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이병철(李秉喆) 회장의 면접 (3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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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이병철(李秉喆) 회장의 면접 (3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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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李秉喆) 회장의 면접 (30회)

  제5장 텔레비전방송 시대의 개막




대범한 홍두표(洪斗杓) PD


‘퀴즈 버라이어티’라는 개국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것은 KBS-TV에서 홍두표 PD와 내가 제작했던 퀴즈 프로를 발전시킨 것이었는데, 최종 승자에게는 그 당시에 파격적이었던 미국 시애틀까지의 왕복 비행기 표를 상품으로 걸어 장안의 화제를 불러 모았다.


당시로서는 이처럼 통 큰 상품을 거는 프로의 제작은 홍두표 PD가 아니면 기획이 어려웠을 것이다. 홍두표 PD는 나중에 KBS사장이 되어 또 다시 <열린 음악회>라는 대범한 프로를 기획하여 가라앉았던 KBS의 인기를 만회했는데, 사람들은 역시 홍두표 답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홍종인(洪鍾仁) 선생의 트랜지스터


한번은 등산프로그램으로 산악회 회장이신 원로 언론인 홍종인 선생이 출연을 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라 스탭 진이 모두 긴장하고 있는데, 홍종인 선생이 느닷없이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켜는 것이었다,


“산에 갈 때 라디오를 가져가면 아주 좋아. 날짜도 듣고, 음악도 듣고, 뉴스도 들으면서 걸으면 힘이 덜 들거든.”


그러면서 볼륨을 냅다 올리는 것이었다. 스탭들은 물론 함께 출연 중이던 우리도 깜짝 놀라 라디오를 켜시면 안 된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홍종인 선생은 마침 흘러 나오는 뉴스를 들으시며 왜 그러느냐는 표정을 지으셨다.


내가 나서서 라디오를 켜 놓으면 대담(對談)하는 말소리가 마이크에 흡수될 때 소음과 같이 흡수되어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 들을 수 없게 된다고 정중하게 말씀을 드렸다. 그러나 선생은 막무가내였다. 그 분의 거친 성격은 언론계에 널리 알려진 터이지만 생방송의 생리를 잘 아시는 분이, 아무것도 아닌 일로 고집을 피우시니 죽을 맛이었다.


나는 프로의 진행이 안 되자 억지로라도 트랜지스터를 빼앗으려 했다. 그러나 홍 선생은 안 뺏기겠다고 나를 밀치셨다. 물론 카메라가 다른 곳을 비칠 때 벌어진 일이긴 하지만, 언론계 원로를 모시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여간 당황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때 플로어 담당 AD가 여성이었는데,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고,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이병철(李秉喆) 회장의 면접


동양TV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나는 뉴스와 좌담 프로그램의 사회,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MC 등을 맡았는데, 특히 ‘논픽션시리즈’에 심혈을 기울였다. 자연환경과 사랑, 사회적 이슈가 되는 현장 등을 장기적 기획에 의해 촬영을 한 프로로, 나는 주조정실 한쪽 아나운서 부스에서 편집된 화면에 맞추어 해설을 했다.


대한뉴스로 다져진 노하우를 십분 발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어서,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에 들었는데, 김성인 PD와 나를 포함한 제작진이 정성을 쏟았던 만큼 꽤 오랫동안 지속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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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철 회장과


이 ‘논픽션시리즈’는 동양방송의 윗분들이 이병철 회장, 홍진기 회장이 특히 좋아하는 프로그램으로 나와 제작팀은 그 분들에게 몇 번 칭찬을 듣기도 했다.

 

한번은 시청  옆 삼성빌딩에 있는 이병철 회장실에서 호출이 왔다, 방송 책임자인 김규 상무와 함께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김규 상무는 방송 책임자이고 사위이니까 불렀다지만 나까지 부른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어리둥절해서 김규 상무와 함께 회장실로 간 나는 소파에 앉자마자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야단을 맞았다. 손가락질까지 하며 꾸중을 하셨지만, 나는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하면서 눈만 껌벅거릴 수밖에 없었다.


한참 야단을 맞고 회장실을 나와, 다시 신세계백화점 꼭대기에 있는 동양TV로 오는 길에 김 상무는 미안하다면서 회장님 말씀을 마음에 두지 말라고 나를 위로했다. 나는 이내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회장님은 나를 통해 자기 사위인 김규 상무의 잘못을 지적하고 야단을 친 것이었다.


한번은 방송국 신입사원을 선발하는데 이병철 회장이 직접 면접을 했다. 그때 세간에는 이병철 회장은 관상, 첫인상 등을 중하게 여겨 면접 때 관상 보는 사람을 옆에 앉힌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나는 그런 것은 본적이 없고, 내가 직접 불려가 회장님 옆에 앉은 일은 있었다.


세 명씩 들어왔다 나가면 날 보고,

“저 중엔 누가 괜찮나?”

하고 물으시고, 내가 대답하면

“내도 그렇게 보았다.”

하시면서 좋아하셨다.


아나운서 실장 시절


TV아나운서실에서는 1기로 성대석, 박혜자, 이강자, 조문자 아나운서를 뽑았고, 2기로 신화철, 이시일, 이부미자 아나운서를, 3기로 황인용, 이정혜 아나운서를 선발했다.


한편 동양TV는 라디소 서울과 합해져 동양방송(TBC)이 되고 우리는 서소문에 있는 중앙일보 건물로 이사를 갔다. 아나운서실도 TV와 라디오 구분 없이 하나로 합했는데, 최계환 선배가 일본 특파원으로 가게 되고 내가 아나운서실장을, 차장은 박노실 씨가 맡았다.


이 무렵에 아나운서실에는 맹관영, 김양일, 박태웅, 이보길 아나운서 등이 들어왔고 그 뒤를 이어 원창묵, 조천형, 허경희, 김기덕, 유수호, 이봉희, 최동철, 고수웅, 이재명, 남선현, 공영주, 허주, 홍우창, 박초아, 원종배, 지영서 아나운서 등 기라성 같은 인재들이 몰려, 동양방송의 앞날을 탄탄하게 했다.


모두 귀하고 보고 싶은 얼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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