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투표장에서 얻은 특종 (3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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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투표장에서 얻은 특종 (3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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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장에서 얻은 특종 (34회)

  제5장 텔레비전방송 시대의 개막




외가 쪽 일가(一家)들


1967년 1월 옥인동(玉仁洞) 집에서 둘째 아들 증수(增洙)가 태어났다.


큰아들 준수와는 2년 터울인데 실제로는 1년 반 차이이다. 그때 우리 집에는 외가(外家) 조카인 민헌이가 선린상고에 다니느라고 잠시 와 있었고, 그 동생 승옥이가 돈암동에 있는 성신여고에 다니느라고 또 잠시 와 있기도 했다.


어머니는 없는 살림에도 베풀기를 좋아하시고 사람들을 꾸밈없이 대하시는 성격이어서 서울에 피난 와 있던 외가 쪽 일가들도 모두 좋아하고 따랐다. 그래서 외가에서 많은 분이 우리 집을 자주 드나들었는데, 큰외삼촌의 아드님들인 이봉근, 이우근 형님, 작은외삼촌의 자녀들인 옥자 누님, 이용근, 이상근 아우가 생각난다.


식구들이 모두 좋아했던 복진이 동생은 우리 아이들을 많이 업어주었는데, 아이들이 발음을 제대로 못할 나이여서 ‘고모’라고 불러야 할 것을 거꾸로 부르는 바람에 별명이 ‘무고’가 되어 우리집에서는 오랫동안 이름대신 ‘무고’로 불리기도 했었다.


개성과 장단 사이, 지금 개성공단이 생긴다는 봉동(鳳東)에는 두 이모님이 사셨다. 내가 가끔 찾아가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시려고 무진 애를 쓰시던 두 분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특히 봉동 큰 이모댁에는 내 사촌으로 학교 선생님인 경숙이 누님이 하숙을 하고 있었는데, 이모님을 뵙는 것도 좋았지만 나를 몹시 귀여워해주시던 경숙이 누님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듣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작은 이모의 아들 태원이도 생각이 나는데 6.25 이후 봉동이 남북 경계선 북쪽에 속하는 바람에 이산(離散)이 되고 말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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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관, 송영무 두 동서와 처 이모님


한 밤중에 걸려온 전화


한번은 밤중에 걸려온 급한 전화 때문에 옥인동 집이 발칵 뒤집히는 일이 생겼다. 나는 마침 지방출장으로 집을 비우고 있었는데, 연세대 부속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에서 전화가 온 것이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내 사촌동생 종무가 교수, 학생들과 저녁을 먹고 나오다 2층에서 떨어졌는데 위급하다는 전갈이었다.


동생이 의식을 잃자 종무 사촌형이 나라는 것을 알고 있던 학생 한 사람이 급한 김에 우리집 전화번호를 수소문해 연락을 해왔던 것이다.


어머니와 집사람이 허둥지둥 달려갔지만, 종무 사촌은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사촌댁에 연락을 하고 급한 일을 수습하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밤을 샜던 집사람은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고 한다.


얼마 전에 정년을 한, 당시 사건 현장에 있었던 연세대 교수 한 분을 만났었는데, 그 분은 그때 젊은 학생들의 지나친 음주를 막지 못했던 일을 지금도 후회하고 있었다.


투표장에서 얻은 특종


1967년 5월 3일, 민주공화당(民主共和黨)의 박정희 후보와 신민당(新民黨)의 윤보선 후보가 출마한 가운데 제6대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실시되었다.


선거 날 아침, 종로구 신교동에 있는 맹아학교(盲啞學校)에는 투표하러 나온 유권자보다 기자들이 더 많이 모였다. 현직 대통령이 박정희 후보 내외분의 투표 모습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TBC, KBS, MBC 등 3개 TV 방송에서도 중계방송을 위해 대형 중계차를 동원했다.


마침내 박 대통령 내외분이 투표소에 나타났고, 중계방송은 일제히 시작되었다. 나는 대통령 내외분이 투표하는 장면을 중계한 후 운동장으로 미리 나와서 박 대통령이 투표장으로부터 걸어 나오는 장면을 중계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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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인터뷰


박 대통령은 얼마 후 예의 그 씩씩한 걸음걸이로 투표장소인 학교 건물에서 운동장 쪽으로 걸어 나왔고, 나는 그 모습을 중계방송하기 시작했는데, 그 순간 아무도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중계방송을 하고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친 박 대통령이 뚜벅뚜벅 내 앞으로 걸어온 것이다.


나는 말할 것도 없고 취재에 여념이 없던 기자들과 수행원들도 놀란 나머지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나는 박종규 경호실장을 비롯한 경호원들이 재빨리 내 주변을 감싸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다가온 박 대통령은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얼떨결에 악수를 했다. 손을 잡으면서 놀란 가슴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순간 나도 모르게 직업의식이 발동되었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투표하신 소감을 말씀해주십시오.” 하고 마이크를 박 대통령 입 가까이에 디밀었다. 누가 말리고 말고 할 겨를도 없는 순식간의 일이었다.


내 부탁을 받은 박 대통령은 차분하고 조리 있는 어투로‘한 말씀’을 했는데,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기자들이 우리 두 사람 곁으로 우루루 몰려들었다.


그때 한쪽에서 ‘아이쿠!’하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다른 방송의 기자가 마이크를 박 대통령 입 가까이 대려하자, 경호원이 팔꿈치로 그 기자의 옆구리를 후려 친 것이다. 그 당시에는 대통령의 입 가까이에 이상한 물건을 갖다 대는 것은 경호 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박 대통령의 육성(肉聲) 투표 소감은 나만 직접 방송을 하게 되었고, KBS와 MBC는 TBC에서 방송된 장면을 따서 그 후 뉴스 시간에 방송했다.


나는 중계방송을 하다가 생각지도 않았던 특종을 한 셈이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 박종규 경호실장과 얼굴을 익혔던 인연이 난데없는 행운을 선물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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