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4회 대만 아시아 야구대회 중계 (24회)

종친칼럼 Wide & General Knowledges
홈 > 이야기마당 > 종친컬럼
종친컬럼

※ 회원 가입한 종친들의 이야기 공간입니다. 

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4회 대만 아시아 야구대회 중계 (24회)

관리자 0 100

4회 대만 아시아 야구대회 중계 (24회)

  제4장 정치격변기와 야구중계방송




1961년 12월말, 나는 마침내 외국에서 벌어지는 야구의 중계방송을 밭아 난생 처음 국외선 여객기를 타게 되었다. 1962년 1월에 타이페이에서 벌어지는 제4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중계방송을 위해 해외로 나가게 된 것이다. 김포비행장이 건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내가 탑승한 프로펠러 쌍발기는 서울에서 도쿄, 오키나와, 나하를 거쳐 대만의 타이페이로 갈 예정이었다.


방송국에서는 장기범, 임택근 선배 등이 비행장까지 나와 주었고, 집에서도 어머니와 형님들이 나오셔서 나는 턱없이 융숭한 환송을 받았다. 더구나 아나운서실에서는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반코트 양복과 모자까지 마련해주었다.


처음 나가는 외국에서 엔지니어, 프로듀서도 없이 혼자 중계방송을 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기에 나는 마치 단기필마((單騎匹馬)로 적진에 들어가는 용사(勇士)같은 비장한 모습으로 비행기 트랩에 올랐다.


나는 그렇게 서울을 떠나 도쿄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는데, 대만으로 바로 가는 비행기가 없어서 그곳에서 이틀을 묵어야 했다. 그 날이 마침 정월 초하루여서 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도쿄의 새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집집마다 솔가지와 흰 종이로 만든 것에 큰 귤을 꽂아서 대문을 장식했는데, 텅 빈 거리에는 가끔씩 일본 전통 옷을 입은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나는 어릴 때 생각이 나서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혼자서 동경 번화가를 걸어보았는데, 워낙 어려운 시기였기에 달러 몇 푼을 남대문시장에서 바꿔 꼬깃꼬깃 넣고 떠나온 처지여서, 먹고 싶은 일본 우동집도 그냥 지나치고, 정월이라고 특별히 진열해놓은 듯 싶은 ‘모찌떡’을 보고도 그냥 눈요기만 했다.


이틀이 지난 후에야 나는 하네다에서 대만행 비행기에 탑승했는데, 비행기 연료 때문에 오키나와 ‘나하’에 내려 또 몇 시간을 지체해야 했다. 대만으로 가는 길은 참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


단시 송산(松山)공항으로 불리던 대만의 타에페이 공항은 지금과는 달리 시골 간이역처럼 보잘 것이 없었다. 공항에는 우리 대표팀의 4번 타자 박현식 선수와 3번 타자 김정환 선수 등이 마중을 나와 주어서 나는 그간의 긴장을 풀 수 있었다.  

 

84be0d4aff73533486da64f1bf312c3e_1623413393_1875.jpg
 

▲ 비행장에 나온 손희준 선생, 장기범, 임택근 선배, 개똥모자에 반코트, 검은 안경을 낀 내 모습이 자못 심각하다

  

84be0d4aff73533486da64f1bf312c3e_1623413403_5502.jpg
 

▲ 중계방송석에서 해설을 맡은 하곤 씨, 내 뒤에 선우인서 단장이 보인다


우리 선수들이 묵고 있는 후슈환텐(福壽飯店)이라는 조그마한 호텔에 여장을 푼 나는 곧바로 중계방송 준비를 위해 대만 방송국과 대만 전신전화국을 방문했는데 그쪽 관계자들은 대만해협의 자기(磁氣) 방해와 서울까지의 전화상태가 좋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걱정이 되어 서울까지 연결을 한 후 시험을 해보았는데, 역시 소리가 잘 들리다가 차츰 멀어지고 다시 차츰 가까워지고 하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대만 방송에서 엔지니어를 지원해주었지만 상태는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당시 우리나라 선수단의 단장은 선우인서 씨였고, 감독은 김영조 씨가 맡았다 .선수는 4번 박현식, 3번 김정환 외에 5번은 부산상고에 재학 중인 김응룡, 그리고 경동고 졸업반이던 백인천이 포수로 참여했다. 고교생 선수 백인천과 김응룡 두 사람은 특히 주목을 받았다.


대회는 예정대로 1월 1일 개막되었지만 중계방송은 닷새 뒤에야 시작이 되었는데, 마침 우기여서 장대 같은 비가 시도 때도 없이 쏟아져 홈베이스와 1루, 2루, 3루 그리고 피처 마운드까지 천막을 덮어놓은 상태에서 경기가 진행되었다. 특히 홈베이스에서 백네트 앞까지는 톱밥을 잔뜩 뿌려서 덮었지만 그래도 논바닥 같았다. 주최 측에서는 가끔 불을 질러서 빗물을 말리기도 했다.


송산비행장 근처에 있는 송산구장(松山球場)은 새로 만들어 비교적 깨끗했지만 시설은 너무 부실했고 백네트 바로 뒤, 운동장 보다 조금 낮은 곳에 만들어 놓은 중계방송석은 그야말로 엉터리여서, 그곳에서의 중계방송은 말 그대로 악전고투(惡戰苦鬪)였다.


중계방송은 운동장 전체를 내려다보아야 진행이 가능한데 그런 기초부터 무시된 데다가, 파울볼이 중계방송석 앞에서 빗물을 튀길 때는 그야말로 도망치듯 몸을 피해야 했고, 저절로 비명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 ‘악!’ 하는 소리가 그대로 방송을 타기도 했다.


대회 기간 중 우리 선수들이 묵었던 호텔에서 불이 나기도 했는데, 다행히 모두 무사히 빠져나온 일도 있었다.


이 대회는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 필리핀 등 네 나라가 참가하여 리그전으로 치러졌는데, 아무래도 우리나라와 일본의 경기가 큰 관심사였다.


이 게임에서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아깝게 패했지만, 경기승패와는 상관없이 고등학생인 백인천 포수의 타격과, 앉아서 1루로 공을 던져 주자를 잡아내는 강한 어깨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또한 백인천 선수는 이 대회에서 유일하게 홈런을 치기도 했다.

0 Comments

Social Login

빠른 링크 Quick Links
사이트 현황 State 20180805
  • 현재 접속자 0 명
  • 오늘 방문자 1,039 명
  • 어제 방문자 2,776 명
  • 전체 방문자 640,085 명
  • 전체 게시물 786 개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