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관청명 해설 관리자 0 2249 0 2019.11.19 15:36 [고려시대의 관청명(가)]관청명: 해 설 가각고(架閣庫):고려때 궁중의도서,전적(典籍)을 맡아보던 관청,1356년에 설치, 종 7품의승과 종 8품의 주부를 두었다 가옥(假獄):고려 광종 때 전옥서 이외에 임시로 설치한 옥. 감문위(監門衛):고려때 육위의 하나,궁성(宮城) 안팎의 모든 문을 경비하는 임무를 맡았으로1령으로 조직상장군,대장군,각 l인,장군 1인,중랑장 2인,낭장 5인, 별장 5 인,산원 5인,위 20인,대정 40인등이 배속되었으며 이외에도 장사(長史 = 종 6 품)1인, 녹사(錄事=정 8품) 2인,이속으로 사(史)3인,기관(記官)2인이 있었다 견룡(牽龍(덧말:견룡)):임금이 있는 궁궐을 호위하던 관청 지금에 경호실 결혼도감(結婚圖鑑):원나라에서 요구하는 여자들을 선발코자 설치한 관청 . 경력사(經歷司):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 안에 둔 관청으로 6방(六房)을 통할함. 경사교수도감(經史敎授都監):7품 이하의 벼슬아치에게 경사를 가르치던 관청. 경시서(京市署):고려때 개경(開京)의 시전을 관장하던 관청 목종때 영(정7품) 1명, 승(정8 품) 2명을 두었고, 충열왕때는 영을 권참(權參)으로 고쳤고 승을 3명으로 증가 시키고 공민왕때는 승을 강등하여 종 8품으로 했다.이속으로는 사(史)3명 기관(記官) 2명을 두었다. 고공사(考功司):관리의 공과(功過)를 심사판정하던 관청. 공부(工部):상서성(尙書省) 소속의 6부(六部)중 하나로 공업과 농업을 맡아 관장하는 기관이며, 지금의 통상산업부농림부. 공역서(供驛暑):고려때 군수품(軍需品)의 조달기관. 문종 이후 전시과(田柴科)의 장비와 더불어 공역서의 기관도 정비되었는데 영2인, 승2인 등의 관원을 두었고 각도 의 우역(郵驛)을 관리하여 명령의 전달 역마(驛馬)의 동원 등 군사상 중요한 임무를 맡았으며, 1276년 몽고가 설치한 포마차자색(?馬箚子色 )도 공역서와동일한 직무를 맡았다 공조서(供造署):궁중의 장식기구(裝飾器具)를 맡아 보던곳으로 1310년 이래 중상서(中尙署)를 공조서라 고쳤다. 그 뒤 명칭이 여러차례 변경되었다. 고려 문종때의 관원은 영(令=정6품) 1명, 승(承=정8품) 2명, 이속으로는 사(史) 6명, 기관(記 官) 2명, 산사(算士) 1명이었다. 광군사(光軍司):광군(光軍)을 통할하던 관청. 관습도감(慣習都鑑):음악을 맡아 보던 관청으로 아악(雅樂)향악의 모든 악기 악곡 악보를 정리하는 일을 보았다. 광흥창(廣興倉):고려.조선 때 관리들의 녹봉(禮俸)을 맡아 보던 관청. 충렬왕 때 설치, 관원으로는 사,부사,승 각 1명이었으며 주부1명을 종8품관 중에서 임명하였다 교방(敎坊):고려 초부터 있는 여악(女樂)을 맡아본 관청. 교정도감(敎定都監):최충헌(崔忠獻)이 세운 관청으로 비위(非違)의 규찰, 인사행정(人事行政), 세정(稅政)을 맡아보았다. 국자감(國子監):국립대학으로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이며 지금의 서울대학교와 같다. 군기감(軍器監): 군기시(軍器寺)모든 군사에 필요한 병기를 제조하고 무기를 조달하던 관청 목종때 설치한 것으로, 1208년에 민부(民部)에 병합, 1356년(공민왕, 5) 다시설치, 후에 군기시로 개칭하였다. 문종때의 기준으로 보면 속관에 판사 1인, 감(藍 =정4품)1인, 소감, 승, 주부의 이속들이 있섰다. 군자시(軍資寺):고려때 군수품을 저장하던 관청, 1390년 (공양왕, 2)소부시(小府待)를 없애 군시를 두고 또 전수도감(轉輪都監)을 폐지, 군자시에서 그 전곡문서(錢곡문書)를 관장케 했다. 소속 관원은 판사(정 3품), 윤(종3품), 소윤(종 4품), 승(종6품), 주부(종7품) 등이 었다. 군후소(軍候所):고려 말 병학(兵學)을 담당한 관청. 궁궐도감(宮闕都監):궁궐의 건립이나 중수(重修) 등의 일을 맡아본 관청. 금살도감(禁殺都監):우(牛)마(馬)의 도살을 금하던 관청. 급전도감(給田都監):전시과(田柴科)의 시행과 동시에 전지 분급을 맡아보던 관청. 금오위(金五衛 ):고려 때 군제,육위의 하나,경찰의 엄무를 띠고 있었던 금오위는 정용(精勇)6령과 역령(役領)1영으로 구성되였으며,상장군,대장군 각 1명, 장군 7명, 중랑장 l4명, 냥장, 별장, 산원 각각 35명, 위 140명, 대정 280명의 장교가 배치되었었다. 충선왕 때 비순위(備巡衛)로,1356년(공민왕 5)에 금오위가 되었다가1362년 다시 비순위로 개칭했으나 1369년 명칭이 환원되는 등 번갈아 자주 바뀌었다. [고려시대의 관청명(나)]내방고(內房庫):재화(財貨)의 보관을 맡아보던 관청.고려 때의 관청,1309 년에 운진창을 부흥창(富興倉)에 병합하고 후에 의성창(義成倉)이라 하던것을 1325년에 개정한 것이다 . 1330년에 다시 의성창으로 하였다가 1355년에 내방고로 환원 하였다. 속관으로 충선왕 때 사(使=종 5 품) 부사(副使=종 6 품) 승(丞=종 7 품)을 두었다 내부시(內部寺):재화(財貨)의 보관을 맡아보던 관청. 내시부(內待府):고려 때 환관(宦官)을 맡아 보던 관청 , 1356 년 환관직을 고쳐 내상시(內常待),내시감(內待藍),내승직(內承直) 궁위승,해관령,내첨사등을 두었다가 후에내시부를 설치,우왕때 폐지,공양왕 때 다시 두었다.공민왕 때의 속관을 보면 판사(判(덧말:판)事,정2품)1인,검교(檢校 = 종2품)3 인,지사(知事=정3품)1인 첨사,동지사,동첨사,좌승직,우승직,좌부승직,우부승직,사알,궁위승,혜관령,급사,통사등이 있다 내승(內乘):고려 말 궁중(宮中)의 승여(乘輿)를 맡아보던 관청. 내원서(內園署):고려 때 모든 원원(園苑)을 맡아 보던 관청, 1308년 사선서의 관할로 되었다. 문종 때 영2인, 승2인, 등이 있었고 이속으로는 사4인, 기관2인, 산사( 算土) 1인 등이 있었다 [고려시대의 관청명(다)]대묘서(大廟署):제사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의 하나. 대부시(貸付寺):어의(御衣)의 원료인 여러 가지 면직물을 저장하고 이를 조달하던 관청. 대영서(大盈暑):고려 때 창고(倉庫)의 하나. 관원으로는 영,승과 이속으로 사,가관,산사를 두었으며 간수군(看守軍)으로는 장교 2 명을 배치하였다. 대창서(大倉暑):고려 때의 관청. 맡아보던 일은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고려사절요 15 에 보면 1225년 10월에 화재의 위험을 막기 위하여 133,300여섬의 곡식을 저장할 정도의 큰 지하실을 대창서 안에 지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곡식을 받아들여 보관하던 곳으로 보인다. 도교서(都校署):세공(細工)을 맡아보던 관청 특히 목업(木業) 석업(石業) 조각장(塵刻匠) 석장(石匠), 장복장(粧覆匠), 이장(泥匠)등의 전문적인 기술인이 여기에서 일했다. 초기부터 있었으며 1308년에 잡작국離作局)으로 개칭 되었다가 복칭 되었 는데 1391년에 선공시(膳工寺)에 병합되었다. 문종때의 관원은 영(令) 2인 승(承)4인이었고 이속은 감작(藍作) 4인 서령사(書令史), 4인, 기관(記官) 2인이었다 도염서(都染署):염색의 일을 맡아 보던 관청. 도호부(都護府):염색의 일을 맡아보는 관청. 덕천고(德泉庫):고려 때의 관청,충선왕 때 덕천창(德泉倉) 이란 관청이 있었는데,1325 년덕천고로 고쳤다 .속관으로 사,부사승을 두었는데 1325년 전부 없앴다가 1330년에 다시 두었고 규정(糾正) 에 위임하여 이를 감독케 했는데 1355년에 록관(祿官)과 규정을 없애고 제거별감(提擧別監)을 두었다 동문원(同文院): 학문과 문서 기록을 맡아보던 관청. 동서재장(東西材場):목재의 보관 및 조달을 맡아보던 관청. [고려시대의 관청명(마)]문하성(門(덧말:문)下(덧말:하)省(덧말:성)):고려 중앙의정기관으로써 왕명의 출납과 중신의 핵주(덧말:핵)奏(덧말:주))에관한 사무를담당 하였다. 원래 당(唐(덧말:당))의 삼성육부제를 채택한데서 비롯한 것으로, 고려는 국가의 규모가 작다하여 문하성과 중서성을 합하여 통칭 하였음. 문한서(文翰署):왕의 명령을 글로 기초하던 관청. 밀직사(密直司):왕의 명령을 출납(전달)하고, 궁중의 숙위(宿衛 : 궁중의 지키고 왕을 호위함)군사기밀을 담당하는 관청. 고려시대의 관청명(바) 병부(兵部):상서성(尙書省) 소속의 6부(六部)중 하나로, 국방문제와 육해군을 감독하고 무관(武官)의 인사(人事) 등을 맡아 관장하는 지금의 국방부와 같은 관청. 보문각(寶文閣):경연(經筵)과 장서(藏書) 등을 관리하면서 왕을 모시고 경서를 강론하던관청으로 뒤에 경연청(經筵廳)으로 고침. 보원해전고 (寶源解典庫):고려 때의 관청 , 직물 , 피혁을 맡아보던 관청으로 사,부사,승,주부, 사를 두었으며 1391년에 공판서와 제용고를 병합하였다 . 보흥고(寶興庫):1347년 왕이 수탈과 영리를 목적으로 사설(私設)한 관청,보흥고를 설치하여 백성의 땅과 재산을 빼앗아 여기 속하게 하니 간신들이 아부하여 서로 수탈의간계를 고해 바쳐 나라를 소란케 하였다 충목왕때 폐지 되었다. 봉거서(奉車署):궁중의 가마와 승마(乘馬)를 맡아 보았다. 1310년 상승국(尙乘局)을 봉거서로 개칭하면서 그 으뜸 벼슬은 봉어 1명, 직장2명, 이속은 서령사 4명, 승지 5 명이었다. 봉의서(奉醫署):왕실에서사용하는 약(藥)을 조제하는 일을 맡아 보았다. 상약국(尙藥局)이라 하든 것을1310년 장의서(掌醫署)로 고쳤다가 다시 얼마뒤에 봉의서로 개칭,여러 차례 상의국 봉의서로 고쳤다가 1391년 전의시(典醫寺)에 합하였다.관원은 봉어(奉御=정6품)1명,시의(侍醫=종6품)2명 직장(直長=정7품)2명,의좌(醫佐=정9품)2명이 있었으며,이속으로는 의침사(醫針史)2명 약동(藥童)2명 서령사(書令史)2명산사(算士) 2명을 두었다가 충선왕때 봉의서로 개칭하면서 관원을 증여영,직장,의좌를 두었다. 비서성(秘書省):왕의 측근에서 축문(祝文)과 경적(經籍)을 다루고, 임금의 명령을 행하는 기관인데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과 같은 관청. 빙고(氷庫):궁중에 쓰일 얼음을 보관하던 창고를 관리하는 관청. [고려시대의 관청명(사)]사농시(司農寺):제사에 사용되는 곡식과 적전(籍田)애 관한 일을 맡아 보던 관청. 사복시(司僕寺):궁중의 가마와 마필(馬匹)목장(牧場) 등을 맡아보던 관청으로 1308년 태복시(太僕寺)를 사복시로 바꾸었다. 사선서(司膳署):고려때 임금의 식사를 맡아 보던 관청,상식국(尙食局)이라 부르던 것을1308년에 사선서 로고치는 등 여러 차례 상식국,사선서로고쳤다. 문종때의 속관으로는 봉어(奉御=정6품)1명,직장(정7품)2명,식의(食醫=정9품)2명,이속(更屬)으로 서령사(書令史)4명,기관(記官)2명,산사(算士)1명,잡로離路) 8명이 있었다. 사설서(司設署):의식(儀式)등에 소용되는 여러가지 설비를 맡아 보았다. 목종때 상사국(尙舍局)이라 부르던 것을 사설로 고치는등 여러차례 상사서 사설서로 개칭되었다.관원은 봉어1명, 직장2명, 이속은 서령사 4명,기관 2명, 막사(幕士)40명 이었는데,충렬왕때 사설서로 고치면서 제점(겸관, 정5품) 1명, 영 2명, 승 2명, 직장 2명을 두었다. 사수시(司水寺):고려때 병선(兵船)과 수병(水兵)을 맡아보던 관청, 현종때 여진(女眞)과일본의 해적이 출몰하매 진명(鎭漢=현 영흥만) 원흥진(元興律=현 정평) 김해(金海)요진(要律)에 선병도부서사(선兵都府暑司)를 두어 방비케 한데서 시작되어 충선왕때는도부서(都府暑)라하였고 1390년에 사수서라하였다가곧사수시로 개칭하였다. 관원으로는판사, 영 부령 승 주부등이 있었다 사온서(司溫署):궁중에 술을 바치는 일을 맡아 보던 관청,원래 문종때는양온서(良 署)라 부르던 것을 뒤에 장례서(掌禮署)로 고치고,신종때는 양온서로 복구했다가 충렬왕때 선송주색(宣送酒色)을 합하여 1308년에 사온감으로개칭했다.1356년에는 양온감으로 복구하는 여러 차례 개칭되었다.관속의 인원,명칭,품계는 명칭의 변경에 따라 이동이 잦았으나 충렬왕때의 것을 보면 제점(提點=정5품)3명,영(令=정5품)3명,승(承=정6품)3명 직장(直長=정7품)3명 부직장(副直長=정8품)3명등이다. 사역원(司譯院):외국어의 번역과 통역을 맡아보던 관청. 사의서(司儀署):의례의 진행 절목(節目)을 맡아보는 관청. 문종때 영.승을 두었다 사재시(司宰寺):어산물(漁産物)의 조달과하천(河川)의 교통을 맡아보았다.문종때의 관원은사,경(卿=종3품)각1명,소경,승,주부와 이속으로 서사 기관 산사등을두었다.1298년사진감(司律監)으로 얼마뒤에 다시 사재시로고쳤다가다시도진사등여러차례개칭되었다. 사평순위부(司平巡衛府):포도(捕盜)와 금란(禁亂)을 맡아보던 관청. 사헌부(司憲府):정사를 논하고 백관을 감찰하며 기강과 풍속을 발로 잡고 억울한 일을 살피는 관청. 삼사(三司):국가의 전곡(錢穀 : 화폐와 곡식)출납(出納)과 회계(會計)를 맡아보던 기관. 상만고(常滿庫):고려 때의 관청. 일명 대부시하고(大府寺下庫), 궁부(宮府)에 예속된 창고로 원래는 대부시에 있는 하고(下庫)였는데 충선왕때 상만고로 개칭 사,부사,직장 각 1명의 관원을 두었다. 그 후 공민왕때 사,주부를 두고 부사와 직장은 폐지하였다. 상서도관(尙書都官):노비의 부적(簿籍) 및 소송을 맡았던 관청. 상서성(尙書省):행정기관의 최고 기관으로 6부(六部)를 감독하고 모든 관리들을 통솔하는 관청. 서운관(書雲觀):천문(天文) 역수(曆敎) 측후,각루(刻遍)의 일을 맡아보던 관청 국초(關끼에는 태복감藍)과태사국(太史局)으로분치, 1023년에 태복감올사천대(허天臺)로고치고 1116년에 사천감(司天藍)으로다시 개칭, 1275년에 관후서(觀候暑)로불렸다가 다시 사천감으로하였다.여러차례 명칭이 변경되었고속관도관청명의 변경에 따라명칭 수 품계도 변했다. 1308년의 것을보면재점(정 3품) 영, 정, 부정, 승, 주부, 장루(掌漏) 시일(視日) 사력(司曆 감후藍候) 사신(司辰)등이 있었다. 서적점(書籍店):주자(鑄字)와 서적 인쇄를 맡아보던 관청. 선관서(膳官署):제사와 연회에 쓰는 음식을 맡아보던 관청. 선공시(繕工寺):고려때 토목(士木) 영선(營繕)을 맡아보던 관청, 원래 목종 때는 장작감(將作監)이라 칭하였고 1298년(충렬왕,24) 선공감으로 개칭 곧 선공사로 고쳤다가뒤에 선공시로다시 고쳤다. 1356년 장작감으로복구, 1362년 선공시, 1369년 장작감, 1372년에는 다시 선공시로 고쳤다. 속관의 인원, 명칭 품계는 명칭의 변경에따라 변했다. 충렬왕말기에는 판사, 영(令종3품) 부령(종4품)승, 주부 등이며 모두 타관이 겸임하였다. 성균관(成均館):고려 말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유생(儒生)들에게 교육을 시키고 이들에게훈련을 시키는 교육기관. 신호우(神虎衛):고려 때 국방을 담당한 육위(六衛) 중의 하나 보승(保勝) 5령(領 =1 領의정규군은 1000 명) 정용 2령으로 조직, 상장군 1인, 대장군 1인,장군 7인,중랑장 14인,낭장 35인,별장 35인,산원 35인,위 l40인, 대정 280인이 배 속되었다 . 소부감(小府監):나라의 모든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를 관리하는 관청으로 소부시(小府寺) 라고도 한다. 수궁서(守宮暑):고려 때의 관청. 나라의 장막(帳幕) 조달에 관한 직무를 맡았다. 고려사에보이는 사막(司幕)이 수궁서를 가리키는 것 같다. 영,승,사 기관 막사(幕士) 등이있었다. 수복청(守僕廳):묘(廟)능(陵)서원(書院) 등의 제사를 맡아보던 관청. 순군(巡軍):국내 치안을 담당한 경찰의 직분을 맡았으며 지금의 경찰청과 같다. 숭문관(崇文館):문신(文臣) 중에서 학문이 뛰어난 자를 뽑아 학사(學士)로 임명하여 임금의 측근에서 모시도록 마련한 관청. 승지방(承旨房):왕명을 출납을 맡아보던 관청. [고려시대의 관청명(아)]어사대(御史臺):왕의 잘못을 간(諫)하고 백관의 과오와 비행을 규탄하는 기관. 오부(五部):고려 때 개경 (開京)의 행정구역,1398 년 태조는 도시 계획을 세워 서울을 동부,서부,중부,남부, 북부로 나누었다 . 연경궁제거사(延慶宮提擧司):고려 때의 관청,궁궐안에서 전명(傳命) 및 잡역(雜投) 을 맡아보던 기관이다 .문종이래 연경궁에는 사,부사,북사등의 관원을 두었는데 1313 년에 이르러 제거사를 두면서 제거,부제거,제공(提控)사약, 사연(司涓) 등의 관원이 예속되었으며 이속으로는 기사(記事) 기관(記官) 사(史) 등을 두었다. 예문관(藝文館):임금의 칙령(勅令 : 명령)과 교명(敎命)을 기록하는 왕명을 받들어 글을짓고 문학을 관장하는 관청. 예부(禮部):상서성(尙書省) 소속의 6부(六部) 중 하나로 외교관계와 백성의 교육풍교(風敎)등을 관장하는데 지금의 교육부, 외교부와 같은 관청. 예빈시(禮賓寺):나라의 손님을 접대하고 연회를 베풀며 종실(宗室) 및 재상(宰相)을 접대하는 관청. 지금의 청와대 의전과 위위시(衛尉寺):의장(儀仗)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 요물고(料物庫):고려 때의 관청. 왕궁의 미곡을 맡아 보았다. 원래는 비용사(備用司)라는명칭으로 설치되었으며, 1311년 요물고로 개칭, 관원으로 사,부사,주부 등이있었다. 융기도감(戎器都監):군기(軍器) 만드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 응방(鷹坊):매의 사육과 사냥을 맡아보던 관청. 응양군(鷹揚軍):고려 이군(二軍) 의 하나 용호군과 함께 육위(六衛) 보다 뒤에 설치되었으나 육위의 상위(上位) 를 차지하였다 .1영(領)으로 조직 되었으며,무관으로는군(軍)에 상장군(上將軍=정3품) 1명 , 대장군(大將軍=종3품)1명,중랑장(中郞將=정5품)2명 , 랑장(郞將=정6품)2명,별장(別將=정 7품)2명, 산원(散員=정 8품)3명,위(園=정9품)20명,대정(隊正)40명이 배속되었다 . 이 가운데서 상장군,대장군은 각각 근장상장군(近供上將軍) 근장(近俠) 대장군,장군은 친종(親從)장군,중랑장은 근장(近供) 중랑장 등으로 불리었으며,상장군으로서 군부전서 ( 軍繹典書 )를 겸임한 사람은 반주(班主) 라고 일컬었다 . 한편 상장군,대장군은 중 방(重房) 이 설치될때 그 구성원이 되기도 하였다 . 공양왕 때에 일으러 응양군은 팔위 (八衛) 의 하나가 되었다 . 용호군(龍虎軍):고려 이군의 하나,응양군과 함께 육위보다 뒤에 설치되었으나 육위의 상위를 차지 하였다. 2영 으로 조직되었으며, 관으로는 군에 상장군,대장군 각 1 명,영마다 각각 장군 1명,중랑장 2명,랑장 5명,별장 5명,산원 5명,위 20명 대정44 명과 정규군(正規軍 ) 1천명이 배속되었다 . 이 가운데서 상장군,대장군은가각 근장상장군,근장대장군,장군은 천종장군,중랑장은 근장 중랑장등 으로 불리었다 . 한편 상장군 대장군은 중방이 설치될 때 그 구성원이 되기도 하였다.이 군영(軍營)의 명칭은 충선왕때 호분(虎賁) 친어군(親禦軍) 으로 바뀌었다가 뒤에 다시 원형대로 용호군이 되었다 . 공양왕 때에 이르러 용호군은 팔위의하나가 되었다. 이군육위(二軍六衛):중앙군(中央軍)의 조직으로 이군(二軍)은 응양군(鷹揚軍), 용호군(龍虎軍), 육위(六衛)는 좌우위(左右衛)감문위(監門衛)를 말한다. 이부(吏部):상서성(尙書省) 소속의 6부(六部) 중 하나로, 관리의 인사관계와 지방의 관청을 감독하는데, 지금의 내무부와 총무처와 같은 관청. 인물추고도감(人物推考都監):노비(奴婢)의 방량(放良)면천(免賤)쟁소(爭訴) 등을 맡아보던 관청. 인신사(印信司):왕명(王命)의 출납(出納)을 맡아보던 관청. 의염창(義藍倉):고려 때의 관청,소금의 저장(貯藏) 및 배급을 맡아 보았다 . 소금은 고려초기에 이미 국가 전매물 이 되어 도염원을 설치하고 이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게 하였는데 중엽에 와서 권신,부호들의 발호로 전매정책이 해이하게 되자 충선왕 때는 다시 이에 대한 강력한 통제를 가하게 되었다 .그 정책으로 전국에 의염창을 설치 소금을 저장하여 두고 백성들에게 배급 하였다 의영고(義盈庫):고려 때의 관청. 궁중에서 쓰이는 기름, 꿀, 과일 등의 물품을 관리하였다. 1308년에 설치되었으며 관원으로는 사,부사,직장 각 1명을 두었고, 공민왕때 주부를 더 두었다. 의제고(義濟庫):고려 때의 관정,1361 년에 궁부(宮府)안에 두었던 창고로서 관원은 영,승, 녹사각 1 명씩을 두었 다 . 1391년에 혜제고에 병합되었다 . 액정국(掖庭局):고려 때의 관청,왕명의 전달,왕이 사용하는 붓과 벼루,궁궐의 열쇠,견직 등에 한 일을 맡아보던 곳으로 처음에는 액정원이라하다가995 년에 액정국으 로 고쳤다 . 관원은 문종 때에 대알자감, 내시백,대알자 등과 이속으로 감작,서 령사,기관,급사를 두었다 . [고려시대의 관청명(자)]잡직서(雜織署):직조(織造)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 문종 시대에 설치, 직조(織造)에 관한 일을 맡아 보았다. 관원은 영,승가2명과 이속을 두었는데 1308년 잡염국(雜染局)으로 개칭, 도염서(都染暑)에 병합되었다가 다시 독립하였다. 장복서(掌服署):어의(御衣)의 상납(上納)을 맡던 관청, 원래 상의국(尙衣局)이라고 부르던것을 1310년에 장복서로 고쳤다. 여러 차례 상의국, 장복서로 개칭하였다가1391년 공조(工曹)에 병합하였다. 장생서(掌牲署):제사에 사용되는 짐승을 맡아보던 관청. 장흥고(長興庫):고려 때의 관청. 1308년 대부(大府) 상고(上庫)를 장흥고로 삼았으며, 관원으로 사,부사, 직장,주부등을 두었다. 이밖에 간수군(看守軍)으로 장상(將相)3명,장교,잡직장교 각 2명, 군인5명을 두었다 장야서(掌冶署):철공(鐵工)과 야금(冶金)에 관한 일을 맡아 보던 관청. 전객시(典客寺):빈객(賓客)연향(宴享)을 맡아보던 관청. 전교시(典校寺):경적(經籍)과 축소를 관장하던 관청. 전구서(典廐署):가축의 사육을 맡아보던 관청. 전구서(典廐署):조선 초에 목축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 전농서(典農署):궁중의 대제(大祭)에 쓸 곡식을 맡아보던 관청. 전악서(典樂署):성률(聲律)의 교열(校閱)을 맡아보던 관청. 목종시대에 설치한 대악서를1308 년 개칭한 기관으로 영(令=정7품) 장(長) 승(承) 사(史) 직장(直長) 등각 2 명의 관원을 두고 자운방 (紫雲坊)에 예속시켰다. 그 후 1356 년에 대악서를 환원하여 독립관청으로 1362년 전악서 등 여러차례 명칭을 번복하다가 1391년에 종묘의 악가 (樂歌)를 맡아보는 아악서(雅樂暑) 를 따로 설치하여 그 분야의 사무를 전악서에서 분리하였다. 전옥서(典獄暑):죄수를 가두는 곳으로 지금의 교도소와 같다. 건국 초기에 설치, 995년에대리시(大理寺)로 개칭, 문종때 다시 전옥서로 고치고 관원으로 영, 승, 이속으로 사,기관을 두었다. 충선왕때 일시 폐지되었다가 1360년에 다시 설치했다. 전의시(典儀寺):제사(祭祀)와 증시(贈諡)를 맡아보던 관청. 전의시(典醫寺):의약(醫藥)과 치료에관한 일을 맡아 보았다. 원래 목종때부터 태의감(太醫監)이라 일컫던 것을 1308년에 사의서(司醫暑)로 개칭, 뒤에 전의시로고쳤다. 1356년 태의감으로 고치는등 여러차례개칭되었다. 관원은 제점, 영, 정, 부정, 승, 낭(郞 종6품) 직장(直長=종 7품)박사(종8품), 검약(檢藥), 조교(助敎)등이 있었다 전중성(殿中省):대궐 안의 모든 사무를 맡은 기관. 전함병량도감(戰艦兵糧都監):전함의 군량미를 보급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 정포도감(征袍都監):군복(軍服)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 제기도감(祭器都監):제사에 사용되는 기구에 관한 시을 맡아보던 관청. 제릉서(諸陵署):산릉(山陵)의 수호(守護)를 목적으로 설치한 관청. 제왕자부(諸王資府):왕자(王子)의 일을 맡아보던 관청. 제용고(濟用庫):각지에서 진헌(進獻)해온 저마포(苧麻布)피물(皮物)인삼(人蔘) 사여(賜與)하는 의복등을 맡아보던 관청. 제용사(濟用司):저화(楮貨)에 관한 일을 맡아보건 관청. 제위보(濟危寶):빈민(貧民)행려(行旅)의 특산물을 취급하던 관청. 제폐사목소(除弊事目所):나라 안의 큰 폐단을 바로 잡는 일을 맡아보던 임시 관청. 좌우위(左右衛):고려 때의 군제(軍制) 육위(六衛) 의 하나로 보승(保勝) 10령(領)과 정용(精勇)3령으로 조직되었으며,상장군 1 인,대장군 1인이 통솔하고 각 영(領) 마다 장군 1인, 중랑장 2인, 냥장 5인, 별장 5인,산원 5인,위 20인 , 대정 40인씩 배속되어 있었다 . 주전도감(鑄錢都監):조전을 맡아보던 관청. 중방(重房):이군(二軍)육위(六衛)와 상장군(上將軍)대장군(大將軍) 등이 모여 군사(軍事)를의논하던 곳.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국가의 행정을 총괄하는 관청으로, 왕의 조서(詔書)를 만들어심사(審査)하고 시행하는 기관. 중추원(中樞院):기관으로 왕의 자문(諮問)에 응하고 왕명의 출납 및 궁중의 모든 업무를 맡아보던 관청. 집현전(集賢殿):왕실 연구기관의 하나로 경적(經籍)의 간행과 서적의 수집 등을 맡아보던 관청. [고려시대의 관청명(차)]첨의부(僉議府):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과 상서성(尙書省)을 어울러 설치한 관청. 침원서(寢園署):종묘(宗廟)의 수위(守衛)를 담당하던 곳으로 문종때 설치,태묘서(태묘서)라하여 영,승을 두고 이속으로 사(史)기관(記官)을 두었다.다시 침원서라 하여전의시(典儀寺)에 예속 되었다가 여러차례 명칭을 바뀌었다. 천우위(千牛衛):고려 때 육위의 하나,상령(常領) 1령(領,해령(海領) 1령으로 구성되었으며, 상장군,대장군 각1명 , 장군 2명,중랑장 4명,낭장 10명,별장 l0명,산원10명,위40명,대정 80명 등의 군관과 각령(各領) 에 1천명씩의 정규군으로 평성 되었다. 고려시대의 관청명(타) 태복시(太僕寺):나라에서 사용하는 수레와 말을 관리하는 관청. 태사국(太史局):나라에서 사용하는 수레와 말을 관리하는 관청. 태상부(太常府):제사와 증시(贈諡)를 맡아보던 관청. 통례문(通禮門):조회의 의례를 맡아보던 관청. 통문관(通文館):고려때 역어(譯語)를 맡아보던관청,1276년 역인(譯人)이 통역한 사실을 그대로 전하지 않고 사심(邪心)을품어 사리(私利)를 구하는 폐가 많으므로 이를 없에기 위해 참문학사(參文學士) 김구(金丘)의 건의로 통문관을 두었다 . 뒤에 사역원(司譯院)이라 하였는데 금내학관(禁內學官)중에서 참외(參外=7품이하)인 40세 미만의 사람으로 한어(漢語)를 습득케 하엿다 [고려시대의 관청명(파)]팔관보(八關寶):팔관희의 의식비용을 충당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 풍저창(豊儲倉):고려 때 궁궐 안에서 사용하는 미곡(米穀)을 맡아보던 관청. 문종 때 설치한 좌우창(左右倉)중에서 우창을 1308년에 개칭한 것인데, 당시에는 사(使(덧말:사)=정5품) 부사(副使=정6품) 승(承=정7품)등 각 1명을 두었으며, 공민왕때 에 와서 관원의 품계를 각각 1등급식 낮추는 동시에 주부(注簿=8품)를 새로두었다 [고려시대의 관청명(하)]학사원(學士院):사명(寺名)의 제찬(制撰)을 맡아보던 관청. 한림원(翰林院):임금의 명령을 받아서 문서를 꾸미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 합문(閤門):국가의 의식(儀式)을 맡아보던 관청으로 조선 때에 통례원(通禮院)으로 고쳤다. 해전고(海典庫):직물(織物)피혁(皮革)을 맡아보던 관청 행랑도감(行廊都監):시가(市街)의 행랑을 관리하던 관청. 형부(刑部):상서성(尙書省)의 6부(六部) 중 하나로 사법(司法)을 담당하였으며 지금의 법부와 같은 관청. 형조도관(刑曹都官):노비의 부적(簿籍)과 소송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 혜민국(惠民局):백성의 질병을 고쳐주기 위하여 설치한 의료 기관. 혜제고(惠濟庫):고려 때의 빈민 구호기관 1362년에 영(令=종7품)승 녹사 (錄事=종 9품) 등의 관원을 두어 이를 맡아 보게 하였다 호부(戶部):상서성(尙書省) 소속의 6부(六部) 중 하나로, 국가의 재정과 호구(戶口)를 맡아관장하였으며, 지금의 재정경제부. 홍문관(弘文館):경적(經籍)과 문서(文書)를 다루고 왕의 고문에 응하는 관청. 흥위위(興威衛):고려 때 육위의 하나,보승 7령과 정용 5령으로 조직하고 상장군 1인 대장군 1인과 각 령마다 장군 1인,중랑장 2 ,낭장 5인,별장 5인 산원 5인 위20인 대정 40인을 배속했다 . 화통도감(火桶都監):화약화기의 제조를 맡아보던 관청.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