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덕사 영건사실(遠德祠 營建事實)

사적 Cultural Heritage
홈 > 뿌리알기 > 사적
사적

원덕사 영건사실(遠德祠 營建事實)

관리자 0 1709 0

원덕사 영건사실(遠德祠 營建事實)

신라기원 1975년 기미 1919)10월10일 정구(珽九)가 그 아우 만구(滿九)(영동군 양산면 봉곡리에 거주함)로 더불어 옥천군 이원면 구룡촌의 재실(密城君諱陟之后朴仁齡)묘아래서 세일사(歲一祀)를 지내매 어른과 젊은이가 모두 모여서 제사를 잘 모신 후에 정구가 좌석 가운데 나가서 탄식하며 말하되 근데 할아버지의 산소에는 세일사를 권할 적이 없는데 밀성대군에 이르러서는 우리 박씨의 본관을 받은 중조로 온 나라에 그 자손이 번성하여 그 숫자가 헤아릴 수가 없는데 오히려 (시달(豺獺)승냥이와 수달도 정성으로 제사를 지내어 보본 할줄을 안다)의 보본을 권하였으니 이게 어찌 후손의 도리가 되겠는가 ?


친근 한데에 풍족함이 없으면 서경전사(書經典祀)에 무량간일(無量干일) 옛사람의 경계한 바이니 공덕이 있는 조상에는 사당의 제향도 가할 것이요 단소의 제향도 또한 가하므로 당연히 여러 백세에 제향을 지낼 것인데 지금 천년에 이르도록 향화(香火)를 전폐하게 되었으니 이게 우리 종족의 결함된 일로 선조 제현께서 뜻을 두고 펴지 못한지가 오래인데 옛 숭정 (崇禎:명의종 2년호)(明毅宗 二年號)갑술 (1634)년에 외손 이유달(李惟達 : 전주 이씨)이 본도(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하매 본손 및 유림으로 더불어 영남루에 제향을 올리고 대군의 사우를 창건하려 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그 후 병진(1676)년에 전국군 후손인 군수(郡守)문호(文號 :밀양 하서에 있다)가 청도, 밀양의 여러 종족으로 더불어 사우(祀宇) 건립의 일을 상의하여 목재를 베고 주초를 운반 하였는데 마침 흉년을 만나서 건립하지 못하였으니 쉬운 일도 달하지 못하고 성의조차 미체 한 것이 아닌가 ?


통탄을 금하지 못하겠다.사우를 건립하는데 이르러서는 졸현히 시작할 수가 없고 먼저 설단하여 제향을 올리는 것이 의례에 어긋남이 없을 것이니 여러분의 의사는 어떻한가 하니"여러 일가들이 같은 소리로 옳다고 하므로 드디어 설단의 의논을 정하고 11월11일 동짓날이다.

만구로 하여금 일가 사람들을 인솔하고 드디어 재실 서쪽 언덕위에 설단하는데 반나절도 못되어 필역하고 맑은 술과 생육의 제수로 공손이 대군께 제향을 올리되 한 결 같이 정부자(程夫子)의 시조에게 제사 지내는 예절을 갖추었다.


이튼날이 동지인데 인구(仁九)가 호남으로 내려가 각처에 거주하는 종인들을 교섭하매 먼저 정읍에 박만환(朴晩煥)을 찾아 사우 건립의 의의를 말하니 만환이 또한 극구 찬성하며 즉시에 그 근방 종인들에게 선포하여 한소리로 협조하게 하고 만구(滿九),인구(仁九)는 또 어려움을 순방하면서 보본의 의거를 광포하니 두어달 사이에 뜻있는 종족들이 같은 소리로 협력하여 다시 사우 건립의 의논을 정하고 이날에 가장 먼저 참석한 자는 인구(仁九), 정구(情九), 경구(慶九), 내규(來奎), 내억(來檍), 승욱(承郁), 현겸(亨謙), 태훈(泰勳), 만환(晩煥), 태영(台永)여러 사람이다.

본소에 있는 종인이 호남을 왕래 할 때에 여러 번 승주(昇柱)를 심방하매 반드시 관대하고 후하게 예비도 주고 다소간에 금액을 보내어 본소에 군박함을 모면하게 했다.


경신(1920)6월달 어느 날에 구룡촌 제사에서 종회를 개최하였는데 회의 목적은 대군의 사우를 영견 할 떼에 임원 배정의 일이다. 공의로 추천하여 소장은 희명(喜明)이요 도유사는 내억(來檍)이오 부유사는 내규(來奎)요 재무유사는 만구(滿九)로 정하고 통문을 발간하여 각처 종족에게 발송하였다.

이해 11월 동지에 단소에서 제향을 올리고 같은 날 자시(子時)에 토지신위에 제사지내고 드디어 사우에 기지를 개척하여 목재 주초 기와를 운반했다.

사우의 제도는 정전이 四컨이오 반신문이 四칸이며 목수인즉 찬구(贊九):순천 사람)이요 부약장은 전 참판 남현(南鉉:진원 사람)이다.


옛날 발기인 명단은 다음과 같다.

전 현령 박희 , 유학 박수춘 , 첨지 박종서 , 봉사 박이문 , 주부 박사순 , 참의 박응성 , 봉사 박의룡 , 수문장 박승선 , 동지 박경만 , 주부 박천세 ,정로위 박사인 , 어모 박구 , 정로위 박항지 , 충찬 박담 , 충순 박복 , 봉사 박항의 , 봉사 박이눌 , 사복 박진남 , 사과 박정 , 유학 박영진 , 보인 박경립이요 유림에는 안패 김시성 , 이유 , 장희적 , 안호 , 신명희 , 손기양 , 안종한 , 조기창 ,조명주 , 권규 ,손창도 , 하윤성 등 여러 사람이다.


후손 정구(珽九)가 삼가 짓다.


2cdf1708cfd1c38ad536102d1ca049c8_1536041384_4508.jpg
 


Social Login

빠른 링크 Quick Links
사이트 현황 State 20180805
  • 현재 접속자 0 명
  • 오늘 방문자 1,124 명
  • 어제 방문자 3,018 명
  • 전체 방문자 675,315 명
  • 전체 게시물 798 개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