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해태타이거즈, 한국 시리즈 우승 (5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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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해태타이거즈, 한국 시리즈 우승 (5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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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해태그룹과 해태타이거즈




김응룡(金應龍) 감독의 영입 


프로야구 원년 시즌을 마친 직후부터 나는 감독 영입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런데 마침 미국에서 야구 연수를 마친 김응룡 감독이 귀국해 있었고, 나는 그와 접촉을 시도했다. 


김 감독은 1962년 대만 아시아대회 때부터 나와 인연을 가졌는데, 그때는 부산상고 졸업반으로 국가대표가 되어 크게 활약했다. 그 뒤에도 선수생활을 하다가 감독으로 변신, 아마추어 국가대표팀을 맡아 큰 족적을 남겼었는데, 이번에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을 한 것이다. 


누구나 욕심을 낼만한 야구계의 인재였다. 나는 프로야구 위원회 이용일 사무총장의 도움을 얻어 그와의 만남을 계속했는데, 해태에서도 그룹 차원의 뒷받침을 해주어서 마침내 김응룡 감독을 해태타이거즈 사령탑으로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또투수로재일동포 주동식(朱東植) 선수, 포수로 재일동포 김무종(金戊宗) 선수를 영입해서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격이 되었다. 


해태타이거즈는 이처럼 김응룡 감독체제로 분위기를 일신, 원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프로야고 2년째를 맞이했다. 


해태팀의 실행이사도 김명하 상무에서 정기주(程起柱) 상무로 바뀌어서 나는 정 상무와 같이 전국을 누비기 시작했다. 새벽에 서울로 돌아오면 정 상무를 서초동 아파트에 내려주고 압구정동 집에 도착하는 강행군이 계속 된 것이다. 


그래도 첫해와는 달리 해태팀이 이기는 날이 많아서 피곤한 줄 모르고 다닐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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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응룡 감독


해태타이거즈, 한국 시리즈 우승


1983년의 프로야구 전기(前期)리그에서 해태타이거즈는 김응룡 감독 특유의 뚝심과 경기운영의 정교함, 프료 야구 최초의 자율야구가 성공을 거두어서 마침내 우승을 차지했고, 후기(後期) 우승 팀인 MBC 청룡과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놓고 자웅(雌雄)을 겨루게 되었다. 


그때의 MBC청룡 감독은 전 해에 해태팀과 결별한 김동엽 갑독이었는데, 그는 겉으로 보기에도 눈에 불을 켠채 칼을 갈고 있는 모습이었다. 양팀 간에는 불꽃이 튀는 긴장감이 흘렀다. 더구나 MBC팀에는 하기룡, 이길환, 오영일 투수와 김재박, 이해창, 이종도 등 물이 오를대로 오른 선수들이 버티고 있어서 어느 누구도 섣불리 경기결과를 예측하지 못했다. 


그런데 10월 12일 개막 예정이던 한국시리즈가 사흘 뒤로 미루어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10월 9일 미얀마에서 ‘아웅산 묘소폭파사건’이라는 참변이 터진 것이다. 


한국 시리즈는 국장(國葬)을 치르고 난 10월 15일부터 시작이 되었다. 매스컴에서는 한결같이 MBC가 해태보다 객관적인 평가에서 우세하다는 예상을 싣고 있어서 나의 심경은 답답하기만 했다. 나는 열세 분위기가 영향을 받지 않도록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었는데 경기 바로 전날, 또 한번 예상 밖의 소식이 전해져왔다. 


‘김동엽 감독 음주 후 택시기사 폭행’이라는 기사가 도하 일간지 스포츠면을 장식한 것이다. 김 감독의 술 사고는 MBC 팀의 사기에 악영향을 끼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더구나 보너스 지급 액수에 불만을 품은 MBC 선수들이 지리멸렬(支離滅裂)해 있다는 정보도 있었던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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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태타이거즈가 한국시리즈 첫번째 우승은 거둔 후의 기념촬영


광주에서 벌어진 한국시리즈 결승전 1차전은 7대 4로 해태가 이겼고, 서울 잠실구장에서의 2차전도 8대 4로 해태가 이겼으며, 3차전도 잠실에서 펼쳐졌는데 또 다시 해태가 5대 3으로 승리를 차지했다. 4차전은 1승이라도 거두려는 MBC와, 4차전으로 끝을 내려는 해태 간에 연장 15회의 혈전을 벌였으나 1대 1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최종 5차전은 잠시구장에서 벌어졌는데, 이 날은 주동식이 잘 던지고 김일권, 김종모, 김성한의 눈부신 확약으로 결국 8대 1로 대승을 거두었다. 


마침내 해태타이거즈가 프로야구 첫 번째 패권을 차지한 것이다. 교통사고로 큰 부상을 당했던 김봉연(金奉淵) 선수가 재기하여 MVP가 되었고, 어깨 부상을 이긴 이상윤 투수, 그리고 김용남 투수는 제몫을 다해주었다. 


3만 관중이 환호하고 폭죽이 터지는 가운데 해태타이거즈의 한국 시리즈 우승은 전 국민의 축하를 받았다. 나는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잘 싸워준 김응룡 감독과 코치, 선수들을 얼싸안고 기쁨의 환호성을 마음껏 질려댔고, 박건배 구단주도 감격에 겨워서 눈시울을 붉혔다. 


1958년부터 야구중계방송을 시작해서 우리나라 야구의 근간(根幹)인 고교야구를 흔들어 깨워 봄을 조성하는데 일조를 했고, 아마추어 성인야구의 전 세계 진출을 위해 마이크를 챙겨들고 여러 차례 해외 나들이를 했으며, 프로야구 원년 침 창단에서부터 참여해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마침내 우승의 감격까지 맛 볼 수 있게 된 나는, 내게 너무나 큰 행운(幸運)을 주신 하늘에 깊은 감사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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