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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원(朴由元)의 방유정집『 放遊亭集 』한글 번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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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원(朴由元)의 방유정집『 放遊亭集 』한글 번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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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文

이 放遊亭集 一冊은 朝鮮 世宗年間에 淸廉한 名臣으로 昌原朴公 諱 由元이 世宗18년(서기1436년) 吏曹參判을 辭職하고 高興 大西面 南陽(上南)에 落鄕하여 느티나무 한 그루를 심고 그 아래 亭子를 지어 이름하여 放遊亭이라 하고 隱居自適한 內容과 落鄕 時에 當時 諸賢들의 餞別詩가 실려있고 壬亂때 宣祖를 扈駕하고 戰功을 세우고 新義州에서 殉節한 放遊亭의 孫子인 諱 鮐壽와 放遊亭의 五代孫인 諱 弘世가 李舜臣 將軍의 書札을 接하고 順天 倭橋 戰鬪에서 倭敵 數百名을 斬首하고 力不足으로 壯烈히 戰死한 記錄을 담은 冊이다.

그리고 附錄으로 위 세분들에 對한 行錄에 對하여 儒林들이 各 鄕校 및 成均館에 通文하여 祠堂을 건립하여 追慕 祭祀를 받들 수 있도록 許可하여 달라는 趣旨文과 이에 對한 成均館의 答通이 실려 있다.

이제 나는 그 後孫들로부터 이 冊을 接하고 놀라운 事實을 發見하였다.
우선 放遊亭 先生이 世宗으로부터 信任을 받아 文武百官의 人事權을 쥔 吏曹參判을 除授 하였음에도 不拘하고 벼슬을 草芥같이 버리고 朝鮮 最南端 興陽 海邊으로 落鄕한 것과 落鄕 時에 當時 諸賢들이 帳幕을 쳐놓고 餞別 詩로 贈別한 것이였다.

그런데 그 綜合的인 詩의 一部에
"公께서 계실 때는 南山도 무거웠는데 이제 公께서
떠나니 南山도 가벼워라" 또 이르기를 "千年만의 二疏(漢나라 때 벼슬 않겠다고 임금에게 辭職을 請한 疏廣을 말함)의 길을 擇하여 그분을 따라 갔으니 이 世上 모든 티끌버리웠도다." 하였다.

이 贈詩를 살펴보면 落鄕한 곳에서 옛날 朝廷에 있을 때 親分을 밝혔으며 서울부터 먼곳에서 悠悠 自適을 表現한 詩라 여겨진다.
이 冊은 刊行 序文에 나타나 있듯이 그 刊行 年代를 풀어 보면 서기1834년(純祖31년)으로 지금부터 170年前으로 推定 된다.

그동안 後孫들은 이冊을 紛失 하였다가 서울 어느 헌 冊房에서 그 어느 後孫이 救入 하였는데 그 冊 內容이 純漢綴로 되어 있어 難讀의 書가 되었으므로 後孫 昌烈이 平易한 國譯本으로 바꿔 刊行을 圖謀하였다.
累次 나에게 國譯을 付託하고 또 序文까지 委囑하므로 나는 우리 16代祖 襄靖公의 贈詩가 실려 있는 점과 그 後孫들의 爲先之誠에 感激한 바 있어 辭讓치 못하고 몇 마디 써서 그 誠意에 答하는 바이다.


 2002. 5.


高興 柳明善 謹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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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次
序文
放遊亭記(譯文)
參判公 事蹟(譯文)
放遊亭 序(譯文)
放遊亭 韻(譯文)
僉正公 事蹟(譯文)
贊成公 事蹟(譯文)
通文(譯文)
答通(譯文)
通文(譯文)
通文(譯文)
放遊亭記(原文)
參判公 事蹟(原文)
放遊亭 序(原文)
放遊亭 韻(原文)
僉正公 事蹟(原文)
贊成公 事蹟(原文)
通文(原文)
答通(原文)
通文(原文)
通文(原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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放遊亭記

옛날 高伊의 縣(高興)은 바다와 산이 맑고 고우며 백성들의 風俗이 純粹하고 儉素 하였다. 계속 忠信賢俊의 선비가 있어 혹은 仁을 가려 그곳에 살기도 하고 혹은 경치가 좋음을 보기 위해 모여 오기도 하였다.
이곳의 人物들이 詩짓고 노래하며 경치 좋은 곳에 亭子와 臺를 지은 것이 東國輿地勝覽에 若干으로 가히 考覽할 수 있을 정도여서 온전히 傳해지지 못한 것이 여간 哀惜한 일이 아니다. 나는 高興을 다스리는 縣監으로 赴任한 이듬 해에 그곳 사람 昌原 朴君 奎殷이 한 집에 감추어 놓은 放遊亭集을 소매속에 넣고 나한테 와서 말하기를 이 放遊亭集은 우리 先祖 參判公의 遺蹟인데 公의 諱는 由元이요, 字는 元瑞이며 同正公, 諱, 奇의 七代孫이요, 襄靖公 諱 齡의 曾孫이다. 洪武(明太祖)十一年(서기 1378년 高麗우왕 4년)戊午년에 出生 하였다.


멀고도 먼 繁華한 氏族으로 新羅와 高麗로부터 始作 하여 綿綿히 科舉에 及第하였다.
我 朝鮮에 이르러는 詩, 禮, 忠孝가 代代로 이어졌다. 公은 일찍 文科에 及第하는 榮光에 올라 깨끗한 벼슬을 歷任 하였으며 文章이 卓越하여 그 當時의 士友들의 推重을 받았으며 器가 深邃하여 朝廷에서 우러러 보고 의지 하였다.
黃翼成(黄喜), 南龜亭(南在), 權陽村(權近), 金佔僤(金宗直)등 그 當時 어진이들과 交流하고 자리를 만들어 여러번 詩짓고 노래하며 어울였다.
中世에 發言한 일로 因하여 이 고을로 귀양살이를 오게 되었는데 이 고을의 風土가 아름다움이 두루 갖추어 있는 것에 深醉하여 山水를 두루 觀覽하고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俗世의 모든 慾心을 잊고 이 곳에서 장차 生을 마치고자 하였는데 世宗九年(西紀1427년)丁未年에 임금의 부름으로 朝廷에 나아가 禮曹參議가 되었다. 十八年(西紀1436년) 丙辰年에 嘉善大夫인 參判에 昇進 하였으나 權貴에 超越하여 벼슬을 버리고 돌아와 우리 고을 南,西쪽 南陽里에서 居하게 되었다.


집 뒤에 작은 동산이 있었는데 손수 한 그루 느티나무를 심어 가지가 茂盛하고 鬱蒼한 그늘이 질때에는 매양 지팡이 짚고, 짚세기 신고, 한가롭게 時間을 보내기 위해 이리 저리 거닐기도 하고, 친구들과 바둑을 두기도 하고, 술 잔을 나누며 산들바람이 불어 詩興을 돋구면 詩를 지어 읊고 그 한가함을 自任하여 그 곳을 放遊亭이라 하였는데 不幸히도 壬辰倭亂(1592년)을 當하여 譜牒을 잃어 버렸고 放遊亭 또한 돌보는이 없이 허물어져 雜草만 茂盛 하였으니 그 子孫들과 마을 老人들의 痛恨이 오래되고 오래 되었도다.
多幸히도 近者에 잃어버린 실마리를 찾아내고 公의 遺稿인 放遊亭集을 만들어 나에게 한 말을 付託하기에 극구 辭讓하다가 어쩔 수 없이 放遊亭의 자취를 考覽하여 보고 그 誠心을 가상히 여겨 나의 拙劣함을 잊고 거친 말을 엮어 감히 몇자 쓰게 된다.


上之三十一年(純祖31年 西紀1831年)七月上旬, 時任 朝奉大夫, 行興陽縣監, 順天鎮管, 兵馬節制都尉,
春秋館, 記事官, 烏川後人, 鄭구(龜)는 記하노라.



參判公 事蹟

公의 姓은 朴이요 諱는 由元(一說 仁幹)이요 字는 元瑞인데 昌原人이다.
同正公, 諱 奇의 七代孫이요, 襄靖公, 諱 齡의 曾孫이며 吏曹判書를 지낸 鄭天益의 外孫이다.
洪武 十一年 戊午(西紀1378年 高麗禑王4年)에 出生하였다.
永樂 元年(明三代 皇帝 卽位年1403年) 太宗(朝鮮朝三代王)三年 1403年에 文科에 及第하였다.
두루 原任大臣, 嘉善大夫를 歷任하였으며 學問, 文章, 道德, 德器는 그 當代에 여러 賢人들이 推重한 바였으나 言官이 임금께 올린 말이 禍가 되어 興陽에서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다.
興陽에서 생활 하면서 이곳 風土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어 山水를 두루 觀覽 하였다.
世宗九年(西紀1427年) 丁未年에 다시 왕의 부름을 받고 올라가 禮曹參議가 되었고 世宗 十八年(西紀1436年) 丙辰年에 吏曹參判 兼 經筵義禁府事, 五衛都摠管에 昇進 하였다.
그러나 奸臣들이 高官大爵들에게 阿諂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본 公은 벼슬을 辭讓하고 落鄕 할 뜻을 임금께 아뢰게 되었다
黃翼成(黃喜), 南龜亭(南在), 權陽村(權近), 金佔樺(金宗直) 등 諸賢들이 자리를 마련하여 서로간에 酬答하고 노래하는 것이 한 두번이 아니였다. 그 當時 이 분들이 落鄕하는 參判公에게 道路에 帳幕을 設置하고 古人들의 禮에 依하여 餞別 詩를 지었으니 그 詩는 이러하다.

公께서 있을 때는 南山도 무거웠는데
公께서 이제 떠나니南山도 가벼워라.
또 말하기를千年만의二疏의 길이요,
그들 따라서 가노니 이 世上 모든 티끌 버리었도다.
라고 읊었다.

參判公은 이미 興陽縣의 風土가 아름다움을 아는 고로 九十歲인 아버지 進士公을 모시고 흥양현 南西 쪽에 居住를 한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居하면서도 임금을 걱정하는 精誠이 낮과 밤을 超越하여 삼삼히 생각에 잠겼고, 한편 樂土에서 父親을 奉養함에 물에서는 물고기를 陸地에서는 穀食과 菜蔬로 지극한 精誠을 다하였다.

三年을 지난 戊午年에 (1438年世宗20年) 어버이 喪을 當하여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昏絶 하였다가 다시 깨어나 葬事를 지내는데 禮를 다하고 墓附近에 오두막을 치고 侍墓살이를 하면서 墓所 左右에 소나무 잣나무를 심어 놓았는데 어느 날 우연히 사슴 한 마리가 나무를 뿔로 받아 버리니 參判公이 소리 내어 구슬피 울면서 말 하기를 너희들이 비록 하찮은 微物일지라도 어찌 나의 哀絶한 이 마음을 몰라주는가 하고 歎息 하였더니 다음날 墓 옆에 그 사슴이 죽어 있었다. 이 같은 일은 公의 孝道에 感動이 되어 하늘이 시킨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삼년상을 마친 후에 그곳의 아름다운 山水에 醉하여 동산 북쪽에 느티나무를 심어 놓고 날마다 나무 밑에서 선비들과 詩를 지어 읊으면서 나무 그늘 亭子를 放遊亭이라 하였으니 벼슬을 헌신짝 버리듯 내 팽개치고 落鄕하여 悠悠自適 하였으니 그 느티나무 亭子가 참으로 任子를 만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아! 슬프고 슬프도다. 후인들의 訛傳으로 放亭子라고 부르고 있으며 그 분의 後孫들이 살고 있었음에도 壬亂으로 亭子는 燒失되고 그 亭子터엔 草木이 茂盛 했고 墓所마져 잃어버려서 어렵게 傳해지고 傳해진 것을 듣고 적어서 多幸히 誌文을 찾고 公의 遺稿를 收拾하여 參判公의 實跡을 記錄함이니라.


○ 自吟
I.  한가롭게 가을 물 바라보니 마음은 無事하고,
2. 싸늘한 亭子에서 혼자 花草를 심네.
3. 淺薄한 내 自身 어찌 言官을 말 하겠는가?
4. 오솔길에서 終日토록 거닐다가 혼자 쓸쓸이 돌아오네.

○ 孟思誠이 參判公에게 준다.
1. 옛날 南域을 征伐할 때 우리 둘은 서울에서 지냈네.
2. 그대의 동쪽 寢房에서 정답게 오래 머물렀지.
3. 옛길을 서로 생각하며 몇 번이나 머리 돌렸는가?
4. 눈에 가득한 것은 청산인데 옛 고을 지나네.

○ 自吟
1. 政治할 때 罪짓지 않았는데 귀양살이 어찌하리.
2. 鵬鳥는 南쪽에 집 짓는 것을 反復하는 구나.
3. 恭敬히 곧은 精誠으로 하니 하늘도 믿어 줄 것이고,
4. 힘 안드리고 詩를 지어 貪泉을 노래하네.

○○ 李士謂가 參判公에게 준다.
1. 江州 司馬 平安하는 가요.
2. 먼 주안도에 살아 얻은 것이 없구나.
3. 花雨社에 이끌려 지내는 것을 말 하지 말라.
4. 靑雲은 옛을 의지한 이 그대로 길이구나.

○ 自吟
1. 집안에 가을 불은 이끼긴 섬돌에 까지 이르고
2. 날마다 지팡이 짚고 갔다가 돌아 오지 않네.
3. 버드나무에 바람 일어도 潮水는 떨어지지 않고,
4. 갈대밭에 서리 내리니 기러기가 찾아 오는구나.

○○ 趙溫이 參判公에게 준다.
1. 하늘에 갈나무 바람 불어 몸은 움추려 드는데,
2. 새벽 경치 보기 전에 창이 먼저 밝아 오네.
3. 도포 입은 귀공자 말 없이 시를 읊는데.
4. 나무하기 위해 가는 지아비 맨발로 걸어 가네.

○ 自吟
1.  즐겁게 노는 것 말하지 말라, 좋은 경치 멀어 진다.
2. 東쪽으로 가는 한 길은 金華로 가는 길이다.
3. 시냇가 학이 노는 자리에는 항상 봄이 와 있고,
4. 洞口 사람들은 한가한데 해는 西山을 넘네.

○○ 權近(陽村)이 參判公에게 준다.

1. 朝廷에 있을 때는 나라 걱정 때문에 수염이 길게 자랐고
2. 班馬의 精神은 바닷가에 사는 鶴의 姿態였네.
3. 쓸쓸한 古屋에서 綠野를 바라 보면
4. 夕陽에 끝 없이 새들이 천천히 찾아드네.

○○ 李敢이 參判公에게 준다.
1. 물결 가볍고 맑아서 가을 물과 같은데
2. 다정한 제자는 배난간을 기대고 있다.
3. 임금과 함께 할 때 當年의 일을 말하지 마라.
4. 한 마리의 모래 위의 갈매기가 다섯 임금보다 낫다.

○○ 安瑗이 參判公에게 준다.
1. 슬프다 임금과 이별함이 그 생각 어떠하뇨?
2. 말안장에 앉아서 잔을 나누며 귀양 땅을 물어보네.
3. 聖代라서 임금의 은혜 한량 없는데
4. 잠시 離別이니 주저말고 떠나구려.

○ 自吟
1. 푸른 하늘 서늘하고 차거워 기러기도 오지 않네.
2. 한가로이 江雲을 바라보매 생각은 한량이 없구나.
3. 옛 동산에서 들어보니 벼가 익었다고 하는데
4. 외로운 돛단 배는 농어잡고 돌아온다.

○○ 李稷, 文景公이 參判公에게 준다.
1. 村다리 돌길에 눈은 처음 깨었다
2. 구름은 거치고 모래는 깨끗하여 말의 발이 빠르다.
3. 해가 서산에 지는데 천봉다리에 차츰 모습이 바꾸어지고
4. 임금을 생각하여 高城을 바라보네

○ 自吟
1. 버들 잎 늘어진 城邊에는 늦은 愁心 일어나고
2. 봄 빛은 한량 없는데 홀로 슬픔을 접했다.
3. 높은데 올라가 맑은 시냇물 바라보면
4. 그 물결은 곁을 떠나 산아래로 흐른다.

○○ 金宗直 점필제가 參判公에게 준다.
1. 先生 淸骨은 煙霞에 묻혔는데
2. 모든 일 다 외로이 혼자 존하니 누가 함께 슬퍼하랴?
3. 몇 바구리에 차 있는 詩書의 책은 좋은 자리 이루고
4. 한 수풀의 石荀이 이웃집까지 뻗쳐 가는구나.

○ 自吟
1. 물은 흐르고 꽃은 떨어져 세월은 정 없이 가고
2. 봄 바람을 다 보내고 옛성을 지나가네.
3. 이로부터는 돌아가지 않으리 돌아와서 문득 얻어 지는 것을
4. 맑은 호수 煙氣나는 경치 누가 있어 다툴손가?


僉正公 事蹟
公의 姓은 朴이요 諱는 鮐壽요 同正公 奇의 後孫이다.
護軍公의 有華의 五代孫이고 參判公, 諱 由元의 孫이다.
사람됨이 俊傑하고 特異하였으며 天性이 慷慨하여 일찍 武科에 登第하여 訓練院을 守備하는 任務를 맡았다.
壬辰年에 休暇를 얻어 집에 왔었는데 倭敵이 出沒하여 곳곳에 불을 지르고 고을마다 倭敵들이 들끓게 되어 우리 고을에서도 軍隊를 모으게 되었으니 軍士들이 다투어 말하기를 嚴冬雪寒에 배는 고프고 이 어려운 亂離까지 만나게 되었으니 장차 이 일을 어찌 할 것인가 하고 痛哭하며 말들을 하니 公은 本縣 官吏에 通告하여 곧바로 倉庫에 貯臟해 놓은 무명 베 三百匹과 穀食數千石을 풀게 하여 軍士들을 배불리 먹이고 따뜻하게 입히게 했다. 그리고 곧 行裝을 갖추고 漢陽으로 向하고자 할 때 그의 婦人이 公의 옷소매 자락을 부여 잡고 울부짖으며 말하기를 倭兵이 이 같이 氣勢 등등한데 서울로 가시면 장차 우리 家率들은 어찌할 것이고 당신 또한 無事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니 公이 말하기를 나라의 祿을 먹으면서 君父의 어려움을 坐視한다면 어찌 臣下된 道理라고 하겠오 하면서 크게 叱責 하고는 말 안장을 재촉하고 上京하여 눈물을 흘리며 임금을 拜謁하였다. 宣祖임금이 말하기를 그대는 참으로 眞實된 어진 臣下로다 하면서 僉正 벼슬을 除授하였다. 公이 僉正으로 禁門을 지키는데 倭敵의 氣勢가 너무나 심한 고로 宣祖 임금의 수레를 護衛하여 新義州에 이르러 마침내 너무나 많은 苦生 끝에 氣盡脈盡하여 임금 宿所에서 卒하였다. 임금이 이 消息을 듣고 슬퍼 하면서 곧 바로 禮를 갖추어 祭祀를 嚴肅히 지내게 했다는 事實이 國史 및 元勳錄에 실려 傳해진다


贊成公의 事跡

公의 諱는 弘世인데 一說로는 弘憲이요 同正公 諱 奇의 後孫이요 襄靖公 諱 齡의 九代孫이요 參判公 諱 由元의 五代孫이다.
사람됨이 俊秀하고 誠孝가 出天하며 篤學이 充實하고 兼하여 힘이 세고 智略이 뛰어 났다.
二十五 세에 고을에서 薦舉하여 健元陵(李太祖의 陵)의 參奉이 되었는데 壬辰年에 父母의 喪을 當하여 戰爭에는 參與치 못하였다.
三從祖인 諱 鮐壽가 軍糧米와 軍士들의 옷을 解決하고 宣祖 임금의 수레를 護衛하여 千辛萬苦 끝에 新義州에 到着하고 그곳에서 卒하였다.
癸巳(1593年) 九月 公은 京畿殿 參奉인 吳希吉, 任發英과 함께 李太祖의 眞像을 받들고 井邑 內藏山, 龍窟庵으로 옮기었다.
武士 金弘武와 山中人 黑默山尺등과 더불어 一百三十人이 協力하여 無事하게 兵難을 피해 平安道 新義州로 護送하였다.
三年喪을 마친 그 이듬해 義兵을 일으켜 崔大晟, 卞弘達과 더불어 同心 聚合하여 倭賊을 寶城 倭津에서 進擊하여 數百名을 斬首 하였다.
 그 當時 倭賊이 順天에 駐屯하고 있었는데 左水使 李舜臣이 書信을 보내 말하기를 倭兵들이 倭橋에 모여 있는데 나는下流를 지키고 있고 바깥에서 陸軍의 擊破가 없어 倭賊이 山을 넘어갈 念慮가 있으니 義兵이 支援하여 水陸 兩面에서 攻擊하면 이 怨讐들을 滅할 수 있는 좋은 機會이니 깊이 생각해 보기 바라오 하였다.
公은 書信을 받아 본 卽時 順天에 行軍하여 左水使인 李舜臣 將軍과 暗暗裡에 內通하여 그 날 바로 攻擊하여 칼을 뽑아들고 左衝右突 督戰하여 陣地를 陷落 하였다. 이 戰鬪에서 倭賊을 數 百名 斬首한 큰 戰功을 세웠으나 公 또한 온 몸의 여러 곳이 칼에 찔려 失身 地境에 이르러 있었음으로 미처 몸을 피할 겨를이 없어 적의 兇彈을 가슴에 맞고 壯烈하게 殉節하니 이를 곁에서 지켜 본 左水使 李舜臣 將軍도 가슴을 치며 슬퍼하며 말하기를 오늘 이 戰鬪에서 우리가 비록 勝利는 하였으나 이 義롭고 忠直한 名將을 잃었으니 恨스러움이 끝이 없도다 하며 長 歎息하고 嚴肅히 哀悼를 표했다는 事實이 元勳錄에 실려 傳해지고 있다.
나라에서는 公에게 左贊成을 贈職하였다.


通文

오른쪽 글 通諭한 일은 忠誠을 勸奬하고 節介를 褒贈하는 것은 朝廷의 誠스러운 制度요 어두운 것을 밝혀 내고 숨어 있는 것을 들쳐내는 것은 선비들의 公論이라 할 것이다.
우리 고을 放遊亭 諱 由元은 곧 昌原人이다.
일찍 文科에 及第하여 淸白하게 지내오다 世宗祖에 이르러 吏曹參判에 除授되어 熱誠으로 임금을 補佐하다가 權貴가 마음에 거슬려 벼슬을 辭讓하고 우리 고을 南陽 땅에 돌아와 放遊亭을 짓고 스스로 放遊亭의 뜻을 序하여 한가한 時間을 보내면서 詩를 지어 읊으며 이에 聖世의 숨어 사는百姓으로 自處하니 그 當時 어진 이들 이 詩를 지어 餞送 하였고 또 放遊亭을 唱和하는 詩를 지어 주기도 했으니 그 분의 學問과 文章을 여기서 가히 엿볼 수 있다 할 것이다.

公의 六代孫 諱 弘世는 誠孝가 出天하고 智略이 남보다 뛰어나서 이 고을에서 薦舉하여 健元陵(李太祖) 參奉이 되었다.
壬辰亂에 太祖 眞像을 받들고 平安道 新義州에 護送하였다. 그리고 義兵을 이끌고 倭寇를 進擊하여 많은 勳勞를 세우기도 했다.
또 忠武公의 書日로 行軍하여 山을 넘어오는 倭軍을 막아 百名을 斬首하였다.
그러나 公 또한 몸에 수십 군데 創과 칼을 맞고 自由로운 舉動을 못하고 미처 피할 겨를이 없을 때 倭軍이 쏜 彈丸을 맞고 壯烈하게 殉節하였다.
이러한 事實이 朝廷에 알려져 左贊成의 벼슬을 贈하였으니 그 忠節의 늠름함이 天地를 감돌아 萬古의 歲月이 흘러도 또한 가히 公의 戰功은 後孫들에게 傳해 지리라. 그런데 아깝게도 두 公의 事蹟이 없어지고 한 世代의 公議가 막히어 이 훌륭한 분들께 지금까지 술한 잔 부어 祭祀 지내는 일이 없었으니 얼마나 靈魂들이 억울해 하겠습니까?
이에 우리들이 소리를 함께하여 通文하니 成均館에 계신 君子들께서는 一言의 重함을 주셔서 우리 선비들의 땅을 빛내어 주셨으면 多幸이라 하겠습니다.
오른 쪽과 같이 成均館에 恭敬히 通告합니다.

戊子(西紀1828年純祖28年)日에 글을 보냄

興陽 幼學
申明權 宋禹臣 柳  但 生進 丁斗玉
宋振玉 丁孝達 丁萬濟 宋采彬
丁孝達 宋陽吉 申震祿 朴禮彬
丁萬濟 柳煥斗 韓基延 申奎模
宋師一 李鎮璣 申衡祿 柳瑞浩 等


答通

오른쪽 글 되돌려 보낸 일은 보내 온 通文 內容이 謹悉하다.
放遊亭 朴公은 벼슬을 버리고 한가히 지내면서 淸標가 洒落하고 學問과 文章이 이미 그 當時 有明한 人事들의 推許한 바였다.
六代孫 參奉公은 倭賊을 追擊하여 勳勞를 세우고 結局 殉節 하였으니 그 분의 知慧, 勇氣, 忠節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恭敬할 것이다.
이미 朝廷으로부터 褒賞하고 贈職하는 舉事가 있었으니 한 집안 내에 그 할아버지 그 孫子는 가이 짝을 이룬 아름다움이요 함께 어짐을 다한 것이다.
貴邑의 선비들이 그 분들을 尊慕하는 精誠은 마땅히 祭祀를 올렸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올리지 못한데 대해 議論이 있는 것은 또한 늦은 감이 있다 하겠다.
바라건데 어진 君子들께서 公議에 따라 임금의 命令을 기다린 것이 多幸이라 하겠다.
오른쪽 글을 興陽 儒林들에게 恭敬히 通告합니다.

戊子十月(西紀1828年 純祖 28年) 太學(成均館)

西班, 東班 掌儀

通文

오른쪽 글 通諭한 일은 大概 急流에 勇退하는 것은 君子의 어려운 일이요 自己 한 몸 죽어 仁을 이루는 것
은 聖人이 勸奬한 것이다.
이제 벼슬 좋은 職責에 있었고 聖世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버리기를 鴻毛와 같이 가볍게 하고 退歸하여 百世 이래로 그 精誠을 본받게 하고 그 아름다운 香氣를 온 고을에 가득하게 하였고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듣게 하여 義理와 名譽가 빛나고 빛났으며 그가 일찍 文科에 올라 淸白하게 지내 오다가 世宗朝에 이르러 吏曹參判으로 權貴에 몸담는 것이 편치않다고 생각되어 벼슬을 버리고 貴縣 南陽 땅에 돌아와 放遊亭을 짓고 스스로 放遊의 뜻을 敍述하여 閑暇한 時間을 보내면서 詩를 지어 읊고 노래하면서 聖世에 隱居하는 선비로 自處하니 그 當時 어진 선비들 詩의 餞別 韻이 있으며 放遊를 和答한 詩가 있은 즉 이를 보면 公의 學問과 文章이 어떠 했음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公의 六代孫 諱 弘世는 至誠스러운 孝道가 出天하여 고을에서 薦舉하여 健元陵(李太祖)의 參奉이 되었다.
壬亂을 當하여 京畿殿 參奉 資格으로 太祖 眞相을 받들고 平安道 新義州까지 護送 하였다.
또 義兵을 일으켜 倭寇를 進擊하였으며 忠武公 書信을 接하고 卽日 行軍하여 산을 넘는 賊을 무찔러 數 百名을 斬首했다.
그러나 自身의 몸에 여러 군데 創傷을 입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여 結局 가슴에 敵彈을 맞아 殉節하였다. 이 事實이 朝廷에 알려져 임금으로부터 左贊成에 贈職 되었으니 그 忠節의 늠름함은 天地를 감돌것이고 萬古를 지나도 가히 參判公의 이름은 代代로 이어져 그 後孫들에게는 아름다움으로 길이 길이 남을 것이다.
그런데 아깝게도 그 事蹟이 없어지고 一世의 公議가 闡發 되지 못하여 祭祀를 지내는 舉事가 없었으니 그 억울함이 어떠 했겠는가?

이에 通文하니 생각건데 어진君子들께서는 위로는 朝廷의 奘輿 함과 褒賞의 盛스러운 制度를 이어 받아 깊이 숨어 있는 事蹟을 發揮하여 祠堂을 세워 높이 받들어 모시 는 곳이 되기를 願하는 것은 多幸이라 하겠다.
오른쪽 글을 興陽 鄕校에 恭敬히 通告한다.

戊子 五月 發文한 全州 幼學

李元懋 宋奎明 柳性欽 宋命爀
李莢臣 林英柱 李光玉 趙時春
吳學一 白圭熙 柳弘基 蘇能述
宋南憲 等


通文

오른쪽 通諭한 일은 지난 옛 佔俚齋(金宗直) 先生의 文章과 行誼는 그 當世의 師宗 이었는데 그 때 함께 사귀고 酬答하고 唱和한 者로 名節의 선비였다.
지난 龍蛇(壬辰) 變亂에 忠武公과 함께 乘船한 將帥로 露梁 앞바다에서 倭敵 擊退 時 그 幕下에 있는 參謀者들이 모두 勇猛한 忠義의 선비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貴邑 故 參判 朴公 諱 由元이 벼슬을 버리고 亭子를 지어 放遊 하면서 한가롭게 지내니 그 당시 이름있는 벼슬아치와 哲士들이 詩를 지어 酬唱하고 노래하며 즐기었으니 金宗直 先生께서 詩를 지어 주며 뜻을 깊이 새겨 주게 되어 아주 가까운 知己之間이 되게 되었으니 放亭公의 雅量과 淸節은 가이 여기에서 徵驗할 수 있다 하겠다.

公의 六代孫 故 參奉 諱 弘世는壬亂을 當하여 義兵을 일으켜 凶賊을 막았다.
忠武公께서 적을 함께 무찌르자는 書信을 보내 오매 躊躇하지 않고 참전하여 많은 倭敵을 斬首하였으나 아깝게도 敵彈에 맞고 殉節하였다는 事實이 勳錄에 실려 傳한다.
이 일로 褒賞과 贈職이 되었으니 그 貞忠大節은 忠武公의 벗이 되는데 부끄려움이 없다하겠다.
아 아 ! 슬프도다 朴公의 祖父와 孫子, 兩世의 맑은 節槪, 偉大한 忠誠이 國史에 記錄되어 있으니 감히 누가 속일 수 있단 말인가?
金宗直, 李舜臣, 두 분의 推許 및 認定하는 바가 저 처럼 鄭重한 즉 君子들이 말해 놓은 普通의 비슷한 類와 같이 어찌 우리 들을 속일 수 있단 말인가 ?
이 같은 節介와 行實로 보아 너무나 마땅히 士林들이 이분들을 높이 받들어 崇尙해야 할 祠堂이 있어야 할텐데 아직까지 없으니 實로 慨嘆하고 慨嘆할 일이다. 그래도 多幸히 成均館의 答한 글과 全州 鄕校의 通章이 이제 모두 到達이 되었으니 가히 百世 以來로 公議가 善을 좋아하고 타고난 本性에서 良心이 우러나온 것을 볼 수 있다고 하겠다.


우리들은 또한 德을 崇尙하고 尊慕하는 誠心으로 우러러 이르노니 貴邑의 어진 선비들께서 朴公 兩世의 行誼와 實跡으로 法司에 通告하고 임금께 알리어서 하루 빨리 祭祀 지내고 推仰하는 盛典을 行하도록 하여 우리들 마음속에 깊이 잠겨있는 追慕의 情을 發揮하고 어두운 이 世上을 밝히는 횃불이 되게해야 할 것입니다.
오른쪽 글을 興陽 鄕校에 恭敬히 通告합니다.

己丑(西紀 1829年, 純祖29年) 二月 光州 幼學
李鉉復 柳在洪 朴亮鉉 高時進
金致浩 金璋鉉 高時瑜 奇師顔
李箕疇 柳元錫 李圭哲 朴泰休
李惠疇 李東夔 朴孝鑑 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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放遊亭集 (譯文 및 原文)
서기 2002년 5월 일 번역
서기 2002년 8월 일 인쇄
번역인 柳明善
편집인 朴昌烈
인쇄인 宋聖雨
인쇄처 : 過驛印刷·玉印堂
548-831고흥군 과역면 과역리 69-3
전화: 061-832-3693
E-mail songsw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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