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호주 시드니에서 생긴 일 (6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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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호주 시드니에서 생긴 일 (6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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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드니에서 생긴 일


1985년 9월에 나는 다시 역도선수단을 이끌고 전지훈련(轉地訓鍊) 겸 시드니와 멜버른에서 열리는 친선경기(親善競技)에 참가하기 위하여 호주로 떠났다. 


전지훈련은 한기풍 감독에게 맡기고 나는 주로 경기에 신경을 썼는데, 시드니에서 경기를 마치고 나니 이틀이 시간여유가 생겼다. 나는 호주의 수도 캔버라로 가서 임동원 대사를 만나기로 했다. 임 대사와 나는 12.12때 같이 좌담방송(座談放送)을 한 인연이 있었는데, 내가 역도선수단과 함께 호주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었다. 캔버라에서 임 대사를 만난 나는 외교관들만 가는 고급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는 등 융숭한 대접을 받고 시드니로 돌아왔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선수단의 L선수가 저녁이 되어도 호텔로 돌아오지 않고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이었다. 선수단은 발칵 뒤집혔고, 그가 갔을만한 다 찾아보았지만 다 헛수고였다. 


북한 선수단도 우리와 같은 경기에 참가하기 위하여 시드니에 와 있는 상황이어서 사태가 더욱 심각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의 하나 L 선수가 북한 선수단으로 갔다든지, 아니면 납치(拉致)라도 당했을 경우, 우리 선수단은 상상하기도 싫은 대형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었다. 


한기풍 감독과 나는 우물쭈물 할 시간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곧바로 임동원 대사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내 전화를 받은 임 대사는 이런 일은 조용하게 처리해야 한다면서 요란을 떨지 말라는 당부부터 하였다. 임 대사는 즉시 시드니 총영사관에 연락을 했고, 본격적으로 L선수 찾기가 시작되었다. 


서울에 연락하여 신상을 자세히 파악한 결과 L선수의 누나가 호주로 이민을 와 있다는 것을 알아낸 다음 총영사관 직원들이 그 집을 찾아내 들이닥쳤는데, L선수는 그곳에 숨어 있었다. 하루 사이에 진행된 급박한 상황이었다. L선수는 조용한 가운데 본국으로 송환되었고, 우리 선수단을 임 대사에게 감사를 표한 후 멜버른으로 향했다. 


기분을 잡친 나는 멜버른에서 경기만 치른 뒤, 계획되었던 호주 관광도 취소하고 한기풍 감독 등 전지훈련단을 호주에 남겨둔 채 혼자서 귀국길에 올랐다. 생각할수록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임 대사의 신속한 일처리로 모든 것을 쉬쉬하며 넘겼으니까 망정이지, L선수를 장기간 찾지 못한 상황에서 매스컴에라도 알려졌더라면 나의 앞날에도 큰 멍에가 될 뻔한 사건이었다. 


호주로의 이민(移民)이 어려운 때여서 역도단을 이용해 누님 집으로 피신을 한 후 그곳에 체류하려했던 L선수는 그 사건으로 선수생명이 끝났으며 창창한 앞날을 망치고 말았다. 지금은 과연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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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광고 100년 특집방송 MC장면


마지막 TV출연


1986년은 한국광고의 역사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나라의 광고비(廣告費)도 연간 8천억을 넘어섰고, 아시아에서는 일본 다음 가는 광고 선진국(先進國)으로 성장을 한 상태여서, 내가 몸담고 있는 코래드도 직원이 130명을 넘어설 정도로 활발하게 발전해가고 있었다.    


이때 나는 대학(大學) 몇 군데에 출강(出講)을 했는데, 1학기에는 방송경험을 살려 ‘매스커뮤니케이션개론’, 2학기에는 광고 경험을 살려 ‘광고커뮤니케인션개론’을 강의했다. 


그런데 하루는 MBC교양제작국에서 방송제작에 관해 의논을 하자고 연락이 왔다. 방송계를 떠난 후 나는 방송에는 출연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수많은 출연요청을 정중히 거절(拒絶)해 오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한국 광고 100년을 맞이해서 특집교양 다큐멘터리로 ‘한국 광고 1백년’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려고 하는데, 사회(MC)를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아나운서 출신이면서 현재 광고회사 사장직을 맡고 있는 나로서는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할수 없이 MC를 맡기로 하고 제작에 들어갔는데, 현역(現役)에 있을 때와는 달리 여간 힘들지가 않았다. 원고(原告)를 외우는 것도 전과 같지 않았고, 표정(表情)관리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역시 세월이 가면, 다음으로 바톤이 넘어가야 하는 것이 순리(順理)인 모양이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광고(廣告)의 흐름을 통해 사회, 경제, 국민의식의 변화 등을 폭넓게 살펴보고 광고의 미래를 조명해보는 의도로 제작되었다. 특히 광고를 다큐멘터리로 엮은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있는 일로, 코래드를 비롯한 몇몇 광고회사와 프로덕션, 매체사 등의 협조를 맏아 제작되었는데, 일반인에게 광고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좋은 교양(敎養)프로그램이었다. 


이렇게 나의 마지막 TV출연은 뜻하지 않게 ‘한국 광고 1백년’ 다큐멘터리 MC를 함으로써 끝이 난 셈인데, 방송에 오랫동안 종사(從事)했고, 광고회사에 근무하면서도 뜻있는 프로그램 MC로 TV출연(出演)을 끝내서 그런지, 의미가 있는 것 같았고, 스스로도 대견하게 생각되었다. 


1984년 일본 도쿄에서 29차 세계광고대회가 열렸다. 나는 NHK와 만화영화 제작관계로 일본에 갔던 길에 세계광고대회에 참가했는데, 마침 NHK 시마[島] 회장이 저녁을 내는 장소가 광고대회가 열리고 있는 데이코쿠[帝國] 호텔이어서 김명하 부사장과 함께 인상 깊은 대접을 받았다. 


1986년에는 30차 세계 광고대회가 미국 시카고에서 열려 또 다시 참가했다. 시카고 중심부에 있는 하이얏트호텔에서 대회가 열렸는데, ‘미시간’ 호수의 영양 때문인지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교통 때문에 애를 먹었고, 친구 김문호 군 등 동창들이 크게 환영파티를 열어주어 고마웠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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