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시호일람표 (諡號一覽表) (시호 가나다순) 관리자 0 3059 0 2018.12.16 20:44 시호(諡號) 그 기원은 확실치 않으나, 중국에서부터 시행된 듯 하며 요(堯)· 순(舜)·우(禹우) 등도 시호로 해석된다. 그러나 시법(諡法)의 제도가 정해진 것은 주(周)나라 때인 듯 하며, 후에 진시황(秦始皇)의 명에 따라 일시 폐지하였다가 한(漢)나라 때에 다시 사용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514년(신라 법흥왕 1) 왕이 죽자, 지증왕(智證王)이라는 시호를 지어준 것을 시초로하여 조선 때까지 계속되었다.숭문주의(崇文主義)사회에서는 문(文)자가 최고의 영예였으며, 이외에도 정(貞)·공(恭)·양(襄)·정(靖)과 무관에게는 충(忠)·무(武)·의(義) 등이 자랑스러운 글자였다.시호를 받는 다는 것은 가장 영예로운 표창으로 족보에는 물론, 묘비(墓碑)에도 기입되는데 그 중요성 때문에 글자문제로 시비(是非)와 논란(論難)이 많았으며, 뒷 날에 개시(改諡)를 요구하는 일도 많았다.한편 김굉필<金宏弼: 문경공(文敬公)>·정여창<鄭汝昌: 문헌공(文獻公)>· 서경덕<徐敬德: 문강공(文康公)>·조광조<趙光祖: 문정공(文正公)>·김장생<金長生: 문원공(文元公)> 등은 정2품의 벼슬이 못되었어도 시호를 추증받았다.무인(武人)의 시호로 가장 영예스러운 충무공(忠武公)은 이순신(李舜臣)장군의 대명사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남 이(南 怡)·김시민(金時敏) 등 8명이나 있다. 또한 연산군(燕山君)이나 광해군(光海君)은 시호를 못 받은 임금들이다.○ 시호(諡號)란?왕 또는 종친(宗親). 정 2품 이상의 문무관(후에는 정2품 이하에까지 확대), 국가에 공이 많은 신하들 학문이 뛰어나 존경을 받은 유학자(儒學者)들에게 그들이 죽은 뒤, 생전(生前)의 행적(行蹟)을 칭송하여 국가에서 추증(追贈)하는 이름을 말한다. 임금이 내려 주는 호를 시호(諡號)라 하였다. 시호를 내려 주는 것을 증시(贈諡)라고 하였으며, 죽은 뒤 장례 전에 증시하지 못하고 훨씬 뒤에 증시하게 되면 그것을 추증시(追贈諡)라고 하였다.1. 증시(贈諡)의 대상은 1). 종친(宗親)과 문,무관(文,武官)중에서 정2품이상의 실직(實職)을 지낸 사람이 (단, 친공신(親功臣)은 관직이 낮아도) 죽으면 시호(諡號를 주었다. 2). 그 뒤 영조때에 속대전(續大典)을 편찬 하면서 범위가 확대되어 대제학(大提學)을지낸자는 종2품 이라도 시호를 주며, 현(儒賢) 및 절의(節義)에 죽은 사람으로서 특히 유표(有表)한자는 정2품이 아니더라도 특별히 시호의 하사(下賜)를 허락 하였다.2. 시호의 제정은 봉상시(奉常寺)의 정(正)이하 관원이 상의하여 결정하는데 1). 수시인(受諡人)의 자손이나 관계자들이 죽은이의 행장(行狀)을 적은 풍의서(稟議書)를 예조에 제출하면 이를 심의한 뒤 봉상시(奉常寺)를 거쳐 홍문관에 이송하고, 2). 홍문관은 정4품 응교(應敎) 이하의 관원 3인이 모여 시호의 삼망(三望)을 의론하여 봉상시에 회부하고, 3). 봉상시는 정(正)이하 제관원(諸官員)과 홍문관 응교의 참석하에 회의 하여 결정하며, 4). 결정된 시호는 의정부 사인(舍人)과 검상(檢詳) 중 1인의 서경(署經)을 받아 수시인(受諡人)의 행장(行狀)과 함께 이조에 제출하면, 5). 이조에서 상주하여 삼망(三望)중 하나를 낙점(落點)받는다. (참조 : 大典會通 吏典)3. 시호에 사용되는 글자는 文·忠·貞등 다음의 121자로 정하여 졌는데 그 중에서 생전의 행적에 맞는 두 글자를 조합하여 시호를 하사(下賜)하며 시호 아래에 '公' 자를 붙이어 부른다4. 시호 자순 (諡號 字順) 文·忠·貞·恭·襄·靖·良·孝·莊·安·景·章·翼·昭·平·僖·武·康·正·肅·仁·敬·定·惠·懿·憲·烈·獻·簡·元·成·純·穆·敏·毅·節·淸·宣·顯·順·端·剛·榮·壯·齊·義·溫·度·長·明·匡·(恪)·潔·達·(裕)·(桓)·胡·信·質·夷·愍·悼·頃·介·(白) (隱)·(修)·丁·玎·懷· (果)·(聖)·(神)·(智)·弘 嚴·和·光·熙·昌·宗·愼·(諒)·謙·(聰)·(善)·德·儀·英·克·譽·殷·寬·密·靜·(淵)·眞·通·坦·堅·嘉·彬·(容)·益·衛·直·愷·休·靈·思·墨·荒·(閔)·(哀)·麥·(懋)·戴·魏·료· (以上 121字) (참조 : 文獻備考 제239권 東國見行諡法)5. 역대 명신시호(名臣諡號)를 고찰 하건데 신라시대 : 6인, 고려시대 : 528인, 조선시대 : 2,007인 등 환관(宦官) 2인을 포함하여 총 2,541명이 시호를 하사받은 기록이 있는데 전항의 ( )글자 18字는 명신의 시호에는 적용된 바 없으며, 위 글자 외에 아래 20자가 예외적으로 추가 사용된 기록이 있다. (淑·翊·厚·寧·威·亮·儒·敦·奉·濟·望·彰·凱·樂·積·世·廉·凝·祁·편 참조 : 文獻備考 제 240∼241권 歷代名臣諡號)※ 공지 : 시호록 내용은 문헌비고(文獻備考), 한국고사대전(韓國故事大典), 범김씨약사를 근거로 제작 되었으며 사전에도 없는 한자가 있어 오류가 있을수 있으며 혹시라도 아시는 분은 계시면 지적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호록 일람표는 이름으로 해서 가나다순으로 정리하였습니다.조선왕조 시호일람표 諡號一覽表 (가나다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