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결혼 (2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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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결혼 (2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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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27회)

  제5장 텔레비전방송 시대의 개막




YWCA 강당에서의 결혼식


1964년은 나에게 뜻 깊은 한해였다. 4월에 군(軍) 관계가 모두 끝나게 되기 때문에 결혼도 해야 했고, 민간방송의 스카웃 제의에 시달리던 때여서 거취 결정도 해야 했다.


사실 그 당시 나는 내 야구중계방송과 뉴스 방송을 탐낸 각 방송사에서 이런 저런 사람을 내세워 교섭을 해오는 바람에 흔들리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나는 KBS와의 의리를 생각하며 그 제의들은 정중히 물리치곤 했다.


그런 와중에 결혼문제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나의 장모님이 되실 허음전(許蔭全) 여사는 어머니 친구 분의 친구이셨는데, 어머니는 허 여사와 그 띠님을 만나보신 후로 홀딱 반하셔서 한번 만나보라고 내 등을 떠미셨다.


어머니의 성화를 못 이겨 나는 종로의 한 다방에서 내 집사람이 될 구숙자(具淑子) 처자를 처음 대면하게 되었다. 내 첫 느낌은 어머니의 말씀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일을 핑계로 이 자리에 나오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는가. 나는 한눈에 반해서 다시 만날 약속을 받아냈다.


이후 내가 삼화고속버스를 타고 집사람이 사는 인천으로 내려가기도 하고, 집사람이 서울로 올라와 남산의 KBS로 오기도 하면서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러다가 2월에 조선호텔에서 약혼식을 올렸고, 결혼식 날짜도 5월 1일로 잡혔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니만 계신데, 집사람도 장인이신 구연산(具然山)어른이 타계하셔서 편모슬하의 처지였다.


구연산 어른과 허음전(許蔭全) 여사 사이의 장녀인 집사람은 인천의 박문초등학교와 인천여중, 인천여고를 거쳐 숙명여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교사 발령을 대기 받고 있던 중 나와 만나게 되었다.


둘째 처남이 미군 측과 관계가 있어서 당시로서는 말리기 어려운 조선호텔에서 비교적 성대하게 약혼식을 치른 우리는, 결혼식은 검소하게 명동 성당 앞 YWCA 강당에서 올리기로 했다.


그런데 나의 학교 은사이기도 하신 공보부 김동성 장관이 주례를 맡아주시기로 하시고, 개성 어른으로 문교부장관을 그만두시고 성균관대 총장을 계시던 이선근(李瑄根) 박사께서 축사를 해주시겠다고 자청하셔서 아주 빛나는 결혼식이 되었다.


한 분은 공보부에 수많은 직원들이 있는데, 선례를 남긴다는 곤란함을 무릅쓰며 말단 아나운서인 나의 주례를 맡아주셨고, 대 학자이신 또 한분은 축사를 해주셨으니, 두 분 장관님을 생각하게 되면 어떻게 그렇게 해주실 수 있었을까, 지금도 고마움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아나운서가 아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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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식에서 / 김동성 장관이 주례를 맡으셨다


사회는 이리(裡里)방송국에 있다가 나보다 조금 먼저 우리 KBS 아나운서실에 합류한 최세훈 아나운서가 맡아주셨다.

 

그날은 날씨가 너무나 나빴다. 해가 났다가는 금새 먹구름이 끼고, 장대비가 오다가 다시 개고, 바람이 세차게 불다가 다시 잔잔해지는 그야말로 종잡을 수 없는 날씨였다. 그런데도 성황을 이루어주신 하객들이 고맙기만 했었다.


날씨 덕을 본 첫날밤


결혼식이 끝나고 부산으로 신혼여행을 떠나려는데 문제가 생겼다. 날씨가 너무 나빠서 비행기가 뜨지 못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의 쌍발 프로펠러 여객기는 날씨가 조금 나빠도 이착륙을 못했는데, 그 날을 기상상태가 최악이었으나 당연한 일이었다.


나와 집사람은 할 수 없이 김포공항에서 다시 서울시내로 돌아왔고 어디로 가야하나 하고 걱정을 하는 참인데, 작은 처남이 워커힐호텔을 주선해주었다. 우리는 그 호텔 중에서도 따로 떨어져 아늑한 빌라형 숙소에서 첫날밤을 보내게 되었다. 좋지 않은 날씨가 오히려 호화판 첫날밤을 만들어 주었으니, 바로 전화위복(轉禍爲福)이었다.


다음날 예정했던 대로 부산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는데, 그때까지도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아서 부산 수영비행장에 착륙할 때는 기체가 몹시 흔들렸다.


비행장에는 부산 방송국 박인필 아나운서가 나와 주었는데, 그는 고맙게도 부산에서의 신혼여행동안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신경을 쓰며 우리의 불편을 덜어주었다.


부산방송국 아나운서실을 실장으로 있던 전응덕 아나운서가 부산 MBC로 자리를 옯기고, 박인필 아나운서가 실장을 맡아 김무중, 김경동 아나운서 등과 함께 활약하고 있었다.


당시 부산에서의 야구경기는 <국제신보(國際新報)>대회가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이 경기의 준결승, 결승은 전국적으로 중계방송을 할 정도여서 나는 그때마다 부산으로 내려와 박인필, 김무중, 김경동 아나운서와 방송을 함께 하며 어울렸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때 주최신문사인 국제신보사에서는 내가 중계방송 차 부산에 왔다고 신문에 사진과 함께 기사(記事)를 싣기도 했는데, 40년 전의 일인데도 아주 오래된 얘기로 느껴진다.


그 당시 부산방송국의 국장은 윤길구 선배와 장기범 선배가 번갈아 맡고 있었는데, 두 분 다 후배 좋아하시고 술 좋아 하시는 멋진 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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