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TBC여 영원하라 (52회) 제8장 시대와 역사의 풍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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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TBC여 영원하라 (52회) 제8장 시대와 역사의 풍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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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여 영원하라 (52회)

  제8장 시대와 역사의 풍랑에서




KBS 방송위원실 주간(主幹)

 

나의 정식 직함은 방송위원실 주간이었는데, 방송위원들을 지도 감독하면서 매일 아침 열리는 사장 주재 간부회의에 정회원으로 참석하게 되어 있었다. 


이원홍 사장은 내게 아주 많은 신경을 써주었는데, 비서로는 동양방송에서 같이 간, 중앙일보 김승한 주필의 비서였던 김정자 양을 배속시켰고, 운전기사가 딸린 ‘마크 화이브’를 전용 승용차로 내줄 정도였다. 


나는 KBS를 통해 방송계에 발을 들여놓았고, 1956년부터 8년동안 근무를 했는데도, 동양방송 생활 17년이 너무 길어서인지 친정에 다시 온 기분보다는 어딘가 서먹한 느낌이 더 컸다. 나는 그런 기분을 떨쳐보려고 다시 정을 붙이기 위해 오로지 일에 매달렸다. 


‘KBS뉴스 전망대’는 내가 ‘메인’이 되고, 방송위원실 식구들이 교대로 사회를 맡아서 노력한 결과 얼마 가지 않아서 ‘TBC뉴스 전망대’ 못지 않은 인기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았다. 진행은 나 이외에 박미정 위원, 이승 위원, 신현일 위원, 김진기 위원 등이 열성적으로 맡아주었다. 


그 당시 KBS 보도 책임은 강용식(康容植) 국장이 맡고 있었는데, 나와는 TBC에서 같이 오랫동안 근무를 했던 인연으로 내가 무슨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을 훤히 알고 있어서, 프로그램 배당에 일치가 빨랐다. 


나는 아침에는 TBC와 마찬가지로 ‘KBS뉴스 전망대’를 진행하고, 낮에는 야구중계방송이나 다큐멘터리 MC를 맡는 등, KBS 1TV 9시 뉴스는 진행하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공백 없이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방송위원실 식구들의 ‘일거리’가 마땅치 않아서 걱정이었다. 고심 끝에 라디오나 TV방송을 진행하지 않는 위원들은, 보도방송 뉴스의 질적 향상을 위해 모니터링(Monitoring)을 하기로 했는데, 그것이 나중에 올바른 기사작성 요령이라든가 방송언어 순화 등에 크게 기여하는 역할을 했다. 


뉴스 모니터링은 동아방송에서도 데스크와 함께 같은 종류의 일을 해보았던, 최고 연장자 신상현(申相鉉) 위원이 책임을 맡아 훌륭한 결실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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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이원홍 사장과


TBC고별 라운드


언론통폐합은 겉으로는 평온한 듯 했지만 수많은 부작용을 낳았고, 정부도 큰 부담에 계속 시달려야 했다. 몇 년 뒤 오랜 친구인, 중앙경제신문 부사장 현영진(玄英鎭) 군이 다음과 같은 글을 신문에 실어서 다시 한 번 당시의 감회를 되새기게 했다. 


80년 11월 30일, 당시 제5공화국의 주역들이 서슬 퍼런 칼날을 휘둘러 동양방송(TBC) 사기(社旗)를 내리도록 강요한 날이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하고 오열을 삼키면서 마지막 방송을 내보내던 TBC 관계자들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단언하지만 제5공화국이 민심을 잃은 채 인기 없는 정치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계기는 바로 언론의 통폐합, 그 중에서 TBC를 없앤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날 최후의 TV 굿바이쇼를 사회한 박종세(朴鐘世) 아나운서는 후일 “처음 개국 축하쇼의 사회도 내가 보았는데, 막을 내리는 쇼의 사회를 맡다니.......”하고 몹시 가슴아파했다. 또 TBC 압살이 잘된 일이라고 TV에 나와 해설을 했던 이희준 해설위원은 그때의 쓰라린 상처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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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준 해설위원과


아무도 해설을 맡지 않겠다고 기피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본의 아닌 해설을 했던 이 위원은, 그 후 시청자들의 빗발치는 항의를 견디다 못해 자택의 전화번호까지 바꾸어야 했다. 


TBC가 사라지도록 강요된 직전의 일요일, 한 달에 한두 번 함께 골프를 즐겼던 박종세 방송주간, 이희준 해설위원과 로얄CC에서 고별골프를 했다. 두 사람 모두 골프솜씨는 만만치 않다. 


“에이, 더러운 놈의 세상! 자, 공을 미운 놈이라고 생각하고 실컷 패기나 하자.”


그 날은 그렇게 라운딩 했다. 


골프를 끝내고 클럽 하우스에 모여 앉으니 서로 울화통이 치밀어 술을 한없이 퍼마시기 시작했다, 시절이 시절인지라 클럽하우스에는 고급 장교인 듯한 사람들이 많았다. 술이 좀 들어가자 열이 북받쳤다. 


“이봐 종세야. 세상에 남의 방송을 무쪽같이 갈라먹는 자식들이 어디 있어. 그게 민주주의냐?”

하고 큰 소리가 나올 수밖에,


“야, 왜 그러냐. 옆자리 좀 봐라. 그러다가 우리 셋은 혼난다.”

“죽기밖에 더 하냐. 이봐 희준이, 안 그래?”

“형님 말이 맞아요. 망할 놈의 세상.”


그러면서 술을 계속 입에 털어 넣으니 일행이 다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되었다. 어찌나 마셔댔던지 돌아오는 길에 의정부를 벗어나자 박 군은 차를 잠깐 세우라고 하고 길옆 거름을 막 뿌린 밭에서 뒹구는 것이 아닌가. 속에서 불이 난다면서.


그리고는 다시 박종세 주간 집으로 가서 귀하게 아껴왔다는 산삼주(山蔘酒)를 모두 비우며 퍼댔다. 골프 후에 그때처럼 술을 많이 마신 일은 일찍이 없었다. 

       

TBC여 영원하라.  


KBS와 MBC의 합동 개표방송


1981년 치러진 총선(總選)의 개표방송은 KBS와 MBC가 합동으로 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메인 MC로는 양 방송의 중간 같은 이미지인 내가 맡기로 하고 KBS에 스튜디오가 마련되었다.  


내가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왼쪽에는 KBS 해설위원, 오른쪽에는 MBC 해설위원이 앉아 개표방송 중간 중간에 해설과 논평, 전망도 하면서 합동방송을 진행했다. 개표방송의 마무리는 물론 내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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