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국방뉴스와 고교야구대회 (3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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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국방뉴스와 고교야구대회 (3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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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뉴스와 고교야구대회 (33회)

  제5장 텔레비전방송 시대의 개막




국방뉴스


1966년 우리 국군이 월남 파병될 때 국방뉴스 1호가 탄생했다. 그 전에는 국방뉴스나 기록영화 등이 부정기적으로 만들어졌고, 필동(筆洞)에 있는 국방부 녹음실에서 녹음을 할 때는 나도 가끔 그곳에 불려가 해설을 맡았는데, 파병에0 맞추어 국방뉴스라는 타이틀로 정규 뉴스가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국방뉴스의 감독은 유용삼 씨가 맡고 녹음은 양후보 씨, 음악효과는 최형래 씨, 아나운서 멘트는 내가 담당했는데 그때의 녹음실은 필동에서 영등포구 문래동으로 옮겨와 있었다.


국방뉴스는 배달의 기수, 월남 특집 등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특히 우리 국군의 월남에서의 활약상을 상세하게 기록, 국민들에게 전달함으로써, 파병의 당위성을 확고히 하기도 했다.


나는 이후 장장 30년간, 1469호까지 이 프로의 녹음 해설을 맡았는데, 그때는 생활의 일부로 느껴졌다. 나는 그 당시 국방뉴스 이외에 문공부의 대한뉴스도 함께 진행을 할 때여서 그야말로 바삐 돌아갔었다.


어떤 이들은 그렇게 바쁘게 돈을 벌어서 어디다 쓰려고 그러느냐며 놀리기도 했지만, 모두 내가 좋아서 했던 일들이다. 그 당시 녹음 해설은 내게 직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취미생활이어서 녹음실에만 들어가면 저절로 신이 나곤했다.


그때 해설을 하고 받은 돈은 1만원 정도였고, 1980년에 와서는 한 편에 3만 원 정도를 받았다. 금전적으로 따질 때 별로 달가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1980년대에 내가 해태그룹의 사장으로 있을 때는 1년 내내 해설료라고 받은 것이 100만 원 정도 되는데, 사장 월급과 합산을 해서 5월 달에 종합소득세를 낼 때는 130만 원 정도를 냈다. 해설료에 30만원을 보태서 낸 계산이 된 것이다. 해설료 100만원도 택시비에다 녹음이 끝나고 간단히 먹는 저녁식사 값으로 이미 다 쓰이곤 했으니 결국 내가 돈을 내고, 시간을 내고, 녹음을 한 계산이 되는 것이다 .


이 녹음해설은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기록물은 그래도 좀 돈이 됐지만, 대한뉴스나 국방뉴스는 그야말로 사명감과 나의 취미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했던 것이다. 아는 사람들은 아는 얘기지만, 이렇게 밝혀보기는 처음이다 .그렇지만 나는 대한뉴스, 국방뉴스 해설을 맡았던 것을 큰 보람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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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영수 여사가 TBC아나운서들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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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BC TV 아나운서실에서 김동건, 민창기 아나운서와

 

대통령배 전국고교 야구대회


1966년에 우리나라 야구계는 기억할 만한 두 가지 일이 일어났다. 하나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개최된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처녀 출전하여 최하위를 한 일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운동장 야구장에 야간 경기시설이 완공되어 우리나라에서도 야간 야구경기를 즐길 수 있게 된  일이다.


이 해에는 또 청룡기대회에서 동산고가 대구상고에 역전승을 거두어 인천을 뒤흔들어놓았고, 운동장이 만원사례를 이룬 가운데 치러진 지구별 초청대회에서는 선린상고가부산고를 물리치고 우승했다.


이처럼 고교야구가 날로 재미를 더해가는 시점에서 야간경기시설까지 완공되자 고교야구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1967년에는 내가 속한 중앙일보, 동양방송이 주최하는 대통령배 쟁탈 전국교교야구대회가 마침내 시작되었는데, 이 대회의 개최와 함께 고교야구는 절정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 대회는 아주 드문 경우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운동장에 나와 시구(始球)를 했다. 나는 첫날 첫 경기부터 결승까지 매일 한 두 게임씩 중계방송을 했는데, 내 방송일정이 다소 무리하게 잡히는 데에는, 중계방송 스폰서였던 신신파스(대표 이영수) 측에서 ‘박종세의 중계방송’을 조건으로 내건 것도 작용을 했다.


나는 연일 신들린 사람처럼 열정적으로 방송에 매달렸고 관중들을 구름처럼 서울운동장 야구장에 모여들었다. 중계방송 관계자들도 운동장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였다.


결승전은 선린상고과 경북고의 대결로 치러졌다. 서영무 씨가 감독을 맡은 경북고는 투수 임신근 선수의 쾌투에 힘입어 강팀 선린상고를 3대 0으로 물리치고 개교이래 처음으로 전국대회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룩했다.


대구에서는 선수들을 태운 카 퍼레이드가 실시되는 등 경북고 선수단 환영으로 온 시가지가 떠들썩했는데, 이 우승이 계기가 되어 경북고는 이후 몇 년 동안 전국대회를 휩쓸면서 고교야구 열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한편 이 대회에서 인기상을 받은 조창수 선수와 나의 인연은 프로야구 출범 이후로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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