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융합문화의 수작 고려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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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융합문화의 수작 고려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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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융합문화의 수작 고려청자

△ 청자상감매죽조문매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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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롱한 비췻빛에 어린 ‘청어람’ 묘미

우리 겨레의 문화유산 가운데서 세계적인 자랑거리를 들라면 으레 고려청자가 빠질 수 없다. 왜냐하면 고려청자야말로 우리나라를 세계 도자기사의 선구로 자리매김을 하게 한 독창적인 문화유산이며, 우리 선조들이 창조한 세계적 수준의 자랑스러운 예술품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코 우리들의 자화자찬이 아니고 유수의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평가하는 바다. 지난 세기 초 일본에 가 동판화를 공부하다가 조선 도자기에 매료되어 도예가의 길로 전향한 영국의 세계적 도예 이론가인 버나드 리치는 백자에 엷게 비치는 청색을 보고 “이 색을 낸다면 사람들을 얼마나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라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면서 감탄했다고 하며, 같은 영국의 한 박물관 도자기 부장인 윌리엄 보여 허니는 〈중국 및 극동 각국의 도자기〉(1945년)란 저서에서 “최상급의 한국 도자기는 세계 도자기 중에서 가장 우아하고 진실하며 도자기가 가지는 모든 장점을 구비하고 있으니, 그것은 행복한 민족의 소산임을 첫눈에 말해주고 있다”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는다.

청자를 비롯한 자기의 원조는 자기들의 나라라고 자부하는 중국사람들조차도 고려청자 앞에서는 다소곳해지고 만다. 고려청자가 한창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때인 1123년에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에 온 서긍(徐兢)은 고려사람들은 도자기 중 색이 푸른 것(즉 청자)을 비색(翡色)이라고 부르는데, 솜씨가 뛰어나고 색깔이 더욱 좋아졌다고 하면서, 차마 낫다는 말은 못하고 당시 송나라에서 새로 나온 여요(汝窯)의 청자와 ‘비슷하다’고만 말한다. 그러나 같은 송대 사람인 태평노인은 세상에서 으뜸가는 것들만을 골라서 소개하는 책자에서 “고려 비색(즉 청자)이 천하제일이다”라고 사실을 실토하고 만다. 고려청자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도자기에 얼마나 매료되었으면 평생을 그 연구에 바친 외국 도예인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의 다니 슌제이 같은 사람은 고려청자의 국제적 성가를 등에 업고 복원했다면서 10년간이나 고려청자 전문가로 사기극을 벌이기도 했다.


세계가 찬탄한 맵시와 때깔

이렇게 고려청자가 ‘천하제일’의 평판을 받게 된 것은 한마디로 그 독특한 특성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보면 이러한 특성은 중국 청자의 영향을 받았으나 무턱대고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선조들이 이루어놓은 도자기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특유의 창의성을 발휘한 결과인 것이다. 이를테면, 문명교류에서 다른 문명을 선택적으로 수용하여 자신의 전통문화를 가일층 발전시켜 풍부하게 만드는, 이른바 융합의 묘미를 살린 데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의 문화유산 중에는 이러한 융합물이 적지 않지만, 고려청자는 단연 그 수작으로 꼽힌다. 문명교류사에서 보면 융합성을 구현한 문명만이 선진문명의 반열에 올라 세계성을 인정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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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으로부터 청자 진사 연화문표주박모양 주전자, 청자 칠보투각향로, 청자 모자원숭이연적, 청자 상감모란문학침. 



원래 청자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은나라 때부터 잿물, 곧 회유를 유약으로 하는 회유도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한대에는 이 회유도기가 초기의 청자 형태로 발전하였다. 7세기 초반 당나라 때부터는 비교적 세련된 청자가 나타나다가 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월주요(越州窯) 청자 같은 완벽한 청자가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조공무역 등을 통해 앞서간 중국의 자기와 유약이 수입되었으며, 9세기 후반부터는 전라도 강진과 부안을 비롯한 서남 해안지역에서 청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9세기 청해진을 본거지로 한 해상왕 장보고의 대중국 교역활동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귀족문화의 개화와 더불어 불교의 선종이 들어오면서 차문화가 성행하게 되자 다구로서 청자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다. 그래서 청자로 만든 제기나 다완, 의식용기 등 다양한 청자그릇이 선을 보인다. 그러나 11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조형미라든가 장식기법에서 중국의 영향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으며, 청자는 아직 일부 용기로만 쓰였을 뿐, 생활문화 전반에 뿌리내리지는 못했다. 고려청자가 ‘천하제일’의 명품으로 각광을 받게 된 것은 전성기인 12세기부터다. 이때부터 굽는 방법이나 기형, 문양 등에 남아 있던 중국의 영향은 사라지고 빛깔과 형태, 문양에서 ‘고려적’인 것으로 승화해 중국을 능가하는 독창적인 세련미와 완성도를 보여준다.


중국산 수용해 독창적 승화

고려청자의 독창성은 우선 그 영롱한 빛깔에서 나타나고 있다. 예로부터 동양 사람들은 옥을 가장 신비스러운 보석으로 여겨왔기 때문에 청자도 어떻게 하면 파르스름한 옥색을 띠게 할 수 있을까를 고심해 왔다. 고심 끝에 중국 사람들은 10세기께 자신들이 만들어낸 청자 색깔이 옥색에 가까운 것으로 믿고 궁중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비밀스런 색깔이란 뜻에서 ‘비색’(秘色)이라고 일컬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비밀스런 색깔’일 뿐, 참 옥색은 아니었나 보다. 그래서 그들이 고려청자를 봤을 때, 이것이야말로 진짜 옥색이라고 해서 초록색 경옥을 가리키는 ‘비색’(翡色)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사실 고려청자의 빛깔은 중국의 ‘비색’ 같은 색깔이 아니라 아름다운 맵시와 빛깔을 조화시킨 문자 그대로의 때깔이다. 여기에 고려청자만이 지닌 빛깔의 오묘함이 있다. 그래서 이규보는 청자 인형연적을 앞에 놓고 “작기도 하여라 푸른 옷 입은 동자/ 고운 살결 옥과 같구나/ …너의 고마움을 무엇으로 갚을쏜가/ 깨지지 않게 소중히 간직하리”라고 청자에 대한 애틋한 정과 소중함을 읊조리고 있다.


상감기법 청자 적용 세계유일

고려청자의 독창성은 상감기법을 도입한 데서도 드러난다. 상감기법이란 금속이나 도자기 표면에 무늬를 파서 그 속에 금속이나 보석을 넣어 채우는 기법을 말한다. 원래 이 기법은 일찍이 이집트에서 발생한 후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삼국시대에 이미 한반도에 전래되어 주로 금속이나 나전칠기에 장식줄을 박는 입사법 같은 공예기법으로 사용되어 왔다.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러한 공예기법을 청자의 제작기법으로 도입한 것은 고려가 유일하며, 그로 인해 고려의 상감청자라는 다채롭고 장식적인 멋을 띤 독특한 청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 기법은 반건조된 그릇 표면에 문양을 파고 초벌구이한 다음 파인 부분을 백토나 자토로 메우고 유약을 바른 뒤에 다시 구워냄으로써 문양이 유약을 거쳐 투시되도록 하는 것이다. 원래 청자는 유약의 유리질로 인한 반사 때문에 무늬를 넣는 것이 대단히 어려웠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할 수 없이 청자를 포기하고 청백자의 길을 찾게 되었다. 그러나 고려 사람들은 힘든다고 걸어온 길을 버리지 않고 전래의 입사법에서 영감을 얻어 끝내 상감기법을 발명함으로써 으뜸 청자를 만들어낼 수가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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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감기법의 도입으로 인해 자기의 표면에 다양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새겨넣은 것은 고려청자만이 지닌 또하나의 특색이다. 일반적으로 제품의 무늬는 제작자와 수요자들의 사상, 감정과 문화적 취향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반복적인 기하학적 무늬인 연꽃무늬, 국화무늬, 당초무늬, 보상화무늬, 초화무늬 등과 더불어 서정적이고 낭만적이며 청빈한 삶을 염원하는 마음이 깃든 구름학무늬, 강변의 물새(포류수금)무늬, 포도동자무늬 등 실로 다양한 무늬세계를 펼치고 있다. 당시 고려인들의 생활상을 폭넓고 생생하게 전해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지닌 심미의식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무늬를 배치하는 방식도 조형적으로 대단히 세련되어 있다. 예컨대, 찻잔의 경우 그릇 안쪽을 당초무늬로 가득 채우면 바깥쪽에는 국화무늬를 사방으로 돌림으로써 그 조화로움이 한눈에 안겨온다. 무늬 가운데 연꽃무늬나 당초무늬, 포도무늬 같은 것은 원래가 서역에서 들어온 것들로서 우리의 장식무늬 속에 남아 있는 전형적인 융합문화다.


빼어난 세련미·정감 넘치는 무늬

이와 함께, 고려청자는 기형에서 오는 아름답고 균형 잡힌 조형미가 일품이다. 청자가 갖는 특유의 질감이나 미감 때문에 그 기형은 예술적인 조형을 포함해 실로 다양하다. 찻잔과 술병을 비롯해 음식용기가 가장 많지만, 그 외에도 제기나 등잔, 베개, 향로, 벼루, 연적 등 일상 생활용품, 심지어 기와나 타일 같은 건축자재나 주거용품도 들어 있다. 원숭이 모자의 정감을 재미있게 묘사한 연적은 조형미가 넘치는 예술작품의 한 보기다.


이러한 독창성과 특색을 반영하여 제품의 이름이 지어졌다는 것도 남다른 일이다. 예컨대, ‘청자 상감운학문매병’이나 ‘청자 양각대마디문병’ 같은 제품의 이름에서 보다시피,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명칭은 먼저 재질(청자)을 구분한 다음 장식기법(상감, 양각)과 무늬(운학문, 대마디문)를 알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그릇모양(매병, 병)을 식별하는 차례를 띤다.

고려청자는 시대를 넘기면서 조선시대의 분청사기와 백자로 그 맥을 넘겨주었다. 적어도 17세기까지 세상에서 자기를 만들어 쓰는 나라는 우리와 중국뿐이었다. 그것도 우리는 여러 면에서 중국을 앞섰다. 이렇듯 문명간의 융합성을 최상의 수준에서 구현한 고려청자는 ‘코레아’의 상징으로, ‘미스 고려’의 화신으로 우리의 문화사뿐만 아니라, 세계 도자사를 빛나게 수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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