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향조 (휘)령의 조선왕조신록 연보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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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조 (휘)령의 조선왕조신록 연보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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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註) 조선왕조실록에 우리 관향조에 관련된 기록은 총 25건의 기록이 나타납니다.
각 기사별로 당시의 정치 상황을 살펴서 이해하고 해설이 필요한 부분도 있습니다만, 자그만치 600년이 훨씬 지난 왕조시대의 사실(facts)들이니 쉬이 유추하고 해석 하는 것도 매우 조심스럽고 무모 합니다.

하여 우선 왕조실록의 한자 원문과 한글 번역문을 올려드리오니 대조하며 읽어 보시고 관향조의 위업과 인간적인 향기를 느껴보시고 격동의 한 시대를 얼마나 역동적으로 살아오셨는지, 그리고 오늘을 사는 후손들이 관향조에 대한 어떤 점을 기리고, 배우고, 크게 조명하여야 하는 지를 잠시라도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 2021.9.30 저녁 도봉산 자락에서 
原耕(21世孫) 謹識 -



【 관향조 (휘)령의 조선왕조신록 연보 】(2/2)
 


12. 세종실록 4권, 세종 1년 5월 10일 갑인 7번째기사 1419년 명 영락(永樂) 17년


왜적을 방비하지 못한 충청좌도 도만호 김성길이 참형당하다.

충청좌도 도만호(左道都萬戶) 김성길(金成吉)이 참형 당하였다. 

처음에 전라도 감사가 왜적이 경내를 지나간다 하여 빨리 알렸으나, 성길은 알고도 방비하지 아니하다가 패하기에 이르렀으니, 

체복사(體覆使)가 벤 것이었다. 후에 해주 목사 박영이 한 왜인을 사로잡아 바치거늘, 병조가 물으니, 말하기를,

"나는 대마도에 사는 사람으로 섬사람들이 다 굶게 되어, 배 수십 척을 가지고 절강(浙江) 등지에서 노략질하려고 하였으나, 

단지 양식이 떨어져서 우선 비인(庇仁)을 털고, 다음에 해주에 와서 도적질할 것을 엿보며, 

물을 길으려고 조그만 배에 타고 언덕에 오르다가, 홀지에 관병(官兵)에게 사로잡혔고, 

저희들 괴수는 도두음곶이를 털 때, 만호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

하였다. 성길이 처음에 비록 방비하지는 않았으나, 적을 만나면, 부자가 서로 힘껏 싸우다가 함께 죽으니, 사람들이 매우 슬퍼하였다.


○忠淸道左道都萬戶金成吉伏誅。 

初, 全羅道監司以倭賊過境馳諭, 成吉知而不備, 乃至於敗, 體覆使誅之。 

後海州牧使朴齡擒一倭以獻, 兵曹訊之, 曰: "吾係對馬島人。 

島中飢饉, 以船數十艘, 欲掠浙江等處, 只緣乏糧, 侵突庇仁, 遂至海州, 窺欲行劫。 

吾因汲水, 獨乘小船上岸, 忽被官兵所擒。 魁首則都豆音串打劫時, 中萬戶矢而斃。

" 成吉初雖不備, 及至遇賊, 父子力戰而俱死, 人頗哀之。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3장 A면【국편영인본】 2책 315면

【분류】 외교-왜(倭) / 사법-행형(行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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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세종실록 4권, 세종 1년 5월 23일 정묘 3번째기사 1419년 명 영락(永樂) 17년


윤득홍·평도전 등이 백령도에서 왜구를 협공하여 공을 세우다.

박영(朴齡)·성달생들이 급히 보고하기를,

"윤득홍·평도전들이 처치사(處置使)와 더불어 백령도(白翎島)에 이 달 18일 미시(未時)까지 모이어 협공할 것을 기약하여, 

득홍이 병선 2척으로 먼저 백령도에 이르렀다가, 적선 2척을 만나서 싸우니, 도전도 병선 2척을 거느리고 달려와서 협공하였다. 

때는 신시이다. 왜놈이 탄 배 1척을 잡으니, 이는 곧 적의 괴수가 탔던 배이다. 적은 대개 60여인이 있는데, 

득홍이 13급을 베고 8인을 사로잡았으며, 도전은 3급을 베고 18인을 사로잡으니, 나머지는 빠져 죽었고, 

남은 배는 구름이 어른어른하는 지평선에 보일락말락 남으로 향하여 달아났다."

하니, 두 임금이 그 공을 가상히 여겨, 진무 김여려(金汝礪)를 보내어, 

하사하시는 술을 받들어 득홍과 도전을 그 있는 곳에 가서 위로하게 하였으며, 

각각 옷 한 벌씩을 하사하고 힘써 싸운 사람의 성명을 기록하여 올리게 하였다. 

선군 중에 죽은 두 사람에게는 임금이 명하여 부의을 보내고 복호(復戶)하게 하였으며, 

소재지 수령관으로 하여금 매장하고 표목(標木)을 세우게 하였다.



○朴齡、成達生等飛報: "尹得洪、平道全等期與處置使會於白翎島, 將挾攻之, 

月十八日未時, 得洪以兵船二艘, 先到白翎島, 遇賊船二艘與戰, 道全以兵船二艘, 繼至挾攻。 

申時, 獲倭一船, 乃賊魁所騎船也。 賊凡六十餘人, 得洪斬十三級擒八人, 道全斬三級擒十八人, 

其餘皆溺死。 餘船隱見雲涯, 向南而去。"

兩上嘉其功, 遣鎭撫金汝礪, 奉宣醞以慰得洪、道全於所在, 各賜衣一襲, 令錄力戰人姓名以聞。 

船軍死者二人, 上命致賻、復其家, 令所在官埋葬立標。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7장 B면【국편영인본】 2책 318면

【분류】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군사-군역(軍役) / 왕실-사급(賜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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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세종실록 6권, 세종 1년 12월 7일 정축 2번째기사 1419년 명 영락(永樂) 17년


유관·맹사성·정진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유관(柳寬)을 판중군도총제부사(判中軍都摠制府事), 연사종(延嗣宗)을 곡산군(谷山君), 

맹사성(孟思誠)을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 정진(鄭津)을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 

안수산(安壽山)을 공조 참판, 문귀(文貴)를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이안우(李安愚)를 우군 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 이춘생(李春生)을 중군 동지총제(中軍同知摠制), 

최운(崔云)·성달생(成達生)·이수(李隨)를 좌군 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 박규(朴規)를 중군 동지총제, 

조계생(趙啓生)을 인수부 윤(仁壽府尹), 유장(柳暲)을 인녕부 윤(仁寧府尹), 장윤화를 이조 참의, 

이양몽(李養蒙)을 호조 참의, 최사강(崔士康)을 예조 참의, 윤회(尹淮)를 병조 참의, 

윤보로(尹普老)를 우군 첨총제(右軍僉摠制), 정초(鄭招)를 우대언(右代言), 유영(柳穎)을 좌부대언(左副代言), 

조서로(趙瑞老)를 우부대언(右副代言), 권도(權蹈)를 동부대언(同副代言), 전직(全直)을 겸 지병조사(兼知兵曹事), 

한혜(韓惠)를 겸 지사간원사(兼知司諫院事), 박서생(朴瑞生)을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 송인산(宋仁山)을 사헌부 장령(掌令), 

최문손(崔文孫)을 우대언(右代言), 강회중(姜淮仲)을 충청도 관찰사, 박실(朴實)을 판홍주목사(判洪州牧事), 

박영(朴齡)을 판해주목사(判海州牧事), 정수홍을 판나주목사(判羅州牧事)를 삼았다.


○以柳寬判中軍都摠制府事, 延嗣宗爲谷山君, 孟思誠藝文館大提學, 

鄭津判漢城府事, 安壽山工曹參判, 文貴同知敦寧府事, 李安愚右軍同知摠制, 

李春生中軍同知摠制, 崔云、成達生、李隨竝左軍同知摠制, 朴規中軍同知摠制, 

趙啓生仁壽府尹, (柳章)〔柳暲〕 仁寧府尹, 張允和吏曹參議, 李養蒙戶曹參議, 

崔士康禮曹參議, 尹淮兵曹參議, 尹普老右軍僉摠制, 鄭招右代言, 柳穎左副代言, 

趙瑞老右副代言, 權蹈同副代言, 全直兼知兵曹事, 韓惠兼知司諫院事, 

朴瑞生司憲執義, 宋仁山司憲掌令, 崔文孫右代言, 姜淮仲 忠淸道都觀察使, 

朴實判洪州牧事, 朴齡判海州牧事, 鄭守弘判羅州牧事。


【태백산사고본】 3책 6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2책 348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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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세종실록 7권, 세종 2년 2월 7일 을사 1번째기사 1420년 명 영락(永樂) 18년


두 임금이 해주의 동정자에 머무르다.

두 임금이 해주(海州)의 동정자(東亭子)에 머물렀다. 

판해주목사(判海州牧事) 박영(朴齡)·판관 성효상(成孝祥) 등이 와서 뵈었다.


○乙巳/兩上次于海州 東亭子, 判海州牧事朴齡、判官成孝祥等來見。


【태백산사고본】 3책 7권 26장 A면【국편영인본】 2책 374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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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세종실록 7권, 세종 2년 2월 7일 을사 3번째기사 1420년 명 영락(永樂) 18년


시위한 대소 신료 및 군사의 급료를 주게 하다.

박영에게 명하여 시위한 대소 신료(臣僚) 및 군사의 급료(給料)를 주라고 하였다.


○命朴齡頒侍衛大小臣僚及軍士料。


【태백산사고본】 3책 7권 26장 A면【국편영인본】 2책 374면

【분류】 재정-국용(國用) / 왕실-행행(行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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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세종실록 7권, 세종 2년 2월 16일 갑인 1번째기사 1420년 명 영락(永樂) 18년


박영·성효상 등이 하직하니 물품을 하사하다.

박영·성효상 등이 하직을 고하니, 임금이 각기 옷 한 벌씩을 하사하고, 

어가 앞에서 길을 인도하는 장사도(張思道)와 삼군의 길을 인도한 장용(張勇) 등에게 활과 화살을 하사하였다. 

낮참에 평산부 사을이곡(沙乙以谷)에서 머물렀는데, 갑사가 술과 찬을 준비하여 크게 잔치를 베풀고 시위한 신하 및 군사를 대접하였는데, 

아래로 하인들에게까지 미쳤다. 두 임금이 술을 차리고 풍악을 벌였는데, 시위한 재상들이 모두 들어와 시위하였다. 

상왕이 성달생과 원윤(元胤)에게 명하여 일어나서 춤을 추라 하고, 임금을 돌아보며 이르기를,

"원 총제(元摠制)는 장래에 장수의 책임을 맡게 될 것이라."

하였다. 저녁에는 평산부 산리(山里) 언덕에서 머물렀다.


○甲寅/朴齡、成孝祥等奉辭, 上賜衣各一領, 又賜駕前指路張思道、三軍指路張勇等弓箭。 

晝停于平山府 沙乙以谷, 監司備酒饌, 大餉侍衛臣僚及軍士, 下至賤隷。 

兩上置酒設樂, 侍衛宰樞皆入侍。 

上王命成達生及元胤起舞, 顧謂上曰: "元摠制將任將帥之責矣。" 夕次于平山府 山里之原。


【태백산사고본】 3책 7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2책 374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사급(賜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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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세종실록 7권, 세종 2년 3월 16일 갑신 2번째기사 1420년 명 영락(永樂) 18년


공안부를 인녕부에 통합하고, 이발·황녹·조치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공안부(恭安府)016) 를 폐지하여 인녕부에 통합하고, 소윤(少尹)을 더 두었다. 

이발(李潑)로 대사헌을 삼고, 황녹(黃祿)·조치(曹致)를 동지총제(同知摠制)로, 조비형(曺備衡)을 우군 도총제(右軍都摠制)로, 

이숙묘를 동지총제에, 최사강(崔士康)을 경기도 관찰사(京畿道觀察使)에, 신개(申槪)를 경상도 관찰사에, 

조계생(趙啓生)을 황해도 관찰사에 임명하고, 김겸(金謙)·박영(朴齡)은 자헌(資獻)으로 올려 주고, 

황보인(皇甫仁)을 좌헌납(左獻納)에, 김효정(金孝貞)을 우헌납(右獻納)에, 허척(許倜)을 사헌부 지평에, 

권시(權偲)를 좌정언(左正言), 조극관(趙克寬)을 우정언(右正言)에 임명하였다.


○革恭安府, 幷於仁寧府, 增置少尹。 

以李潑爲大司憲, 黃祿、曺致同知摠制, 曺備衡右軍都摠制, 李叔畝同知摠制, 

崔士康 京畿都觀察使, 申槪 慶尙都觀察使, 趙啓生 黃海道都觀察使, 

金謙、朴齡加資憲, 皇甫仁左獻納, 金孝貞右獻納, 許倜司憲持平, 權偲左正言, 趙克寬右正言。


【태백산사고본】 3책 7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2책 376면

【분류】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註 016]공안부(恭安府) : 관청 이름. 태종이 정종 2년에 양위 받은 뒤에, 정종의 생활을 위하여 세운 것이고, 인녕부(仁寧府)는 정종의 왕후를 위하여 세운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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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세종실록 13권, 세종 3년 8월 17일 정미 3번째기사 1421년 명 영락(永樂) 19년


박영·홍섭·현귀면·곽승우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박영(朴齡)을 중군 도총제(中軍都摠制)로, 현귀명(玄貴命)을 우군 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로, 

홍섭(洪涉)을 중군 동지총제(中軍同知摠制)로, 곽승우(郭承祐)를 강계도 병마 도절제사(江界道兵馬都節祭使)로, 

권담(權湛)을 전주 부윤(全州府尹)으로, 김포(金苞)를 판광주목사(判光州牧使)로, 

조치(趙菑)를 전라도 수군 도안무 처치사로, 심보(沈寶)를 판강릉대도호부사(判江陵大都護府使)로, 

김을신(金乙辛)을 판의주목사(判義州牧使)로, 조모(趙慕)를 판해주목사(判海州牧使)로, 

진원귀(陳原貴)를 판정주목사(判定州牧使)로, 김익생(金益生)을 남포진 병마 절제사(藍浦鎭兵馬節制使)로, 

이징석(李澄石)을 연일진 병마 절제사(延日鎭兵馬節制使)로, 오익생(吳益生)을 옥구진 병마 절제사(沃溝鎭兵馬節制使)로, 

박인길(朴寅吉)을 장연진 병마 절제사(長淵鎭兵馬節制使)로 삼았다. 

조치와 심보는 첨총제(僉摠制)에서, 김을신과 조모 이하는 다 상호군(上護軍)에서 가선 대부(嘉善大夫)로 올려준 것이다.


○以朴齡爲中軍都摠制, 玄貴命右軍同知摠制, 洪涉中軍同知摠制, 

郭承祐 江界道兵馬都節制使, 權湛 全州府尹, 金苞判光州牧使, 

趙菑 全羅道水軍都按撫處置使, 沈寶判江陵大都護府使, 金乙辛判義州牧使, 

趙慕判海州牧使, 陳原貴判定州牧使, 金益生 藍浦鎭兵馬節制使, 

李澄石 延日鎭兵馬節制使, 吳益生 沃溝鎭兵馬節制使, 朴寅吉 長淵鎭兵馬節制使。 

趙菑、沈寶自僉摠制, 金乙辛、趙慕而下皆自上護軍, 擢授嘉善大夫。


【태백산사고본】 5책 13권 4장 A면【국편영인본】 2책 446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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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세종실록 13권, 세종 3년 9월 26일 병술 6번째기사 1421년 명 영락(永樂) 19년


태상왕이 호조 판서 신호를 사은사로 삼다.

임금이 도총제(都摠制) 박영(朴齡)으로 사은사(謝恩使)를 삼고, 

부윤(府尹) 이맹균(李孟畇)으로 부사(副使)를 삼으려 하니, 태상왕이 호조 판서 신호(申浩)로 사은사를 삼았다.


○上以都摠制朴齡爲謝恩使, 府尹李孟畇副之。 太上王以戶曹判書申浩爲謝恩使。


【태백산사고본】 5책 13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2책 453면

【분류】 외교-명(明) / 인사-임면(任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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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종실록 15권, 세종 4년 1월 27일 을유 2번째기사 1422년 명 영락(永樂) 20년

사은사 신호 등이 북경에서 돌아오다.

사은사(謝恩使) 신호(申浩)·박영(朴齡)과 부사(副使) 이맹전(李孟甸) 등이 북경에서 돌아왔다.


○謝恩使申浩ㆍ朴齡、副使李孟甸等回自北京。


【태백산사고본】 5책 15권 6장 A면【국편영인본】 2책 473면

【분류】 외교-명(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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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세종실록 17권, 세종 4년 9월 21일 을해 4번째기사 1422년 명 영락(永樂) 20년


성산 부원군 이직 등이 소선을 금하고 육선을 권하다.

성산 부원군(星山府院君) 이직(李稷)과 좌의정 이원(李原)·병조 판서 조말생·공조 판서 최윤덕·총제(摠制) 박영(朴齡)·예조 참판 이맹균(李孟畇)·이조 참판 원숙(元肅) 등이 청하기를,

"졸곡(卒哭) 뒤에도 오히려 소선(素膳)을 하시어, 성체(聖體)가 파리하고 검게 되어, 여러 신하들이 바라보고 놀랍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며, 

또 전하께서 평일에 육식이 아니면 수라를 드시지 못하시는 터인데, 이제 소선(素膳)한 지도 이미 오래되어, 병환이 나실까 염려되나이다. 

옛날 원경 왕후(元敬王后) 초상에 태종께서 육선을 권하시면서 이르기를, ‘주상의 한 몸이 종사(宗社)의 안위(安危)에 관계되는 것이니,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라.’ 하셨나이다. 신 등의 오늘날 청하는 것도 또한 종사와 생민(生民)을 위하는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상중에 고기 먹는 것이 예로 보아 어떨까. 경들은 내가 소식(蔬食)에 익숙하지 못하여, 병이 날까 염려한 것이나, 

내가 이제 병도 없으니 어찌 예에 범할 수가 있겠는가. 승려는 항상 소식만 하여도 오히려 살찐 자가 있는데, 

나만 소식을 못한단 말인가. 경들은 다시 말하지 말라."

하고, 조금 있다가 말하기를,

"태조의 초상에 역월(易月)한 뒤에 백관들에게 고기 먹으라는 명령이 있었다. 

이제 백관들에게 고기를 먹으라고 명하고자 하니, 어떠한가."

하니, 조말생이 아뢰기를,

"주상의 한 몸은 종사(宗社)와 생령(生靈)에 관계되면서도 오히려 소선(素膳)하시는데, 

하물며 여러 신하의 무병한 자이겠사오리까. 늙고 또한 병든 자라면 먹는 것도 가합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星山府院君 李稷、左議政李原、兵曹判書趙末生、工曹判書崔閏德、

都摠制朴齡、禮曹參判李孟畇、吏曹參判元肅等請曰: "卒哭之後, 猶御素膳, 聖體瘦黑, 群臣望見, 莫不驚駭。 

且殿下平昔非肉未能進膳, 今素膳已久, 恐生疾病。 昔元敬王太后之喪, 太宗勸肉膳曰: ‘主上一身, 係宗社安危, 不得自專。

’ 臣等今日之請, 亦爲宗社生民也。" 上曰: "居喪食肉, 於禮何? 卿等以我爲不習蔬食, 恐生疾病耳。 

予今無病, 豈可犯禮? 僧常蔬食, 尙有豐肥者, 予獨不能蔬食乎? 卿等其勿復言。

" 俄而曰: "太祖之喪, 易月後有百官食肉之命。 

今欲令百官食肉如何?" 趙末生曰: "上之一身, 係宗社生靈, 尙且素膳, 況群臣之無病者乎? 老且病者, 食之可也。" 從之。


【태백산사고본】 6책 17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03면

【분류】 왕실-국왕(國王) / 식생활-주부식(主副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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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세종실록 66권, 세종 16년 12월 24일 정묘 2번째기사 1434년 명 선덕(宣德) 9년


전 좌군 도총제 박영의 졸기

전 좌군 도총제 박영(朴齡)이 죽었다. 

영(齡)의 자(字)는 호부(浩夫)이니 경상도 의창 사람이다. 

여러 번 판사재(判司宰)·호조 전서(戶曹典書)·판통례(判通禮)·병조 참의로 옮기고, 

나가서는 강주진 첨절제사·강화 부사·강계 절제사·경원과 삭주 병마사·홍주 목사·황해도 도절제사 겸 판해주목사가 되었다. 

그 때에 태종과 임금께서 해주 등처에 거동하였는데, 박영이 감사 이숙묘(李叔畝)와 더불어 들에서 영접하였는데, 

서차가 감사의 밑에 있었다. 태종이 말하기를,


"영은 어째서 감사의 밑에 있는가."

하니, 좌우에서 대답하기를,

"감사는 비록 가선(嘉善)이나 사신이고, 판목사는 비록 가정(嘉靖)이나 수령(守令)입니다."

하므로, 임금이 말하기를,

"영은 구신(舊臣)이다."

하고, 감사의 위에 앉히고 어의(御衣)를 주고, 환궁한 뒤에 자헌(資憲)을 제수하고, 

신축년에 좌군 도총제를 제수하였다. 영이 부지런하고 검소하며 무예가 있었다. 

죽으매 조회와 저자를 하루 동안 정지하고, 조의를 표하고 부의(賻儀)를 보내었다. 

시호(諡號)를 양정(襄靖)이라 하였는데, 갑주(甲胄)로 공로가 있는 것을 양(襄)이라 하고, 

너그럽게 즐거워서 아름답게 좇는 것을 정(靖)이라 한다. 

중궁도 또한 사신을 보내어 조상하고 황촉(黃燭) 열 자루를 내려 주었으니, 연척(連戚)인 때문이다. 

세 아들이 있으니 박홍간(朴弘幹)·박홍신(朴弘信)·박홍지(朴弘智)이다.


○前左軍都摠制朴齡卒。 齡字浩夫, 慶尙道 義昌人也。 

累遷判司宰、戶曹典書、判通禮、兵曹參議, 出爲江州鎭僉節制使、

江華府使、江界節制使、慶源ㆍ朔州兵馬使、洪州牧使、黃海道都節制使、兼判海州牧事。 

時太宗及上, 幸于海州等處, 齡與監司李叔畝郊迎, 序於監司之下, 

太宗曰: "齡何以在監司之下?" 左右對曰: "監司雖嘉善, 是使臣也。 

判牧事雖嘉靖, 是守令也。" 上曰: "齡乃舊臣也。" 賜坐監司之上, 賜御衣。 

及還宮, 除資憲。 辛丑, 拜左軍都摠制, 齡勤儉有武藝。 

及卒, 停朝市一日, 致弔致賻。 諡襄靖, 甲冑有勞襄, 寬樂令從靖。 

中宮亦遣使致弔, 賜黃燭十丁, 以其戚連也。 有三子, 曰弘幹、弘信、弘智。


【태백산사고본】 21책 66권 28장 A면【국편영인본】 3책 606면

【분류】 인물(人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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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세종실록 66권, 세종 16년 12월 24일 정묘 3번째기사 1434년 명 선덕(宣德) 9년


박영의 죽음으로 사신의 칙서가 돌아오면 하던 잔치를 중지하다.

본조의 사신이 칙서를 받들고 돌아오면 으레 잔치를 베풀어 위로하는 것인데, 

이날에 마침 박영(朴齡)의 죽음으로 잔치를 정지하였다.


○本朝使臣奉勑而回, 例設宴以慰之, 是日, 適以朴齡之卒停宴


【태백산사고본】 21책 66권 28장 A면【국편영인본】 3책 606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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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세종실록 67권, 세종 17년 2월 26일 무진 1번째기사 1435년 명 선덕(宣德) 10년


박영에게 치제하다.

박영(朴齡)에게 치제(致祭)를 내리니, 그 글에 이르기를,

"생각하건대, 경은 풍채(風采)가 크고 훌륭하며, 성행(性行)이 질박 정직하였고, 

침중(沈重)한 가운데 용기가 있고, 그 재능이 뛰어났으며, 장수로서의 지략이 있고, 

행정에도 능통하여, 일찍부터 사적(仕籍)에 올라 열성(列聖)께 크게 인정 받고 

특별히 발탁되어 중외의 관직을 역임하면서 아름다운 명성이 일세에 빛났도다. 

두어 고을의 수령으로 나가서는 힘써 백성을 애호하여 위엄과 은덕이 아울러 나타났고, 

여러 진(鎭)의 장수로 나가서는 호령이 엄숙하고, 임기(臨機)하여 적을 제어하여 누차 큰 공적을 세웠으므로, 

내가 이를 가상하게 여기고 또 격려하기 위하여 이에 영화로운 품질(品秩)에 승진시켰던 것이며, 

명나라에 사절로 보낼 때에도 진달함이 역시 상실(詳悉) 명백하였으니, 참으로 희대의 양장(良將)이며, 

여러 왕조(王朝)의 덕 높은 원로가 아니었던가. 

근래 병세의 깊음으로 인하여 한지(閑地)로 옮겨 요양해 오던 터이라, 

건강을 회복하여 길이 이 나라의 교목(喬木)이 되어 주리라 믿었더니, 

어찌하여 하루 저녁에 덧없이 떠났단 말인가. 

부음(訃音)이 이르니 실로 몹시 슬픈 마음 누를 길이 없도다. 

이에 예관(禮官)을 보내어 나를 대신하여 변변치 못한 것을 베풀었으니, 

영령(英靈)이여 감동함이 있거든 흠향하기 바라노라."

하였다. 이에 앞서 대관들에게 치제할 때는 모두 교서를 사용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고제(古制)를 상고하여 비로소 제문(祭文)을 쓰게 된 것이다.


【태백산사고본】 21책 67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3책 614면

【분류】왕실-사급(賜給) / 인물(人物) / 어문학-문학(文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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