.


공사에서 일주일에 한번 남산 KBS로 차를 보내주었고, 나는 그로부터 1년 동안 공사 스피치강좌의 강사 생활을 했는데, 생도(生徒)들이 정장차림에 절도 있는 모습으로 성실하게 강의를 들어주어서 내가 더욱 열정적이었던 생각이 난다.


언젠가 3군사관학교 체육대회가 서울운동장에서 열리던 날이었는데, 방송 관계로 그곳에 간 나에게 공군 장교 한 사람이 경례를 하는 것이었다. 그 장군은 공사에서 스피치 강의를 받았던, 생도였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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