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방송 영역(領域)을 넓히며 (2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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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방송 영역(領域)을 넓히며 (2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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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영역(領域)을 넓히며 (28회)

  제5장 텔레비전방송 시대의 개막




윤길수 선배의 말씀 한 마디


한번은 윤길구 선배가 중계방송 때문에 부산에 내려온 나를 송도에 있는 멋진 요리집으로 데리고 갔다. 요리상에 이어 기생들이 들어오는데 윤 선배는 내 옆에 아주 예쁜 아가씨를 앉히는 것이었다. 대신 윤 선배 옆자리에는 요리집 여자로는 보이지 않는 수더분한 아가씨가 앉았다. 물론 같이 간 간부들 옆에도 예쁜 아가씨들이 앉았다.


모두 거북해하고 있으려니까 윤 선배가 한 말씀 하셨다.


“이봐! 예쁜 아가씨들이 옆에 있다고 너무 좋아들 하지 말어. 예쁜 여자들은 여러 남자들이 욕심을 내고 침을 흘려서 때가 탔단 말이야. 너무 매끄러워. 그래서 자기가 잘 났다고 서비스가 좋지 않아. 이 다음에 요리 집에서 술 먹을 기회가 있으면 나 같이 좀 못생겨서 남들이 욕심을 안 낼 여자를 옆에 앉히라고. 그래야 서비스도 좋고 흥도 깨지지 않는 법이야. 예쁜 여자는 집에 있는 마누라 하나면 족하지.”


그때 나는 이 말을 단순한 술자리 얘기가 아니라 세상사(世上事)의 여러 가지를 함축(含蓄)한 것으로 들었다.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말이다.


큰 매부 임용수


부산에서의 신혼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온 우리 내외는 종로구 누하동(樓下洞)의 작은 집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했다. 집사람이 해온 장롱을 두 쪽만 방에 들여놓고 살아야 하는 아주 어려운 살림살이가 시작된 것이다.


내가 결혼하기 1년 전에 큰 동생 정순이는 경상북도 춘양이 고향인 임용수 군과 결혼을 했다. 큰 매부 임용수는 솔직하고 통이 크면서 유머가 풍부한 사람이어서 우리 집안의 활력소 역할을 했다.


그는 서울시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강원도의 유명한 주류회사인 <경월소주>의 서울지사장으로 자리를 옯겨 활발한 활동을 펼치면서 명희, 재호, 세희 등 삼남매를 낳아 키웠는데, 역시 ‘술사장’은 몸을 이기기 힘든 직종이었는지 일찍 세상을 뜨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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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혼여행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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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매부와 큰 동생


방송 영역(領域)을 넓히며


결혼 3, 4년 전부터 나는 방송 초창기의 여러 가지를 경험하면서 활동 영역을 넓혀 나갔다. 뉴스방송, 야구 중계방송 그리고 문공부 영화제작소에서의 대한뉴스 해설 등 기본적인 방송 이외에 우리나라 퀴즈방송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빈칸 빈칸에 빈칸 빈칸’ 하는 빈칸 메우기 퀴즈방송을 꽤 오랫동안 진행했다.


저녁 7시 30분부터 5분간 방송된 이 프로는 빈칸을 메운 엽서를 방송국으로 보내는 라디오 퀴즈방송이었는데, 사람들의 관심이 얼마나 컸던지 스튜디오 책상 앞에는 날마다 엽서가 수천 장씩 쌓였고, 정답자 중 당첨자 추첨을 할 때는 경찰관이 입회를 했다.


라디오로 바둑을 종계방송한 일도 있었다. 텔레비전이 등장하기 전, KBS에서 라디오로 동아일보 주최 국수전(國手戰) 마지막 대국 상황을 중계한 것인데, 매시간 뉴스가 끝나고 5분간, 그 동안의 진행상황을 나와 조남철(趙南哲) 선생의 대담 형식으로 방송을 했다.


내가 가로 몇째 줄, 세로 몇째 줄 어디에 흰둘, 검은돌이 몇 수째 어떻게 놓였다는 상황을 얘기하고, 조남철 선생이 자세한 해설을 하는 식이었다. 나는 이때 얻은 바둑중계의 노하우로 훗날 동양방송에서 조치훈(趙治勳)이 두는 바둑을 중계방송하기도 했다.


박연폭포의 추억


KBS 아나운서실에는 일 년에 한번씩 ‘아나운서 온 퍼레이드’를 제작해 방송했다. 아나운서들이 모두 나와서 노래도 하고 장기(長技)자랑도 하는 프로로 라디오이긴 하지만 청취자들의 관심이 컸다. 아나운서들만 출연하기도 했고, 성우들이 찬조출연을 하기도 한 이 프로는 말만 하는 아나운서들의 노래와 장기자랑이 청취자들의 호기심을 불러, 몇 년 동안 계속되었다.


나는 이 프로에서 ‘박연폭포’를 부른 적이 있는데, 테너 흉내를 낸 서투른 노래였지만, 고향이 개성인 어머니가 자주 부르시는 노래라는 나의 설명 때문이었는지 출연자, 관객들 모두가 제법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그 이후로 ‘박연폭포’는 본의 아니게 내 십팔번이 되어 지금도 노래 부를 자리가 생기면 그 노래를 주문하는 분이 있을 정도이다. 일 년에 한 번씩 방송국 안팎의 화제(話題)가 되었던, 라디오만 있을 때의 아나운서 프로그램이 한 추억으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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