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조화의 향훈을 풍기는 백제금동대향로 관리자 해외기행 0 3952 2019.01.03 18:42 (18) 조화의 향훈을 풍기는 백제금동대향로△ 백제금동대향로.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향로속 삼라만상 백제혼의 향기 그윽지금으로부터 11년 전, 그해도 저물어가는 섣달 어느날, 충남 부여 능산리 고분군과 부여 나성 사이의 자그마한 계곡의 물구덩이에서 20세기에 보기드문 고고학적 ‘월척’을 낚았다. 궁전에서 제례 때 쓰던 대형 향로의 발견이다. 장소는 옛날 백제 때 공방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큰 물통 속이다. 아마 나라가 갑자기 무너지는 바람에 이 국보급 보물을 예사롭지 않은 이곳에 서둘러 감추어 놓았던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예사롭지 않음’ 때문에 이 보물이 1400년 동안 그나마도 고스란히 보전되어 오다가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흙탕물 속에서도 그 용모에 추호의 흐트러짐도 없이 발견된 이 진품 중의 진품은 백제인들이 이룬 지고의 예술세계와 숭고한 이상세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이웃 중국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발견된 향로의 높이는 보통 20cm 안팎인데 비해, 이 백제 향로는 그 3배나 되며, 구성요소, 갈무리하고 있는 사상이나 상징성은 단연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특히 당대 동서문명의 제반 요소들을 잘 어우르고 있는 점에서는 실로 독보적이다. 바로 이 때문에 유물이 발굴된지 10여 년이나 지난 지금도 유물에 관한 국내외의 논의와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그 심오한 내막을 알아내기에는 아직 역부족인 성싶다. 유물의 이름만 해도 당초 발굴단은 신선사상의 영향을 강조하여 ‘용봉봉래산향로’라고 이름하였으나, 불교계에서는 새겨진 연꽃무늬나 산봉우리가 수미산을 연상케 한다면서 ‘수미산향료’로 부르자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중국학자들은 맨윗부분에 앉아있는 새가 봉황이 아니라 백제 특산물인 긴 꼬리의 닭(천계)이며, 백제가 금마산에서 건국했다는 이유를 들어 ‘금동천계금마산향로’로 하자는 제의를 해왔다. 뒷공론이 그치지 않자 문화재위원회가 나서서 ‘백제금동대향로’로 잠정 조정한 이름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연구가 미흡한 형편에서 편단을 막기 위해서는 무난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향로의 제작 시기도 26대 성왕 치세 때인 538년 사비(부여)에 천도하여 태평성대를 누리던 때라는 데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지만, 구체적인 연대는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머리엔 춤추는 봉황 발엔 몸 비트는 용뚜껑엔 다섯 악사와 산과 동식물몸체엔 생명만드는 연꽃 우리의 연구가 미흡한 틈을 타서 일부에서, 특히 외국에서는 이 멋진 향로가 과연 백제에서 만들어진 것인가 하는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러나 백제에서 유사품이 발견된다든가 향로가 지닌 양식적 독창성 등으로 보아 백제 특유의 창작품임이 확실하다. 전대인 무령왕의 능에서 출토된 동탁은잔(제기)에는 연꽃과 용, 봉황, 사슴 등 갖가지 동물과 산악도가 장식되어 있으며, 부여 외리에서 발견된 산수봉황 벽돌에도 산들이 중첩된 삼산형 (三山形) 양식이 부조되어 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인 중국 남북조 시대에 만들어진 향로에 없는 수렵도가 백제 향로의 뚜껑에는 새겨져있다. 봉황을 중심으로 하는 5악사와 기러기의 상징체계도 중국 향로 구도에는 없다. 백제 공예미술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 백제금동대향로의 뚜껑에 장식된 5악사가 연주하는 5종 악기. (위로부터) 북, 완함, 피리, 거문고, 배소. 신선·불교사상은 물론 전통·외래문화 아우른백제정신세계의 고갱이 서역·중국향로를 비웃는다 높이가 61.8cm를 헤아리는 이 향로는 맨 위의 봉황과 산악도가 촘촘히 그려진 뚜껑, 연꽃이 장식된 노신(몸체), 노신을 물고있는 용받침의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단 모양으로 꾸며진 정상에는 천하가 태평할 때 나타난다고 하는 전설의 새 봉황이 날개를 활짝 펴고 춤을 추고 있다. 바로 그 아래에 백제의 심오한 이상세계를 알리는 뚜껑이 있는데, 거기에는 5악사가 둘러앉아 악기를 연주하고, 5단에 25개 봉우리를 가진 삼산형 산악도가 새겨져 있으며, 이상세계의 주인공 17명과 동물 56마리가 등장한다. 모두가 이상세계의 상징물이 아니면 현실세계의 실물들이다. 노신을 장식한 연꽃에는 갖가지 새와 물고기가 표현되어 있으며, 연꽃을 통해 생명이 탄생한다는 연화화생(蓮花化生)을 표현하고 있다. 끝으로 하단은 발가락이 다섯 개인 용이 노신의 연꽃줄기를 입에 물고 비상하려는 듯 용틀임하고 있다. 총체적으로 봉황과 용의 대비적 배치라든가, 노신의 연꽃과 산악도에 장식된 인물상과 동식물상의 조화라든가, 봉황을 중심으로 한 5악사와 기러기의 가무상 등, 한마디로 이상세계와 현실세계를 다같이 조화롭게 구가하는 제반 구성요소나 구도로 볼 때, 이 백제 대향로야말로 세계 향로사의 백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문제는 각개 구성요소에 대한 이해와 그를 바탕으로 한 종합적인 판단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아직 어떤 결론을 내리기 이르나, 분명한 것은 입체적인 환조(봉황)나 반입체적인 부조(노신), 공간적인 투조(용받침) 같은 조각의 모든 기법을 완벽하게 소화한 공예미술의 결정체이고, 신성사상과 불교사상뿐만 아니라 우리 겨레의 전통문화와 외래문화를 잘 융합시킨 걸작이라는 사실이다. 흔히들 백제금동대향로의 원류를 중국 전국시대에 출현한 이른바 박산향로에서 찾으면서 한대나 그 이후의 북위가 만들어낸 향로들과 곧잘 견주는데, 알고보면 박산향로는 아랍을 비롯한 서역의 향문화를 받아들여서 생겨난 것으로써 우리의 향문화나 향로의 근본은 중국을 넘어 멀리 서역에서 들추어 봐야 할 것이다. ‘신의 음식’이라고 하는 향료는 기원전 5000년께부터 아라비아반도의 남부 지방에서 쓰이고 있었다. 예수가 탄생할 때 동방박사가 가져간 세 가지 예물 중 유향과 몰약이 바로 그 대표적인 향료다. 이러한 서역의 향료가 기원전 2세기 전한의 한무제 때에 서역으로 통하는 실크로드 육로가 개통되면서 중국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그것이 한반도 3국에까지 연장되었다. 불국사 석가탑에서 아랍산 유향이 발견된 것은 그 일례다. 정상에 있는 봉황은 고대 동이족에게는 대표적인 태양새이고 음악과 가무의 새일 뿐만 아니라, 봉황을 포함한 모든 새는 지상과 천상을 잇는 신조(神鳥)로서 숭배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신조 숭배사상은 북방민족들의 고유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뚜껑의 다섯 봉우리에서 춤추는 다섯 마리 기러기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이렇게 봉황이 악사나 춤추는 새(기러기)와 함께 있는 모습은 서역은 물론, 중국의 향로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뚜껑에 장식된 5악사에 관해서는 백제의 5부체제를 상징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으나, 그 악기들이 말해주는 백제의 문화수용적 자세는 그에 못지않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완함, 피리(적), 배소, 북, 거문고의 다섯 가지 악기 중 거문고를 제외한 나머지 네 가지는 모두가 외래 악기로 보여진다. 한가운데 배치된 완함(阮咸)은 원래 말 위에서 다루는 서역악기로서 중국 한대까지는 비파로 불리다가 진(晉)나라 때 완함이란 사람이 잘 연주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피리는 서역의 구자(현 쿠차)에서 기원한 관악기이며, 대나무를 옆으로 나란히 묶은 배소(排簫)는 북방유목민들의 관악기로써 고구려 벽화에도 나타난다. 완함의 오른쪽에 있는 북은 그 형태가 항아리 모양으로서 중국이나 고구려 유물에서는 아직 발견된 예가 없어 주목을 끄는데, 그 원형을 동남아(인도네시아의 보르보두르 대탑)에서 찾아 볼 수 있어 거기로부터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가 동남아와 여러 가지 교류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그것은 십분 가능하다. 차제에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춤과 율동을 전제로 한 흥겨운 우리네 3박자 전통음악은 2박자나 4박자를 근간으로 하는 중국 음악과는 달리 저 멀리 중앙아시아나 서아시아의 마캄 같은 3박자 음악과 음률적 보편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향로의 5악은 동서남북의 음악으로 화음을 이루고 있다. 노신에 3단으로 장식된 연꽃이 연화환생의 뜻을 담고 있어서 이 향로의 불교적 성격을 말해준다는 것이 학계, 특히 불교미술사학계의 중론이다. 그러한 주장은 백제가 왕실을 통해 불교를 공식적으로 수용한 후 ‘마치 파발마를 달려 왕명을 전하는 것처럼 급속히 파급’되었으며, 향로가 발견된 지점에서 불과 30m 떨어진 사찰터에서 성왕의 아들인 창왕(즉 위덕왕) 13년(567년)에 정해공주가 사리를 바쳤다는 사리감 명문이 나온 것 등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연꽃 중에는 기원전 4000년께 이집트에서 태양숭배의 상징으로서 국화로까지 쓰이다가 그리스-로마시대에 이르러 로투스란 이름의 장식무늬로 바뀐 수련(睡蓮:흰색과 푸른색)이란 일종의 연꽃도 있다. 인도에 기원을 둔 홍련과는 달리 잎이 뾰죽한 것이 특징인 이 수련 무늬가 중앙아시아를 거쳐 동방에까지 전해져서 초기의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그 모습이 보인다. 보다시피 백제금동대향로의 노신에 그려진 연꽃잎은 그 끝이 살짝 반전되어 뾰죽한 느낌을 준다. 따라서 연꽃무늬를 비롯한 연꽃문화의 전파상에 관해서는 더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한 것 같다. 아무튼 향로의 연꽃 장식이 홍련이든, 수련이든 간에 외래문화와의 융합상임에는 틀림없다. 이상의 몇 가지 주요 구성요소에 대한 분석을 통해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백제금동대향로야말로 백제인들의 높은 정신세계와 진취성, 그리고 독창적인 금속공예술을 입증해줄뿐만 아니라, 남들과의 어우름에서 빚어지는 향훈을 듬뿍 풍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