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멕시코 올림픽의 에피소드 (3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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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멕시코 올림픽의 에피소드 (3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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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올림픽의 에피소드 (36회)

  제6장 멕시코 올림픽과 고교야구




NHK 히쿠치 단장의 협조


우리 중계방송단은 올림픽을 일주일 앞두고 드디어 멕시코시티에 도착했는데, 나는 비행기 트랩을 내리면서 현기증을 느꼈다. 체중을 너무 빼고 잘 먹지 않았더니 고원지대에 이르러 그 후유증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서 여장을 풀고부터 마구 먹어댔고, 다시 몸무게가 70kg이 된 후에야 중계방송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생겼다. 중계방송을 위해 우리 중계단이 멕시코 전신전화국을 찾아갔더니 말도 들어보지 않고 양쪽 어깨를 으쓱 올리고 팔을 벌리면서 “아스타 마니아나.” 하는 것이었다. ‘내일 다시 봅시다’ 또는 ‘다음에 다시 봅시다’ 하는 뜻으로 멕시코 사람들의 게으른 성격을 그대로 나타내는 말이었다.


기술진들이 큰 낭패를 만났다. 올림픽 중계 기술본부를 찾아가도 반응은 시원치 않았고, 여기저기 모두 ‘아스타 마니아나’ 투성이었다. 그들의 게으른 행정은 올림픽에 맞추어 개통하기로 하고 착공했다는, 멕시코시티와 선수촌을 잇는 지하철공사가 반도 진척이 안 된 채 그냥 방치되어 있는데 서도 볼 수 있었다.


중계방송 날짜는 다가오는데 개막식과 폐막식 중계방송 준비가 전혀 진척이 되지 않자, 방송단에 비상이 걸렸다. 그런데 마침 그때 나는 일전에 일본 NHK에 갔을 때 인사를 나눈 바 있는 히쿠치 씨가 일본 중계단 단장으로 왔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나는 한 달 전부터 이곳에 와서 준비를 했다는 일본 중계단의 히쿠치 단장을 찾아갔고 전후 사정을 얘기한 뒤 협조를 구했다. 히쿠치 단장은 그 자리에서 긍정적인 답을 주면서 우리 기술진들과 구체적인 의논을 하기로 약속을 했다.


결국 개막식과 폐막식 중계방송은 일본에 중계되는 TV화면 즉, 멕시코에서 미국 오클랜드를 거치고, 다시 태평양에 있는 ‘새트라이트’ 인공위성을 통해 도쿄로 연결되는 TV화면을 우리나라 금산지구국(錦山地區局)으로 연결하고, 그것을 KBS가 받아 TBC, MBC와 함께 전국에 방송하기로 결정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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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와이에서 임택근 선배와


또한 오디오는 라디오의 개막식, 폐막식 중계방송을 TV화면에 그대로 연결해서 내보내는 형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런가하면 밤 10시에서 11시까지 NHK가 잡아놓은 TV방송 시간대의 후반 15분을 우리 방송진이 사용하기로 해서 올림픽 종합보도 형식의 방송도 해결이 되었다. 경기 실황중계 방송은 공동 중계에서 선택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때는 개막식과 폐막식 그리고 종합보도 문제였던 것인데, 그것들이 모두 일사천리로 풀린 것이다.


히쿠치 단장의 협조가 너무나 고마워서 돌아오는 길에 NHK에 들러 인사를 드렸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도 우리는 형제처럼 왕래하면서 지내고 있다.


멕시코 올림픽의 에피소드


멕시코 올림픽에서는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는데, 선박으로 멕시코에 온 북한 선수들이 아예 선박에 숙소를 차리고 육지에는 올라오지 않은 채 떼를 쓰던 일과, 내가 실황 중계방송했던 권투선수 지영주의 결승전 상황이 먼저 생각난다. 지영주 선수의 확실한 승리가 보이는 경기였는데, 영국 심판이 베네수엘라 선수의 손을 들어주는 바람에 우리는 모두 놀랐고, 아쉽게도 지 선수는 은메달에 머물고 말았다.


지 선수에게 이겨서 금메달을 딴 베네수엘라의 로드리게즈 선수는 링 위에서 국기를 몸에 두르고 펑펑 울었는데, 그가 딴 메달이 그 나라 최초의 메달이었다.


또 우리 여자 배구가 강호 헝가리와 맞서 내래 두 셋트를 이기는 경기를 중계방송하던 나는 ‘이변’ 운운하면서 신이 나서 목소리를 높였는데, 이후 내리 3세트를 져서 역전 탈락하는 바람에 기운이 쑥 빠지고 밥맛까지 잃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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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아치 연주를 듣는 임택근, 박경환 씨 등 중계단원들


그동안 나는 야구중계방송만 일관되게 해왔는데, 야구가 없는 올림픽에서는 개막식 폐막식은 물론 권투, 레슬링, 농구, 배구, 역도 등을 중계하면서, 아나운서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해야 하는 힘든 직업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우리 선수단의 성적은 만족할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경기마다 선전을 펼쳐 국가적 이미지를 높인 대회였으며, 최경록(崔慶祿) 대사를 비롯한 관계자들은 한 점 나무랄 데 없는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멕시코는 비록 처음 ‘아스타 마니아나’라는 게으르고 부정적인 면을 보였으나, 살필수록 풍부하고 다채로운 문화유산과 시민들의 낙천적인 매너는 우리를 매료시키고도 남았다.


특히 넓은 챙의 밀짚모자들을 쓴 악사들의, 현악기 앙상블에 트럼펫을 곁들인 ‘마리아치(Mariachi)’의 여운은 오래도록 우리들의 심금을 울렸다.


멕시코 올림픽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권투경기 때문에 경기장으로 가는 도중, 권투 국제심판으로 널리 알려진 주상점 선생이 들려준 애기이다.


주상점 씨가 하루는 권투경기장으로 급히 가면서 <소칼로>광장 한 모퉁이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상인에게서 시간을 물었단다. 그랬더니 이 상인은 옆에 세워 둔 당나귀의 불알을 손으로 한참 들어보고는 알았다는 듯이, 몇 시 몇 분으로 알려주더라는 것이다. 그때는 급한 김에 고맙다는 인사만 하고 급히 경기장으로 달려갔는데, 경기가 끝나고 생각하니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어떻게 당나귀 불알을 들어보고 시간을 알아낸단 말인가. 주상점 씨는 다시 소칼로광장에 있는 상인에게 달려가, 이번에는 물건도 하나 팔아주면서 지금 몇 시나 됐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상인은 다시 옆에 있는 당나귀의 큼지막한 불알을 몇 번 들어보더니 그때처럼 시간을 알려주었다.


주상점 씨가 어떻게 당나귀 불알의 무게로 시간을 아느냐고 묻자, 상인은 주상점 씨를 자기 옆으로 불러 당나귀 불알을 들어보게 했다. 주상점 씨는 상인이 시키는 대로 당나귀 불알을 손바닥에 들어올렸다. 그랬더니 멀리 광장 중앙 건물에 있는 대형시계가 보이는 것이었다.


주상점 씨는 그때 상인의 시치미를 뗀 무표정한 얼굴을 보며 실소를 금치 못했노라며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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