령(齡)祖의 先配, 後配의 가계도 관리자 0 3234 0 2018.11.06 11:04 2013.01.09. 22:38*) 해석//도표중 상단 부문이 선배(先配)이신, 서원(청주)이씨 관계도 이며, 권씨(權氏)家 에서도권보(權溥)가 큰 집이고, 아래 권중달(權仲達)이 작은 댁 입니다.하단 부문이 죽산(竹山)안씨 관계도 입니다.공교롭게도, 선,후배(先,後配)의 부(父)들이 모두 안동권씨 가문과 혼맥이 되어 있는 관계로저와 같은 상세한 내용이 전해 질 수 있었다고 봅니다.*)우선 경이로운 자료로 봐야 합니다. 안동권씨성화보(安東權氏成化譜)를 수 차 읽어본 바에 의하면, 너무나 방대한 혼맥에 놀랍고, 그 화려한 인맥에 경악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려말, 선초(성화보 간행까지)에 그 많은 역모나, 불충에, 크게 화를 당하지 않았다 함은 훌륭한 혼맥으로 내밀하게 유대된 보이지 않는 큰 힘이 어떤 형태로든 작요 했으리라, 숨기지 않습니다. *)기막힌 사실은 포천의 홍간(弘幹)祖 의 저 많은 후손이 흔적도 없다는 사실은 나를 우울하게, 슬프게 합니다. *)정평(定平)파조 인 홍직(弘直)祖 의 무후(无/無后/절손 을 말함.) 표기는 조선왕조실록 박령(朴齡)의 졸기에도 언급 되지 않는 점은 그 분(홍직)의 존재를 감춰야만 하는 불가피한 시대의 사회상 임이 틀림 없는 것이며, 그 시대의 사회통념을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인정 하지 않을 수 없는 서글픈 사실 인 것 입니다.*)우리 파조(派祖)이신 홍신(弘信)祖 의 명(名)은 짐작은 크게 가는 바이나, 사견 이므로 추후 발표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작년 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에 상기 공신(恭信)으로 표기 된 부문을 개인 청원으로, 홍신(弘信)으로 수정 관철 시킨 일이 잘못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입니다. 그렇더라도, 조선왕조실록을 근거 했으므로 과오는 아니겠으나, 령(齡)祖 의 졸(卒)년은 1434년 이고, 이 성화보(成化譜)는 1476년 이므로, 이 자료를 사용하고 원용 하는 것이 맞는다는 생각 입니다. 그러하기에 경(璟)의 인물 사전에 표기된 공신(恭信)이 맞는다고 봐야 하는 것 입니다.*)또한 홍신(공신)祖 의 큰딸이 존재 했으며, 통구리 묘소의 묘갈문에 비춰진 조종(趙琮) 즉 작은 사위만 갈명 된 것으로 보아 큰 사위(朴 陽昌)은 홍신(공신)祖 보다 일찍 졸(卒)했음이 명확 할 것 입니다.*)마지막으로 맨 하단의 홍지(弘智)의 관직명 이 표기된 점(사정/司正/正七品)과, 현재 고흥에서 밝히고 있는 세 아들 위에 두분의 적녀(適女) 존재 했으며, 그 아래의 세 아들(由元, 由貞, 由昌)은 이 자료가 수집될 즈음에는 출생도 하지 않았다는 증거 일 수도 있을 것 입니다. 유추해 보면 1476년 이후 출생 이거나,(의문은 크지만),아니면 적자(適子)가 아닐 수 있는 문제 이며, 왜냐 하면, 바로 위 형 이신 홍신(공신)祖 와의 나이차가 있을 수 있으며, 그들의 누님인 두분의 존재가 증거 할 수 있을 것이고,경(暻)祖 가 명기 된 점으로 봐서도 거의 틀림 없는 것으로 생각이 미칩니다.*)경(璟) 祖 의 문과 별시 등과년도가 성종10년 (1479 기해년) 인데, 등과방목의 단자에 전직이 려절(勵節)로 표기 되어 있는 것으로 유추 해보면, 1476년-1479 이 사이에 말단직인 려절(勵節)직으로 출사 하신 것은 틀림 없겠습니다.앞으로이러한 요지 부동의 자료를 배제 시키고자 하는 족친이 있어서는 절대 안될 것 이며,행여, 이를 부정 하고자 하는 종친이 계시면, 부정 하는 근거를 제시 해야 할 것이고,아무런 근거 없이 고증을 부정 하지 않기를 진정 바라 마지 않습니다.혹, 그러한 기도를 꾀 하거나, 시도 하는 종친이 나선다면, 나는 어떠한 곤란한지경이 올지라도 그 행위의 기도나, 실행을 저지키 위해 중대한 결심을 할 수 있을 것 이며, 무한의 극한 대립도 당당하게 맞설 것 임을 밝혀 글로 남깁니다. 新羅紀元 2069 壬辰11月28日(陰) 襄 靖 公 後裔 甲 洙 拜手稽首謹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