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관오회(冠五會) (45회) 제7장 골프와 방송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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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관오회(冠五會) (45회) 제7장 골프와 방송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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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오회(冠五會) (45회)

  제7장 골프와 방송중계




이 요리를 먹으면서 고찌 시장과 고찌 신문사 사장, 그리고 나는 요리이름 ‘가쓰오 다다끼’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고찌 시장과 신문사 사장은 칼로 잘라서 내는 요리이니, ‘때린다, 친다’는 뜻의 ‘다다꾸’에서 유래하지 않았겠느냐는 의견을 내놓았고, 나는 다른 의미로 해석을 했다. 


일본 사람들이 싫어하는 마늘을 다져 참기름과 함께 바르거나 찍어먹는 것을 보면, 우리말 ‘다대기’에서 유래된 이름이 아니겠느냐는 의견이었다. 고추장, 마늘 다진 것, 참기름 등 여러 양념을 섞어서 만든 우리나라 ‘다대기’를 가쓰오에 붙여서 ‘가쓰오 다다끼’라고 이름 붙였을 가능성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 모두들 그럴 듯하다며 내 의견을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그때는 일본 사람들의, 상대를 배려하고 분위기를 맞추는 특유의 인사이려니 생각했는데, 다음날 고찌신문에 우리가 나누었던 얘기가 기사화 되어 있어서 깜짝 놀랐다. 옛날에 누리나라의 도사[高知]와는 뱃사람들의 교류가 많았고, 그때 조선 사람 배에 있던 양념이 ‘다대기’를 다랑어 구운 것에 찍어먹은 데에서 ‘가쓰오 다다끼’ 요리의 이름이 유래(由來)되었을 것이라는 기사였다.       

      

우리가 흔히 멸치국물을 요리의 밑 재료로 쓰고 있는 것처럼, 일본 음식의 국물 맛을 내는 바탕에는 항상 ‘가쓰오’가 있다. 다랑어, 참다랑어를 쪄서 말리면 나무토막 같아지는데, 그것을 대패로 얇게 깎아서 종잇장같이 만든 것을 ‘가쓰오 부시’라고 한다. 일본 사람들의 부엌에는 이것이 항상 비치되어 있다. 


관오회(冠五會)


1978년 봄, 나는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최고경영자과정(最高經營者課程, AMP)에 입학해 공부를 하기로 했다. 현재 55기까지 배출이 되었는데 5기로 들어갔으니 학번이 꽤 높은 셈이다. 최고경영자과정은 공무원은 국장급 이상, 군인은 장군, 기업인은 사장급 이상, 언론인은 국장급 이상으로 입학자격이 제한되어 있어서 경쟁이 만만치 않았다. 


방송에만 전념해온 나는 경영에 대한 것을 알아두어야 다음 단계의 삶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무리를 해서 짬을 냈다. 일주일에 세 번, 저녁에 네다섯 시간씩 공부를 하는 것이었지만, 모르던 세상을 알게 되고 미국 등 선진국에서 공부를 하고 갓 돌아온 교수들로부터 선진 경영기법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공부도 중요했지만, 나에게는 이 과정을 수료하는 동안 훌륭한 분들과 교분(交分)을 나눌 기회를 가진 것도 큰 보람이었다. 여기에서 만났던 분들과는 끈끈한 정으로 얽혀져서 졸업을 하고 나서도 관오회라는 이름으로 계속 모임을 갖고 있다. 회원들은 매주 금요일이면 프라자호텔 지하 팝에서 모임을 갖는데, 10여명이 나와서 이야기꽃을 피우며 변함없이 친목을 다지고 있다. 


이 모임은 벌써 25년이나 계속되어 25주년 기념으로 단체관광 계획을 세워 실행하기로 했는데, 50명의 졸업생 중에 20명 가까이가 유명(幽明)을 달리해서 세월의 무상함을 실감케 하고 있다. 


국일관(國一館)에서 생긴 일


관오회 초창기에 웃지 못 할 일도 있었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동기동창들인지라 막힌 벽을 완전히 허물어야 더욱 친해진다는 한 회우원의 제안에 따라, 저녁 모임을 끝낸 회원들이 종로 2가에 있던 국일관 나이트클럽으로 몰려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이 많고 점잖은 손님 30여명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것이 아니꼬왔던지 종로의 건달 깡패들이 시비를 걸어오기 시작했다. 깡패들은 우리들 중에서 체격이 우람하고 목소리가 유난히 큰 L장군을 표적으로 삼아, 계단이 있는 구석으로 거칠게 몰고가는 바람에, L장군이 그만 계단에서 밑으로 구르고 말았다. 


L장군은 다행히 많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놀란 우리는 창피한 생각에 서둘러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나와 젊은 사람 몇이 L장군과 같이 국일관을 나오는데, 마침 이곳 담당인 군 관계 기관원(機關員) 한 사람이 우리를 알아보았고, 이 소동을 알고 난 후 더 큰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자기네 기관 최고 책임자가 건달 깡패들에게 행패를 당한 것을 알았으니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는 불문가지(不問可知)였다. 


우리가 L장군 댁에 도착했을 때는 국일관 책임자를 비롯해서 건달 깡패들이 모두 와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고, L장군은 없었던 일로 하자며 모두를 돌려보내느라 애를 먹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그 건달들은 그곳 담당기관원들에게 아주 혼이 났었다고 한다. 


그때 같이 공부한 AMP 동기들은 정수창 회장, 최종환 회장, 박승서 회장을 비롯해서 이채호, 신태범, 양대길, 권혁중, 안병주, 김정철, 최정현, 고종진, 공대식, 김성규, 김인준, 김철환, 김항근, 박종인, 백형배, 양승룡, 이기빈, 이상주, 이연면, 이영주, 이종원, 이중근, 정재문, 한석윤, 허기 회장님과, 민경중, 박희모, 이영구, 이태섭, 장병천, 이동규 장군 등으로 이 분들과는 관오회 모임을 통해 지금도 자주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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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에서 아내와


- 수필 - 

나와 중년의 삶


구숙자


나는 아들이 둘 있다. 큰 아이는 준수, 작은 아이는 중수다. 그리고 칠순이 넘으신 시어머님과, 남이 노는 날이면 바쁜 그이까지 우리 식구는 다섯이다. 


지금끼지는 시어머님의 도움으로 가정을 꾸려나가기가 그리 힘들지 않았는데, 그 어른이 칠순이 넘으면서부터는 아무래도 내가 할일이 많아졌고, 아이들도 요즈음은 꽤 커서 아이들 방에 들어가면 제법 총각냄새까지 나는데, 다루기도 점점 힘들어진다. 


또한 세계적이라고는 하지만 밀어닥친 불황으로 나의 가계부는 크게 위협을 받기 시작했고,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추는 지혜를 짜내 본답시고 제법 연필 끝을 움직여 보지만 아직까지 별 뾰족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 이의 머리에도 희 머리카락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 것을 보면, 나이도 나이지만 어려운 때를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다. 


며칠 전 그이와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백화점에 들렀다. 어쩌면 그 많은 물건들이 하나같이 그렇게도 예쁘고 아름다운지 모두 사고 싶은 것들뿐이었다. 나는 가만히 그이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이는 나의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한 듯,

“사고 싶은 모양이지? 무엇이든 사구려.”


하며 나를 보고 웃었다. 무슨 배짱으로 그러는지는 몰라도 말이 시원스럽기는 했다. 나는 이것 저것 여러 가지를 만지고 값을 살펴보았으나 결국 아이들 옷가지와 시어머님의 작은 선물 하나를 사는 것으로 쇼핑을 마쳤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면서 그이에게 한마디 했다. 


“저기 함흥냉면 집이 있네요. 횟국수나 좀 사주시구려.”


나는 중년을 이렇게 보내고 있다. 


-1977년 9월 중앙사우(중앙사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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