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KBS-TV 개국 (2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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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KBS-TV 개국 (2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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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TV 개국 (26회)

  제5장 텔레비전방송 시대의 개막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중계방송


그 무렵은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처음 나올 때여서 운동장의 관중들이 중계방송을 들으며 경기를 관람하는 경우가 많았다.


확률과 기록의 경기인 야구는 타자의 경우 타율, 출루율, 장타율, 홈런, 도루 등의 기록이, 투수의 경우 승률, 방어율, 피홈런, 탈삼진, 볼넷 들 여러 기록이 따라다닌다. 야구 경기에서는 선수 개개인이 달고 다니는 이 같은 기록은 물론, 타석에 나온 선수가 앞 타석에서는 어떠했는지, 현재 투수는 어떤 구질의 공을 던지고 있는지 등 세세한 것 모두가 관심의 대상이다.


그런데 트랜지스터가 보급되면서 관중들은 스탠드에 앉아서 중계방송을 통해 모든 기록을 들으며 경기를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트랜지스터가 야구 관람의 중요한 도구가 되면서 운동장에는 중계방송 소리가 울려 퍼졌고, 몇 군데 방송에서 중계방송을 같이 할 때면 내 목소리가 가장 많이 나오는 것 같아서 신이 나곤했었다.


한때는 운동장에서 남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트랜지스터 라디오에 이어폰을 사용하도록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아무튼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야구를 국민들과 더욱 가깝게 만들어 주었고, 중계 아나운서들의 사기(士氣)를 올려 주는 등 우리 야구 발전에 한몫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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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을 맡은 손희준 선생과 홍기봉 엔지니어 / 앞에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보인다


텔레비전 방송 개막


1956년 5월 12일, 우리나라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인 HLKZ_TV가 문을 열었다. 카메라 두 대로 출발한 HLKZ-TV는 하루에 두 시간씩 방송을 했는데 가시청(可視聽) 지역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반경 24km 내외였다.


이 방송은 개국 초 시내 주요 상점에서 가두 텔레비전으로 RCA 21인치 수상기를 설치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적자로 경영권이 넘어가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1959년 2월 화재로 전소,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그렇지만 그때 텔레비전 방송에 대한 노하우를 알게 된 최창봉(崔彰鳳), 최덕수(崔德壽) 씨 등의 노력에 힘들어 1961년 12월 31일, 국영방송 KBS-TV가 당시 KBS 남산 연주소 앞에 건물을 마련하고, 정식 개국을 하게 되었다.


텔레비전 방송국에는 아나운서실이 따로 있어서 김영호, 서영희 아나운서 등이 활동을 했는데, 장기범, 임택근, 최계환, 강영숙, 전영우 선배와 나는 라디오와 TV 양쪽을 왔다 갔다 하면서 방송을 했다.


나는 TV쪽에서 뉴스와 좌담(座談) 프로의 사회, 다큐멘터리 해설 등을 담당했는데, 초창기여서 에피소드도 많았다. 드라마는 세트를 세우는 것이 문제여서 따로 스튜디오를 썼지만, 뉴스와 좌담 등은 한 스튜디오를 이용했는데, 뉴스를 진행하는 동안 한쪽에서는 다음 프로그램 준비를 하는 망치 소리 등이 들려 방송이 방해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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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TV 뉴스를 진행하고 있는 나


푹푹 찌는 여름인데도 소음(騷音) 때문에 냉방기를 사용하지 못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하는 고충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 당시의 큰 문제점의 하나는 조명기구였다. 영화촬영 때 쓰는 둥그렇고 큰 조명기를, 그것도 서너 개씩 얼굴 가까이에 설치해두고 방송을 해야 했는데, 출연자들은 금세 땀범벅이 되곤 했던 것이다.


남자 아나운서들은 한 여름에 뉴스를 방송할 때, 카메라에 잡히는 윗 부분은 정장으로 단정한 차림을 하지만, 양복바지는 아예 벗어둘 정도로 더위 문제는 심각했다.


그때 홍두표(洪斗杓) 프로듀서는 나를 사회자로 내세워 퀴즈프로그램을 제작했는데, 이 프로는 나중에 동양방송(東洋放送) 개국 후에도 이어져서 TV퀴즈 프로그램의 효시가 되었다.


동양방송(TBC), 한국방송(KBS) 등 두 방송국의 사장을 역임한 홍두표 프로듀서는 나와 동년배로, 단과대학은 달랐지만 서울대 동지이기도 해서 돈독한 우정을 나누었다. 우리는 청와대에서의 특집방송이라든가 대통령 영애 박근혜 양의 특별 인터뷰 프로그램 등도 같이 만들었다.


5.16 후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 때 국민복(國民服)을 입고 방송할 때 일도 생각난다. 자색이 도는 두툴두툴한 천으로 만든 국민복은 TV뉴스 방송 때는 입고 나가지 않았지만, 중계방송 할 때에는 곧잘 입었다. 단복(團服)같기고 했고 우선 편해서 좋았는데, 인민복(人民服) 비슷하다는 여론 때문에 슬그머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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