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아당박홍장의 생애와 임란구국활동 聾啞堂朴弘長의 生涯와 壬亂救國活動 관리자 0 2552 0 2018.07.29 15:00 농아당박홍장의 생애와 임란구국활동 聾啞堂朴弘長의 生涯와 壬亂救國活動 장동익 編著 / 2002년6월20일 발행 /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刊 刊行辭發刊辭畵報제1부 第1章 朴弘長의 家系 = 3 第2章 朴弘長의 生涯 = 16 第3章 朴弘長의 壬亂救國活動 = 43 第4章 朴弘長의 後裔 = 65제2부 第1章 聾啞堂實紀와 이에 대한 檢討 = 73 第2章 東槎錄과 이에 대한 檢討 = 150 第3章 其他 朴弘長에 관련된 資料 = 209參考文獻 = 249索引 = 255 ☞ 박홍장(朴弘長)에 대하여 1558(명종 13)∼1598(선조 31). 조선 선조 때의 무관. 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사임(士任). 호는 농아당(聾啞堂). 연일현감(延日縣監) 등을 역임한 세렴(世廉)의 아들이며, 경상좌도병마절도사,인동부사,경상도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한 의장(毅長)의 아우이다. 본시 무관으로 평안도의 아이만호(阿耳萬戶)주1,선전관(宣傳官),제주판관(濟州判官),제주조방장(濟州助防將),영암군수(靈巖郡守),대구부사(大邱府使) 등을 역임하였으며 특히, 1596년(선조 29) 대구부사(大邱府使)로 있을 때 유성룡(柳成龍)의 추천으로 통신부사가 되어 정사(正使) 황신(黃愼 1562~1617)과 더불어 강화의 중책을 띠고 일본에 갔다. 도요토미(豊臣秀吉)가 조선사절을 멸시, 국서에 답하지 않았으나 조금도 굴함이 없이 국가의 체면을 욕되게 하지 않고 돌아온 뒤 가자(加資)되었다. 그해 순천부사로 임명된 기록이 보이나 부임한 사실이 없고, 이듬해 상주목사겸 상주첨병마절도사에 임명되었지만 안타갑게도 병이 심하여 부임하지 못하고 41세에 졸(卒) 하였다. 사후에 형 의장(毅長)과 함께 영해(寧海)의 구봉정사(九峰精舍:1785년 구봉서원으로 승격)에 제향되었다. 1596(선조29) 通信副使 朴弘長의 生涯와 그의 동차록 http://www.riss4u.net/link?id=A30055190 주) 1.아이만호(阿耳萬戶): 압록강에 인접해 있는 평안도 벽동군에 위치해 있는 변경수비대의 지휘관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