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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창원박씨종친회 &amp;gt; 뿌리알기 &amp;gt; 유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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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창원박씨종친회 &amp;gt; 뿌리알기 &amp;gt; 유적</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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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박진걸 무과급제 교지(강희 15년, 1676년 3월3일, 숙종2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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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span style="font-size:12pt;">박진걸(</span><span style="font-size:16px;">朴震傑)</span><span style="font-size:12pt;"> 무과급제 교지(</span><span style="font-size:16px;">敎旨)</span></p><p><span style="font-size:16px;"><br /></span></p><p><br /></p><p><img itemprop="image" content="https://parkroot.org/data/editor/2502/665b460705edcb3d4c4ac39caeaf15f6_1739329886_0886.jpg" src="https://parkroot.org/data/editor/2502/665b460705edcb3d4c4ac39caeaf15f6_1739329886_0886.jpg" alt="665b460705edcb3d4c4ac39caeaf15f6_1739329886_0886.jpg" class="img-tag "/><br style="clear:both;" /> </p><p><span style="font-size:12pt;"><b>숙종실록 강희15년 1676년(숙종2년) 3월3일</b></span></p><p><span style="font-size:12pt;">○武科通八道, 一萬八千二百五十一人, 或有六子登科者, 或有祖子孫同科者, 或有前後甲同科者, 科名之濫, 前古所未有也。</span></p><p><span style="font-size:12pt;"><br /></span></p><p><span style="font-size:12pt;">【태백산사고본】 4책 5권 14장 A면</span></p><p><span style="font-size:12pt;">【국편영인본】 38책 324면</span></p><p><span style="font-size:12pt;">【분류】 인사-선발(選拔)</span></p><p><br /></p><p><span style="font-size:12pt;">무과(武科)는 8도(道)를 통틀어 1만 8천 2백 51명인데, 혹은 여섯 아들이 등과(登科)한 경우도 있었고, 혹은 조(祖)·자(子)·손(孫)이 같이 등과한 경우도 있었으며, 전·후갑(前後甲) 이 같이 등과한 경우도 있었으니, 과명(科名)의 외람됨이 전고(前古)에 있지 아니한 바였다.</span></p><div><br /> </div><p><br /></p><p><span style="font-size:12pt;"><b>[조선무과 재연] </b></span></p><p><br /></p><p><span style="font-size:12pt;">민중적인 무사시대가 없었던 우리나라에서는 무과(武科)를 실시하여 무관들을 선발함으로써 나라를 지키는 동량들을 길러내었다. 따라서 여기에는 선조들의 호국정신이 깃들어 있고 우리 무예의 원형에 접근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 내재하고 있다. 이 시대에 무과를 재연함은 척박한 우리 문화현실에 큰 활력소가 될 뿐 아니라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선조들의 호국정신을 잇게 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을 것임을 확신한다.</span></p><p><br /></p><p><span style="font-size:12pt;">[조선무과 개요]</span></p><p><br /></p><p><span style="font-size:12pt;">조선시대에 무관(武官)을 선발하기 위해 실시한 과거시험으로 고려 말부터 시행하려 했으나 본격적으로 실시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이다. 조선시대의 무과에는 문과(文科)와 같이 3년마다 1번씩 실시하는 식년시(式年試)가 있었으며 보통 무과라 하면 이를 지칭한다. 식년무과는 식년문과와 같이 초시(初試)·복시(覆試)·전시(殿試) 3단계의 시험이 있어 초시는 식년 전 해의 가을에 치르고, 복시와 전시는 식년 봄에 시행했다. 초시에는 향시(鄕試)·원시(院試)가 있었다. </span></p><p><br /></p><p><span style="font-size:12pt;"><b>향시</b>는 각 도의 병마절도사가 주관하는 각 도마다 정해진 숫자를 선발했는데 모두 190명을 선발했다. <br /><b>복시</b>는 식년 봄에 초시 입격자를 서울로 불러모아 병조와 훈련원이 주관하는 강서(講書)와 무예(武藝)를 시험보게 하여 28명을 선발했다. </span></p><p><br /></p><p><span style="font-size:12pt;">그런데 세조 이후 잦은 특별시를 실시하여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선발했다. 그래서 합격하고도 관직에 나가지 못하는 사례가 많아지자 그 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고시 과목은 강서와 무예 2종류가 있었다. 강서는 복시에만 있었는데, 4서5경(四書五經) 가운데 택일(擇一), 무경7서(武經七書)에서 택일, 통감(通鑑)·병요(兵要)·장감(將鑑)·박의(博議)·장감(將鑑)·무경(武經)·소학(小學) 중에서 택일하고 아울러 〈경국대전〉과 함께 고강(考講)하도록 했다. </span></p><p><br /></p><p><span style="font-size:12pt;">그리고 〈속대전〉에 의하면 증광복시에는 무경7서 및 4서5경 가운데 한 책을 따라 골라서 시험보게 했다. <br />무예에는 처음에 목전(木箭)·철전(鐵箭)·편전(片箭)·기사(騎射)·기창(旗槍)격구(擊毬) 등 6기(六技)가 있었으나 〈속대전〉에는 유엽전(柳葉錢)·관혁(貫革)·조총(鳥銃)·편추(鞭芻) 등을 신설하고 기사를 기추로 변경하는 한편 격구를 폐지했다. 식년·증광시를 제외한 무과는 무예 10기와 강서를 합한 11기 가운데 1~3개의 기를 택해 시험 보았다. </span></p><p><br /></p><p><span style="font-size:12pt;">식년무과 이외에 비정규적으로 실시하는 증광시(增廣試)·별시(別試)·알성시(謁聖試)·정시(庭試)·관재시(觀才試) 등이 있었다. 다만 알성시·정시·관재시 등은 문과와 달리 초시가 있어서 초시·전시 2차례의 시험에 의해 급락을 정했다. <br /><br />한편 식년 이외에 실시된 각종 별시무과에서는 증광시를 제외하고는 대개 지방별로 행하는 초시가 생략되었으며, 그 선발하는 인원도 일정치 않아 대개의 경우 식년시의 규정인 28명을 초과해서 선발했다. </span></p><p><br /></p><p><span style="font-size:12pt;">또한 임진왜란을 당하자 국가에서는 부방군(赴防軍)을 확보하고 국민 전투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무과 급제자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고자 했다. 안정된 이후에도 무과 출신의 부방 의무 대가로 징수하는 물자가 국가 재정난 타개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무과의 대량 시취는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b>1676년(숙종 2)의 정시에서는 1만 8,000여 명</b>을 뽑아 이른바 만과(萬科)라는 명칭이 생기기도 했으며 이러한 대량 시취로 인해 급제자의 대부분은 관직에 임용되지 못했다.</span></p><p><br /></p><p><span style="font-size:12pt;"><b>[조선무과의 과정]</b></span></p><p><br /></p><p><span style="font-size:12pt;">ㅇ 녹명(응시)이란 무과시험이 있기 일주일전 녹명소에서 무과시험에 응시할 자 (거인)들의 신원확인서인 </span><span style="background-color:rgb(255,255,255);color:rgb(4,12,40);font-family:Arial, sans-serif;font-size:12pt;"><b>사조(四祖)의 신원을 적은 <a href="https://dh.aks.ac.kr/sillokwiki/index.php/%EB%85%B9%EB%AA%85%EB%8B%A8%EC%9E%90(%E9%8C%84%E5%90%8D%E5%96%AE%E5%AD%90)" rel="nofollow">사조단자(四祖單子)</a></b></span><b><span style="font-size:12pt;">와 </span><span style="font-family:'돋움', Dotum;font-size:12pt;"><a href="https://dh.aks.ac.kr/sillokwiki/index.php/%EB%B3%B4%EB%8B%A8%EC%9E%90(%E4%BF%9D%E5%96%AE%E5%AD%90)" rel="nofollow">보단자(保單子)</a></span></b><span style="font-size:12pt;">를 제출(과거응시 부적격자를 가리기 위함)하는 과정을 뜻한다. </span></p><p><br /></p><p><span style="font-size:12pt;">ㅇ 사조단자란 응시자의 인적사항을 기록한 것이고 보단자는 내외 친족이 증여하는 일종의 신원보증서이다. 녹명절차가 끝나면 거인들은 초시, 복시를 거쳐 임금 앞에서 직접 행하는 전시를 치르게 된다. </span></p><p><br /></p><p><span style="font-size:12pt;">전시에는 28명의 거인들이 참석하게 된다. 시험장에는 임금이 직접 행차하게 되는데 정병을 필두로 취타대가 입장하고 그 뒤로 홍문대기, 주작기, 백호기, 현무기, 청룡기, 금백색기, 삼각기, 천하태평기 등의 의장기가 입장하고. 이어서 금월부, 은월부 등의 부, 금릭과, 은릭과 등의 과. 청룡당, 주작당 등의 당. 용선, 봉선, 청선 등의 선. 등의 여러 의장물들이 입장하게된다. 왕은 어연을 타고 내직별감, 상호군, 호군, 재호군 등의 호위무사들과 함게 입장하고 그 뒤로 문무백관, 승지, 별감 등의 시종관원과 별시위, 내금위 등의 시위군사 입장하며 그 규모는 약 6200여명이다. 그리고 어좌를 중심으로 시위군사들이 왕의 주변에 위치하고 개장 보고를 하게 된다.</span></p><p><br /></p><p><span style="font-size:12pt;">ㅇ 보사 : 서서 쏘는 활쏘기로 목전, 편전, 철전을 각각 원후, 중후, 근후 등의 거리에서 쏜다.호명관이 각각 응시 거인들을 거명 하는데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 실제 이름이 아닌 번호를 부른다.</span></p><p><br /></p><p><span style="font-size:12pt;">ㅇ 목전 : 화살은 나무로 만들며, 240보의 거리에서 3발씩 쏘되, 2인이 번갈아 가면서 한발 씩 쏜다. 후(목표물)는 사방 1장8척의 크기로 돼지머리가 그려져 있다. 후의 좌우와 일정한 거리 뒤에 깃발을 세워 표시한다. 목전은 목표물을 맞추는 능력보다 멀리쏘는 능력에 촛점을 마춘 것으로 목표물에 도달하면 7점, 5보이상 추가시 마다 1점을 가산하여 계산한다.</span></p><p><br /></p><p><span style="font-size:12pt;">ㅇ 편전 : 속칭 애기살이라 하여 길이가 짧은 화살을 사용한다. 통 또는 통화라 부르는 대롱살에 화살을 넣고 쏜다. 적중률과 관통률이 우수하여 전쟁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는 화살이다. 일인당 3발을 쏘되 180보의 거리에서 중후를 쏘게 된다. 중후는 8척3촌의 크기. 후에 명중시 적기를 들고 북을 쳐 합격을 알린다. 맞추지 못할 시 백기를 들고 징을 쳐 불합격을 알리게 된다.</span></p><p><br /></p><p><span style="font-size:12pt;">ㅇ 철전 : 화살촉을 쇠로 만든 전투용 화살로 멀리 쏘아서  궁력의 강약을 평가한다. 목표물에 미치면 7점, 80보를 넘으면 5보마다 1점을 가산하여 계산한다.  철전의 후는 근후를 사용하게 되며 4척6촌의 크기를 사용한다. 이때 합격, 불합격을 알리는 사람을 차비관이라 한다</span></p><p><br /></p><p><span style="font-size:12pt;">ㅇ 기창 : 말을 타고 달리면서 두 손을 이용하여 긴 창을 휘두르거나 목표물에 맞추는 시험이다 추인(허수아비)를 찌를 때마다 5점씩 가산하였다. 창은 긴 장대를 이용하여 내뻗는 힘과 휘두르는 힘에 의해 적을 살상하는 무기로 말위에서 쓸 경우에는 위력이 증대된다.   추인을 좌우에 각각 3개씩 설치하여 여러가지 기술로 추인을 맞춘다. 이때 사용되는 창은 15척5촌의 길이로 명중도와 함께 창을 쓰는 기술과 말을 달리는 시간을 복합적으로 채점하였다.</span></p><p><br /></p><p><span style="font-size:12pt;">ㅇ 격구 : 말을 타고 채막대기로 나무공을 구문에 쳐서 넣는 시합이다. 자세를 갖추어 구문으로 공을 쳐 내면 점수를 얻었다. 마상무예 연마의 중요한 무예로 고려시대 최고의 무예로 평가받아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성행하였다. 격구시험장은 말이 출발하는 출마표, 공이 놓여있는 치구표, 구문으로 구성되며 총 길이는 250보이다. 호명관이 거인을 호명하면 굴레잡이에게 말을 이어받아 시험을 치르게 된다.  응시자는 말을 타고 치구표로 나아가 배지, 지피등의 동작을 한 후 구문 쪽을 향하게 된다. 배지나 지피등의  기술을 행할 때는 반드시 채를 말의 가슴에 대는데 이를 할흉이라 한다. 배지, 지피 기술을 3회 실행한다. 격구는 무과시험과목 중에 가장 난이도가 높아서 성종 때의 기록을 보면 22명의 무관을 선발하는데 규정에 합격한 자가 한 명도 없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연유로 응시자들이 격구를 기피하게 되어 효종 때를 끝으로 무과시험에서 사라지게 된다.</span></p><p><br /></p><p><span style="font-size:12pt;">ㅇ 방방 : 합격자 발표를 뜻하는 것으로 왕이 머무는 경복궁 근정전에서 성대히 치러졌다. 행사 당일의 행사는 3엄으로 이루어진다. 엄이란 의식 진행시 의식의 단계와 행사 참여자들의 준비를 서두르게 하는 북소리로 의식의 엄숙함을 유도하였다.</span></p><p><br /></p><div><br /></div><div><br /></div>]]></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Wed, 12 Feb 2025 12:18:2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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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孺人 昌原朴氏 烈行碑, 유인 창원박씨 열행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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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
<b><span style="font-size:12pt;">유인 창원박씨 열행비</span></b><span style="font-size:12pt;">
孺人 昌原朴氏 烈行碑</span><br /><br /><span style="font-size:12pt;">＜碑 文＞</span><br /><br /><span style="font-size:12pt;">夫人之生也稟天地生物之心</span><br /><span style="font-size:12pt;">以爲心惻隱羞惡辭讓是非是也</span><br /><span style="font-size:12pt;">固無物慾之蔽則四端自若而孝</span><br /><span style="font-size:12pt;">悌忠信之道不待敎令而行焉衆</span><br /><span style="font-size:12pt;">人有生之初物慾交蔽乃頹其綱非學問之功<br />○然無知終不能行在我之所</span><span style="font-size:12pt;">當行之道也<br />故三代之隆治敎休明於上人倫明於下綱常之道行焉今也則</span><br /><span style="font-size:12pt;">不然聖學不明異說競起孝親弟長之道幾乎蔑矣是以憂世道者<br />○深際玆</span><span style="font-size:12pt;">鄭斯文燦玉氏謀與多士不忍泯湮先<br />○懿蹟欲竪貞珉於衢上使其族弟燦</span><span style="font-size:12pt;">元姪正基齎其家譜<br />○鄕薦狀謁余以文固辭益勤竟不牢辭按孺人姓朴氏</span><br /><span style="font-size:12pt;">籍昌原諱在寬女禮賓丞同正諱奇后也生於高宗庚寅稟性和順自幼時聞</span><span style="font-size:12pt;">孝順及<br />○歸于河東鄭公諱鳳采鳳采卽故士人諱淳成子郡守公鼓齋諱之</span><br /><span style="font-size:12pt;">末十五世孫也孺人之于歸也舅姑己沒未得逮養恒以是爲恨夫兄內外事</span><br /><span style="font-size:12pt;">之如舅姑敬君子而處於嫂叔有無共之其於族戚隣里敦睦焉人多譽之家</span><br /><span style="font-size:12pt;">運無祿夫忽臥病心憂色沮晝則湯進夜則禱天<br />○其誠力命也無奈竟遭城<br /></span><span style="font-size:12pt;">崩孺人時年僅二十九允若天地之忽崩日月之無光矣卽欲不從惟以夫血</span><br /><span style="font-size:12pt;">一脈在襁褓飜然改悟曰徒以同穴不若善養遺孤以承夫祀飮泣抑哀喪葬</span><br /><span style="font-size:12pt;">以禮自是以後自處未亡七十平生如一日而晝耘則星月而歸家夜績則燈</span><br /><span style="font-size:12pt;">火以繼晷勤儉致産善課遺孤以繼夫後皓首全節而卒於丙申十二月二十</span><br /><span style="font-size:12pt;">四日壯哉孺人也如是曠世柯則不可含默故所居寒泉面長具齊還多士朴</span><br /><span style="font-size:12pt;">淙植具判南曺圭善具鎔祐等二十五人具狀顚末報于綾州鄕校僉君子僉</span><br /><span style="font-size:12pt;">君子歎美而薦之噫如是卓異固宜竪碑闡揚而今此之盛擧雖曰鄭氏一家</span><br /><span style="font-size:12pt;">之事如今剝喪彛倫之秋其於扶植世道者豈可曰少之云乎哉忘拙如右銘</span><br /><span style="font-size:12pt;">曰 天賦和順貞靜在父家孝且敬及<br />○歸于鄭門執婦道家道正夫病<br />○其</span><span style="font-size:12pt;">誠力遭城崩矢不更衆論歸一伐石卓彼節忠江倂</span><br /><span style="font-size:12pt;">檀君紀元四千三百二十六年癸酉季夏小署節</span><br /><span style="font-size:12pt;">光山 李炳根 撰 長興 高光烈 書</span><br /><br /><br /><span style="font-size:12pt;">＜번역문＞</span><br /><br /><span style="font-size:12pt;">사람이 태어날 적에 천지생물의 이치를 받아 마음이 되는 사단칠정(四端七情) 곧 사랑하는 마음 부끄러워하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 시비를 가릴 줄 아는 마음 이 네가지 마음이 하늘이 주고 우리 사람이 받은 본연의 착한 마음이다.</span><br /><span style="font-size:12pt;">그러므로 물욕(物慾)의 가리움이 없으면 이 마음이 태연자약하여 효제충신(孝悌忠臣)의 도(道)가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여도 행할 수 있음에도 중인(衆人)은 태어날 때부터 물욕이 가리어 그 선량한 본심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것이다.</span><br /><span style="font-size:12pt;">학문(學問)의 공(功)이 아니면 끝까지 그 선량한 마음을 알아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일을 행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은주(夏殷周) 삼대의 성세(盛世) 때에는 위로는 다스림과 가르침이 밝고 아래로는 인륜(人倫)이 밝아 삼강오륜(三綱五倫)의 도(道)가 제대로 행하여졌는데 이제는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span><br /><span style="font-size:12pt;">성인(聖人)의 학문이 밝지 못하고 그밖에 여러 학설이 다투어 일어남으로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에게 공손히 하는 삼강오륜의 도가 거의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span><br /><span style="font-size:12pt;">그러므로 세상 일을 걱정함이 더욱 깊어가더니 마침 이 때에 정사문(鄭斯文) 찬옥(燦玉)씨가 다사(多士)들과 협의(協議)하여 자기 어머니의 훌륭한 업적을 차마 그대로 방치할 수 없어 그 업적을 새긴 비(碑)를 도로변에 세우고저 그 족제(族弟) 찬원(燦元)과 조카 정기(正基)로 하여금 족보(族譜)의 향천장(鄕薦狀)을 가지고 나에게 와서 비문을 청하므로 사양치 못하고 살펴보니 유인(孺人)의 성은 박(朴)씨요 본관(本貫)은 창원(昌原)이니 휘(諱) 재관(在寬)의 따님이며 예빈승동정(禮賓丞同正) 휘(諱) 기(奇)의 후손이다.</span><br /><span style="font-size:12pt;">고종경인(高宗庚寅:1890)에 출생하니 성품이 순하고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에게 공손함이 뛰어났다. 결혼할 때가 되어 하동(河東) 정공(鄭公) 휘(諱) 봉채(鳳采)에게 출가하여 봉채(鳳采)는 곧 고(故) 사인(士人) 휘(諱) 순성(淳成)의 아들이며 군수공(郡守公) 고재(鼓齋) 휘(諱) 지말(之末)의 15세손이다.</span><br /><span style="font-size:12pt;">부인이 시집옴에 시부모는 이미 돌아가시어 봉양할 수 없음으로 항상 이것이 한이 되어 시숙내외 섬기기를 시부모와 같이하고 남편에게 공경하며 형제간에는 있고 없음을 가리지 않고 그 친척이나 이웃간에 화목하여 사람들이 모두 칭찬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불행하게 남편이 문득 병으로 눕게 되었다. 부인이 근심이 되어 낮에는 온갖 약을 다려드리고 밤에는 하나님께 정성껏 기도하여 그 성의를 다하였으나 천명(天命)인지라 하는 수 없이 마침내 남편이 운명하게 되었다.</span><br /><span style="font-size:12pt;">부인의 그때 나이 겨우 29세였다. 참으로 천지가 무너지는 것 같고 일월이 빛을 잃은 것 같았다. 곧 남편의 뒤를 따라 함께 죽으려 하였으나 남편의 유일한 혈맥인 어린아이가 아직 강보(襁褓:어린 처지에)에 있으니 돌연 생각을 바꾸어 그저 함께 죽는 것 보다는 차라리 어린 아이를 잘 길러 남편의 뒤를 이은 것만 같지 못하다 하고 슬픔을 억누르며 장례를 치르고 그후로부터는 미망인(未亡人)으로 자처 70평생을 하루와 같이 지냈다.</span><br /><span style="font-size:12pt;">낮에는 논밭에 나아가 김을 매고 늦게 집에 돌아오면 밤에는 베를 짜고 등불로 밤을 세워 가산을 이루었다.</span><br /><span style="font-size:12pt;">어린아이를 잘 길러 남편의 뒤를 이으고 머리가 희도록 만년(萬年)까지 수절(守節)하여 병신(丙申:1956) 년 12월 24일에 별세하였다. 아! 장하도다 부인이여 이와 같이 세상에 보기드문 모범적인 일을 차마 그대로 둘 수 없어 이웃에 거주하는 한천면장(寒泉面長) 구제환(具齊還) 다사(多士) 박종식(朴淙植) 구판남(具判南) 조규선(曺圭善) 구용우(具鎔祐) 등 25인이 사실의 전말을 서면화하여 능주향교(綾州鄕校)에 아뢰니 능주향교에서 여러 유림(儒林)들이 감탄(感歎)하여 천거하였다.</span><br /><span style="font-size:12pt;">아! 이와 같이 뛰어난 일을 진실로 비를 세워 들춰냄이 마땅하도다. 이번 성대한 이 일이 비록 정씨(鄭氏) 일가(一家)의 일이라고는 하나 이와 같이 인륜이 타락된 요즈음에 미풍양속(美風良俗)을 진작(振作)시키는데 그 공이 어찌 적다고 하리요.</span><br /><span style="font-size:12pt;">그러므로 나의 용졸(庸拙)함을 잊고 이와 같이 서술하고 명(銘)하여 가로되 천품이 유순하고 아름다워(天賦和順貞靜) 처녀시절에도 남달리 부모에 효도하였네(在父家孝且敬) 혼기되어 정문에 출가하니(及○歸于鄭門) 부도를 잘 닦으니 가정이 바로 잡히었네(執婦道家道正) 남편이 병석에 누움에 그 정성을 다하고(夫病○其誠力) 남편이 죽음에 수절하기를 맹서하였네(遭城崩誓不更) 여러 사람 뜻이 한데 모여 비석을 세우니(衆論歸一伐石) 뛰어난 그 절개 푸르게 흐르는 저 충신강과 함께 하리(卓彼節忠江倂)</span><br /><span style="font-size:12pt;">1993(계유)년 6월 일</span><br /><span style="font-size:12pt;">광산(光山) 이병근(李炳根) 글을 짓고</span><br /><span style="font-size:12pt;">장흥(長興) 고광렬(高光烈) 글을 쓰다.</span><br /><br /></p><p><span style="font-size:12pt;">위치 : 전남 화순군 한천면 금전리
</span></p><p><span style="font-size:12pt;">건립연대 : 1993년</span></p>
<p><span style="font-size:12pt;">규 모 : 총높이:2.50m 비높이:1.40m 넓이:0.55m 두께:0.25m</span></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Mon, 13 Mar 2023 16:06:24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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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장단파 입향조 兵馬使公 박홍신(弘信) 묘소</title>
	<link>https://parkroot.org/bbs/board.php?bo_table=park02_03&amp;wr_id=36</link>
	<description><![CDATA[<p>장단파 입향조 兵馬使公 박홍신(弘信) 묘소</p><p><a href="https://parkroot.org/bbs/view_image.php?fn=http%3A%2F%2Fparkroot.org%2Fdata%2Feditor%2F1811%2F77e87d032c8b7506dc136632c6167564_1543559515_39.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parkroot.org/data/editor/1811/77e87d032c8b7506dc136632c6167564_1543559515_39.jp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11/77e87d032c8b7506dc136632c6167564_1543559515_39.jpg" alt="77e87d032c8b7506dc136632c6167564_1543559515_39.jpg" class="img-tag "/></a></p><p>[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통구리 산166번지]<br /></p><p>※ 구글 지도 좌표 : <a href="https://www.google.com/maps/place/38%C2%B000'47.6%22N+126%C2%B055'54.5%22E/@38.0132252,126.929607,17z/data=!3m1!4b1!4m5!3m4!1s0x0:0x0!8m2!3d38.013221!4d126.931801"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 noopener">38.013221, 126.931801 <im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60720_7466.png" alt="클릭하세요" class="img-tag img-tag"/></a></p><br /><p><br style="clear:both;" /><a href="https://parkroot.org/bbs/view_image.php?fn=http%3A%2F%2Fparkroot.org%2Fdata%2Feditor%2F1811%2F77e87d032c8b7506dc136632c6167564_1543559515_4701.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11/77e87d032c8b7506dc136632c6167564_1543559515_4701.jpg" alt="77e87d032c8b7506dc136632c6167564_1543559515_4701.jpg" class="img-tag "/></a><br style="clear:both;" /> </p><p><br /></p><p><br /></p><p><br /></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Fri, 30 Nov 2018 15:30:1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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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박유원(朴由元)의 방유정집『 放遊亭集 』한글 번역본</title>
	<link>https://parkroot.org/bbs/board.php?bo_table=park02_03&amp;wr_id=35</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2pt;">박유원(朴由元)의 방유정집『 放遊亭集 』한글 번역본</span></b></p><p><br /><b><span style="font-size:12pt;"><b><span style="font-size:12pt;">※ 상단 첨부의 PDF 파일 다운로드 가능 합니다.</span></b></span></b></p><p><b><span style="font-size:12pt;"><b><span style="font-size:12pt;"><br /></span></b></span></b></p><p><b><span style="font-size:12pt;"><b><span style="font-size:12pt;"><a href="https://parkroot.org/bbs/view_image.php?fn=http%3A%2F%2Fparkroot.org%2Fdata%2Feditor%2F1811%2Fcebc73bc402fa481d0646ec5808129d4_1543324577_4929.pn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parkroot.org/data/editor/1811/cebc73bc402fa481d0646ec5808129d4_1543324577_4929.png" src="https://parkroot.org/data/editor/1811/thumb-cebc73bc402fa481d0646ec5808129d4_1543324577_4929_800x1066.png" alt="cebc73bc402fa481d0646ec5808129d4_1543324577_4929.png" class="img-tag "/></a><br style="clear:both;" /><br style="clear:both;" /> </span></b></span></b></p><p><b><span style="font-size:12pt;">序文<br /><br />이 放遊亭集 一冊은 朝鮮 世宗年間에 淸廉한 名臣으로 昌原朴公 諱 由元이 世宗18년(서기1436년) 吏曹參判을 辭職하고 高興 大西面 南陽(上南)에 落鄕하여 느티나무 한 그루를 심고 그 아래 亭子를 지어 이름하여 放遊亭이라 하고 隱居自適한 內容과 落鄕 時에 當時 諸賢들의 餞別詩가 실려있고 壬亂때 宣祖를 扈駕하고 戰功을 세우고 新義州에서 殉節한 放遊亭의 孫子인 諱 鮐壽와 放遊亭의 五代孫인 諱 弘世가 李舜臣 將軍의 書札을 接하고 順天 倭橋 戰鬪에서 倭敵 數百名을 斬首하고 力不足으로 壯烈히 戰死한 記錄을 담은 冊이다.<br /><br />그리고 附錄으로 위 세분들에 對한 行錄에 對하여 儒林들이 各 鄕校 및 成均館에 通文하여 祠堂을 건립하여 追慕 祭祀를 받들 수 있도록 許可하여 달라는 趣旨文과 이에 對한 成均館의 答通이 실려 있다.<br /><br />이제 나는 그 後孫들로부터 이 冊을 接하고 놀라운 事實을 發見하였다.<br />우선 放遊亭 先生이 世宗으로부터 信任을 받아 文武百官의 人事權을 쥔 吏曹參判을 除授 하였음에도 不拘하고 벼슬을 草芥같이 버리고 朝鮮 最南端 興陽 海邊으로 落鄕한 것과 落鄕 時에 當時 諸賢들이 帳幕을 쳐놓고 餞別 詩로 贈別한 것이였다.<br /><br />그런데 그 綜合的인 詩의 一部에<br />"公께서 계실 때는 南山도 무거웠는데 이제 公께서<br />떠나니 南山도 가벼워라" 또 이르기를 "千年만의 二疏(漢나라 때 벼슬 않겠다고 임금에게 辭職을 請한 疏廣을 말함)의 길을 擇하여 그분을 따라 갔으니 이 世上 모든 티끌버리웠도다." 하였다.<br /><br />이 贈詩를 살펴보면 落鄕한 곳에서 옛날 朝廷에 있을 때 親分을 밝혔으며 서울부터 먼곳에서 悠悠 自適을 表現한 詩라 여겨진다.<br />이 冊은 刊行 序文에 나타나 있듯이 그 刊行 年代를 풀어 보면 서기1834년(純祖31년)으로 지금부터 170年前으로 推定 된다.<br /><br />그동안 後孫들은 이冊을 紛失 하였다가 서울 어느 헌 冊房에서 그 어느 後孫이 救入 하였는데 그 冊 內容이 純漢綴로 되어 있어 難讀의 書가 되었으므로 後孫 昌烈이 平易한 國譯本으로 바꿔 刊行을 圖謀하였다.<br />累次 나에게 國譯을 付託하고 또 序文까지 委囑하므로 나는 우리 16代祖 襄靖公의 贈詩가 실려 있는 점과 그 後孫들의 爲先之誠에 感激한 바 있어 辭讓치 못하고 몇 마디 써서 그 誠意에 答하는 바이다.<br /></span></b></p><p><b><span style="font-size:12pt;"><br /></span></b></p><p><b><span style="font-size:12pt;"> 2002. 5.<br /></span></b></p><p><b><span style="font-size:12pt;"><br /></span></b></p><p><b><span style="font-size:12pt;">高興 柳明善 謹撰<br /><br />--------------<br /><span style="font-size:14pt;">目 次</span><br />序文<br />放遊亭記(譯文)<br />參判公 事蹟(譯文)<br />放遊亭 序(譯文)<br />放遊亭 韻(譯文)<br />僉正公 事蹟(譯文)<br />贊成公 事蹟(譯文)<br />通文(譯文)<br />答通(譯文)<br />通文(譯文)<br />通文(譯文)<br />放遊亭記(原文)<br />參判公 事蹟(原文)<br />放遊亭 序(原文)<br />放遊亭 韻(原文)<br />僉正公 事蹟(原文)<br />贊成公 事蹟(原文)<br />通文(原文)<br />答通(原文)<br />通文(原文)<br />通文(原文)<br /><br />-----------<br /><span style="font-size:14pt;">放遊亭記</span><br /><br />옛날 高伊의 縣(高興)은 바다와 산이 맑고 고우며 백성들의 風俗이 純粹하고 儉素 하였다. 계속 忠信賢俊의 선비가 있어 혹은 仁을 가려 그곳에 살기도 하고 혹은 경치가 좋음을 보기 위해 모여 오기도 하였다.<br />이곳의 人物들이 詩짓고 노래하며 경치 좋은 곳에 亭子와 臺를 지은 것이 東國輿地勝覽에 若干으로 가히 考覽할 수 있을 정도여서 온전히 傳해지지 못한 것이 여간 哀惜한 일이 아니다. 나는 高興을 다스리는 縣監으로 赴任한 이듬 해에 그곳 사람 昌原 朴君 奎殷이 한 집에 감추어 놓은 放遊亭集을 소매속에 넣고 나한테 와서 말하기를 이 放遊亭集은 우리 先祖 參判公의 遺蹟인데 公의 諱는 由元이요, 字는 元瑞이며 同正公, 諱, 奇의 七代孫이요, 襄靖公 諱 齡의 曾孫이다. 洪武(明太祖)十一年(서기 1378년 高麗우왕 4년)戊午년에 出生 하였다.</span></b></p><p><b><span style="font-size:12pt;"><br /></span></b></p><p><b><span style="font-size:12pt;">멀고도 먼 繁華한 氏族으로 新羅와 高麗로부터 始作 하여 綿綿히 科舉에 及第하였다.<br />我 朝鮮에 이르러는 詩, 禮, 忠孝가 代代로 이어졌다. 公은 일찍 文科에 及第하는 榮光에 올라 깨끗한 벼슬을 歷任 하였으며 文章이 卓越하여 그 當時의 士友들의 推重을 받았으며 器가 深邃하여 朝廷에서 우러러 보고 의지 하였다.<br />黃翼成(黄喜), 南龜亭(南在), 權陽村(權近), 金佔僤(金宗直)등 그 當時 어진이들과 交流하고 자리를 만들어 여러번 詩짓고 노래하며 어울였다.<br />中世에 發言한 일로 因하여 이 고을로 귀양살이를 오게 되었는데 이 고을의 風土가 아름다움이 두루 갖추어 있는 것에 深醉하여 山水를 두루 觀覽하고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俗世의 모든 慾心을 잊고 이 곳에서 장차 生을 마치고자 하였는데 世宗九年(西紀1427년)丁未年에 임금의 부름으로 朝廷에 나아가 禮曹參議가 되었다. 十八年(西紀1436년) 丙辰年에 嘉善大夫인 參判에 昇進 하였으나 權貴에 超越하여 벼슬을 버리고 돌아와 우리 고을 南,西쪽 南陽里에서 居하게 되었다.</span></b></p><p><b><span style="font-size:12pt;"><br /></span></b></p><p><b><span style="font-size:12pt;">집 뒤에 작은 동산이 있었는데 손수 한 그루 느티나무를 심어 가지가 茂盛하고 鬱蒼한 그늘이 질때에는 매양 지팡이 짚고, 짚세기 신고, 한가롭게 時間을 보내기 위해 이리 저리 거닐기도 하고, 친구들과 바둑을 두기도 하고, 술 잔을 나누며 산들바람이 불어 詩興을 돋구면 詩를 지어 읊고 그 한가함을 自任하여 그 곳을 放遊亭이라 하였는데 不幸히도 壬辰倭亂(1592년)을 當하여 譜牒을 잃어 버렸고 放遊亭 또한 돌보는이 없이 허물어져 雜草만 茂盛 하였으니 그 子孫들과 마을 老人들의 痛恨이 오래되고 오래 되었도다. <br />多幸히도 近者에 잃어버린 실마리를 찾아내고 公의 遺稿인 放遊亭集을 만들어 나에게 한 말을 付託하기에 극구 辭讓하다가 어쩔 수 없이 放遊亭의 자취를 考覽하여 보고 그 誠心을 가상히 여겨 나의 拙劣함을 잊고 거친 말을 엮어 감히 몇자 쓰게 된다.</span></b></p><p><b><span style="font-size:12pt;"><br /></span></b></p><p><b><span style="font-size:12pt;">上之三十一年(純祖31年 西紀1831年)七月上旬, 時任 朝奉大夫, 行興陽縣監, 順天鎮管, 兵馬節制都尉,<br />春秋館, 記事官, 烏川後人, 鄭구(龜)는 記하노라.<br /><br /><br /><br />參判公 事蹟<br /><br />公의 姓은 朴이요 諱는 由元(一說 仁幹)이요 字는 元瑞인데 昌原人이다.<br />同正公, 諱 奇의 七代孫이요, 襄靖公, 諱 齡의 曾孫이며 吏曹判書를 지낸 鄭天益의 外孫이다.<br />洪武 十一年 戊午(西紀1378年 高麗禑王4年)에 出生하였다.<br />永樂 元年(明三代 皇帝 卽位年1403年) 太宗(朝鮮朝三代王)三年 1403年에 文科에 及第하였다.<br />두루 原任大臣, 嘉善大夫를 歷任하였으며 學問, 文章, 道德, 德器는 그 當代에 여러 賢人들이 推重한 바였으나 言官이 임금께 올린 말이 禍가 되어 興陽에서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다.<br />興陽에서 생활 하면서 이곳 風土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어 山水를 두루 觀覽 하였다.<br />世宗九年(西紀1427年) 丁未年에 다시 왕의 부름을 받고 올라가 禮曹參議가 되었고 世宗 十八年(西紀1436年) 丙辰年에 吏曹參判 兼 經筵義禁府事, 五衛都摠管에 昇進 하였다. <br />그러나 奸臣들이 高官大爵들에게 阿諂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본 公은 벼슬을 辭讓하고 落鄕 할 뜻을 임금께 아뢰게 되었다<br />黃翼成(黃喜), 南龜亭(南在), 權陽村(權近), 金佔樺(金宗直) 등 諸賢들이 자리를 마련하여 서로간에 酬答하고 노래하는 것이 한 두번이 아니였다. 그 當時 이 분들이 落鄕하는 參判公에게 道路에 帳幕을 設置하고 古人들의 禮에 依하여 餞別 詩를 지었으니 그 詩는 이러하다.<br /><br />公께서 있을 때는 南山도 무거웠는데<br />公께서 이제 떠나니南山도 가벼워라.<br />또 말하기를千年만의二疏의 길이요,<br />그들 따라서 가노니 이 世上 모든 티끌 버리었도다.<br />라고 읊었다.<br /><br />參判公은 이미 興陽縣의 風土가 아름다움을 아는 고로 九十歲인 아버지 進士公을 모시고 흥양현 南西 쪽에 居住를 한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居하면서도 임금을 걱정하는 精誠이 낮과 밤을 超越하여 삼삼히 생각에 잠겼고, 한편 樂土에서 父親을 奉養함에 물에서는 물고기를 陸地에서는 穀食과 菜蔬로 지극한 精誠을 다하였다.<br /><br />三年을 지난 戊午年에 (1438年世宗20年) 어버이 喪을 當하여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昏絶 하였다가 다시 깨어나 葬事를 지내는데 禮를 다하고 墓附近에 오두막을 치고 侍墓살이를 하면서 墓所 左右에 소나무 잣나무를 심어 놓았는데 어느 날 우연히 사슴 한 마리가 나무를 뿔로 받아 버리니 參判公이 소리 내어 구슬피 울면서 말 하기를 너희들이 비록 하찮은 微物일지라도 어찌 나의 哀絶한 이 마음을 몰라주는가 하고 歎息 하였더니 다음날 墓 옆에 그 사슴이 죽어 있었다. 이 같은 일은 公의 孝道에 感動이 되어 하늘이 시킨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삼년상을 마친 후에 그곳의 아름다운 山水에 醉하여 동산 북쪽에 느티나무를 심어 놓고 날마다 나무 밑에서 선비들과 詩를 지어 읊으면서 나무 그늘 亭子를 放遊亭이라 하였으니 벼슬을 헌신짝 버리듯 내 팽개치고 落鄕하여 悠悠自適 하였으니 그 느티나무 亭子가 참으로 任子를 만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br /><br />아아! 슬프고 슬프도다. 후인들의 訛傳으로 放亭子라고 부르고 있으며 그 분의 後孫들이 살고 있었음에도 壬亂으로 亭子는 燒失되고 그 亭子터엔 草木이 茂盛 했고 墓所마져 잃어버려서 어렵게 傳해지고 傳해진 것을 듣고 적어서 多幸히 誌文을 찾고 公의 遺稿를 收拾하여 參判公의 實跡을 記錄함이니라.<br /><br /><br />○ 自吟<br />I.  한가롭게 가을 물 바라보니 마음은 無事하고,<br />2. 싸늘한 亭子에서 혼자 花草를 심네.<br />3. 淺薄한 내 自身 어찌 言官을 말 하겠는가?<br />4. 오솔길에서 終日토록 거닐다가 혼자 쓸쓸이 돌아오네.<br /><br />○ 孟思誠이 參判公에게 준다.<br />1. 옛날 南域을 征伐할 때 우리 둘은 서울에서 지냈네.<br />2. 그대의 동쪽 寢房에서 정답게 오래 머물렀지.<br />3. 옛길을 서로 생각하며 몇 번이나 머리 돌렸는가?<br />4. 눈에 가득한 것은 청산인데 옛 고을 지나네.<br /><br />○ 自吟<br />1. 政治할 때 罪짓지 않았는데 귀양살이 어찌하리.<br />2. 鵬鳥는 南쪽에 집 짓는 것을 反復하는 구나.<br />3. 恭敬히 곧은 精誠으로 하니 하늘도 믿어 줄 것이고,<br />4. 힘 안드리고 詩를 지어 貪泉을 노래하네.<br /><br />○○ 李士謂가 參判公에게 준다.<br />1. 江州 司馬 平安하는 가요.<br />2. 먼 주안도에 살아 얻은 것이 없구나.<br />3. 花雨社에 이끌려 지내는 것을 말 하지 말라.<br />4. 靑雲은 옛을 의지한 이 그대로 길이구나.<br /><br />○ 自吟<br />1. 집안에 가을 불은 이끼긴 섬돌에 까지 이르고<br />2. 날마다 지팡이 짚고 갔다가 돌아 오지 않네.<br />3. 버드나무에 바람 일어도 潮水는 떨어지지 않고,<br />4. 갈대밭에 서리 내리니 기러기가 찾아 오는구나.<br /><br />○○ 趙溫이 參判公에게 준다.<br />1. 하늘에 갈나무 바람 불어 몸은 움추려 드는데,<br />2. 새벽 경치 보기 전에 창이 먼저 밝아 오네.<br />3. 도포 입은 귀공자 말 없이 시를 읊는데.<br />4. 나무하기 위해 가는 지아비 맨발로 걸어 가네.<br /><br />○ 自吟<br />1.  즐겁게 노는 것 말하지 말라, 좋은 경치 멀어 진다.<br />2. 東쪽으로 가는 한 길은 金華로 가는 길이다.<br />3. 시냇가 학이 노는 자리에는 항상 봄이 와 있고,<br />4. 洞口 사람들은 한가한데 해는 西山을 넘네.<br /><br />○○ 權近(陽村)이 參判公에게 준다.<br /><br />1. 朝廷에 있을 때는 나라 걱정 때문에 수염이 길게 자랐고<br />2. 班馬의 精神은 바닷가에 사는 鶴의 姿態였네.<br />3. 쓸쓸한 古屋에서 綠野를 바라 보면<br />4. 夕陽에 끝 없이 새들이 천천히 찾아드네.<br /><br />○○ 李敢이 參判公에게 준다.<br />1. 물결 가볍고 맑아서 가을 물과 같은데<br />2. 다정한 제자는 배난간을 기대고 있다.<br />3. 임금과 함께 할 때 當年의 일을 말하지 마라.<br />4. 한 마리의 모래 위의 갈매기가 다섯 임금보다 낫다.<br /><br />○○ 安瑗이 參判公에게 준다.<br />1. 슬프다 임금과 이별함이 그 생각 어떠하뇨?<br />2. 말안장에 앉아서 잔을 나누며 귀양 땅을 물어보네.<br />3. 聖代라서 임금의 은혜 한량 없는데<br />4. 잠시 離別이니 주저말고 떠나구려.<br /><br />○ 自吟<br />1. 푸른 하늘 서늘하고 차거워 기러기도 오지 않네.<br />2. 한가로이 江雲을 바라보매 생각은 한량이 없구나.<br />3. 옛 동산에서 들어보니 벼가 익었다고 하는데<br />4. 외로운 돛단 배는 농어잡고 돌아온다.<br /><br />○○ 李稷, 文景公이 參判公에게 준다.<br />1. 村다리 돌길에 눈은 처음 깨었다<br />2. 구름은 거치고 모래는 깨끗하여 말의 발이 빠르다.<br />3. 해가 서산에 지는데 천봉다리에 차츰 모습이 바꾸어지고<br />4. 임금을 생각하여 高城을 바라보네<br /><br />○ 自吟<br />1. 버들 잎 늘어진 城邊에는 늦은 愁心 일어나고<br />2. 봄 빛은 한량 없는데 홀로 슬픔을 접했다.<br />3. 높은데 올라가 맑은 시냇물 바라보면<br />4. 그 물결은 곁을 떠나 산아래로 흐른다.<br /><br />○○ 金宗直 점필제가 參判公에게 준다.<br />1. 先生 淸骨은 煙霞에 묻혔는데<br />2. 모든 일 다 외로이 혼자 존하니 누가 함께 슬퍼하랴?<br />3. 몇 바구리에 차 있는 詩書의 책은 좋은 자리 이루고<br />4. 한 수풀의 石荀이 이웃집까지 뻗쳐 가는구나.<br /><br />○ 自吟<br />1. 물은 흐르고 꽃은 떨어져 세월은 정 없이 가고<br />2. 봄 바람을 다 보내고 옛성을 지나가네.<br />3. 이로부터는 돌아가지 않으리 돌아와서 문득 얻어 지는 것을<br />4. 맑은 호수 煙氣나는 경치 누가 있어 다툴손가?<br /><br /><br />僉正公 事蹟<br />公의 姓은 朴이요 諱는 鮐壽요 同正公 奇의 後孫이다.<br />護軍公의 有華의 五代孫이고 參判公, 諱 由元의 孫이다.<br />사람됨이 俊傑하고 特異하였으며 天性이 慷慨하여 일찍 武科에 登第하여 訓練院을 守備하는 任務를 맡았다.<br />壬辰年에 休暇를 얻어 집에 왔었는데 倭敵이 出沒하여 곳곳에 불을 지르고 고을마다 倭敵들이 들끓게 되어 우리 고을에서도 軍隊를 모으게 되었으니 軍士들이 다투어 말하기를 嚴冬雪寒에 배는 고프고 이 어려운 亂離까지 만나게 되었으니 장차 이 일을 어찌 할 것인가 하고 痛哭하며 말들을 하니 公은 本縣 官吏에 通告하여 곧바로 倉庫에 貯臟해 놓은 무명 베 三百匹과 穀食數千石을 풀게 하여 軍士들을 배불리 먹이고 따뜻하게 입히게 했다. 그리고 곧 行裝을 갖추고 漢陽으로 向하고자 할 때 그의 婦人이 公의 옷소매 자락을 부여 잡고 울부짖으며 말하기를 倭兵이 이 같이 氣勢 등등한데 서울로 가시면 장차 우리 家率들은 어찌할 것이고 당신 또한 無事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니 公이 말하기를 나라의 祿을 먹으면서 君父의 어려움을 坐視한다면 어찌 臣下된 道理라고 하겠오 하면서 크게 叱責 하고는 말 안장을 재촉하고 上京하여 눈물을 흘리며 임금을 拜謁하였다. 宣祖임금이 말하기를 그대는 참으로 眞實된 어진 臣下로다 하면서 僉正 벼슬을 除授하였다. 公이 僉正으로 禁門을 지키는데 倭敵의 氣勢가 너무나 심한 고로 宣祖 임금의 수레를 護衛하여 新義州에 이르러 마침내 너무나 많은 苦生 끝에 氣盡脈盡하여 임금 宿所에서 卒하였다. 임금이 이 消息을 듣고 슬퍼 하면서 곧 바로 禮를 갖추어 祭祀를 嚴肅히 지내게 했다는 事實이 國史 및 元勳錄에 실려 傳해진다<br /><br /><br />贊成公의 事跡<br /><br />公의 諱는 弘世인데 一說로는 弘憲이요 同正公 諱 奇의 後孫이요 襄靖公 諱 齡의 九代孫이요 參判公 諱 由元의 五代孫이다. <br />사람됨이 俊秀하고 誠孝가 出天하며 篤學이 充實하고 兼하여 힘이 세고 智略이 뛰어 났다.<br />二十五 세에 고을에서 薦舉하여 健元陵(李太祖의 陵)의 參奉이 되었는데 壬辰年에 父母의 喪을 當하여 戰爭에는 參與치 못하였다.<br />三從祖인 諱 鮐壽가 軍糧米와 軍士들의 옷을 解決하고 宣祖 임금의 수레를 護衛하여 千辛萬苦 끝에 新義州에 到着하고 그곳에서 卒하였다.<br />癸巳(1593年) 九月 公은 京畿殿 參奉인 吳希吉, 任發英과 함께 李太祖의 眞像을 받들고 井邑 內藏山, 龍窟庵으로 옮기었다.<br />武士 金弘武와 山中人 黑默山尺등과 더불어 一百三十人이 協力하여 無事하게 兵難을 피해 平安道 新義州로 護送하였다.<br />三年喪을 마친 그 이듬해 義兵을 일으켜 崔大晟, 卞弘達과 더불어 同心 聚合하여 倭賊을 寶城 倭津에서 進擊하여 數百名을 斬首 하였다.<br /> 그 當時 倭賊이 順天에 駐屯하고 있었는데 左水使 李舜臣이 書信을 보내 말하기를 倭兵들이 倭橋에 모여 있는데 나는下流를 지키고 있고 바깥에서 陸軍의 擊破가 없어 倭賊이 山을 넘어갈 念慮가 있으니 義兵이 支援하여 水陸 兩面에서 攻擊하면 이 怨讐들을 滅할 수 있는 좋은 機會이니 깊이 생각해 보기 바라오 하였다.<br />公은 書信을 받아 본 卽時 順天에 行軍하여 左水使인 李舜臣 將軍과 暗暗裡에 內通하여 그 날 바로 攻擊하여 칼을 뽑아들고 左衝右突 督戰하여 陣地를 陷落 하였다. 이 戰鬪에서 倭賊을 數 百名 斬首한 큰 戰功을 세웠으나 公 또한 온 몸의 여러 곳이 칼에 찔려 失身 地境에 이르러 있었음으로 미처 몸을 피할 겨를이 없어 적의 兇彈을 가슴에 맞고 壯烈하게 殉節하니 이를 곁에서 지켜 본 左水使 李舜臣 將軍도 가슴을 치며 슬퍼하며 말하기를 오늘 이 戰鬪에서 우리가 비록 勝利는 하였으나 이 義롭고 忠直한 名將을 잃었으니 恨스러움이 끝이 없도다 하며 長 歎息하고 嚴肅히 哀悼를 표했다는 事實이 元勳錄에 실려 傳해지고 있다.<br />나라에서는 公에게 左贊成을 贈職하였다.<br /><br /><br />通文<br /><br />오른쪽 글 通諭한 일은 忠誠을 勸奬하고 節介를 褒贈하는 것은 朝廷의 誠스러운 制度요 어두운 것을 밝혀 내고 숨어 있는 것을 들쳐내는 것은 선비들의 公論이라 할 것이다.<br />우리 고을 放遊亭 諱 由元은 곧 昌原人이다.<br />일찍 文科에 及第하여 淸白하게 지내오다 世宗祖에 이르러 吏曹參判에 除授되어 熱誠으로 임금을 補佐하다가 權貴가 마음에 거슬려 벼슬을 辭讓하고 우리 고을 南陽 땅에 돌아와 放遊亭을 짓고 스스로 放遊亭의 뜻을 序하여 한가한 時間을 보내면서 詩를 지어 읊으며 이에 聖世의 숨어 사는百姓으로 自處하니 그 當時 어진 이들 이 詩를 지어 餞送 하였고 또 放遊亭을 唱和하는 詩를 지어 주기도 했으니 그 분의 學問과 文章을 여기서 가히 엿볼 수 있다 할 것이다. <br /><br />公의 六代孫 諱 弘世는 誠孝가 出天하고 智略이 남보다 뛰어나서 이 고을에서 薦舉하여 健元陵(李太祖) 參奉이 되었다. <br />壬辰亂에 太祖 眞像을 받들고 平安道 新義州에 護送하였다. 그리고 義兵을 이끌고 倭寇를 進擊하여 많은 勳勞를 세우기도 했다. <br />또 忠武公의 書日로 行軍하여 山을 넘어오는 倭軍을 막아 百名을 斬首하였다. <br />그러나 公 또한 몸에 수십 군데 創과 칼을 맞고 自由로운 舉動을 못하고 미처 피할 겨를이 없을 때 倭軍이 쏜 彈丸을 맞고 壯烈하게 殉節하였다.<br />이러한 事實이 朝廷에 알려져 左贊成의 벼슬을 贈하였으니 그 忠節의 늠름함이 天地를 감돌아 萬古의 歲月이 흘러도 또한 가히 公의 戰功은 後孫들에게 傳해 지리라. 그런데 아깝게도 두 公의 事蹟이 없어지고 한 世代의 公議가 막히어 이 훌륭한 분들께 지금까지 술한 잔 부어 祭祀 지내는 일이 없었으니 얼마나 靈魂들이 억울해 하겠습니까? <br />이에 우리들이 소리를 함께하여 通文하니 成均館에 계신 君子들께서는 一言의 重함을 주셔서 우리 선비들의 땅을 빛내어 주셨으면 多幸이라 하겠습니다.<br />오른 쪽과 같이 成均館에 恭敬히 通告합니다.<br /><br />戊子(西紀1828年純祖28年)日에 글을 보냄<br /><br />興陽 幼學<br />申明權 宋禹臣 柳  但 生進 丁斗玉<br />宋振玉 丁孝達 丁萬濟 宋采彬<br />丁孝達 宋陽吉 申震祿 朴禮彬<br />丁萬濟 柳煥斗 韓基延 申奎模<br />宋師一 李鎮璣 申衡祿 柳瑞浩 等<br /><br /><br />答通<br /><br />오른쪽 글 되돌려 보낸 일은 보내 온 通文 內容이 謹悉하다.<br />放遊亭 朴公은 벼슬을 버리고 한가히 지내면서 淸標가 洒落하고 學問과 文章이 이미 그 當時 有明한 人事들의 推許한 바였다.<br />六代孫 參奉公은 倭賊을 追擊하여 勳勞를 세우고 結局 殉節 하였으니 그 분의 知慧, 勇氣, 忠節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恭敬할 것이다. <br />이미 朝廷으로부터 褒賞하고 贈職하는 舉事가 있었으니 한 집안 내에 그 할아버지 그 孫子는 가이 짝을 이룬 아름다움이요 함께 어짐을 다한 것이다.<br />貴邑의 선비들이 그 분들을 尊慕하는 精誠은 마땅히 祭祀를 올렸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올리지 못한데 대해 議論이 있는 것은 또한 늦은 감이 있다 하겠다. <br />바라건데 어진 君子들께서 公議에 따라 임금의 命令을 기다린 것이 多幸이라 하겠다.<br />오른쪽 글을 興陽 儒林들에게 恭敬히 通告합니다.<br /><br />戊子十月(西紀1828年 純祖 28年) 太學(成均館)<br /><br />西班, 東班 掌儀<br /><br />通文<br /><br />오른쪽 글 通諭한 일은 大概 急流에 勇退하는 것은 君子의 어려운 일이요 自己 한 몸 죽어 仁을 이루는 것<br />은 聖人이 勸奬한 것이다.<br />이제 벼슬 좋은 職責에 있었고 聖世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버리기를 鴻毛와 같이 가볍게 하고 退歸하여 百世 이래로 그 精誠을 본받게 하고 그 아름다운 香氣를 온 고을에 가득하게 하였고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듣게 하여 義理와 名譽가 빛나고 빛났으며 그가 일찍 文科에 올라 淸白하게 지내 오다가 世宗朝에 이르러 吏曹參判으로 權貴에 몸담는 것이 편치않다고 생각되어 벼슬을 버리고 貴縣 南陽 땅에 돌아와 放遊亭을 짓고 스스로 放遊의 뜻을 敍述하여 閑暇한 時間을 보내면서 詩를 지어 읊고 노래하면서 聖世에 隱居하는 선비로 自處하니 그 當時 어진 선비들 詩의 餞別 韻이 있으며 放遊를 和答한 詩가 있은 즉 이를 보면 公의 學問과 文章이 어떠 했음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br /><br />公의 六代孫 諱 弘世는 至誠스러운 孝道가 出天하여 고을에서 薦舉하여 健元陵(李太祖)의 參奉이 되었다.<br />壬亂을 當하여 京畿殿 參奉 資格으로 太祖 眞相을 받들고 平安道 新義州까지 護送 하였다. <br />또 義兵을 일으켜 倭寇를 進擊하였으며 忠武公 書信을 接하고 卽日 行軍하여 산을 넘는 賊을 무찔러 數 百名을 斬首했다.<br />그러나 自身의 몸에 여러 군데 創傷을 입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여 結局 가슴에 敵彈을 맞아 殉節하였다. 이 事實이 朝廷에 알려져 임금으로부터 左贊成에 贈職 되었으니 그 忠節의 늠름함은 天地를 감돌것이고 萬古를 지나도 가히 參判公의 이름은 代代로 이어져 그 後孫들에게는 아름다움으로 길이 길이 남을 것이다. <br />그런데 아깝게도 그 事蹟이 없어지고 一世의 公議가 闡發 되지 못하여 祭祀를 지내는 舉事가 없었으니 그 억울함이 어떠 했겠는가?<br /><br />이에 通文하니 생각건데 어진君子들께서는 위로는 朝廷의 奘輿 함과 褒賞의 盛스러운 制度를 이어 받아 깊이 숨어 있는 事蹟을 發揮하여 祠堂을 세워 높이 받들어 모시 는 곳이 되기를 願하는 것은 多幸이라 하겠다.<br />오른쪽 글을 興陽 鄕校에 恭敬히 通告한다.<br /><br />戊子 五月 發文한 全州 幼學<br /><br />李元懋 宋奎明 柳性欽 宋命爀<br />李莢臣 林英柱 李光玉 趙時春<br />吳學一 白圭熙 柳弘基 蘇能述<br />宋南憲 等<br /><br /><br />通文<br /><br />오른쪽 通諭한 일은 지난 옛 佔俚齋(金宗直) 先生의 文章과 行誼는 그 當世의 師宗 이었는데 그 때 함께 사귀고 酬答하고 唱和한 者로 名節의 선비였다. <br />지난 龍蛇(壬辰) 變亂에 忠武公과 함께 乘船한 將帥로 露梁 앞바다에서 倭敵 擊退 時 그 幕下에 있는 參謀者들이 모두 勇猛한 忠義의 선비였다. <br />가만히 생각해 보니 貴邑 故 參判 朴公 諱 由元이 벼슬을 버리고 亭子를 지어 放遊 하면서 한가롭게 지내니 그 당시 이름있는 벼슬아치와 哲士들이 詩를 지어 酬唱하고 노래하며 즐기었으니 金宗直 先生께서 詩를 지어 주며 뜻을 깊이 새겨 주게 되어 아주 가까운 知己之間이 되게 되었으니 放亭公의 雅量과 淸節은 가이 여기에서 徵驗할 수 있다 하겠다.<br /><br />公의 六代孫 故 參奉 諱 弘世는壬亂을 當하여 義兵을 일으켜 凶賊을 막았다. <br />忠武公께서 적을 함께 무찌르자는 書信을 보내 오매 躊躇하지 않고 참전하여 많은 倭敵을 斬首하였으나 아깝게도 敵彈에 맞고 殉節하였다는 事實이 勳錄에 실려 傳한다. <br />이 일로 褒賞과 贈職이 되었으니 그 貞忠大節은 忠武公의 벗이 되는데 부끄려움이 없다하겠다. <br />아 아 ! 슬프도다 朴公의 祖父와 孫子, 兩世의 맑은 節槪, 偉大한 忠誠이 國史에 記錄되어 있으니 감히 누가 속일 수 있단 말인가?<br />金宗直, 李舜臣, 두 분의 推許 및 認定하는 바가 저 처럼 鄭重한 즉 君子들이 말해 놓은 普通의 비슷한 類와 같이 어찌 우리 들을 속일 수 있단 말인가 ?<br />이 같은 節介와 行實로 보아 너무나 마땅히 士林들이 이분들을 높이 받들어 崇尙해야 할 祠堂이 있어야 할텐데 아직까지 없으니 實로 慨嘆하고 慨嘆할 일이다. 그래도 多幸히 成均館의 答한 글과 全州 鄕校의 通章이 이제 모두 到達이 되었으니 가히 百世 以來로 公議가 善을 좋아하고 타고난 本性에서 良心이 우러나온 것을 볼 수 있다고 하겠다.</span></b></p><p><b><span style="font-size:12pt;"><br /></span></b></p><p><b><span style="font-size:12pt;">우리들은 또한 德을 崇尙하고 尊慕하는 誠心으로 우러러 이르노니 貴邑의 어진 선비들께서 朴公 兩世의 行誼와 實跡으로 法司에 通告하고 임금께 알리어서 하루 빨리 祭祀 지내고 推仰하는 盛典을 行하도록 하여 우리들 마음속에 깊이 잠겨있는 追慕의 情을 發揮하고 어두운 이 世上을 밝히는 횃불이 되게해야 할 것입니다.<br />오른쪽 글을 興陽 鄕校에 恭敬히 通告합니다.<br /><br />己丑(西紀 1829年, 純祖29年) 二月 光州 幼學<br />李鉉復 柳在洪 朴亮鉉 高時進<br />金致浩 金璋鉉 高時瑜 奇師顔<br />李箕疇 柳元錫 李圭哲 朴泰休<br />李惠疇 李東夔 朴孝鑑 等<br /><br />---------<br /><br />放遊亭集 (譯文 및 原文)<br />서기 2002년 5월 일 번역<br />서기 2002년 8월 일 인쇄<br />번역인 柳明善<br />편집인 朴昌烈<br />인쇄인 宋聖雨<br />인쇄처 : 過驛印刷·玉印堂<br />548-831고흥군 과역면 과역리 69-3<br />전화: 061-832-3693<br />E-mail songswu@hanmail.net<br /> </span></b></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Mon, 26 Nov 2018 20:46:2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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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교지] 정3품 통정대부 겸 선공감역 박찬중 및 숙부인 김씨</title>
	<link>https://parkroot.org/bbs/board.php?bo_table=park02_03&amp;wr_id=34</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2pt;">[교지] 정3품 </span></b><b><span style="font-size:12pt;"><b><span style="font-size:11pt;">통정대부(通政大夫)</span></b> 겸 </span></b><b><span style="font-size:12pt;"><b><span style="font-size:11pt;">선공감역(繕工監役)</span></b> 朴贊仲(字 應三, 號 淸軒,</span></b><b><span style="font-size:12pt;">1844년7월28일생) 및 숙부인 김씨 <br /></span></b></p><p><br />광서(光緖)18년은 청나라 연호로 고종29년 1892년 임진(壬辰) 조선 개국(開國) 501년에 내린 왕의 관직 명령서</p><p><br /></p><p>교지는 조선시대 국왕의 말씀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br />동시에 국왕이 관직 및 과거 합격 증서, 토지나 노비, 기타 특권을 내리는 문서 가운데 첫 행에 ‘교지’라고 적는 문서군을 통칭하는 용어로도 사용되었다. <br /></p><p><br /></p><p><img itemprop="image" content="http://parkroot.org/data/editor/1811/baa5bb4f736806100e76519229db9de8_1541163218_6164.pn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11/baa5bb4f736806100e76519229db9de8_1541163218_6164.png" alt="baa5bb4f736806100e76519229db9de8_1541163218_6164.png" class="img-tag "/></p><p>▲ 유정 박채운의 증조의 교지, 2018.10.25 현재 유품 소장 중<br /></p><p><br /></p><p><b><span style="font-size:11pt;">통정대부(通政大夫)?</span></b> <br />조선시대 정삼품(正三品) 동반(東班) 문관(文官)에게 주던 품계(品階)이다. <br /></p><p>정삼품의 상계(上階)로서 통훈대부(通訓大夫)보다 상위 자리로 당상관(堂上官)의 말미이다. <br />경국대전(經國大典) 이후로 문관에게만 주다가, 대전회통(大典會通)에서는 종친(宗親：임금의 4대손까지의 친족)과 의빈(儀賓：임금의 사위)에게도 이 품계를 주었다.<br /><br />해당 관직으로는 종친부(宗親府)‧돈녕부(敦寧府)의 도정(都正), 의빈부(儀賓府)의 부위(副尉)‧첨위(僉尉), 종친부‧상서원(尙瑞院)의 정(正), 비변사(備邊司)‧교서관(校書館)‧승문원(承文院)‧사옹원(司饔院)‧내의원(內醫院)‧상의원(尙衣院)‧전옥서(典獄署)의 부제조(副提調), 육조(六曹)의 참의(參議), 병조(兵曹)의 참지(參知), 규장각(奎章閣)의 직제학(直提學), 승정원(承政院)의 도승지(都承旨)‧좌승지(左承旨)‧우승지(右承旨)‧좌부승지(左副承旨)‧우부승지(右副承旨)‧동부승지(同副承旨), 장례원(掌隷院)의 판결사(判決事), 사간원(司諫院)의 대사간(大司諫), 경연청(經筵廳)의 참찬관(參贊官), 홍문관(弘文館)의 부제학(副提學),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찬선(贊善), 세손강서원(世孫講書院)의 좌유선(左諭善)‧우유선(右諭善), 성균관(成均館)의 대사성(大司成), 춘추관(春秋館)의 수찬관(修撰官), 등이 있었다.<br /><br />부제조, 직제학, 참찬관, 수찬관, 상서원정은 모두 예겸(例兼)하였다. 처(妻)에게는 숙부인(淑夫人)의 작호(爵號)가 주어졌다.</p><p><br /></p><p><b><span style="font-size:11pt;">선공감(繕工監)?</span></b><br />조선 개국 이후 1392년 7월에 처음 선공감을 설치해 토목·영선·시탄(柴炭)을 지응(支應)하는 일 등을 맡았다. <br />관원으로 판사(判事, 정3품) 2인, 감(종3품) 2인, 소감(종4품) 2인, 승(종5품) 1인, 겸승(兼丞, 종5품) 1인, 주부(主簿, 종6품) 2인, 겸주부(종6품) 1인, 직장(直長, 종7품) 2인, 녹사(錄事, 정8품) 2인을 두었다.<br /><br />1414년(태종 14) 1월에 감을 정(正)으로, 소감을 부정(副正)으로, 승을 판관(判官)으로 개정했고, 1460년(세조 6) 5월에 부정 1인과 직장 1인을 감원하였다. 1466년 1월에 관제를 크게 개정해 판사를 정으로, 정을 부정으로, 부정을 첨정(僉正)으로, 부녹사를 부봉사(副奉事)로 개칭하였다. 또 녹사 1인과 부녹사 1인을 폐지하고 참봉 1인을 증치해『경국대전』에 성문화하였다.<br /><br />『경국대전』에는 토목과 선공을 맡는다고 되어 있고, 제조(提調) 2인을 두는데, 판관(判官) 이상 1인은 장기 복무인 구임(久任)으로 한다고 하였다. <br />관원으로 정(정3품) 1인, 부정(종3품) 1인, 첨정(종4품) 1인, 판관(종5품) 1인, 주부(종6품) 1인, 직장(종7품) 1인, 봉사(·종8품) 1인, 부봉사(정9품) 1인, 참봉(종9품) 1인이 있었다.<br />뒤에『속대전』에서 정·첨정·판사·직장·참봉을 감원하고 봉사(奉事, 종8품) 1인, 감역관(監役官, 종9품) 3인, 가감역관(假監役官, 종9품) 3인을 증치하였다.<br /></p><p><br /></p><p><br style="clear:both;" /> </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Fri, 02 Nov 2018 22:48:0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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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창원박씨의 事蹟 등을 기록한 박유원의 방유정집『 放遊亭集 』1冊 單</title>
	<link>https://parkroot.org/bbs/board.php?bo_table=park02_03&amp;wr_id=33</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4pt;">창원박씨의 事蹟 등을 기록한 방유정집『 放遊亭集 』1冊 單</span></b></p><p><br /></p><p><span style="font-size:12pt;">이 책은 純祖31年 西紀1831年에 발간 된 방유정집으로, 조선 태종 때 문과에 급제, 헌납, 예조참의 등을 지내고, 세종 때 이조참판에 이르렀으나 당시의 집권자들과 뜻이 맞지 않아 사퇴하고 고향(현재 고흥군 대서면 남양리)으로 돌아와서 호를 방유정이라 짓고 스스로 &lt;放遊亭 序&gt;를 썼으며 그 풀이대로 산수를 즐기면서 여생을 보낸 放遊亭 朴由元(1388년~1450)의 淸節之稟을 그린 事蹟과 정유재란(丁酉再亂) 당시에 금갑도(金甲島, 현재 진도)를 수비하면서 이순신(李舜臣)을 따라 왜적을 토벌하였고, 보성(寶城) 예교(曳橋) 전투에서 전공을 많이 세웠으며, 順天 왜교(倭橋) 전투에서 전사한 찬성공 박홍세(贊成公 朴弘世)의 충절지품(忠節之稟)을 그린 事蹟 등이 수록되어 있다.</span> <br /></p><p><a href="https://parkroot.org/bbs/view_image.php?fn=http%3A%2F%2Fparkroot.org%2Fdata%2Feditor%2F1811%2Fa32b722d302b3e81244a31e764cd36c7_1543223380_1442.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parkroot.org/data/editor/1811/a32b722d302b3e81244a31e764cd36c7_1543223380_1442.jp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11/a32b722d302b3e81244a31e764cd36c7_1543223380_1442.jpg" alt="a32b722d302b3e81244a31e764cd36c7_1543223380_1442.jpg" class="img-tag "/></a><br style="clear:both;" /> </p><p><span style="font-size:12pt;">末尾  4통의 향교(鄕校) 통문&lt;通文&gt;에서는 두 분의 청절(淸節)과 충절지품(忠節之稟)을 유가(儒家)에서 본 받도록 장보(獎褒)하는 내용이다. </span><br /><span style="font-size:12pt;">&lt;放遊亭 韻&gt;에서는 방유정 박유원과 교류가 있었던 南在, 趙俊, 孟思誠, 陽村 權近, 佔畢齋 金宗直 등과 주고 받았던 詩가 수록되어 있다.</span><br /><span style="font-size:12pt;">1831년 지은 &lt;放遊亭記&gt;와 &lt;參判公 放遊亭 朴由元 事蹟&gt;, &lt;放遊亭 朴由元 自序&gt;, &lt;放遊亭 韻&gt;, &lt;僉正公 朴駘壽 事蹟&gt;, &lt;贊成公 朴弘世 事蹟&gt;, 4통의 &lt;通文&gt;의 順으로 내용을 이룬다. 잘 보이지 않는 것으로 희소 가치가 있다.</span> <br /></p><p><a href="https://parkroot.org/bbs/view_image.php?fn=http%3A%2F%2Fparkroot.org%2Fdata%2Feditor%2F1811%2Fa32b722d302b3e81244a31e764cd36c7_1543223404_7896.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11/a32b722d302b3e81244a31e764cd36c7_1543223404_7896.jpg" alt="a32b722d302b3e81244a31e764cd36c7_1543223404_7896.jpg" class="img-tag "/></a><br style="clear:both;" /><a href="https://parkroot.org/bbs/view_image.php?fn=http%3A%2F%2Fparkroot.org%2Fdata%2Feditor%2F1811%2Fa32b722d302b3e81244a31e764cd36c7_1543223404_9317.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11/a32b722d302b3e81244a31e764cd36c7_1543223404_9317.jpg" alt="a32b722d302b3e81244a31e764cd36c7_1543223404_9317.jpg" class="img-tag "/></a><br style="clear:both;" /><a href="https://parkroot.org/bbs/view_image.php?fn=http%3A%2F%2Fparkroot.org%2Fdata%2Feditor%2F1811%2Fa32b722d302b3e81244a31e764cd36c7_1543223405_0279.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11/a32b722d302b3e81244a31e764cd36c7_1543223405_0279.jpg" alt="a32b722d302b3e81244a31e764cd36c7_1543223405_0279.jpg" class="img-tag "/></a><br style="clear:both;" /><a href="https://parkroot.org/bbs/view_image.php?fn=http%3A%2F%2Fparkroot.org%2Fdata%2Feditor%2F1811%2Fa32b722d302b3e81244a31e764cd36c7_1543223405_2406.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11/a32b722d302b3e81244a31e764cd36c7_1543223405_2406.jpg" alt="a32b722d302b3e81244a31e764cd36c7_1543223405_2406.jpg" class="img-tag "/></a><br style="clear:both;" /><a href="https://parkroot.org/bbs/view_image.php?fn=http%3A%2F%2Fparkroot.org%2Fdata%2Feditor%2F1811%2Fa32b722d302b3e81244a31e764cd36c7_1543225111_6027.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11/a32b722d302b3e81244a31e764cd36c7_1543225111_6027.jpg" alt="a32b722d302b3e81244a31e764cd36c7_1543225111_6027.jpg" class="img-tag "/></a><br style="clear:both;" /> </p><p><span style="font-size:12pt;">[참고] 昌原 朴氏 : 중조 박령(朴齡)의 네 손자 중에 막내 손자인 朴東智가 아들 3형제 박유원(朴由元)·박유정(朴由貞)·박유창(朴由昌)을 데리고 지금의 고흥의 속면인 흥양으로 낙향 하면서 관적지인 창원보다 전라남도 고흥 일대에 집단을 이루고 살았는데, 그래서 고흥 일대의 창원박씨 후손들은 그를 입향 파조로 삼고 있다. <br /><br />가장 오래된 족보인 안동권씨성화보(1476년) 118쪽에는 당시 관직이 오위(五衛)의 정5품(正五品)인 사직(司直)으로 나타나는데 그 직위는 부호군(副護軍)의 하위이고, 부사직(副司直)의 상위직으로 모두 14인이며 오원(五員)이라는 간부사관층(幹部士官層)의 상위를 이루면서 도성 각문(各門) 가운데 일부의 파수 책임을 맡는 등 군사적으로 중요한 책무를 담당 하였다.</span><br /><span style="font-size:12pt;"> </span><br /><span style="font-size:12pt;"> </span></p><p><span style="font-size:12pt;">[참고] 박홍세(朴弘世) - 1550∼1598년(선조 31). <br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여회(汝恢) 현감 박만근(縣監 朴萬根)의 손자이다. <br />선조(宣祖) 대 정유재란(丁酉再亂) 당시에 금갑도(金甲島,현재 진도)를 수비 하면서 李舜臣을 따라 왜적으로 토벌하였고, 寶城 예교(曳橋) 전투에서 전공을 많이 세웠다. 順天 倭橋 전투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 左贊成으로 추증 되었고, 宣武공신의 녹훈을 받았다. 선조 37년(1604년)에 이루어진 宣武功臣은 총 18명으로, 이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1604년에 선무공신에 들지 못한 사람들 중 이듬 해인 1605년(선조 38) 9,060명을 녹훈 하였던 선무원종공신녹권(宣武原從功臣錄券)에 포함 되어있다.</span> <br /> </p><p><br /></p><p><br /></p><p><br /></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Mon, 26 Nov 2018 18:10:18 +0900</dc:date>
	</item>
	<item>
	<title>전사당(全祀堂)</title>
	<link>https://parkroot.org/bbs/board.php?bo_table=park02_03&amp;wr_id=32</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1pt;">전사당(全祀堂)</span></b> </p><p><br /></p><p><img itemprop="image" content="http://parkroot.org/data/editor/1809/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9660_0549.PN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9660_0549.PNG" alt="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9660_0549.PNG" class="img-tag "/><br style="clear:both;" /> </p><p><br /></p><p>※ 구글 지도 좌표 : <a href="https://drive.google.com/open?id=1wfCoFnYbGC3zVi4rqHp-1oL4_5Qf72kj&amp;usp=sharing"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 noopener">34.78381, 127.2698<im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60720_7466.png" alt="클릭하세요" class="img-tag img-tag"/></a></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04 Sep 2018 11:56:36 +0900</dc:date>
	</item>
	<item>
	<title>경모재(景慕齋)</title>
	<link>https://parkroot.org/bbs/board.php?bo_table=park02_03&amp;wr_id=31</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1pt;">경모재(景慕齋)</span></b> </p><p><br /></p><p><img itemprop="image" content="http://parkroot.org/data/editor/1809/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9154_8599.PN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9154_8599.PNG" alt="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9154_8599.PNG" class="img-tag "/><br style="clear:both;" /> </p><p>※ 구글 지도 좌표 : <a href="https://drive.google.com/open?id=1wfCoFnYbGC3zVi4rqHp-1oL4_5Qf72kj&amp;usp=sharing"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 noopener">34.78381, 127.2698<im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60720_7466.png" alt="클릭하세요" class="img-tag img-tag"/></a></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04 Sep 2018 11:49:26 +0900</dc:date>
	</item>
	<item>
	<title>성모재(誠慕齋)</title>
	<link>https://parkroot.org/bbs/board.php?bo_table=park02_03&amp;wr_id=30</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1pt;">성모재(誠慕齋)</span></b></p><p><br /></p><p><br /></p><p><img itemprop="image" content="http://parkroot.org/data/editor/1809/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8883_0989.PN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8883_0989.PNG" alt="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8883_0989.PNG" class="img-tag "/><br style="clear:both;" /> </p><p><br /></p><p>※ 구글 지도 좌표 : <a href="https://drive.google.com/open?id=1wfCoFnYbGC3zVi4rqHp-1oL4_5Qf72kj&amp;usp=sharing"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 noopener">34.77257, 127.31581<im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60720_7466.png" alt="클릭하세요" class="img-tag img-tag"/></a></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04 Sep 2018 11:45:07 +0900</dc:date>
	</item>
	<item>
	<title>숭모사(崇慕祠)</title>
	<link>https://parkroot.org/bbs/board.php?bo_table=park02_03&amp;wr_id=29</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1pt;">숭모사(崇慕祠)</span></b> </p><p><br /></p><p><img itemprop="image" content="http://parkroot.org/data/editor/1809/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8610_0659.PN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8610_0659.PNG" alt="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8610_0659.PNG" class="img-tag "/><br style="clear:both;" /> </p><p><br /></p><p>※ 구글 지도 좌표 : <a href="https://drive.google.com/open?id=1wfCoFnYbGC3zVi4rqHp-1oL4_5Qf72kj&amp;usp=sharing"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 noopener">34.77619, 127.34175<im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60720_7466.png" alt="클릭하세요" class="img-tag "/></a></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04 Sep 2018 11:40:39 +0900</dc:date>
	</item>
	<item>
	<title>성균진사 박동지(朴東智) 입향조 묘</title>
	<link>https://parkroot.org/bbs/board.php?bo_table=park02_03&amp;wr_id=28</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1pt;">성균진사 박동지(朴東智) 입향조 묘</span></b></p><p><br /></p><p><a href="https://parkroot.org/bbs/view_image.php?fn=http%3A%2F%2Fparkroot.org%2Fdata%2Feditor%2F1809%2F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8407_1069.PN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parkroot.org/data/editor/1809/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8407_1069.PN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8407_1069.PNG" alt="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8407_1069.PNG" class="img-tag "/></a></p><p><br /></p><p>※ 구글 지도 좌표 : <a href="https://drive.google.com/open?id=1wfCoFnYbGC3zVi4rqHp-1oL4_5Qf72kj&amp;usp=sharing"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 noopener">34.774739, 127.300427<im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60720_7466.png" alt="클릭하세요" class="img-tag "/></a></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04 Sep 2018 11:34:13 +0900</dc:date>
	</item>
	<item>
	<title>대사간(大司諫) 죽와공(竹窩公) 박사문(朴師文) 실적비(實蹟碑)</title>
	<link>https://parkroot.org/bbs/board.php?bo_table=park02_03&amp;wr_id=27</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1pt;">대사간(大司諫) 죽와공(竹窩公) 박사문(朴師文) 실적비(實蹟碑)</span></b> </p><p><br /></p><p><img itemprop="image" content="http://parkroot.org/data/editor/1809/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7843_4661.PN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7843_4661.PNG" alt="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7843_4661.PNG" class="img-tag "/><br style="clear:both;" /> </p><p><br /></p><p>※ 구글 지도 좌표 : <a href="https://drive.google.com/open?id=1wfCoFnYbGC3zVi4rqHp-1oL4_5Qf72kj&amp;usp=sharing"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 noopener">34.77257, 127.25587<im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60720_7466.png" alt="클릭하세요" class="img-tag img-tag"/></a></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04 Sep 2018 11:28:29 +0900</dc:date>
	</item>
	<item>
	<title>훈련원판관(훈련원판관) 박응오(朴應鰲) 묘</title>
	<link>https://parkroot.org/bbs/board.php?bo_table=park02_03&amp;wr_id=26</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1pt;">훈련원판관(훈련원판관) 박응오(朴應鰲) 묘</span></b> </p><p><br /></p><p><img itemprop="image" content="http://parkroot.org/data/editor/1809/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7549_4007.PN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7549_4007.PNG" alt="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7549_4007.PNG" class="img-tag "/><br style="clear:both;" /> </p><p><br /></p><p>※ 구글 지도 좌표 : <a href="https://drive.google.com/open?id=1wfCoFnYbGC3zVi4rqHp-1oL4_5Qf72kj&amp;usp=sharing"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 noopener">34.77257, 127.25587<im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60720_7466.png" alt="클릭하세요" class="img-tag img-tag"/></a></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04 Sep 2018 11:23:15 +0900</dc:date>
	</item>
	<item>
	<title>과재공(果齋公) 박유창(朴由昌) 묘</title>
	<link>https://parkroot.org/bbs/board.php?bo_table=park02_03&amp;wr_id=25</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1pt;">과재공(果齋公) 박유창(朴由昌) 묘</span></b> </p><p><br /></p><p><img itemprop="image" content="http://parkroot.org/data/editor/1809/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7208_6657.PN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7208_6657.PNG" alt="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7208_6657.PNG" class="img-tag "/><br style="clear:both;" /> </p><p><br /></p><p>※ 구글 지도 좌표 : <a href="https://drive.google.com/open?id=1wfCoFnYbGC3zVi4rqHp-1oL4_5Qf72kj&amp;usp=sharing"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 noopener">34.82923, 127.2627<im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60720_7466.png" alt="클릭하세요" class="img-tag img-tag"/></a></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04 Sep 2018 11:18:11 +0900</dc:date>
	</item>
	<item>
	<title>참의공(參議公) 박응달(朴應達) 묘</title>
	<link>https://parkroot.org/bbs/board.php?bo_table=park02_03&amp;wr_id=24</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1pt;">참의공(參議公) 박응달(朴應達) 묘</span></b> </p><p><br /></p><p><img itemprop="image" content="http://parkroot.org/data/editor/1809/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3142_795.PN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3142_795.PNG" alt="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3142_795.PNG" class="img-tag "/><br style="clear:both;" /> </p><p>※ 구글 지도 좌표 : <a href="https://drive.google.com/open?id=1wfCoFnYbGC3zVi4rqHp-1oL4_5Qf72kj&amp;usp=sharing"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 noopener">34.7748, 127.26552 <im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60720_7466.png" alt="클릭하세요" class="img-tag img-tag"/></a></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04 Sep 2018 10:10:07 +0900</dc:date>
	</item>
	<item>
	<title>판관공(判官公) 박대련(朴大連) 묘</title>
	<link>https://parkroot.org/bbs/board.php?bo_table=park02_03&amp;wr_id=23</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1pt;">판관공(判官公) 박대련(朴大連) 묘</span></b> </p><p><br /></p><p><img itemprop="image" content="http://parkroot.org/data/editor/1809/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2774_5766.PN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2774_5766.PNG" alt="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2774_5766.PNG" class="img-tag "/><br style="clear:both;" /> </p><p><br /></p><p>※ 구글 지도 좌표 : <a href="https://drive.google.com/open?id=1wfCoFnYbGC3zVi4rqHp-1oL4_5Qf72kj&amp;usp=sharing"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 noopener">34.75035, 127.26813 <im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60720_7466.png" alt="클릭하세요" class="img-tag "/></a></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04 Sep 2018 10:03:37 +0900</dc:date>
	</item>
	<item>
	<title>참의공(參議公) 박세인(朴世仁) 묘소</title>
	<link>https://parkroot.org/bbs/board.php?bo_table=park02_03&amp;wr_id=22</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1pt;">참의공(參議公) 박세인(朴世仁) 묘소</span></b>
</p><p><br /></p><p><img itemprop="image" content="http://parkroot.org/data/editor/1809/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2084_7383.PN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2084_7383.PNG" alt="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2084_7383.PNG" class="img-tag "/><br style="clear:both;" /> </p><p><br /></p><p>※ 구글 지도 좌표 : <a href="https://drive.google.com/open?id=1wfCoFnYbGC3zVi4rqHp-1oL4_5Qf72kj&amp;usp=sharing"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 noopener">34.78381, 127.2698 <im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60720_7466.png" alt="클릭하세요" class="img-tag img-tag"/></a></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04 Sep 2018 09:58:45 +0900</dc:date>
	</item>
	<item>
	<title>무안현감(務安縣監) 박만근(朴萬根) 묘소</title>
	<link>https://parkroot.org/bbs/board.php?bo_table=park02_03&amp;wr_id=21</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1pt;">무안현감(務安縣監) 박만근(朴萬根) 묘소</span></b> </p><p><br /></p><p><img itemprop="image" content="http://parkroot.org/data/editor/1809/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0106_9154.PN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0106_9154.PNG" alt="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20106_9154.PNG" class="img-tag "/><br style="clear:both;" /> </p><p><br /></p><p> ※ 구글 지도 좌표 : <a href="https://drive.google.com/open?id=1wfCoFnYbGC3zVi4rqHp-1oL4_5Qf72kj&amp;usp=sharing"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 noopener">34.76823, 127.31799 <im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60720_7466.png" alt="클릭하세요" class="img-tag img-tag"/></a> </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04 Sep 2018 09:23:37 +0900</dc:date>
	</item>
	<item>
	<title>방유정 박유원 이조참판 기적비(紀蹟碑)</title>
	<link>https://parkroot.org/bbs/board.php?bo_table=park02_03&amp;wr_id=20</link>
	<description><![CDATA[<p><span style="font-size:11pt;"><b>방유정 박유원(朴由元)선생 이조참판 기적비(</b></span><span style="font-size:14.6667px;"><b>紀蹟碑</b></span><span style="font-size:11pt;"><b>)</b></span></p><p><br /></p><p>

<img itemprop="image" content="http://parkroot.org/data/editor/1809/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19623_1946.PN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19623_1946.PNG" alt="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19623_1946.PNG" class="img-tag "/><br style="clear:both;" /> </p><p><br /></p><p>

※ 구글 지도 좌표 : <a href="https://drive.google.com/open?id=1wfCoFnYbGC3zVi4rqHp-1oL4_5Qf72kj&amp;usp=sharing"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 noopener">34.76656, 127.3088 <im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60720_7466.png" alt="클릭하세요" class="img-tag img-tag"/></a>

</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04 Sep 2018 09:13:03 +0900</dc:date>
	</item>
	<item>
	<title>방유정(放遊亭) 박유원(朴由元)선생 묘(墓)</title>
	<link>https://parkroot.org/bbs/board.php?bo_table=park02_03&amp;wr_id=19</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1pt;">방유정(放遊亭) 박유원(朴由元) 묘(墓) </span></b> </p><p><br /></p><p><img itemprop="image" content="http://parkroot.org/data/editor/1809/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62886_4142.PN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62886_4142.PNG" alt="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62886_4142.PNG" class="img-tag "/><br style="clear:both;" /> </p><p><br /></p><p>

※ 구글 지도 좌표 : <a href="https://drive.google.com/open?id=1wfCoFnYbGC3zVi4rqHp-1oL4_5Qf72kj&amp;usp=sharing"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 noopener">34.7542, 127.32198 <im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60720_7466.png" alt="클릭하세요" class="img-tag img-tag"/></a>
</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Mon, 03 Sep 2018 17:26:24 +0900</dc:date>
	</item>
	<item>
	<title>방유정(放遊亭) 박유원선생 신도비(神道碑)</title>
	<link>https://parkroot.org/bbs/board.php?bo_table=park02_03&amp;wr_id=18</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1pt;">방유정(放遊亭) 박유원선생 신도비(神道碑)</span></b> </p><p>※ 신도비란?<br /> 왕이나 고관의 무덤 앞 또는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사적(事蹟)을 기리는 비석</p><p><br /></p><p><img itemprop="image" content="http://parkroot.org/data/editor/1809/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61894_5619.PN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61894_5619.PNG" alt="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61894_5619.PNG" class="img-tag "/><br style="clear:both;" /> </p><p><br /></p><p>

※ 구글 지도 좌표 : <a href="https://drive.google.com/open?id=1wfCoFnYbGC3zVi4rqHp-1oL4_5Qf72kj&amp;usp=sharing"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 noopener">34.76758, 127.31586 <im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60720_7466.png" alt="클릭하세요" class="img-tag img-tag"/></a>

</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Mon, 03 Sep 2018 17:14:27 +0900</dc:date>
	</item>
	<item>
	<title>염수재(念修齋)</title>
	<link>https://parkroot.org/bbs/board.php?bo_table=park02_03&amp;wr_id=17</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1pt;">염수재(念修齋) : 입향조 휘 동지 묘역을 수호관리 하고 종회 종무소 겸 문중의 각종 회의 장소 <br /></span></b></p><p><br /></p><p><a href="https://parkroot.org/bbs/view_image.php?fn=http%3A%2F%2Fparkroot.org%2Fdata%2Feditor%2F1809%2F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60858_7137.PN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parkroot.org/data/editor/1809/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60858_7137.PN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60858_7137.PNG" alt="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60858_7137.PNG" class="img-tag "/></a><br style="clear:both;" /> </p><p><br /></p><p><br /></p><p><br /></p><p>



※ 구글 지도 좌표 : <a href="https://drive.google.com/open?id=1wfCoFnYbGC3zVi4rqHp-1oL4_5Qf72kj&amp;usp=sharing"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 noopener">34.77499, 127.29909<im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60720_7466.png" alt="클릭하세요" class="img-tag img-tag"/></a>
</p><p><br /></p><p>※ <a href="https://goo.gl/maps/4euxpY5kb5KTNFvW8"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 noopener">염수재 구글지도 보기</a> </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Mon, 03 Sep 2018 17:02:52 +0900</dc:date>
	</item>
	<item>
	<title>성균진사 동지(東智) 입향조 유허비(遺墟碑)</title>
	<link>https://parkroot.org/bbs/board.php?bo_table=park02_03&amp;wr_id=16</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1pt;">성균진사 휘 동지(東智) 입향조 유허비(遺墟碑)</span></b></p><p>※ 유허비(遺墟碑) : 선인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에 그들을 기리기 위하여 또는 나라 위(爲)해 몸바친 이의 업적(業績)을 기리기 위(爲)하여 그 유허에 세운 비(碑)<br /></p><p><img itemprop="image" content="http://parkroot.org/data/editor/1809/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55314_9737.PN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55314_9737.PNG" alt="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55314_9737.PNG" class="img-tag "/></p><br /><p><br /></p>


※ 구글 지도 좌표 : <a href="https://drive.google.com/open?id=1wfCoFnYbGC3zVi4rqHp-1oL4_5Qf72kj&amp;usp=sharing"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 noopener">34.76714, 127.3069<im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60720_7466.png" alt="클릭하세요" class="img-tag "/></a>]]></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Mon, 03 Sep 2018 15:26:00 +0900</dc:date>
	</item>
	<item>
	<title>모아재(慕雅齋,상례문), 밀성박씨 칠현유적비, 경현사(景賢祠) , 정덕사(숭앙문)</title>
	<link>https://parkroot.org/bbs/board.php?bo_table=park02_03&amp;wr_id=15</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1pt;">■ 밀성박씨 7현 密城(密陽)朴氏 七</span></b><span style="font-size:14.6667px;"><b>顯</b></span><br /><br />세거(世居)하는 밀성박씨 일문(一門)의 12중조의 한 분인 선조 삼사좌윤공(先祖 三司左尹公) 휘 을재(諱 乙材)를 주벽(主壁)으로 <br />휘 원의(元義), <br />휘 린우(麟祐),<br />휘 위(威),<br />휘 천(蕆), <br />휘 수(粹), <br />휘 령(齡)을 칠현 중조(七顯 中祖)로 경내의 경현사(景賢祠)에 배위를 봉안하고 추모향재(追慕享齋) 하는 재숙소(齋宿所)로 삼사좌윤공의 이십사세 후손 귀흠(貴欽), 창규(昌圭) 등의 주간(주간)으로 1995년에 후손의 성력창건(誠力創建)한 재실이다. <br /><br />삼사좌윤공의 <b>휘 을재</b>는 호가 아천(雅川)이며 밀성대군 휘 언침의 칠세손으로 고려 고종시대에 문과급제 밀직부사와 삼사좌윤공이다. <br />휘 <b>원의공</b>은 광록대부(光祿大夫)와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로 태안부원군(泰安府院君, 태안박씨 파조)에 봉(奉)하였고 시호는 혜문공(惠文公)이며, <br />휘 <b>인우공</b>의 호는 초암(草菴)이며 고려조인(高麗朝人)으로 전법판서(典法判書)이며 조선조에는 증 병조판서이고 <br />휘 <b>위공</b>은 공양왕 원년(恭讓王 元年)1389년에 판혜혜부사로 제수(除授)받고 일등공신이며 경상도 도원수(都元帥)로서 대마도를 정벌하여 공적을 높였고 고려충의백(高麗忠義伯) 정국군을 봉하였으며, <br /><b>휘 천공</b>은 정국군 휘 위의 동생(弟)로서 대광보국 숭록대부(大匡輔國 崇祿大夫)와 영의정에 이르러 구산군(龜山君)에 봉 하였고 <br />휘 <b>수공</b>은 조선 태종 시대에 청백이로 이조정랑(吏曹正朗)이며 증 가선대부(嘉善大夫)이며,  <br />휘 <b>령공</b>은 공민왕조 사람으로 창원도호부사(昌原都護府使)로 창원군(昌原君)에 봉 하였고 조선조에는 증 정헌대부(正憲大夫)와 이조판서이며 시호는 양정공이다.</p><p>모아재 창건의 제족(諸族) 후손 등이 순모협동(詢謨協同)으로 지성모금한 헌성록(獻誠錄)의 사각비가 경내에 있다.</p><p><br /></p><p><br /></p><p><a href="https://parkroot.org/bbs/view_image.php?fn=http%3A%2F%2Fparkroot.org%2Fdata%2Feditor%2F1808%2F0accb4fb3a86fecd0df580ec4a74c4cc_1535616662_2853.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parkroot.org/data/editor/1808/0accb4fb3a86fecd0df580ec4a74c4cc_1535616662_2853.JPG" src="https://parkroot.org/data/editor/1808/thumb-0accb4fb3a86fecd0df580ec4a74c4cc_1535616662_2853_800x453.jpg" alt="0accb4fb3a86fecd0df580ec4a74c4cc_1535616662_2853.JPG" class="img-tag "/></a><br style="clear:both;" /> ▲ 위 고법리 위성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하여 볼 수 있습니다.<br /></p><p><a href="https://parkroot.org/bbs/view_image.php?fn=http%3A%2F%2Fparkroot.org%2Fdata%2Feditor%2F1808%2F0accb4fb3a86fecd0df580ec4a74c4cc_1535605748_1047.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s://parkroot.org/data/editor/1808/thumb-0accb4fb3a86fecd0df580ec4a74c4cc_1535605748_1047_800x533.jpg" alt="0accb4fb3a86fecd0df580ec4a74c4cc_1535605748_1047.jpg" class="img-tag "/></a><br style="clear:both;" /><a href="https://parkroot.org/bbs/view_image.php?fn=http%3A%2F%2Fparkroot.org%2Fdata%2Feditor%2F1808%2F0accb4fb3a86fecd0df580ec4a74c4cc_1535605747_9083.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s://parkroot.org/data/editor/1808/thumb-0accb4fb3a86fecd0df580ec4a74c4cc_1535605747_9083_800x533.jpg" alt="0accb4fb3a86fecd0df580ec4a74c4cc_1535605747_9083.jpg" class="img-tag "/></a><br style="clear:both;" /><a href="https://parkroot.org/bbs/view_image.php?fn=http%3A%2F%2Fparkroot.org%2Fdata%2Feditor%2F1808%2F0accb4fb3a86fecd0df580ec4a74c4cc_1535605748_0072.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s://parkroot.org/data/editor/1808/thumb-0accb4fb3a86fecd0df580ec4a74c4cc_1535605748_0072_800x533.jpg" alt="0accb4fb3a86fecd0df580ec4a74c4cc_1535605748_0072.jpg" class="img-tag "/></a><br style="clear:both;" /><br /><b><span style="font-size:11pt;">■ 경현사(景賢祠) </span></b><br /><br />경현사는 밀양시 청도면 고법리 팔방마을 명방촌의 모아재 경내에 있으며, 세거하는 밀성박씨 일문이 서기1995년(을해)에 후손의 합심성력으로 창건하였으며, 선조 삼사좌윤공의 諱 乙材(을재)를 主壁으로 諱 元義(원의) 諱 麟祐(린우) 諱 威(위) 諱 (천) 諱 粹(수) 諱 齡(령)의 칠현 중조의 位牌(위패)를 봉안하고 追慕享齋하는 祠堂이다. <br />삼사좌윤공 諱 乙材는 우리 始祖王 諱 赫居世의 30세손이며, 밀성대군 諱 彦沈의 8세손이고, 밀성박씨의 十二中祖이시다.</p><p><br /></p><p><a href="https://parkroot.org/bbs/view_image.php?fn=http%3A%2F%2Fparkroot.org%2Fdata%2Feditor%2F1808%2F0accb4fb3a86fecd0df580ec4a74c4cc_1535606009_6792.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s://parkroot.org/data/editor/1808/thumb-0accb4fb3a86fecd0df580ec4a74c4cc_1535606009_6792_800x600.jpg" alt="0accb4fb3a86fecd0df580ec4a74c4cc_1535606009_6792.jpg" class="img-tag "/></a><br style="clear:both;" /><a href="https://parkroot.org/bbs/view_image.php?fn=http%3A%2F%2Fparkroot.org%2Fdata%2Feditor%2F1808%2F0accb4fb3a86fecd0df580ec4a74c4cc_1535606009_7871.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s://parkroot.org/data/editor/1808/thumb-0accb4fb3a86fecd0df580ec4a74c4cc_1535606009_7871_800x600.jpg" alt="0accb4fb3a86fecd0df580ec4a74c4cc_1535606009_7871.jpg" class="img-tag "/></a><br style="clear:both;" /><a href="https://parkroot.org/bbs/view_image.php?fn=http%3A%2F%2Fparkroot.org%2Fdata%2Feditor%2F1808%2F0accb4fb3a86fecd0df580ec4a74c4cc_1535606009_902.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s://parkroot.org/data/editor/1808/thumb-0accb4fb3a86fecd0df580ec4a74c4cc_1535606009_902_800x600.jpg" alt="0accb4fb3a86fecd0df580ec4a74c4cc_1535606009_902.jpg" class="img-tag "/></a><br style="clear:both;" /> </p><p><br /><b><span style="font-size:11pt;">■ 칠현유적비(</span></b><b><span style="font-size:11pt;"><b><span style="font-size:11pt;">七賢</span></b>遺積碑)</span></b><br /><br />密城朴氏 七賢遺績碑는 淸道面 古法里 팔방마을 明坊村에 있으며, 世居하는 密城朴氏 一門이 高麗 高宗 時代(1214년 甲成 年間) 先祖 三司左尹公 諱 乙材와, 諱 元義, 諱 麟祐, 諱 威, 諱 ,諱 粹, 諱 齡을 七賢中祖로 追慕하여  1995년(乙亥)에 後孫들이 그 遺績을 새겨 慕雅齋 域內에 세운 碑石이다. 七賢中祖에 대한 遺績 事實은 밀양유적誌(慕雅齋)編에 있다.</p><p><br /></p><p><a href="https://parkroot.org/bbs/view_image.php?fn=http%3A%2F%2Fparkroot.org%2Fdata%2Feditor%2F1808%2F0accb4fb3a86fecd0df580ec4a74c4cc_1535605925_6221.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s://parkroot.org/data/editor/1808/thumb-0accb4fb3a86fecd0df580ec4a74c4cc_1535605925_6221_800x600.jpg" alt="0accb4fb3a86fecd0df580ec4a74c4cc_1535605925_6221.jpg" class="img-tag "/></a></p><p><a href="https://parkroot.org/bbs/view_image.php?fn=http%3A%2F%2Fparkroot.org%2Fdata%2Feditor%2F1808%2F0accb4fb3a86fecd0df580ec4a74c4cc_1535616417_206.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s://parkroot.org/data/editor/1808/thumb-0accb4fb3a86fecd0df580ec4a74c4cc_1535616417_206_800x533.jpg" alt="0accb4fb3a86fecd0df580ec4a74c4cc_1535616417_206.jpg" class="img-tag "/></a><br style="clear:both;" />상례문(尙禮門)</p><p><br /></p><p>※ 구글 지도 좌표 : <a href="https://drive.google.com/open?id=1wfCoFnYbGC3zVi4rqHp-1oL4_5Qf72kj&amp;usp=sharing"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 noopener">35.55151, 128.66186<im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60720_7466.png" alt="클릭하세요" class="img-tag img-tag"/></a></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hu, 30 Aug 2018 14:14:2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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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창원박씨 행록(조선왕조실록) - 관향조 양정공 박령(朴齡) 졸기 및 치제문</title>
	<link>https://parkroot.org/bbs/board.php?bo_table=park02_03&amp;wr_id=14</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2pt;">창원박씨 행록</span></b><br /><br /><b><span style="font-size:12pt;">﻿  관향조 &lt;양정공(襄靖公) 박령(朴齡)의 졸기(卒記)&gt; </span></b><span style="font-size:12pt;"><span style="font-size:9pt;">세종실록 66권 세종 16년(1434년) 12월 24일 기록 &gt;</span></span><span style="font-size:9pt;"> </span><br /><br />원문(왕조실록) : ○前左軍都摠制朴齡卒。 齡字浩夫, 慶尙道義昌人也。 累遷判司宰、戶曹典書、判通禮、兵曹參議, 出爲江州鎭僉節制使、江華府使、江界節制使、慶源ㆍ朔州兵馬使、洪州牧使、黃海道都節制使、兼判海州牧事。 時太宗及上, 幸于海州等處, 齡與監司李叔畝郊迎, 序於監司之下, 太宗曰: “齡何以在監司之下?” 左右對曰: “監司雖嘉善, 是使臣也。 判牧事雖嘉靖, 是守令也。” 上曰: “齡乃舊臣也。” 賜坐監司之上, 賜御衣。 及還宮, 除資憲。 辛丑, 拜左軍都摠制, 齡勤儉有武藝。 及卒, 停朝市一日, 致弔致賻。 諡襄靖, 甲冑有勞襄, 寬樂令從靖。 中宮亦遣使致弔, 賜黃燭十丁, 以其戚連也。 有三子, 曰弘幹、弘信、弘智。<br /> <br /><b><span style="font-size:12pt;">[번역문] &lt;세종 16년 12/24 (정묘) 전 좌군 도총제 박령의 졸기&gt;</span></b></p><p><br /></p><p>“전 좌군 도총제 박영(朴齡)이 죽었다. 영(齡)의 자(字)는 호부(浩夫)이니 경상도 의창 사람이다. 여러 번 판사재(判司宰)ㆍ호조전서(戶曹典書)ㆍ판통례(判通禮)ㆍ병조참의로 옮기고, 나가서는 강주진 첨절제사ㆍ강화부사ㆍ강계절제사ㆍ경원삭주 병마사ㆍ홍주목사ㆍ황해도 도절제사 겸 판해주목사가 되었다. 그 때에 태종과 임금께서 해주 등처에 거둥하였는데 박령이 감사 이숙묘(李叔畝)와 더불어 들에서 영접하였는데, 서차가 감사의 밑에 있었다. 태종이 말하기를, “령은 어째서 감사의 밑에 있는가.” 하니, 좌우에서 대답하기를, “감사는 비록 가선(嘉善)이나 사신이고, 판목사는 비록 가정(嘉靖)이나 수령 (守令)입니다.” 하므로, 임금이 말하기를, “영은 구신(舊臣)이다.” 하고, 감사의 위에 앉히고 어의(御衣)를 주고, 환궁한 뒤에 자헌(資憲)을 제수하고, 신축년에 좌군 도총제를 제수하였다. 령이 부지런하고 검소하며 무예가 있었다. 죽으매 조회와 저자를 하루 동안 정지하고, 조의를 표하고 부의(賻儀)를 보내었다. 시호(諡號)를 양정(襄靖)이라 하였는데, 갑주(甲胄)로 공로가 있는 것을 양(襄)이라 하고, 너그럽게 즐거워서 아름답게 쫒는 것을 정(靖)이라 한다. 중궁도 또한 사신을 보내어 조상하고 황촉(黃燭) 열 자루를 내려 주었으니, 연척(連戚)인 때문이다. 세 아들이 있으니 박홍간(朴弘幹)·박홍신(朴弘信)·박홍지(朴弘智)이다.”<br /></p><p><br /></p><p><b><span style="color:rgb(255,0,0);font-size:12pt;">[편집자 주]</span> 위의 왕조실록의 기록 중 세 아들은 오류이다. 사실 세 분이 아니라 네 분으로 박홍간(朴弘幹), 박홍직(朴弘直), 박홍신(朴弘信), 박홍지(朴弘智, 東智)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다만 보첩에서</b><b>는 네 분들은 2세 박손(朴蓀)의 아들이라고 전해져오고 있는데 성화보, 가정보 등에 나타난 기록 역시 2세 손(</b><b>蓀)조의 존형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더 확실한 고증이 필요하다 . </b></p><p><br /></p><p><img itemprop="image" content="http://parkroot.org/data/editor/1807/efb3d1edebadeb82442df861bdd5d1e4_1532957120_8811.pn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7/efb3d1edebadeb82442df861bdd5d1e4_1532957120_8811.png" alt="efb3d1edebadeb82442df861bdd5d1e4_1532957120_8811.png" class="img-tag "/><br style="clear:both;" /> </p><p><b><span style="font-size:12pt;">&lt;세종 17년</span></b><span style="font-size:12pt;"><b>(</b></span><span style="font-size:16px;"><b>戊辰</b></span><span style="font-size:12pt;"><b>) </b></span><b><span style="font-size:12pt;">2월26일 박령</span></b><span style="font-size:16px;"><b>(朴齡)</b></span><b><span style="font-size:12pt;">에게 치제하다&gt;</span></b></p><p><br /></p><p>원문(왕조실록): ○戊辰/賜祭于朴齡。 其文曰: 惟卿風神魁偉, 性行質直。 沈毅有勇, 才優將略。 兼通吏事, 早登仕籍。 遭遇列聖, 特蒙擢拔。 歷揚中外, 英聲煥赫。 分符數郡, 務存矜恤。 威惠竝著, 吏畏民服。 仗鉞諸鎭, 號令嚴肅。 臨機制敵, 屢著偉績。 予某嘉奬, 爰陞榮秩。 及使帝庭, 敷奏詳明。 眞稀世之良將, 而累朝之舊德。 頃緣沈綿, 投閑養疾。 意謂康復, 永爲喬木。 夫何一夕, 奄爾不淑! 訃音之至, 良深痛戚。 玆遣禮官, 伻陳菲薄。 靈其有知, 庶幾歆格。前此大臣致祭, 皆用敎書, 至是考古制, 始用祭文。<br /></p><p><br /></p><p><b>[번역]&lt;박령(朴齡)에게 치제(致祭) 하다&gt;</b><br /><br />“박령(朴齡)에게 치제(致祭)를 내리니, 그 글에 이르기를, “생각하건대, 경은 풍채(風采)가 크고 훌륭하며 성행(性行)이 질박 정직하였고, 침중(沈重)한 가운데 용기가 있고 그 재능이 뛰어났으며, 장수로서의 지략이 있고 행정에도 능통하여 일찍부터 사적(仕籍)에 올라 열성(列聖)께 크게 인정 받고 특별히 발탁되어 중외의 관직을 역임하면서 아름다운 명성이 일세에 빛났도다. 두어 고을의 수령으로 나가서는 힘써 백성을 애호하여 위엄과 은덕이 아울러 나타났고, 여러 진(鎭)의 장수로 나가서는 호령이 엄숙하고 임기(臨機)하여 적을 제어하여 누차 큰 공적을 세웠으므로, 내가 이를 가상하게 여기고 또 격려하기 위하여 이에 영화로운 품질(品秩)에 승진시켰던 것이며, 명나라에 사절로 보낼 때에도 진달함이 역시 상실(詳悉) 명백하였으니 참으로 희대의 양장(良將)이며 여러 왕조(王朝)의 덕 높은 원로가 아니었던가. 근래 병세의 깊음으로 인하여 한지(閑地)로 옮겨 요양해 오던 터이라 건강을 회복하여 길이 이 나라의 교목(喬木)이 되어 주리라 믿었더니, 어찌하여 하루 저녁에 덧없이 떠났단 말인가. 부음(訃音)이 이르니 실로 몹시 슬픈 마음 누를 길이 없도다. 이에 예관(禮官)을 보내어 나를 대신하여 변변치 못한 것을 베풀었으니, 영령(英靈)이여 감동함이 있거든 흠향하기 바라노라.” 하였다. 이에 앞서 대관들에게 치제할 때는 모두 교서를 사용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고제(古制)를 상고하여 비로소 제문(祭文)을 쓰게 된 것이다.”<br /></p><p><br /></p><p><im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8/df7dfad0db33e2b3fad2c3ed89c01718_1535374084_5605.JPG" alt="df7dfad0db33e2b3fad2c3ed89c01718_1535374084_5605.JPG" class="img-tag "/><br style="clear:both;" /> </p><p><br /></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Mon, 30 Jul 2018 22:26:13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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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옥천 원덕사(遠德祀) 추모재(追慕齎), 유연당(油然堂)</title>
	<link>https://parkroot.org/bbs/board.php?bo_table=park02_03&amp;wr_id=12</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1pt;">밀성박씨 21顯祖 옥천 원덕사(遠德祀) 추모재(追慕齎), 유연당(油然堂)</span></b></p><p><br /></p><p>경명왕의 제 一子 휘 언침을 비롯해 20 중조 봉안한 사당으로 충북 옥천군 이원면 용방리 중구봉 아래에 있다.<br />1922년 임술(壬戌) 봄에 승지공 박인령(朴仁齡) 충헌공 휘 척(陟)의 후손 묘 아래에 후손 박만구(朴滿九)가 멀고 가까운 성손과 같이 사우를 지을 것을 상의하여 같은 해 동짓날에 밀성대군의 위패를 봉안 하였으며 1923년 계해 6월5일에 8도의 후손들이 대군의 후예인 19중조를 배향했다.</p><p><br /></p><p>49년 후인 1972년 11월 7일에 1위를 추배하고 판서 초암공 휘 인우(麟祐) 도 12년 후인 1984년 11월 동지일에 1위를 추배 정랑공 휘 수(粹) 하여 원덕사라 편액을 걸었으며 매년 3월1일 합제를 지내고 있다. 위판은 밀성대군을 주벽으로 하여 동벽에 10현 밀성부원군 휘 언부, 상서좌복야공 휘 언인, 판도판각공 휘 천익, 사문진사공 휘 원 ,규정공 휘 현, 영동정공 휘 원광,  전법판서 초암공 휘 인우, 구산군 휘 천, 이조정랑 휘 수, 수사 휘 근, 서벽에 10현 (도평의사 휘 언상, 밀직부사 휘 양언, 삼사좌윤 휘 을재, 밀성군 휘 척, 밀직부원군 휘 중미, 태안부원군 혜문공 휘 원의,  정국군 휘 위, 창원군 양정군 휘 령, 군수 휘 치온, 부호군 휘 태익 등 21현을 배향하고 있다.</p><p>경내에는 유인당과 추원재가 있으며 헌성비(박성형,박귀흠)가 있다. <br /></p><p>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2009년 12월 옥천군 향토유적 2009-1호로 지정되었다.<br /></p><p><br /></p><p><a href="https://parkroot.org/bbs/view_image.php?fn=http%3A%2F%2Fparkroot.org%2Fdata%2Feditor%2F1809%2F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39218_2956.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parkroot.org/data/editor/1809/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39218_2956.jpg" src="https://parkroot.org/data/editor/1809/thumb-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39218_2956_800x246.jpg" alt="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39218_2956.jpg" class="img-tag "/></a><br style="clear:both;" /><a href="https://parkroot.org/bbs/view_image.php?fn=http%3A%2F%2Fparkroot.org%2Fdata%2Feditor%2F1809%2F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39218_1096.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s://parkroot.org/data/editor/1809/thumb-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39218_1096_800x1367.jpg" alt="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39218_1096.jpg" class="img-tag "/></a><br style="clear:both;" /><a href="https://parkroot.org/bbs/view_image.php?fn=http%3A%2F%2Fparkroot.org%2Fdata%2Feditor%2F1809%2F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39218_3832.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s://parkroot.org/data/editor/1809/thumb-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39218_3832_800x450.jpg" alt="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39218_3832.jpg" class="img-tag "/></a><br style="clear:both;" /><a href="https://parkroot.org/bbs/view_image.php?fn=http%3A%2F%2Fparkroot.org%2Fdata%2Feditor%2F1809%2F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39218_4775.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s://parkroot.org/data/editor/1809/thumb-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39218_4775_800x450.jpg" alt="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39218_4775.jpg" class="img-tag "/></a><br style="clear:both;" /><a href="https://parkroot.org/bbs/view_image.php?fn=http%3A%2F%2Fparkroot.org%2Fdata%2Feditor%2F1809%2F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39218_5793.jpg" target="_bl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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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ef="https://drive.google.com/open?id=1wfCoFnYbGC3zVi4rqHp-1oL4_5Qf72kj&amp;usp=sharing"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 noopener">36.25229, 127.65985<img src="http://parkroot.org/data/editor/1809/71738e1ab177e15bc4ba40ee12a283ba_1535960720_7466.png" alt="클릭하세요" class="img-tag "/></a></p><p> <br /></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Mon, 30 Jul 2018 16:35:5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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