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현대 아파트사건 (46회) 제7장 골프와 방송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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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현대 아파트사건 (46회) 제7장 골프와 방송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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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아파트사건 (46회)

  제7장 골프와 방송중계




현대 아파트사건


1978년 6월에 나는 기가 막힌 일에 휩싸이게 되었다. 불광동 집에서 10년을 넘게 살던 나는 이사를 해야 하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가깝게 지내던 현대그룹 정몽필 군을 우연히 만나 그런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 당시 동서산업(東西産業)이라는 조그만 회사를 경영하고 있던 정 사장은 내 얘기를 듣더니 자기네 그룹에서 짓고 있는 아파트를 산 사람이 그것을 다시 팔고 싶어 한다면서, 권리금(權利金)을 조금 얹어서 사라는 것이었다. 


나는 고마운 마음으로 아파트 주인을 만나기로 그 자리에 서 약속을 했고, 다음날 주인 L장군을 만나 당시에는 큰 돈인 300만원을 주고 권리를 샀다. 그 뒤 어렵게 중도금 등을 내면서 아파트가 완성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청천벽력(靑天霹靂)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하루는 출근을 했는데 사무실 분위기가 이상했다. 조간신문을 보았더니 1면에 대문짝만한 크기로 ‘현대아파트 특혜분양사건’이 실려 있고, 내 이름이 그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너무나 놀란 나는 그 자리에서 짐을 챙겼고, 곧바로 불광동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집에 도착해서 온 식구가 한숨을 쉬며 걱정하고 있는데, 벽에 달아놓았던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청와대에서 온 전화였고, 전화를 건 사람은 유혁인(柳爀仁) 정무수석 비서관이었다.


“박종세 주간님, 각하의 말씀을 전합니다. 경거망동하지 마시라는 각하의 각별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청와대에서는 내가 이 사건과 무관함을 안다는 얘기였다. 전화를 끊은 나는 먼저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안심을 시켜드린 뒤, 아무래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집사람이 보는 앞에서 마루와 안방을 몇 번이고 왔다갔다 했다. 


사칠귀정(事必歸正)의 결말 


그뒤 현대아파트 사건은 전국을 흔들었고, 뉴스마다 톱이고 해설마다 신랄해서 관계된 사람들은 죽을 맛이었는데, 김덕보 사장님이 전화를 해서 내 마음고생을 위로해주었다. 다음날 나는 일주일 만에 출근을 했다. 


이 사건에 연루되었던 사람들은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아무 연락도 없었던 것을 보면, 내가 분양 받은 사람에게 돈을 주고 샀다는 것을 당국도 모두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하루는 중앙일보의 호랑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홍성유 부사장이 전화를 했다. 이돈형 부장과 함께 <장원>이라는 한정식집으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홍 부사장은 점심을 사주면서 우리들을 위로했고, 정치적인 놀음에 다수의 언론인들이 희생양이 되었다며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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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8년 일어난 현대아파트특혜분양사건에 대해 1991년 한겨레신문이 조명한 기사


거기서 나는 이 부장도 너무나 억울하게 당한 것을 알았다. 중앙일보 동양방송에서 현대아파트사건에 관계되었던, 사람들은 모두 그만두었는데, 나와 이돈형 부장이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 아니었던가 한다. 


서둘러진 방송복귀


그 당시 삼성(三星) 이병철 회장과 현대(現代)의 정주영 회장은 견원지간(犬猿之間)이었다. 동양방송 내에서 누군가가 현대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았을 경우, 검찰이 수사하기 전에 이병철 회장의 철퇴를 먼저 맞게 되어 있던 때였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삼성의 수뇌부에서는 내 이름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자 기자들을 시켜서 진상을 철저히 파헤치도록 했는데, 다른 사람이 분양받은 것을 웃돈을 얹어 산 것이 확인되면서 혐의가 벗겨지자 그때서야 안심시키고 위로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이 사건이 터진 뒤에 현대그룹 최고 간부회의에서도 내 문제가 논의되어 동양방송에서 강제 퇴직될 경우 나를 그룹 홍보담당(弘報擔當)으로 스카우트하기로 방침을 세웠었다고 한다. 


현대그룹 쪽의 정몽필 군과는 일찍부터 친한 사이로 정월 초하룻날이면 정주영(鄭周永)회장께 세배도 갈만큼 그쪽과도 편안하게 지내온 터라, 나를 평소에 좋게 보고 계셨던 정주영 회장이 간부회의에서 차제에 그룹으로 데려오자고 발언을 하셨던 모양이다. 


이 소식은 곧바로 중앙일보, 동양뱡송에도 알려졌고, 그로 인해 나의 방송복귀(復歸)가 서둘러졌는데, 홍진기 회장, 김덕보 사장님이 앞장을 서 주셨다. 


나는 이렇게 사건이 터진 후 일주일 만에 출근은 했지만 방송은 하지 않고 있었는데, 홍 회장님이 ‘박종세’ 하면 야구중계방송이니까 우선 그것부터 내보내면서 차차 TV뉴스도 진행하도록 하자는 타임테이블을 내놓으셨다. 


현대아파트사건 후 첫 중계방송에서


그해 8월 1일 한국일보(韓國日報) 주최 봉황대기 야구대회가 막을 올렸다. 현대아파트사건으로 한 달동안 방송을 쉬었던 나는 중계방송을 위해 동대문야구장으로 향했다. 


혹시 도중에 무슨 행패가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건장한 체격의 경성지물포 김준현(金俊鉉) 사장과, 휘문고 출신의 명물 허병수(許炳秀) 사장이 나의 양옆에 딱 버티고 앉아 있는 가운데 종계방송이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관람객들이 모두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들고 올 때여서 방송을 하면서 3만 관중이 들어찬 운동장이 왕왕 울렸다. 

                             

“여기는 서울운동장 야구장입니다. 지금부터 박종세가 중계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다른 때와는 다르게 ‘박종세가 중계방송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멘트에 관중들이 모두 운동장 꼭대기 층에 있는 중계방송석으로 머리를 돌렸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나는 감격해서 눈물이 왈칵 솟아올랐고, 목이 멘 상태로 중계방송에 몰입(沒入)에 들어갔다. 


중계방송을 마치고 집에 온 나는 파김치가 되었지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마음고생으로 심신이 찌든 나에게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를 보내 준, 나를 사랑하는 야구팬들이 더할 수 없이 고마웠고, 나를 다시 방송에 내세우기 위해 고심하신 윗분들이 고마웠다.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나를 양옆에서 지켜준 김준현 씨, 허병수 씨는 또 얼마나 고마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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