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김동엽(金東燁) 감독의 사퇴 (5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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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김동엽(金東燁) 감독의 사퇴 (5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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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와 돈


이렇게 프로야구는 시작되었는데 해태타이거즈는 운영자금(運營資金)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선수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나와 김 상무는 이 문제를 강력하게 거론, ‘초장기부터 프로야구단이 돈 걱정을 하면서 어떻게 팀을 제대로 이끌 수 있겠느냐? 자금이 넉넉한 지원이 없을 경우 우리는 야구단 운영에서 손을 떼겠다.’는 발언을 남기고 회의장을 나와 버렸다. 


사장단회의에서는 즉각 여러 반응이 나왔고, 회장님 앞에서 말을 너무 함부로 한다는 질책성 항의도 들어왔다. 그러나 나와 김 상무의 뜻은 변할 수가 없었다. 프로 팀은 역시 돈이었던 것이다. 


며칠 후 박건배 회장은 나와 김 상무를 술집으로 불러 소주잔을 따라주면서, 회의에서 올바른 지적을 해주였다며 오히려 칭찬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룹사에서 돈을 내야 구단을 운영해나갈 텐데 회장인 자기가 너무 앞서나갈 수 없어서 그동안에 고민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해태구단에서는 다시 윤기(潤氣)가 돌았고, 팀 성적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김동엽(金東燁) 감독의 사퇴


해태타이거즈는 선수 14명으로 시작했지만 김봉연 선수의 홈런, 투수 겸업인 김성한 선수와 김종모 선수의 타격, 김용남, 이상윤 투수의 활약 등으로 그런대로 중간 성적은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는 일이 터지고 말았다. 


하루는 대구에서 경기를 보기 위해 나와 김 상무가 대구구장에 도착했는데,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더그아웃(Dugout)에 있어야 할 김동엽 감독이 일루 베이스 쪽 코처스박스(Coacher’s box)에 있고, 삼루 쪽 코치박스에는 코치 대신 신태중 선수가 서서 손을 흔들며 사인을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을 직감할 수 있는 장면(場面)들이었다. 


진상을 따져보았더니, 전날 밤 술을 김 감독이 조창수 코치와 유남호 코치를 불러 야단을 치는 과정에서 맥주병 몇 개가 날랐고, 그것까지는 참을 수 있었는데, 코치들의 가족까지 끄집어내어 모욕적인 말을 하는 바람에 두 코치가 그 자리에서 보따리를 싸 서울로 떠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언론에 알려졌고 나는 기자회견(記者會見)까지 하는 등 골머리를 앓았는데, 결국 김동엽 감독의 사퇴로 결말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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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엽 감독과 중계방송을 하고 있다


김동엽 감독은 황해도 사리원 출신으로 나의 경복고 후배인데, 아주 재주가 많은 사람이었다. 한때는 나와 야구중계를 같이 하면서 명쾌한 해설로 인기를 끌었고, 야구지식이 풍부해서 프로야구 창단에도 큰 공헌을 했는데, 술이 문제였다. 술만 마시면 사람이 완전히 돌변(突變)해서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그는 1997년에 4월에 세상을 떠났는데, 장례식장에서 나는 그와 함께 했던 시절의 미운정 고운정이 떠올라, 흐르는 눈물을 감출수가 없었다. 


연패의 사슬을 끓고 


결국 해태타이거즈는 얼마간을 조창수 코치가 감독대행(監督代行)을 하는 체제로 팀을 운영해야 했는데, 나와 김 상무도 덩달아 팀 운영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 무렵 우리집은 불광동에서 문제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78동 604호로 이사를 했는데, 나는 집 내부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잘 모를 정도였다. 아침에 여의도에 있는 회사에 출근했다가 김 상무와 함께 자동차로 오후 2시에 야구경기가 열리는 광주나 대구, 부산 아니면 대전으로 달려가서 경기를 본후 저녁 7시쯤 다시 귀경길에 올라, 자정이나 새벽 한두 시에 집에 들어오는 강행군(强行軍)을 계속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기를 이긴 날은 그래도 몸이 가벼웠지만 진날은 온 몸이 무겁고 신경도 날카로워져서, 집에서는 온 식구가 나의 눈치를 살피느라고 전에 없이 조심을 하곤 했다. 


한번은 팀이 8연패인가 9연패를 당한 적이 있었다. 구단 자체가 깊은 수렁에 빠진 것처럼 정말 난감하고 죽을 맛이었다. 반전(反戰)시킬 아이디어를 짜내다가 팀 전체가 뱀탕을 먹어보기로 하였다. 


구단주도 나는 뱀탕은 처음인데다가 특히 나는 어려서 뱀에게 물린 적이 있어서 아주 질색하는 음식이었다. 그러나 팀을 위해서 동참하기로 했다. 박건배 구단주도 한 사발 마셨고, 나도 눈 딱 감고 마셨다. 구단주와 단장이 마시는데 선수들이 우물거릴 수는 없을 터였다. 김일권 선수가 좀 버티었지만, 결국은 모든 선수들이 뱀탕을 마셨다. 


그런데 다음날 뱀탕의 약효가 기분 좋게 나타나는 것이었다. 해태 팀은 연패의 사슬을 끊고 그날 경기를 이기더니 그로부터 연승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심리적(心理的)인 효과였겠지만 정말 놀랄 정도의 역전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선수 부족에 관심도 없이 대행체제로 꾸려간 해태타이거즈는, 그러나 홈런왕 김봉연 선수, 타점왕 김성한 선수의 뛰어난 활약에 김종모, 이상윤, 김용남 선수 등이 힘을 보태 프로야구 원년을 4위라는 성적으로 마감했다. 


군산상고 광주일고의 야구가 바탕을 이루는 막강한 저력의 팀 해태타이거즈는, 우승이 멀지 않았다는 예감으로 시즌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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