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ABU 발리총회 참석 (48회) 제8장 시대와 역사의 풍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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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ABU 발리총회 참석 (48회) 제8장 시대와 역사의 풍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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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U 발리총회 참석 (48회)

  제8장 시대와 역사의 풍랑에서




ABU '발리‘ 총회참석


1978년 가을에 나는 ‘스리랑카’에서 열리는 아시아방송연맹총회(ABU)에 참가하게 되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순서를 바꾸는 문제가 발생했다. 


다음 해인 1979년에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ABU총회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던 라디오 담당 노승병(盧昇昞) 상무가 그때는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나와 순서를 바꾸자고 의논을 해온 것이다. 


물론 나는 수락을 했고, 방송국에서도 그렇게 결정을 하여 이번 총회에는 노 상무가 가기로 하고 나는 내년에 있을 총회에 김덕보 사장님을 모시고 참가하기로 했다. 


그렇게 노 상무는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에서 열린 ABU총회에 참석하고 돌아왔는데, 그만 병을 얻어오고 말았다. 남방 국가 중 특히 어렵게 사는 나라에 많은 풍토병(風土病)이었다. 원래 몸이 약했지만 그래도 강단이 있어서 정열적으로 일하는 훌륭한 분이었는데, 몹쓸병에 걸리고 만 것이다. 


노 상무는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투병 생활을 계속했지만, 모두의 염원을 저버린 채 결국 세상을 뜨고 말았는데, 나는 한동안 죄책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물론 그분 사정 때문에 순서가 바뀌었지만, 내가 가기로 한 것이니 내가 가야 한다고 강하게 우겼더라면, 이런 불행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평안치가 않았던 것이다. 


1979년 10월, 나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아시아방송연맹총회(ABU)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때는 서울에서 발리까지의 직행 비행기가 없을 때여서 서울에서 홍콩까지는 우리 KAL을 이용했고, 홍콩에서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까지는 CPA항공을 이용했으며, 자카르타에서 발리까지는 인도네시아 항공인 ‘가루다’를 이용해야 했다. 


그런데 너무 촉박하게 떠나는 바람에 날짜에 여유가 없었고, 더군다나 이번 총회에서는 우리 동양방송이 이사(理事) 방송사를 맡아야 하는 무거운 짐도 있었던 터라 나는 걱정이 많았다. 


김덕보 사장께서는 서울에서의 일정 때문에 한발 늦게 오시기로 해 나만 먼저 출발한 것인데, 날짜는 사흘밖에 남지 않은데다가 자카르타에 도착해 수소문해보니 발리로 가는 비행기도 다음날이라야 연결이 된다는 대답이어서 나의 조급증(躁急症)은 점점 심해졌다. 


독일 ZDF 대표 브란트 씨


빨리 현지에 도착해서 영향력 있는 국가의 방송국 대표들과 접촉을 가져야 되는데, 도무지 그럴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다음날 일찍 현지에 도착을 한다고 해도 오후와 밤 시간 밖에 쓸 수가 없는 실정인데, 과연 그렇게라도 되려는지, 나는 자카르타에서 하룻밤을 거의 뜬눈으로 새우다시피 했다. 


다음날 닐찍 떠나는 ‘가루다’ 비행기를 타긴 탔는데, 이 비행기가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지 중간 기착지인 ‘자바’ 섬 동쪽 끝에 있는 ‘수라바야’에서 다시 떠날 줄을 모르는 것이었다. 


나는 사색(死色)이 되어 여기저기에 물어보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는데, 진작부터 내게 유난히 많은 시선을 주던 한 서양 사람이 다가와, 독일 ZDF(국영방송) 대표로 발리 ABU총회에 가는 길이라고 자기 소개를 하면서 왜 그렇게 조바심을 내느냐고 일본말로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국의 ‘TBC'대표로, 내일 아침 총회에서 이사에 선출되어야 하는 큰 문제까지 안고 있어서 걱정이 되어 그런다고 일본말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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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동양방송 주역들과 함께 / 왼쪽부터 봉두완 위원, 이현우 전무, 김승한 주필, 이종기 전무, 노승병 상무, 박종세 주간, 홍두표 상무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브란트’라고 이름을 밝힌 ZDF방송 대표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기가 대표들에게 모두 얘기를 해놓을 테니 내일 아침 8시에 열리는 총회 전 이사회의(理事會議)에 참석해서 대표들과 인사나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마치 도깨비에게 홀린 꼴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영어가 시원치 않은 나는 현지에 도착하면 KBS 국제국에 나와 있는 직원 한 사람을 지원받아 대표들을 만나보고 사전운동도 하려고 계획을 세워두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귀한 사람을 만나 어려운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안도(安堵)의 한 숨을 내쉬었다. 


‘브란트’씨는 영어가 유창할 뿐만 아니라 일본말도 잘해서 한쪽으로는 이 사람이 무슨 첩자(諜者)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국제적인 인물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분은 ABU총회에서도 유명인사로, 독일이 아시아방송연맹의 정회원이 아니고 ‘업서버’에 불과한데도 총회 때마다 참가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더구나 그는 영향력이 큰 일본의 NHK나 호주의 ABC 대표들과는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수라바야에서 세 시간이나 머물렀던 인도네시아 항공 가루다는 마침내 인도네시아 동쪽 끝에 있는 작은 섬 발리를 향해 이륙했다. 기내에서는 승객들이 무질서했고, 승객석과 조종석 사이의 문은 활짝 열려있어서, 보안(保安)이 철저한 비행기만 탔던 내 눈에는 그런 것들이 너무나 불안해보였다. 


그러나 불안하고 초조한 속에서도 가루다는 발리의 ‘텐파사’ 공항에 무사히 착륙했고, 함께 탑승했던 ABU 대표 일행은 부지런히 바닷가에 면한, 총회가 열릴 <로얄호텔>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또 웬일인가. 호텔에 우리가 묵을 방이 없다는 것이다. 예정보다 하루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예약이 취소된 것이었다. 지배인의 안내에 따라 호텔 옆의 방갈로처럼 생긴 허술한 모텔에 여장을 풀었지만,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본의 아니게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첫날부터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 우리 여섯 사람은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모텔 중간에 있는 휴식처 같은 데로 모였고, 나는 고맙게 대해준 ABU 대표 등에게 그때 처음 본 하이네켄 맥주를 대접했다.             


개막식 


다음날 일찍 일어나 이사회가 열리는 로얄호텔로 갔는데, 브란트 씨는 벌써 나와 있었다. 나를 본 그는 손을 끌고 다니며 대표 한사람, 한 사람에게 인사도 시키고 말도 건네게 해주었다. 


나는 그에게 이끌려 일본 NHK대표, 호주 ABC 대표, 인도네시아,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대만의 방송대표 등과 인사를 나누었고, 그때 막 ABU이사국으로 참여한 중공(中共)의 북경방송 대표도 만나 보았다, 


결국 총회 전 이사회에서 KBS는 계속 이사로 유임이 되고, 새로 우리 동양방송 TBC가 만장일치로 이사에 선임이 되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하늘에 감사했다. 


곧이어 10시에는 ABU 발리대회가, 아시아는 물론 세계의 옵서버 국가에서 온 수많은 방송인(放送人)이 참석한 가운데 로얄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화려하게 개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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