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의 종류 - 아명, 명, 자, 시호, 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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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의 종류 - 아명, 명, 자, 시호, 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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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의 종류


1. 머리말 

오늘날은 보통 한 사람이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살아간다. 문학이나 서예 등과 같은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더러 本名 이외의 다른 이름이나 號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姓과 名만을 사용한다. 漢字로 문자 생활을 하였던 우리의 조상들은 일생 동안에 여러 가지 이름을 사용하였다. 어릴 때 지어 부르는 兒名이 있고, 어느 정도 성장을 한 뒤에 짓는 本名이 있고, 본명을 바꾸어 부르는 字가 있었다. 이러한 이름은 부모나 스승이나 친구들이 지어 주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독자적인 가치관을 가지게 되고 사회 활동의 범위가 넓어지면 號를 지었다. 號는 名이나 字를 대체하기 위하여 주로 자신이 짓는 것이다. 친구 사이에서는 字를 사용하였고 손윗사람을 부를 때에는 號를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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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죽은 뒤에 나라에서 내리는 시호(諡號)가 있다. 諡號는 대상 인물을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평가한 의미를 담고 있다. 王이 죽은 뒤에는 諡號 이외에도 陵號, 殿號, 廟號 등을 지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廟號이다. 위의 여러 가지 이름들은 태어난 뒤에 지어지는 것인데,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정해져 있는 이름이 姓이다. 이 글에서는 이름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되, 姓은 다른 글에서 다루어질 것이므로 제외하고, 字와 號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아래에 인용하는 字, 號 등에 대한 例文은, 생략한 곳이 많고 내용을 다소 손질하였기 때문에 原文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 분야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자 하는 분은 原文을 찾아 참고하기 바란다. 例文 끝에 붙인 숫자는 민족 문화 추진회에서 영인한 韓國 文集 叢刊의 集數와 面數이다.

2. 부형, 스승, 벗이 지어 주는 이름 


가) 兒名
兒名은 부형이 지어 주는 이름이다. 부모나 가족이 꾼 태몽과 관련하여 짓거나 액땜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천한 이름으로 짓는 경우가 많다.


申用漑의 '二樂亭集' 墓誌와 碑銘에,
"文景公이 태어날 때에 文忠公이 산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내려오는 꿈을 꾸었다. 그래서 白岳鍾이라고 名을 지었다. 文忠公의 집 뒤에 白岳山이 있었다."(17-145) 하였다. 文景公 申用漑의 兒名이 白岳鍾이었는데, 그의 할아버지인 文忠公 申叔舟가 꿈에 집 뒤에 있는 白岳山의 靈氣를 받아 손자의 이름을 지은 것이다.


朴齊家의 '貞○集' 外從弟改名說에,
"名은 나와 더불어 평생을 함께 하는 것이다. 태어난 지 석 달 만에 부모가 名을 지어 주는데, 이것을 小名이라고 한다. 冠禮를 치르고 朋友가 字를 지어 불러 주면 드디어 嘉名이 정해진다. 그리하여 그 이름을 돌아보고 뜻을 생각하며 살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사랑하는 자식일수록 반드시 천한 이름을 붙여 주는데, 이와 같이 하는 것은 액을 막으려는 것이니, 그 의도가 구차하다. 네 이름이 돼지[豚]인데, 올해 열한 살이니, 거의 4천 날을 돼지 행세를 한 셈이다. 해괴한 일이 아니냐? 네 종형제들이 모두 誠자 돌림자로 이름을 지었으니 이제 네 이름을 葵誠이라고 짓는다. 葵는 늘 해를 향하여 서 있는 해바라기이다. 옛날의 충신들이 임금을 사랑하여 잊지 못하는 것을 해바라기 같은 정성이라고 하였다. 字 짓는 일은 冠禮하는 날을 기다리도록 하자."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小名은 곧 어릴 때의 이름인 兒名과 같은 뜻인데, 천한 이름을 지어서 온갖 잡귀의 침입을 막으려고 했던 옛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가 있다.


나) 名
어느 정도 별 탈 없이 성장을 하면 兒名을 바꾸어 本名을 짓는다. 本名은 부형이 지어 주는, 개인에 대한 정식 이름이다.
위에 인용한 朴齊家의 外從弟改名說은, 外從弟의 本名을 葵誠이라고 짓는 내용을 서술한 글이다.


河崙의 '浩亭集' 名子說에,
"나무는 오래 자라면 반드시 높은 산에 우뚝 솟고 물은 오래 흐르면 반드시 깊은 바다에 이르게 된다. 사람이 학문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쉬지 않고 오래도록 하면 반드시 성공을 할 것이다. 너의 이름을 오랠 久자로 짓는다. 너는 이름을 돌아보고 그 뜻을 생각하여, 멋대로 놀기만 해서는 안 된다. 오늘 하나의 이치를 연구하고 내일 하나의 이치를 연구하며 오늘 한 가지 착한 일을 하고 내일 한 가지 착한 일을 하여 하루하루를 조심스럽게 공부해 나가면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날마다 퇴보하여 반드시 소인이 될 것이다."(6-453)하였다. 河崙이 아들의 이름을 久라고 짓고, 久자의 뜻을 설명하면서, 이름에 담긴 뜻을 실천할 것을 아들에게 당부한 것이다.

本名은 자녀에 대한 부형의 소망을 담아서 짓는다. 名을 지으면 부형은 그 名의 뜻을 설명하고 그 뜻을 실천하면서 살기를 당부하는 글을 짓는데, 이것이 곧 名說이나 改名說 등이다. 名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돌아보고 그 뜻을 생각하며 평생을 살아간다. 이것을 顧名思義라고 한다.


다) 字
淵鑑類函에, "冠禮를 한 뒤에 字를 지어 주는 것은 그 名을 공경하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임금이 신하에 대해서, 선생이 그의 문인들에 대해서는 名을 부르고, 같은 관직에 있는 동료들 사이이거나, 姓이 같은 형제들 사이이거나,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하는 벗들 사이에서는 字를 부른다."라고 하였으며, "名은 字의 本이고 字는 名의 末이다."라고 하였다. 字는 名에 대체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禮記'에 "남자가 20세가 되면 冠禮를 하고 字를 짓는다."라고 하였고, "여자가 약혼을 하면 머리를 올리고 字를 짓는다."라고 하였다. '朱子家禮'에는, 남자는 15세에서 20세 사이에 모두 관례를 한다고 하였다. 字를 짓는다는 것은 成人으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하였다.
우리나라 文集에 나오는 글들을 통해서 字를 짓는 시기와 방법, 字가 가지는 의미 등을 살펴보자.


張顯光의 '族軒集' 族軒說에,
"시대가 내려오면서 尊卑의 등급과 長幼의 질서를 밝히지 않을 수가 없게 되자, 이미 지은 각각의 名을 가지고 그 名의 뜻을 따라 바꾸어 부를 수 있는 字를 지었다. 名이 있는 사람은 모두 字가 있었다."(60-140)하였다. 字가 필요하게 된 이유를 설명한 것이라 하겠다.


李奎報의 '東國李相國集' 蔡樞密松年子序에,
"樞密相國 蔡 公이 그 諱를 대신할 것을 생각하여 나에게 字를 지어 달라고 하였다. 내가 天老라고 字를 지어 주었다."(2-241)하였다. 성명이 蔡松年이니 松年이라는 이름의 뜻은 소나무처럼 오래 산다는 것이다. 소나무가 늘 푸르게 오래오래 살 수 있는 것은 하늘이 그 壽를 누리게 하여 그렇게 잘 늙어 가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天老라고 字를 지은 것이다. 字의 뜻이나 相國 벼슬로 보아 만년에 지은 字인 듯하다.


李崇仁의 '陶隱集' 忠原判官李君及字說에,
"李 君 及이 나에게 字를 지어 달라고 하였다. 朋友가 字를 지어 주는 것은 禮이니, 내가 어찌 사양할 수 있으랴. 春秋公羊傳에 이르기를 '及은 汲汲과 같다'고 하였다. 君子는 義에 汲汲하고 小人은 利에 汲汲하다. 義와 利는 舜임금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느냐 盜蹠 같은 도적놈이 되느냐 하는 것이 여기에서 판가름이 나며 天下 國家가 제대로 다스려지느냐 망하느냐 하는 것이 여기에 매여 있다. 그래서 字를 公義라고 짓는다."(6-610) 하였다. 忠州 判官 벼슬을 하고 있는 친구 李及의 字를 짓는 이야기이다. 及은 미쳐서 도달한다는 뜻이고, 汲汲은 쉬지 않고 힘쓰는 모습이다. 利益되는 일만 찾아 다니는 小人이 되지 말고 公義를 깊이 생각하는 君子가 되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權近의 '陽村集'이 義民字說에,
"어려서 名을 짓고 冠禮를 하고 字를 짓는다. 자라는 것은 친구 사이에 서로 지어서 불러 주는 것이다."(7-210)하고, 같은 책 金氏名字說에,
"나의 친구 金泮이 字를 지어 달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였다. 예로부터 朋友가 字를 짓는 것이니, 내가 지어 주겠다. 泮은 제후의 학궁이다. 그대 이름이 泮인 것은 학문에 뜻을 두라는 의미이다. 학문을 하는 것은 그 本源을 제대로 찾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서 字를 學源이라고 짓는다."(7-215) 하였다. 名과 字를 짓는 시기와 字를 짓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밝혀 놓았다.


申用漑의 '二樂亭集' 墓地와 碑銘에,
"다섯 살 때에 아버지를 여의어 할아버지인 文忠公이 직접 기르며 가르쳤는데, 어릴 때부터 재주가 뛰어나서 보통 아이들과는 달랐다. 文忠公이 매우 기특하게 여기고 名을 바꾸고 字를 지어 주었다."(17-145)하였다.


張維의 '谿谷集' 金生壽弘字說에,
"金 生이 名을 壽弘으로 바꾸고 나에게 字를 지어 달라고 청하였다. 내가 이렇게 말하였다. 弘은 넓고 크다는 뜻이다. 넓고 크기로는 夏가 제일이다. 그래서 너의 字를 夏甫라고 짓는다." 하였고, 같은 책 柳生名字說에,
"柳 氏의 아들 세 사람이 나에게 名과 字를 지어 달라고 하였다."하였다. 어릴 때에 兒名을 쓰다가 어느 정도 성장을 한 뒤에 兒名을 버리고 本名을 지으며 그와 동시에 字를 짓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朴英의 '松堂集' 神道碑銘에,
"어릴 적부터 의젓하여 보통 아이들과는 달랐다. 아버지 參判公이 名을 英이라고 짓고 字를 子實이라고 지어 주었다. 公이 태어난 지 5년 만에 參判公이 세상을 떠났다."(18-130)하였다. 이 글을 보면 子實이라는 字는 朴英이 다섯 살이 되기 전에 名과 함께 지어진 것임을 알 수가 있다.


權好文의 '松嚴集' 猶子行可字說에,
"일찍이 조카의 名을 行可라고 지어 주었는데 세상에 행세할 수 있는 바람직한 사람이 되라는 뜻이었다. 이제 관례를 하게 되어 字를 士遇라고 짓는다. 무릇 부친이 名을 짓고 벗이 字를 지어 주는 것이 禮이나, 名과 字를 모두 내가 지었다. 예로부터 叔父라는 명칭이 있어 왔고 스승과 벗은 일체라는 말도 있었다. 그러니 내가 行可에게는 부친과 마찬가지이고 스승이라고 해도 안 될 것이 없다. 선비가 공부를 하는 것은 세상에 쓰이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참으로 알아주는 세상을 만나라는 의미에서 士遇라고 字를 지었다. "(41-282)하였다. 叔父가 조카의 名과 字를 지은 이야기이다. 名은 부친이 짓는 것이 원칙이나 叔父도 부친과 같으니 지을 수가 있고, 字는 벗이 짓는 것이 원칙이나 스승과 벗이 일체이니 스승의 자격으로 字를 짓는다고 하였다.


張顯光의 '族軒集' 孫○冠說에,
"오늘 ○의 머리에 冠을 얹었다. 이것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禮이다. 冠禮라는 것은 이제 成人의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네가 임술년에 태어났으니 이제 15세가 되었다. 중국의 법에 나이가 15세가 되면 壯丁이라고 이름하는데, 이것은 成人으로서 처신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무릇 사람의 道가 이 나이에 되면 완성되는 것이니, 冠禮를 하는 것은 成人이 되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사람의 道라는 것이 무엇이냐. 사람으로서 해야 할 도리, 바로 五倫을 말한다. 집에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간에 서로 아껴 주며, 친구들에게는 신의 있게 대해야 한다. 머지않아 아내를 맞을 텐데 예절을 갖추어 서로 대해야 한다. 사람이 제대로 되면 군신 간의 의리는 그 속에 다 갖추어지는 법이다. 오늘 너의 관례를 하고 나는 네 조부로서 이 글을 지어 경계한다."(60-341) 하였다. 15세에 冠禮를 한 것을 밝히는 글이다.


스승이 제자들의 字를 한꺼번에 지어 주는 경우도 있었다. 金安國의 '慕齋集'에 있는 朴蘭李塢金器字說(20-191) 등 여러 편의 글은 문하에 있는 여러 제자들의 字를 한꺼번에 지어주는 글이다. 같은 책 韓宗道字辭에 '字를 지어 名의 뜻을 드러내는 것은 師友가 할 일이다'라고 하였으니, 스승이 제자들의 字를 지어 주는 일이 많이 있었다. 字는 名과 마찬가지로 한 사람에게 하나밖에 없으며 한번 지으면 평생을 바꾸지 않는 것이나, 간혹 중간에 字를 바꾸어 짓는 경우가 있다.


成三問의 '成謹甫集' 李君芮改字可成說에,
"나의 친구 李芮는 字가 秀卿이었다. 하루는 내가 농담으로 '그대는 秀자에서 무슨 뜻을 취한 것인가? 이삭이 패고도 여물지 못하는 수도 있다네.' 하니, 이 친구가 '그렇다면 내 字를 다시 지어 주게.' 하였다. 그래서 내가 온갖 곡식이 완전히 여문다는 뜻을 가진 可成이라고 字를 지어 주었다."(10-195) 하였다. 芮자는 풀이나 곡식이 싹이 트는 모양을 뜻하는 글자이다. 秀자는 이삭이 패는 뜻을 가진 글자로서 여기에서 우수하다 뜻이 파생되었다. 곡식이 이삭이 잘 패고도 여물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완전히 여무는 것을 의미하는 成자로 字를 다시 지은 것이다.


徐敬德의 '花潭集' 朴○正字詞에,
"朴民獻이 字가 元夫였는데, 나에게 바꾸어 달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元이라는 것은 天德의 으뜸이요 衆善의 총칭이니, 초학자가 차지하기에는 합당하지가 않네. 힘을 다하여 노력한다는 의미를 가진 ○正으로 字를 바꾸게.' 하였다."(24-316)하였다. 이런 경우는 뜻이 걸맞지 않게 너무 크기 때문에 字를 바꾼 경우이다.


字는 朋友가 짓는 것이다. 부형이나 스승이 짓는 경우도 더러 있으나 자신이 스스로 짓는 경우는 없다. 주로 친구 사이에서 서로 부르는 이름이다.
字는 冠禮를 하고 짓는 것이 원칙이나, 兒名을 버리고 本名을 지을 때에 함께 짓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나이가 많은 노년에 지은 경우도 있다.
字는 名을 대신하여 부르는 이름이고,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이거나 간에 名과 깊은 관계가 있다. 위에 인용한 것 이외에도, 柳得恭의 字 惠風은 '孟子'에 나오는 '柳下惠之風'과 관련이 있고, 金時習의 字인 悅卿은 '論語'의 '學而時習之不亦說乎'와 관련이 있다. 說은 悅의 뜻이다. 鄭士龍의 字는 雲卿인데 '風從虎雲從龍'과 관련이 있다. 沈彦光의 字는 士炯인데 彦과 士는 같은 뜻이며 光과 炯은 같은 뜻이다. 許筠의 누이 許蘭雪軒은 蘭雪軒이 號이고 名은 楚姬이며 字는 景樊이다. 중국 楚나라 莊王의 훌륭한 부인이 樊姬였는데 名과 字를 여기서 따다가 쓴 것이다. 이와 같이 字는 거의 예외 없이 名의 뜻을 부연 설명하거나 보완하거나 같은 뜻을 가진 글자를 쓰거나 하여, 名과 짝이 되게 짓는 이름이다.
字를 짓고 나면 字序, 字說, 字辭, 字詞 등을 지어서 字에 담긴 뜻을 설명하고 그 뜻대로 실천을 하면서 살기를 당부하였다.


3. 자기가 스스로 짓는 이름 

옛날에는 부모가 지어준 이름은 임금, 부모, 스승과 존장의 앞에서만 쓰이고 다른 사람들은 함부로 부를 수 없었다. 그래서 어린 사람이나 격이 낮은 사람, 또는 허물없이 부르기 위해서 호(號)를 지어 불렀다.
號는 名이나 字를 대체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주로 거처하는 書齋의 이름이거나 거처하는 곳의 지명이거나 자신이 추구하는 바의 삶의 목표 등으로 名과 字를 대체하여 부르는 이름을 삼았는데 이것이 號이다. 우리나라 文集에 나오는 몇 가지 글을 가지고 살피기로 한다.


李奎報의 '東國李相國集' 白雲居士語錄에,
"옛날에는 號로 名을 대신한 분들이 많이 있었다. 그 거처하는 바[所居]를 가지고 號를 삼은 자도 있고, 그 기르는 바[所蓄]를 가지고 호를 삼은 자도 있고, 그 얻은 바의 실상[所得之實]을 가지고 호를 삼은 자도 있다. 王績의 號인 東皐子와 杜子美의 號인 草堂先生과 賀知章의 號인 四明狂客과 白樂天의 號인 香山居士는 거처하는 바를 가지고 號를 삼은 것이고, 陶潛의 號인 五柳先生과 鄭熏의 號인 七松處士와 歐陽子의 號인 六一居士는 기르는 바를 가지고 호를 삼은 것이고, 張志和의 호인 玄眞子와 元結의 호인 漫浪○는 얻은 바의 실상을 가지고 호를 삼은 것이다. 나는 떠도는 인생이라 정해진 거처도 없고 기르는 것도 없고 얻은 바의 실상도 없다. 위의 세 가지 중에 하나도 옛 사람에게 미치지 못하니, 나의 호를 어떻게 지어야 하겠는가? 평소에 거문고[琴]와 술[酒]과 시(詩)를 매우 좋아하였기 때문에 三酷好先生이라고 호를 지었으나 거문고 타는 것도 잘하지 못하고 시 짓는 일도 잘하지 못하고 술도 많이 마시지 못하니 이 號를 내가 차지하고 있으면 세상 사람들이 껄껄거리며 웃을 것이다. 그래서 白雲居士라고 호를 바꾸었다. 白雲은 내가 본받고자 하는 바[所慕]이다."(1-502)하고, 그 아래에 구름의 속성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하였다. 거처하는 장소, 기르는 바의 사물, 터득하여 깨달은 이치나 도달한 경지, 뜻을 두고 살아가는 삶의 지표 등이 號를 짓는 자료가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李楨의 '龜巖集' (宋寅의 ○庵遺稿) ○庵記에,
"옛날의 군자들은 반드시 居處하는 室을 두었는데, 그 室이라는 것은 겨우 몸이나 붙이고 지낼 만한 조그마한 것이었지 고대광실 큰 집이 아니었다. 그래서 舍라고 하기도 하고 窩라고 하기도 하고 庵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표시하는 이름이 없을 수 없기 때문에, 혹 나의 일삼는 바[吾之所事]로써, 혹 나의 보존하는 바[吾之所存]로써, 혹 나의 힘써 노력하는 바[吾之所勉]로써 이름을 삼았다. 한갓 이름만 삼을 뿐 아니라 그 이름의 뜻에 맞추어 실천을 하였다."(33-489, 36-212) 하였다. 이 글은 堂이나 齋나 軒의 이름을 짓는 법에 대해서 말한 것이다. 이렇게 지어진 堂號나 齋號나 軒號 등이 대부분 그대로 그 주인의 號가 되었다.


張顯光의 '旅軒集' 旅軒說에
"시대가 내려올수록 世道가 밝지 못하고 정치가 어지러웠다. 천하에 큰 포부나 역량을 가지고도 세상에 나와서 자기의 뜻을 펼 수 없었던 선비들은 물러가 山林이나 江湖에서 은거 생활을 하였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의 이목에 자신들의 名이나 字가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세속에서 부르던 이름인 名과 字를 벗어나서 새로운 이름인 號를 짓게 된 것이다. 혹 거처하는 서실 이름으로 호를 삼기도 하고, 혹 거처하는 장소나 지명을 가지고 호를 삼기도 하고, 江湖, 池澤, 溪山, 谷洞에 마음으로 즐기거나 몸이 가서 살거나 하는 등등의 연관이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 호를 삼기도 하였는데, 이렇게 지어지는 이름을 총칭하여 軒號라고 하였다. 뒤 세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존경하는 조상이나 선배들에 대해서 감히 그분들의 名이나 字를 입에 올리지 못하고 보통 그분들의 軒號로써 불렀다."(60-140) 하였다. 여기서는 軒號라는 개념을 보통 말하는 號라는 개념과 같은 뜻으로 사용하였는데, 세상에서 버림을 받아 산림에 묻혀 사는 사람들이 세속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자신의 名이나 字를 대체하기 위해서 號를 지었다는 것이다.
위 세 편의 글을 가지고 호를 짓는 방법의 대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가. 白雲語錄: 號를 짓는 경우
1. 所居(거처하는 지명이나 장소)
2. 所蓄(기르는 초목이나 소유하고 있는 사물)
3. 所得之實(깨달은 이치나 진리와 관계되는 개념어)
4. 所慕(지향하는 바의 목표)


나. ○庵記: 堂號, 齋號, 軒號 등 거처하는 書室의 이름을 짓는 경우
1. 所事(일삼는 것)
2. 所存(간직하고 있는 것)
3. 所勉(노력하며 추구해 나가는 것)


다. 旅軒說: 軒號를 짓는 경우
1. 所居之室(지내고 있는 집이나 방)
2. 所處之地(지내고 있는 지명)

3. 江湖池澤溪山谷洞 其心所樂其身所遇之物(좋아하거나 가서 사는 자연 경관)


號는 자신의 名과 字를 숨기기 위해서 짓는 것이다. 李奎報의 白雲居士傳에서도 "白雲居士는 先生의 自號이다. 名을 감추고 號를 드러냈다."라고 하였다. 굳이 名과 字를 감추려고 지은 것이 아닌 堂號, 齋號 등이 후대에 그 주인을 지칭하는 號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號는 자신의 名과 字를 대체하는 것인데, 名과 字를 함부로 부를 수 없는 시대가 되자, 누구나 제약 없이 부를 수 있는 하나의 이름으로 정착되었다. 이제 구체적으로 개인의 號를 살펴보기로 하자.
위에 인용한 李奎報의 白雲居士語錄에,


"흰 구름[白雲]은 내가 본받고자 하는 바이다. 구름이라는 물건은 한가하고 자유롭게 바람 따라 떠다니며 산에 걸리지도 않고 하늘에 붙어 있지도 않는다. 둥실둥실 마음대로 여기저기 떠다니며 아무 구속도 받지 않고 잠깐 사이에도 변화무쌍하여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는 물건이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은 君子가 세상에 나오는 형상이고, 스르르 거두어 사라지는 것은 高人이 산림 속으로 은거하는 형상이다. 비를 내려서 가뭄에 타는 생물을 소생시키는 것은 仁이고, 와도 어디에 붙어 있지 아니하며 가도 미련을 두지 않는 것은 通이다. 푸른 구름, 누런 구름, 붉은 구름, 검은 구름도 있으나, 그것은 본래의 구름 색깔이 아니다. 오직 아무 꾸밈없는 희디흰 구름이 구름의 참모습이다. 구름은 이렇게 어진 덕을 지녔고 이렇게 깨끗한 색깔을 가졌다. 만약 구름을 본받고 배워서, 나가서는 만물에 은택을 끼치고, 들어와서는 마음을 비워 깨끗이 하며, 그 구름처럼 깨끗하고 변함없는 마음을 지키고 간직하여 유유히 온전한 자연의 세계로 들어가면, 구름이 내가 된 것인지 내가 구름이 된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참된 이치를 터득했던 옛 사람들과 비슷해질 수 있을 것이다."(1-502)하였다. 이규보가 白雲居士라고 호를 지은 것은 구름의 속성을 본받고자 하는 뜻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에 인용한 旅軒說에,


"어떤 사람이 내게 軒號를 하나 지으라고 권하기에 내가 이렇게 답하였다. 軒號라는 것은 그 사람에게 합당하게 붙여져야 한다. 사람의 아들이 되어서 효행도 없는데 아버지께서 嘉名을 지어 주셨으니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친구를 사귀면서 신의도 없는데 친구들이 美字를 지어 주었으니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매우 부끄러운 것이라도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張顯光이라고 부르고, 내 친구들은 나를 德晦라고 부르니, 그만하면 된 것이지 감 히 또 號를 지을 수가 있겠는가. 이런 생각으로 號를 짓지 않고 지내온 지가 40여 년이 되었다. 이제 비로소 旅軒이라고 號를 짓는다."(60-140) 하고, 같은 책 溪狀說에,
"내가 旅軒이라고 스스로 號를 지었다. 일정한 거처도 없이 발 가는 대로 몸을 붙이고 지내기 때문이다."(60-342) 하였다. 旅軒이라는 號는 나그네라는 뜻이다. 눌러앉아 오래 사는 집이 없이 늘 떠돌아다니며 아무 곳이나 가는 곳에 거처를 정한다는 뜻으로 旅자를 사용했다고 하였다. 자신의 처지에 맞게 號를 지은 것이다.


崔瀣의 '拙藁千百' 猊山隱者傳에,
"隱者의 이름은 夏屆이다. 혹은 下逮라고도 한다. 蒼槐가 그의 姓氏이다. 대대로 龍伯國에서 살았다. 본래는 두 자 姓이 아니었는데, 은거해 살면서 우리 나라의 느린 音을 따라 이름도 바꾸고 성도 바꾸었다. 隱者는 어릴 적부터 하늘의 이치를 아는 듯하였고, 공부를 할 때에는 한 가지에 집착하지 않아서 대략의 뜻만 알면 더 이상 배우지 않았다. 그의 성격이 남의 비위를 잘 맞추지 못하였으며 술을 좋아하여 술만 마시면 남의 좋은 점 나쁜 점을 모두 이야기하였고 무릇 귀로 들어간 것은 입으로 내뱉지 않고서는 견디지를 못하였다. 그래서 사람들로 부터 배척을 당하였다. 중년에 이르러서는 매우 뉘우쳤으나 스스로 세상에 얽매여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만년에 岬寺의 중을 따라가서 밭을 빌려서 농사를 짓고 살면서 스스로 猊山農隱이라고 불렀다."(3-35) 하였다. 이 號는 猊山에서 농사지으며 은거해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崔瀣가 이름을 바꾼 내용이 흥미롭다. 하(夏)자에 계(屆)자를 더하거나 하(下)자에 체(逮)자를 더하면 음이 해(瀣)가 된다고 생각을 하였고, 창(蒼)자에 괴(槐)자를 더하면 음이 최(崔)가 된다고 생각을 하였다. 반대로 崔자는 蒼자와 槐자로 분리된다. 이것을 反切音이라고 하는데, 훈민정음을 만든 뒤 닿소리와 홀소리를 설명할 때에도 이 방법을 사용하였다.


李穡의 '牧隱藁' 陽村記에,
"陽村은 나의 문인 權近의 自號이다. 近이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선생님의 문하에서 나이도 가장 어리고 학문의 수준도 가장 낮습니다. 그러나 흠모하며 본받아 나아가는 것은 가까운 데에서 시작하여 먼 곳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可遠으로 字를 삼았습니다. 천하에 내 몸 가까이 있으면서도 심원한 것에는 마음속에는 誠이 있고 밖에는 陽이 있습니다. 誠은 오직 군자라야 실천할 수 있는 것이고, 어리석은 사람들도 모두 알 수 있는 것은 陽입니다. 봄에는 온화하고 여름에는 무덥고 가을에는 따스하고 겨울이 되면 온기가 다시 살아납니다. 농사가 이 기운을 타고 이루어지고 백성들이 이 기운을 받아 살아갑니다. 삼가 생각건대, 聖人이 사람들을 교화시켜 나가는 것도 바로 이러할 듯합니다. "(5-20) 하였다. 權近이 陽村이라는 號를 짓고 陽이라고 글자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李行의 '騎牛集' 騎牛說에,
"李 公 周道는 집이 平海에 있었는데, 매양 달이 솟은 밤이면 술병을 들고 소를 타고서 山水 사이를 노닐었다. 무릇 경치를 감상할 때에는 빨리 달리면 잘 볼 수가 없고 천천히 가야 그 오묘함을 모두 감상할 수가 있는 법이다. 말[馬]은 빠르고 소[牛]는 느리니, 소를 타는 것[騎牛]은 천천히 가고자 해서이다."(7-377) 하였다. 李行이 號를 騎牛子라고 지은 이유가 천천히 가면서 여유 있게 모든 것을 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자연의 경치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을 천천히 여유 있게 하려고 한 李行의 삶의 지표가 담겨 있다.


柳方善의 '泰齋集' 泰齋滑稽錄에,
"泰齋는 方善의 自號이다. 어떤 사람이 와서 위문하며 말하였다. 지금 자네가 평민이 되어 이름이 호적에 올라 있으니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해도 밥도 배불러 먹지 못하고 옷도 따뜻이 입지 못한다. 밖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자네를 무시하고, 집에 오면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울어 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딱한 처지로서 자네만큼 곤궁한 자도 없을 것인데, 泰자로 호를 삼은 것은 어째서인가? 方善이 이렇게 답하였다. 자네가 어찌 나를 알겠는가. 전에 내가 남쪽으로 귀양을 갈 때에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눈앞에 닥쳤는데도 마음이 담담하여 아무 걱정이 없었네. 이것이 泰가 아니고 무엇인가. 술이 있으면 걸러 마시고, 술이 없으면 사다 마시고,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얼근히 취하면 그치네. 자연을 노래하며 홀로 즐기면서 일찍이 窮達에 대해서 마음에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 泰한 자가 아니고서도 가능한 일이겠는가. 한 번 환난을 만나면 근심스런 얼굴로 괴로워하며 날마다 여위어 가다가 마침내 죽게 되는 것은 소인배들이나 하는 짓이다."(8-658) 하였다. 泰는 크고 잘되고 태연하다는 등의 뜻을 가진 글자이다. 생활이 그토록 곤궁하면서 泰자로 號를 삼은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생활은 곤궁하지만 살아가는 마음의 자세가 泰이기 때문에 泰齋라고 號를 지었다고 한 것이다.


崔忠成의 '山堂集' 山堂書客傳에,
"書生이 어떤 사람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성이 무엇인지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다. 山堂에서 독서를 하며 지내는데 儒者의 기상이 있었다. 스스로 山堂書客이라고 불렀다. 그 사람됨이 담박한 것을 좋아하는 성품을 지녔고 화려한 것은 아주 싫어하였다. 남들이 칭찬을 하여도 좋아하지 않았고 남들이 헐뜯어도 마음에 두지를 않았다. 남들이 알아 주기를 바라지도 않았고 이름이 드러나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있는 대로 먹고 있는 대로 입고 지내면서 추위와 배고픔을 참고 밤낮으로 책을 읽으며 보냈다."(16-599)하였는데, 朴世采가 지은 山堂集跋에,
"山堂書客 崔 公은 諱는 忠成이고 字는 弼卿이다."(16-601)하였다. 山堂書客이 崔忠成의 自號임을 알 수가 있다. 山堂處士라고 한 곳도 있다.


申用漑의 '二樂亭集' 序에,
"公은 諱가 用漑이고 字는 漑之이다. 추증한 諡號는 文景公이다. 二樂은 그의 亭名인데, 대개 仁智의 뜻을 취한 것이다."(17-192) 하였다. '論語'에 있는 "어진 이는 산을 좋아하고 슬기로운 이는 물을 좋아한다[樂山樂水]."에서 따온 것인데, 이때의 '樂'은 '요'라고 읽으므로, 申用漑의 號는 '이락정'이 아니라 '이요정'으로 읽어야 옳을 것이다.


姜渾의 '木溪逸稿' 神道碑銘에,
"公은 號를 木溪子라고도 하고 東皐子라고도 하였는데, 조정에서 물러나 지낼 때에 거처하는 곳의 이름을 가지고 號를 삼은 것이다."(17-192) 하였다. 木溪라는 지명으로 號를 삼은 것이다.


申光漢의 '企齋集' 文簡公行狀에,
"만년에 서울 동쪽 성밖 駝駱山 아래에 거처를 정하고 살았는데, 골짜기가 깊고 경치가 아주 좋았다. 두 아들과 함께 그곳에서 시를 읊으며 지냈다. 스스로 駱峯이라고 하고 또 靑城洞主라고도 하였다. 거처하는 書齋의 이름을 企齋라고 하였다."(22-384)하고, 같은 책에 있는 企齋記에,
"서재를 企齋라고 이름 붙였는데 무엇을 企한다는 뜻인가. 나의 할아버지를 企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의 할아버지께서 堂의 이름을 希賢이라고 하셨으니, 내가 할아버지를 企하는 것은 賢을 희망하는 것이다."(22-471)하였다. 駱峯은 駝駱山 봉우리라는 의미이고 靑城洞主는 靑城洞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企齋라는 號는 書齋의 이름에서 나온 것인데, 申光漢의 할아버지 申叔舟의 書齋 이름이 希賢堂이었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추구하던 希賢의 뜻을 본받고자 한 것이다. 企자는 발돋움을 하고 바라본다는 뜻이다.

金正國의 '思齋集' 八餘居士自序에,
"손님이, 여덟 가지 넉넉한 것[八餘]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내가 답하였다. 나물국에 보리밥이 배부르기에 넉넉하고, 부들자리 편 온돌방이 누워 있기에 넉넉하고, 솟아나는 맑은 샘이 마시기에 넉넉하고, 방안 가득 꽂힌 책이 보기에 넉넉하고, 봄 꽃과 가을 달이 감상하기에 넉넉하고, 새소리 솔바람 소리 듣기에 넉넉하고, 눈 속의 매화 서리 맞은 국화는 꽃 향기 맡기에 넉넉하고, 이 일곱 가지 넉넉함을 가지고 있으니 내 즐거움이 넉넉하네. 그러니 넉넉한 것이 여덟 가지가 아닌가."(23-44)하였다. 金正國이 만년에 자신의 號를 八餘居士라고 한 데에 대해서 그 여덟 가지 넉넉한 것을 조목별로 설명한 것이다.


李濟臣의 '淸江集' 淸江居士對에,
"利慾이 일어나면 마음이 어지러워지고 風波가 일어나면 강물이 흐려진다. 마음은 강과 같은 것이다. 風波가 멎으면 강물이 맑아지고 利慾이 사라지면 마음이 깨끗해진다. 강은 마음과 같은 것이다. 강물의 맑음과 흐림을 가지고 내 마음의 깨끗함과 어지러움을 살필 수 있다. 나는 강물의 맑음을 본받아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싶다. 그래서 몸은 비록 산에서 살지만 마음은 늘 강에 가 있다. 몸은 밖이고 마음은 안이니, 몸이 거처하는 산으로 호를 삼지 않고 마음이 가 있는 淸江으로 號를 삼은 것이다."(43-503)하였다. 李濟臣은 대대로 서울 남산 아래에 살았는데, 號가 淸江居士였다. 맑은 강물의 속성을 본받고자 하여 이렇게 號를 지었다는 설명이다.


趙宗道의 '大笑軒逸稿' 趙大笑軒傳에,
"趙宗道는 字는 伯由이고 咸安에 살았다. 사람됨이 기개가 있고 강직하였으며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해학을 잘하여 많이 웃겼고 자신도 웃음이 많았다. 그래서 大笑子라고 自號하였다."(47-436) 하였다. 해학을 잘하고 잘 웃는 성품을 가지고 號를 삼은 경우이다.
申湜의 號는 拙齋 혹은 用拙齋인데, 洪可臣의 '晩全集' 拙齋記에,


"先王朝 때에 임금께서 하루는 조정의 신하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시다가 申湜을 보고 '湜은 拙하다'라고 하셨는데, 申湜이 이 말을 가지고 자신이 거처하는 곳에 用拙이라고 편액을 달았다."(51-456)하였고, 申欽의 '象村集' 用拙齋贊에서도,
"申湜이 승지로 있을 때에 조정에서는 申湜을 중국 사신의 接伴官으로 임명하려 하였는데, 宣祖大王께서 '湜은 拙하다'고 하셨다. 申湜이 이 말로 자신의 號를 삼았다."하였다. 중국 사신을 상대하려면 대단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야 하는데, 宣祖가 申湜은 재주가 없어서 안 된다고 하였다. 申湜은 신하의 능력과 사람됨에 대해서는 그 임금이 가장 잘 아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 말로 자신의 호를 삼았다.


齋號는 일반적으로 자신이 짓는 것이지만 더러 부형이 지어 주는 경우도 있었다. 李廷?귀의 '四留齋集' 忍齋說에,
"작은 일을 참지 못하면 큰 일을 망치고, 참을성이 있어야 일을 이룰 수가 있다고 하였다. 내가 세상을 오래 살면서 많은 일을 겪고 나서 비로소 공자의 이 말씀이 참으로 옳은 말씀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참을 忍자 한 자로 평생을 살아왔는데,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제 너의 齋號를 忍자를 넣어서 짓는다."(51-311)하였다. 이것은 아버지가 아들의 齋號를 지어 주면서 쓴 글이다.


申欽의 號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象村 이외에 玄翁, 南皐 등이 있는데, '象村集' 玄翁說에,
"옛날에 내가 어렸을 때에는 스스로 敬堂이라고 불렀었고, 장성한 뒤에는 百拙이라고도 하고 南皐라고도 불렀는데, 몇 해 사이에 玄翁이라고 바꾸었다. 玄이라는 것은 색깔이 없고 꾸밈이 없고 채색이 없는 것으로서 검게 물을 들일 수도 없고 희게 표백을 할 수도 없다. 그 오묘한 질박함은 至人의 속마음과 같은 것이다."하였다. 敬堂이라는 號는 공경스러운 마음을 지니려는 의지에서 지은 것이다.

儒學에서는 敬以直內 義以方外라고 하여 敬과 義를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생각하였다. 百拙은 꾸밈없고 질박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拙은 巧에 상대되는 말로서, 巧는 영악스럽고 교묘하고 재주 많은 것을 의미하는 글자이고, 拙은 둔하고 어리석고 자연스럽고 순수하고 꾸밈없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南皐는 남쪽 언덕에 있는 자신의 거처와 관계되는 호이다. 玄은 높고 높은 하늘의 빛깔이고 깊고 깊은 물의 빛깔이다. 인위적인 채색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오묘한 색이다. 申欽이 만년에 玄翁이라고 호를 지은 것은 그의 道家的인 인생관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號는 주로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字와 名을 대체하기 위하여 짓는다. 齋號나 堂號 등과 같이 자신의 書室 이름으로 號를 삼는 경우도 있고, 地名이나 山川의 이름을 따다가 號를 삼는 경우도 있으며, 자신이 지향하는 삶의 목표이거나 터득한 철학적인 개념을 가지고 號를 삼는 경우도 있다. 齋, 堂, 菴, 谷, 溪, 軒, 亭, 村, 巖, 隱 등 끝에 붙는 글자는 큰 의미가 없고 그 앞에 붙는 글자가 號의 뜻을 담은 글자이다. 지명이나 서실 이름 등을 號로 사용하는 경우는 자신을 간접적으로 지칭하는 것이고, 翁, 居士, 子 등의 글자가 뒤에 붙는 號는 자신을 직접 지칭할 때 주로 사용하였다.


號를 짓고 나면 친구에게 부탁을 하여 號에 대한 說, 記, 傳 등을 짓게 하거나 스스로 이런 글을 지어서 號를 지은 뜻을 기록하였다.
號는 字와는 달리 한 사람이 여러 개를 소유하는 경우도 많다. 당시에 일반적으로 쓰이고 불리던 號보다는 후세에 그 사람의 文集名으로 정해지는 號(齋號, 堂號 등)가 오늘날 많이 알려진 號로 정착되었다.


4. 나라에서 지어 주는 이름 


가) 시호(諡號)
나라에서 지어 주는 대표적인 이름은 諡號이다. 諡號는 죽은 뒤에 그 사람의 일생의 행적을 종합하여 평가하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禮記'에 "죽으면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에 諡號를 짓는데, 諡號는 그 이름을 대체하는 것이다." 하였다. 그래서 諡號를 정하는 일을 易名之典이라고 하였다.
諡號는 諡法에 의하여 조정의 대신들이 의논하여 짓는다. 諡法은 諡號에 쓸 수 있는 글자를 정하고 그 글자에 담긴 뜻을 설명한 것인데, 諡號를 받을 사람의 일생의 행적을 諡法에 있는 조항과 비교하여 가장 합당한 글자로 諡號를 짓는다.
우리나라의 諡號에는 文貞, 文忠, 文簡, 文純 등, 文자가 들어가는 諡號가 가장 많으며, 忠貞, 忠武 등 忠자가 들어가는 諡號도 많다. 諡法에는 여러 가지 글자가 있으나 諡號에는 대개 몇몇 글자가 주로 쓰였으며, 같은 諡號가 여러 사람에게 사용되었다.
임금의 諡號는 여러 글자로 지었다. 예컨대, 中宗의 諡號는 恭僖徽文昭武欽仁誠孝이고 仁祖의 諡號는 憲文烈武明肅純孝이다.


나) 묘호(廟號)
廟號는 임금이 죽은 뒤에 임금의 廟에 붙이는 이름이다. 오늘날 우리가 世宗이니 英祖니 하고 부르는 것은 廟號이다. 廟號에 사용되는 글자도 諡法에 따라 정한다. 廟號도 諡號를 정할 때에 조정의 대신들이 의논하여 정하는데, 때로는 이미 지었던 廟號를 바꾸는 경우도 있다. 仁祖의 처음의 廟號는 烈祖였는데, 뒤에 仁祖로 바꾸었다. 중국 南唐의 임금 徐知誥의 廟號에 烈자를 사용했기 때문에 바꾼 것이다.
廟號를 지을 때에 뒤에 붙이는 글자는 宗과 祖가 있는데, 나라를 세운 임금으로서 始祖가 되는 경우이거나 임금이 父王의 王業을 직접 이어받지 못한 경우에는 祖자를 붙이고, 父王의 王業을 직접 이어받은 경우에는 宗자를 붙인다.



5. 맺음말 

이름은 언제 누가 짓느냐에 따라서 세 가지로 나눌 수가 있다.


첫째, 대체로 20세 이전에 父兄이나 스승 또는 친구가 지어 주는 이름이 있다. 兒名, 本名, 字가 여기에 속한다. 이 이름들은 본인의 성장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이 지어 준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둘째, 어른이 된 뒤에 주로 자기 스스로 짓는 이름인 號가 있다.

셋째, 본인이 사망한 뒤에 나라에서 지어 주는 諡號와 廟號가 있다.

어릴 때에 부르는 이름이 兒名이며, 어느 정도 성장했을 때에 부르는 이름이 本名이며, 本名과 거의 동시에 지어서 주로 친구들 사이에서 부르는 이름이 字이다. 이들 이름에는 그 이름의 소유자에게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거나 이름의 뜻을 생각하고 실천을 하면서 살기를 바라는, 짓는 사람의 소망에 담겨 있다. 가치관이 확립되고 사회 활동의 폭이 넓어지면 號를 지었다. 號는 名과 字를 체하여 부르는 이름인데, 자신의 거처, 취향, 인생관을 따라 그 뜻을 반영하여 지었다. 字는 名과 마찬가지로 한 개인이 하나만을 소유하였는데, 號는 여러 개를 가진 경우가 많았다. 죽은 뒤에 나라에서 지어 주는 이름에는 諡號, 廟號 등이 있다. 諡號 짓는 일을 易名이라고 하였다. 廟號는 임금의 廟를 지칭하는 이름인데 그 임금을 부르는 이름으로 쓰였다. 이들 여러 가지 이름 가운데에서 名 이외에 가장 널리 쓰였던 이름은 字와 號이다.


이 외에도 封爵號, 官名, 陵號 등도 일종의 이름이라고 할 수 있으나, 사용의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에 다루지 않았다.
위에서 다룬 여러 가지 이름 가운데에서 名을 제외한 이름은 주로 그 시대의 상층 사회에서 사용되었던 이름이다. 오늘날 사용되는 이름은 姓과 名이 대표적이고 부분적으로 號의 잔영이 남아 있다.


■ 참고 문헌
강헌규·신용호(1990), 韓國人의 字·號 硏究, 계명 문화사.
국역 효종실록 1집(1990), 민족 문화 추진회.
한국 문집 총간 1집-60집, 민족 문화 추진회.
禮記, 淵鑑類函, 象村集, 谿谷集, 貞○集.

[出典]박헌순 (민족문화추진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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