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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과거제도와 교육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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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시험, 2000:1의 경쟁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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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시험을 준비해 온 李유생(유학을 공부하는 학생), 의연한 마음으로 공고를 바라보았습니다. 이번에도 응시자가 6만 명이 넘었습니다. 그 중 초시를 통해 250명을 걸러냈고 李유생은 복시를 통해 33명 안에 들어야 하는 것이 두 번째 관문이었습니다. 열심히 준비한 李유생이기에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 날 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존경각(성균관 내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과거시험 공고가 난 후 유생들의 눈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李유생은 5세부터 지금까지 24년 간 책을 놓아본 적이 단 한순간도 없었습니다. 한양 아이들이 4부 학당에 다닐 때 李유생은 강릉의 서원에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13세가 되었을 때 시 2과목과 나라 시무에 관련된 계책 2과목을 보는 진사시에서 장원으로 합격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천재가 태어났다고 말했지만 그보다 나라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기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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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관리직이 되기위해서는 초시(1차), 복시(2차), 전시(3차 임금님 면접) 시험을 거쳐야 가능]

 

공고는 암행어사로 났지만 암행어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급제라는 영예의 순간을 맞이해야 합니다. 이제 과거 급제를 위한 마지막 관문이 남은 셈입니다. 복시! 이 시험에서 무조건 33명 안에 들어야 합니다. 되도록 좋은 성적으로 합격해야 암행어사가 될 수 있습니다. 시험과 시험사이 1일씩 간격을 두는데 이 시간이 더 초조하고 긴장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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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시험장, 시험 절차를 엄격히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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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하루 뒤, 과거시험장에 입실했습니다. 3년에 한 번 열리는 시험이기에 李유생을 비롯한 수많은 유생들이 긴장하는 날입니다. 조선팔도에서 많은 유생들이 모여들어 과거시험장은 북적였습니다. 감독관이 어수선한 자리를 정돈했고 곧 시험문제가 공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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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유생은 시험문제가 나오자 정확히 읽고 되새겨 보았습니다. 원고지에 그 시제(시험문제)를 다시 한 번 썼습니다. 
“응시자 여러분들은 시험의 서론, 본론, 결론 형식에 맞춰 작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험의 형식을 갖추지 않은 답안지는 채점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감독관이 공지를 하자 응시자들의 손은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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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유생은 지금까지 자신이 다양한 책을 읽고 주위를 살펴보면서 교육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을 차분히 정리해가며 써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성리학을 넘어선 실학을 강조하며 실천과 실용을 강조하는 글을 써내려갔습니다. 도중에 손목이 저려와 몇 번이나 붓을 놓았는지 모릅니다. 날은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유성당 내부에 등불이 밝혀졌습니다. 정말 피가 마르는 시험장이었습니다. 길어지는 시험으로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李유생은 머리를 맴도는 교육의 청사진을 써내려갔습니다. 그렇게 다 써내려간 화선지 길이는 10m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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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히는 결과발표, 33명을 선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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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발표만이 남았습니다. 숨 막히는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선 33명을 호명합니다. 이 33명은 사실상 과거급제 입니다. 그 다음 전시에서는 임금이 33명을 만나 등수를 매겨 갑과 3명, 을과 7명, 병과 23명으로 나눕니다. 李유생은 그저 하늘만 바라보았습니다. 시험은 여러 번 보았고 합격자 발표에도 여러 번 호명되어 봤지만 매번 시험이 끝나면 기대감과 동시에 공허함이 밀려왔습니다. 기다림 끝에 영의정과 대신들이 나왔습니다.

 

“문과 대과에 합격한 33명을 호명하도록 하겠습니다. 12,500번 경기도 김수영, 15,231번 강원도 박현진, 17,190번 충청도 송방기!”

계속되는 호명이 진행되었습니다. 아직 李유생은 불리지 않았습니다. 李유생은 이번에 운이 없나보다 생각하고 돌아서려 하는데, “장원급제 32,150번 이율곡!”

이라는 호명이 들립니다. 李유생은 바로 이율곡! 과거시험계의 천재라 불리는 이율곡 선생이었습니다. '구도장원공'으로 불리는 이율곡은 9번의 과거시험에 응시하여 9번 모두 장원급제를 했습니다.

   

<위는 이율곡 선생이라는 특정인물을 지정해 작성한 것이지만 과거시험을 치르는 응시자는 반드시 이런 과정을 거쳐 급제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 위 글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이해를 돕기 위해 재구성한 것임을 알려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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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1차 초시에  도별 향시 합격자 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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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과거제는 크게 문과와 무과, 잡과로 나누어져 있다. 문과는 학문의 깊이가 시험대상이고 무과는 무예가 주 시험대상이다. 잡과는 역관, 의관 등 기술 관료를 뽑는 시험이다. 잡과는 일반적으로 중인들만 응시하는 것이어서 문과, 무과에 비해 격이 낮았다. 이 중 가장 중요시 여기는 시험이 바로 문과였다. 우리가 말하는 과거제는 보통 문과의 시험을 말하는 것이다. 문과는 다시 소과와 대과로 분류됐다. 소과는 생원과 진사를 선발하는 시험이고, 대과는 국가의 정식 관료 33명을 선발하는 시험이다. 일반적으로 과거라 함은 바로 이 문과의 대과를 지칭했다.


(아래) 초시 240명 선발시 도별 향시 합격자 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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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과거제는 지금의 공무원 시험, 각종 고시, 취업보다 훨씬 높은 경쟁률을 자랑했다. 문과의 평균 응시 인원은 약 6만 3천명이었다고 한다. 문과는 소과 2단계(초시, 복시)와 대과 3단계(초시, 복시, 전시)로 나뉘어져 있는데 총 5단계를 모두 통과해야 급제를 할 수 있었다. 대과는 생원, 진사, 성균관 유생, 3품 이하의 현직 관리 등이 응시할 수 있었다. 즉 대과 자체도 보통 소과를 합격하여야 응시할 수 있었다. 대과에 응시하여 3차에 걸쳐 시험을 보아 갑·을·병 3과로 나누어 그 등급이 결정되었는데, 갑과의 장원 급제자는 종6품 이상의 참상관으로 임명되고, 병과 합격자는 정9품 이상의 관리로 임명되었다. 


각도의 인구 비례로 초시(1차)에서 240명, 복시(2차)에서 33명, 전시(3차)에서 등급(순위)을 결정하는 시험을 치렀고 합격자에게는 ‘홍패(대과 합격증)'와 관직이 부여되었다. 응시자들은 평균 다섯살 때 부터 하루의 대부분을 학업에 투자하여 평균 30년을 공부하였다. 문과의 최종 급제자 평균연령이 35세인 것을 보면 과거제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
3년마다 한번 시행되는 과거제의 최종 급제자는 33명이었다. 3년에 한번 있는 시험에 약 6만 3천여 명이 응시하여 단 33명의 합격자만 나오는 경쟁률 1900대 1, 최고 난이도의 시험이 바로 조선시대 과거제도였다.
 

하지만 예외는 있는 법. 바로 율곡 이이이다. 이이는 ‘구도장원공’이라는 별명을 지녔는데, 이는 과거시험에서 9번 장원급제했다는 의미다. 한 번도 급제하기 쉽지 않은 시험이 과거시험이고, 여기서 장원급제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인데, 9번이나 장원급제했으니 조선 500년 역사상 최고의 인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556년 별시에서 당대 학자 수 백명이 몇 달을 고심하여 만든 문제를 단 3시간 만에 ‘천도책’이라는 제목으로 답안을 작성해 감독관들을 놀라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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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말 과거 시험장의 허술한 모습을 나타낸 김홍도의 그림>

 

 

그렇다고 과거제도가 꼭 공정한 시험은 아니었다. 초기에 엄격했던 시험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허술해졌다.
응시자가 책을 베끼거나, 시험지 바꾸기, 합격자 바꿔치기 등이 성행 하였다. 또한 권력가나 특정 정파가 자신의 친인척에게 의도적으로 후한 점수를 주어 합격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또 출제문제를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좋은 자리를 잡으려 시험장에서 폭력까지 난무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과거제도는 많은 스토리가 있는 시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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