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내게 믿음을 준 야구팬들 (47회) 제7장 골프와 방송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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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내게 믿음을 준 야구팬들 (47회) 제7장 골프와 방송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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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믿음을 준 야구팬들 (47회)

  제7장 골프와 방송중계




이렇게 어렵게 다시 방송을 시작한 나는 그날로부터 봉황대기 결승 때까지 17일 동안 운동장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중계방송에 몰두했고, 그런 시간을 보낸 후 내 방송 스케줄도 평상을 되찾았다. 


9월에는 TV뉴스 진행도 다시 시작하면서, 현대아파트사건이 난지 두 달 반 만에 모든 것이 원상회복(原狀回復)되었다. 


내가 생각지도 않았던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보내 준 분들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차제에 방송을 그만두고 자기 회사로 오라고 자리를 마련해두고 연락을 주시던 삼환기업(三煥企業) 최종환(崔鍾煥) 회장님, 주식회사 부영(당시는 우진건설)의 이중근(李重根) 회장님, 그밖에 친형제처럼 지내던 몇 분들이 일부러 나를 찾아와 용기를 주었었다. 


그런가 하면 남을 헐뜯기 좋아하는 몇 사람은, 이 기회에 아파트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은 모두 사회적으로 매장을 시켜야 한다고 나팔을 불어대면서, 현대아파트에 가보았더니 마루에서 탁구시합을 해도 될 정도로 아방궁이더라고 허풍을 떨어대기도 했다. 


나는 그렇지만 모두를 용서(容恕)했다. 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떠들어 댈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하면서 웃어넘기기로 한 것이다. 정말 큰 시련(試鍊)이었다.   


처음으로 쿠바에 이긴 우리 야구


우리나라 야구는 쿠바에게는 유난히 약해서 항상 꼼짝 못하고 패했었는데, 이 해에 네덜란드에서 열린 할렘 국제야구대회에서는 두 차례 대결에서 6대 3, 4대 2로 모두 승리하는 바람에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또한 우리도 쿠바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게 되었다. 그 후 다시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야구 선수권대회에서 같은 팀을 만나 11대 0으로 7회 콜드게임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지만, 어쨌든 1978년은 우리 야구가 역사상 처음으로 쿠바를 꺾은 해로 기록되었다. 


이때 선수단은 감독 김응룡, 선수는 최동원, 김시진, 유남호, 박철순, 박해종, 김봉연, 김재박, 김일환, 장효조, 김일권, 이해창, 김준환, 김우열 등이었다. 


김삼열(金三悅) 교장의 건배 


같은 해에 고교야구에서는 대통령배대회에서 부산고가 대구상고를 물리치고 처음 우승을 차지했는데, 결승전에서 선전한 부산고 양상문 투수의 투구가 각별히 인상적이었던 대회였다. 


부산고는 청룡기대회에서도 경북고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해 2관왕이 됨으로써, 군웅할거(群雄割據)의 고교야구 판도에서 단연 강자로 떠올랐다. 


황금사자기 대회에서는 신일고가 결승전에서 서울고와 맞붙어 일방적인 경기 끝에 우승을 차지했는데, 나의 대학 선배였지만, 강의는 같이 들었던 김삼열(金三悅) 교장선생님이 감격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나를 자기 집으로 초청을 하기도 했다. 

 

신일고 이사장의 큰 사위이기도 한 김 교장은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 이면서도 이날만은 건배를 몇 차례 외치면서 만취했던 일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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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길 PD, 이수형 엔지니어와 야구중계를 하고 있다


1978년은 우리나라 야구사에 또 하나의 족적(足跡)이 남겨진 해이기도 하다. 한국청소년 야구대표팀이 콜롬비아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야구 선수권대회에 출전하여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이다. 


10개국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부산고의 양상문 투수와 광주일고의 이상윤 투수가 크게 활약, 강적 쿠바까지도 벌벌 떨게 하면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이상윤 투수는 투구뿐 아니라 타격에서도 크게 활약해서 우리나라 야구의 대들보로 떠올랐다. 


얼굴 좀 봅시다


1978년은 현대아파트사건으로 나에게는 악몽 같은 해였지만, 나의 방송은 그런 어려운 고비를 넘기면서 더 진지하고 중후해졌다는 평을 들었다. 


그 해에 주간중앙(週刊中央)은 ‘얼굴 좀 봅시다’란 코너에 “방송주간(放送主幹) 박종세(朴鍾世)”에 대한 기사를 싣기도 했다. “방송 경력 22년의 명(名)뉴스 캐스터에 일품인 야구중계”라는 제목 아래 큰 사진과 함께 보도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온화(溫和)하면서도 급(急)하고 그러면서도 그 속에 결코 쳐지지 않는 힘 있는 목소리의 주인공 박종세(朴鍾世) 씨, 공식직함은 중앙일보, 동양방송 ‘방송주간(放送主幹)’이다. 올해로 방송경력 만 22년의 초(超) 고참 아나운서이다. 그러나 이제 아나운서보다는 명(名) ‘뉴스 캐스터’, 또는 특집좌담(特輯座談)의 사회자로서 더 원숙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다가 정작 야구경기가 ‘시즌 오픈’되면 운동장에서 살다시피 하는 씨(氏)가 마이크를 잡았다하면 ‘딱’하고 총알같이 날아가는 공의 속도보다도 말은 더 빠르다. 따라서 야구경기를 보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들에게 더욱 흥분과 감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야구 경기의 중계방송은 시작한 것은 1958년, 장훈(張勳) 선수가 주축이 된 재일동포 학생야구단 모국방문경기를 시발로 해서 매년 40~50게임의 경기를 중계방송해 올해가 야구중계 시작 20년째 임을 계산 한다면 약 1,000게임에 이르는 계산이다. 


야구중계를 위해 외국행도 여러 번, 대만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아 야구선수권대회와 1975년 캐나다에서 열린 제1회 세계 야구선수권대회, 그리고 멕시코 올림픽 중계를 위해 파견되기도 했다. 


올해도 곧 시작될 중앙일보, 중앙방송 주최‘의 <대통령배고교야구대회(大統領杯高校野球大會)>를 대비해 전국의 각 훈련 캠프장을 미리 점검하는 세심함도 보여주고 있다. 


야구뿐만 아니라 동양라디오 <뉴스전망대>와 <정오뉴스>, 동양TV의 <TBC석간>의 고정 캐스터이기도 한 씨(氏)의 방송 생활 중 가장 못 잊을 일은 ‘5.16 첫 방송’을 담당했던 일이라고 술회한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 출신인 씨는 1935년 8월 28일생으로 부인 구숙자(具淑子) 씨와의 사이에 중1과 국민학교 6학년의 두 아들을 두고 있으며, 야구중계의 명인답게 휴일이면 두 아들을 데리고 집 뒤 학교 운동장에서 야구를 지도하는 것이 취미이기도 하단다. 


그간 1972년의 5.16민족상 사회부문의 수상경력 외에 지난해엔 한국방송 50주면 기념 국무총리 상을 받기도 한 씨의 포부는 미국의 ‘워터 크롱가이트’나 일본의 이마후쿠[今福], 아오키[靑木], 미야다[宮田]와 같이 백발을 휘날리면서도 결코 ‘마이크’와 함께 살리란 것이다. 


담배는 전혀 못하고, 맥주는 두병 정도의 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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