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칠운회(七雲會) (50회) 제8장 시대와 역사의 풍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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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칠운회(七雲會) (50회) 제8장 시대와 역사의 풍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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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운회(七雲會) (50회)

  제8장 시대와 역사의 풍랑에서




또 한 번의 군사정변 방송


1979년 12월 12일, 12.12사건으로 알려진 또 한 번의 군사정변이 일어났다.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총소리가 나고, 강북 쪽 일산 근처의 9사단과 강남의 양평 쪽 20사단이 이동을 하는가 하면, 중앙청 앞 광화문 네거리에는 또 다시 탱크들이 진을 치는 등 군인이 나라를 장악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당시 계엄사령관 정승화 장군의 연행을 발표하던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용모와 야무진 입에는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렇게 해서 12.12사태는 끝이 났는데, 문제는 전체 군인들이 과연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었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체포로 인한 군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고 본 신군부(新軍部)측에서는 전군(全軍)이 이번 사태를 지지한다는 모습을 군과 국민들에게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신군부 관계자들은 TV 방송을 이용하기로 하고, 완전히 민간방송이면서 당시 시청률이 가장 높았던, 동양방송을 통해 좌담프로를 내보내되 사회자는 5.16혁명과 인연이 있는 박종세로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그렇게 또 한 번 군사정변에 차출되었는데, 좌담에는 군인들이 군복(軍服) 정장 차림으로 출연하기로 하고 준비가 진행되었다. 중간 연락과 준비는 전두환 장군의 1사단장 당시 보좌관이었던 24기 이충석(李忠錫) 중령이 맡았고, 준비 모임은 20사단장이었다가 바로 육군본부인사참모장이 된 육사 12기 박준병(朴俊炳) 소장 방에서 가졌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출연자(出演者)는 육사 13기로, 동기 중에서 가장 신망이 두텁고 입학 때 일등을 했다는 임동원(林東源) 준장이었다. 


사전 준비를 마친 우리는 동양방송 스튜디오에서 녹화를 했고, 날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방송을 했다. 12.12사태는 전군이 지지하여 일어난 것이고, 나라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이 길밖에 없었다는 것, 앞으로도 국민들은 군을 믿고 전적으로 따라줄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박준병, 임동원 두 장군은 하얀 장군 정장 차림으로, 이 중령은 푸른 영관 정장으로 출연하였는데, 이 제복도 프로그램이 위엄 있게 진행되는 데 몫을 했던 것 같다. 후에 박준병 소장은 대장(大將)으로 승진, 예편해서 국회의원으로 활약했는데, 온화한 성품에 마음 씀씀이도 넓은 덕장(德將)이었다. 


임동원 준장은 곧 소장(少將)으로 예편하고 외교관이 되어서 아프리카로 부임했고, 이어 호주대사를 역임했으며, 통일원장관, 국정원장으로 남북문제도 주도한 지장(智將)이었다. 또 이충석 중령은 후에 중장(中將)으로 진급하여 수도방위사령관, 합참 작전부장을 역임하였는데, ‘하나회’관련 강경발언으로 예편한 용장(勇將)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우리나라의 군(軍)과 관계된 두 번의 큰 사건과 연관을 갖게 되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나는 일찍부터 <국방뉴스>, <배달의 기수>등 군 관계프로그램을 사명감을 갖고 해설했으며, 나 스스로도 군을 아주 놓아했으니, 악연(惡緣)인지 선연(善緣)인지 저절로 그런 인연이 찾아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칠운회(七雲會)


1980년에 나는 사회지도급 인사들을 모아서 반강제적으로 실시하는 정신문화연구원(精神文化硏究員) 교육에 참여했다. 새마을 교육과 비슷한 형태인데, 피교육자들이 일주일 동안 숙식을 함께 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방면에 걸친 강연을 듣기도 하고 토론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한번 들어오기가 힘이 들어서 그렇지, 일단 교육에 참가하면서부터 사람들은 금세 마음을 열었고, 말문이 열리자 강의 차 나온 교수들보다도 더 깊이 있는 전문지식으로 열변을 토하는 분도 있었고, 시국에 대해서도 솔직한 이야기들을 털어놓아 참여한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친교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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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클라호마주립대학에서 작은 아들 증수와


두 사람이 한 방을 쓰도록 짜여 져 있는 규칙에 따라 나는 법조계(法曹界)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박일경(朴一慶) 선생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박일경 선생은 일찍이 법제처장, 문교부장관을 역임하시고 이때는 입법회의 임원이면서 명지대 대학원장으로 계실 때인데, 술을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교육받는 동안에는 술을 일체 금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갖고 들어오셨는지 방에 들어오면 위스키를 꺼내놓고 같이 마시자고 성화를 부리시는 것이었다. 안주도 없이 위스키를 홀짝이면서 들려주시던 박식하고 지혜로운 말씀들을 나는 잠을 물리며 밤늦도록 경청했다. 


마침내 교육이 끝나고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자 모두들 아쉬움을 떨치지 못해, 모임을 만들어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기에 이르렀다. 모임의 이름은, 7기 교육생들이 정신문화연구원이 있는 운중동(雲中洞)에서 만난 것을 기념하여 칠운회(七雲會)로 정했으면, 회장은 대농그룹 박용학(朴龍學) 회장님이, 그리고 가장 젊은 내가 간사장(幹事長)을 맡기로 했다. 


초창기 칠운회 모임은 아주 활발했다. 내외들이 함께 모이기도 하고 회원들의 골프모임도 한 달에 한 번씩 거르지 않고 갖는 등 회원모두가 열성을 다해 결속을 다져갔다. 


그러나 세월은 누구도 어쩌지를 못해 1998년 후반이 되었을 때는 많은 회원들이 세상을 떠났고, 더러는 이민을 가는 바람에 칠운회는 소리 없이 사라지고 말았지만 마음만은 지금도 끈끈하게 이어져 있다. 


회원들의 면면을 보면 대농그룹 박용학 회장, 태평양그룹 서성환 회장, 대한전선 설원량 회장, 유원그룹 최효석 회장, 효성그룹 배도 회장, 장관으로는 노재현, 정치근, 오자복, 소준열, 최광수, 박일경, 기관장으로는 깁집, 김한주, 백낙승, 최병상, 정희채, 최종호, 학계에서 강주진, 정범모 씨가 있고, 


국회의원으로는 김용태, 박원탁, 신순범, 임방현, 이수종, 홍성우, 공무원으로는 고광도, 김진백, 문영구, 언론계에서는 권혁승, 신용순, 윤상철, 이중, 주영관, 권오룡, 법조계에서는 김달식, 김양균, 김동환, 이병후, 안경렬, 전상석, 정구영 씨 들이었다. 모두 그리운 이름들이다. 


2001년, 경복고(景福高) 총동창회장을 맡고 있을 때, 미국에 있는 동창들을 만나기 위해 로스엔젤레스를 방문했었는데, 마침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에 다니는 작은 아이 중수가 아버지를 만나겠다고 LA까지 30시간이나 차를 몰고 찾아온 일이 있었다. 


나는 아들에게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일 생각으로 갈비집 <조선옥>을 찾았는데, 어찌나 손님이 많은지 할수 없이 후퇴를 해야 했다. 막 출입문을 나서는데, 누가 “박 회장 웬일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돌아다보니 그렇게도 뵙고 싶었던 박용학 회장님이었다. 우리는 반갑게 손을 잡았고, 내 눈에는 금세 눈물이 고였다. 


그런데 이 어른 첫마디가 <칠운회> 회원들 안부를 묻는 것이었고, 당신의 괴로운 생활은 입에도 올리지 않으셨다. 그렇게 칠운회에 대한 애착이 크셨는데, 당신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칠운회가 문을 닫게 되었다고 마음 아파하셨다. 85세인 박 회장님의 만수무강(萬壽無疆)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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