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찾아서]성씨에 대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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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를 찾아서]<1>성씨에 대한 이해

박두현(Anselm) 0 1252
한국사회와 한국인들은 대단히 복잡한 인간관계를 지니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대표적 인간관계를 이야기하자면 누구나 혈연, 지연, 학연을 꼽을 것이다. 혈연관계는 가족관계와 그 외연을 형성하는 성씨이고, 지연은 출신 지역에 얽힌 인간관계이며, 학연은 동문 수학한 학교나 스승의 관계를 말한다. 물론 이 외에도 한국사회에는 여러 관계가 존재한다. 군대를 통해 형성된 인간관계, 동종 업종이나 직업에 따른 인간관계 등등…. 얽히고설킨 씨줄 날줄의 인간관계가 너무도 끈끈하여 마치 사슬처럼 느껴지는 사회가 한국사회다. 그런 촘촘한 그물망 중에서 아직까지 가장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것이 가족관계이고, 그 가족관계의 외연이 바로 혈연관계다. 그리고 이 혈연관계가 총체적으로 녹아 있는 것이 성씨이다.

# 한국에서의 성씨와 혈연관계

성씨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한국사회에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물론 근대 산업사회와 가족의 해체(핵가족화)로 많이 약화되었고, 또 호주제법 폐지와 정보통신에 의한 새로운 인간관계 형성으로 영향력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아직은 한국인의 인간관계에서 혈연관계처럼 강력한 힘을 갖는 인간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명절만 되면 ‘민족의 대이동’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이를 증명하며, 아직도 각종 종친회와 관련된 뉴스나 크고 작은 잡음이 이를 증명한다.

이렇게 가족관계, 혈연관계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유는 가부장적 전통과 함께 조상신에 대한 제사의식에서 비롯된 것 같다. 선사시대 하늘에 대한 제사의식에서 비롯된 조상신 숭배사상은 몽골리안과 우랄알타이어 계통에서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명절이라든지, 조상신의 기일에 지내는 제사를 통해 한국인들은 자신의 혈족 및 혈연적 유대관계를 확인하며, 그 속에서 형성되는 인간관계를 통해 자신의 뿌리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 뿌리의식과 유대관계가 현실에서는 ‘가문의 명예’로 나타나기도 하고, 다른 혈족에 비해 부끄럽지 않은 생활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체면의식을 강요하기도 한다. 즉 한국인 특유의 체면의식과 집단적 명예의식은 한국인을 둘러싼 혈연·지연·학연과 같은 강력한 유대관계가 겉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중 가장 강력한 것이 바로 조상신 숭배와 제사의식에 바탕을 둔 성씨 및 혈연관계일 것이다.

# 한국에서 성씨의 형성

본격적으로 한국의 성씨 이야기를 해보자. 성씨가 언제부터 쓰이게 되었는가에 대해선 사람들 사이에서 논란이 많다. 다만 한자 성씨를 쓴 시기는 중국 문헌을 통해(신당서, 구당서 등) 고구려는 장수왕, 백제는 근초고왕, 신라는 진평왕 때로 추정할 수 있다. 물론 그 전에도 성씨는 존재한 듯싶다. 주로 씨족을 지칭하는 의미로 쓰였다. 그것이 계급사회가 되면서 점차 다른 씨족, 또는 다른 사람들과의 차별과 구분을 위해 성씨를 쓰기 시작한 것 같다.

중국에서는 그 이전에도 성씨를 사용했다. ‘씨’라는 단어가 극존칭으로 쓰였기에 성씨를 썼던 종족은 황족이나 왕족 등 매우 높은 지위를 가진 귀족층이었다. 흔히 중국의 3황5제를 일컬으며 ‘복희씨’ ‘신농씨’라는 단어를 썼는데, 이를 보면 ‘씨’가 얼마나 극존칭의 단어인지 짐작할 것이다. 이런 사례와 연결시켜 볼 때, 한국에서도 기자 전래설에 나오는 ‘기자’라든지, 부여의 ‘해씨’라든지, 고구려의 고씨, 신라의 김씨, 백제의 여씨(부여씨) 등 주로 왕족이나 그에 걸맞은 최고 귀족층이 일반인과 자신을 구분하여 사용했던 것이다. 반면 일반인들은 성씨는 없고, 이름만으로 자신을 구분했다.

그러던 것이 당나라의 영향이 지대했던 신라 말에 들어와서 일반 귀족층에도 성씨를 쓰는 것이 확산하였고 이후 신라 말, 고려 초 신분질서의 혼란을 틈타 다양한 형태의 성씨가 형성되었다. 그래서 현재 각종 성씨의 뿌리가 형성된 시기를 보면 대체로 고려 초·중기이다. 이때 성씨와 함께 본관이 형성되고, 그렇게 형성된 성씨가 지방 토호로 자리 잡는 일이 많았다. 그러면서 서서히 혈족계통도가 형성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형성된 성씨는 고려 중기, 후기의 몽골 침략과 혼란기, 조선조 초기, 임진왜란 병자호란 후, 구한 말 등 전쟁이나 정치적 혼란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런 혼란기를 겪을 때마다 기존의 성씨가 없어지기도 하고, 바뀌기도 하고, 새로운 성씨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문중의 제사 장면. 우리나라에서 유독 가족관계, 혈연관계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유는 가부장적 전통과 함께 조상신에 대한 제사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성씨의 변화


그런데 한번 형성된 명문 귀족이라도 정치적 부침에 의해 성씨가 사라지는 일도 있었고(멸문지화), 성씨를 개명하기도 했다. 최고 통치자(왕)로부터 새로이 성씨를 하사받아 명문 귀족으로 신분이 상승하는 일도 있었다. 또 전쟁 등 국가적 혼란기가 되면 성씨는 엄청난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전쟁 시 멸문을 당한 가문이 생겨나고, 또 다른 사람이 멸문된 가문에 자신의 혈족을 붙여 이어받기도 하고, 중국과 관계를 트면서 새로운 성씨를 만들기도 하고, 힘을 가진 지방 토호가 새로운 성을 창안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견씨’의 조상인 견훤왕은 그 아버지가 경상북도 상주에서 토호로 성장하고, 견훤이 후백제의 왕이 되고, 고려시조인 왕건에게 귀의하면서 ‘견씨’ 성을 갖게 되었으며, 고려 태조인 왕건 역시 왕이 된 후에 이름의 첫 글자를 따서 ‘왕씨’를 만든 것이다. 반면 고려 태조 왕건의 측근인 신숭겸 장군의 ‘신씨’는 왕건이 신숭겸 장군의 공을 높이 사 ‘신씨’라는 성을 하사함으로써 만들어진 것이다.

반면 발해 대조영의 후손들은 고려로 귀화하면서 ‘대씨’성을 버리고 ‘태씨’로 고쳐 살았고, ‘전씨’ ‘옥씨’ 등은 조선조에 들어와 ‘왕씨’에 대한 탄압을 피해 성씨를 ‘전씨’ 또는 ‘옥씨’ 등으로 바꾸어 살아온 것이다. 또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으로 유명한 ‘반씨’는 중국의 ‘판씨’성에서 유래하였고, 월남 ‘이씨’ 역시 월남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후에 ‘이씨’성에 월남이라고 하는 본을 붙여 가계도를 형성한 것이다. 경기도의 덕수 ‘장씨’ 역시 고려 때 넘어온 회회족(위구르계통)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게 중국 또는 외국과 연결되어 새롭게 만들어진 성씨는 한국인 전체 280여 성씨 중에서 47%를 차지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외에도 원래 하나의 성씨에서 유래되었으나, 후손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힘을 얻게 됨으로써 새로운 성씨를 만들거나, 새로운 본을 만드는 사례도 많다. 힘을 얻어 개명하면 아예 새로운 성씨가 탄생하는 것이며, 본을 만들면 새로운 본관이 형성되는 식이다. 그래서 역사가 오래되고 번성한 성씨일수록 본관이 수십 가지로 나누어지기도 한다. 또한 같은 성씨라도 그 뿌리에 따라 전혀 연관관계가 없기도 하고, 어떤 성씨는 전혀 다른 이름이 있지만, 그 뿌리가 동일하기도 하다. 예를 들어 김씨(경주김씨)에서 갈라져 나온 안동김씨(구 안동), 강릉김씨, 광산김씨, 의성김씨 등이 전자의 예이다. 반면 전혀 다른 이름을 갖지만 같은 혈연관계를 표방하는 성씨로는 안동김씨(후 안동), 안동권씨, 안동(인동)장씨 등이 있다.

# 성씨의 구분

이렇게 형성된 조상과 성씨, 그리고 본관은 매우 복잡하여 한국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은 물론 한국인조차도 이를 구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같은 성씨인데 본이 다를 수도 있고, 다른 성씨인데 본이 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본이 같음에도 조상이 다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성씨를 알기 이전에 그 분류를 정확히해야 가닥을 잡을 수 있다. 성씨 이야기를 하기 전에 분류법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동조 동본 동성(同祖同本同姓)

같은 시조에 같은 본, 같은 성을 사용하며 가장 전형적인 형태다. 이는 주로 역사가 짧은 성씨이거나 수적으로 많지 않은 예에 속한다.

②동조 동본 이성(同祖同本異姓)

같은 시조에 같은 본이나 성을 하사받거나 그 밖의 이유로 성이 달라졌다. 예를 들면 가락국의 수로왕 후손으로 김해의 본을 쓰면서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 등으로 갈려 사용한다.

③동조 이본 동성(同祖異本同姓)

같은 시조의 후손이면서 본을 다르게 쓰지만, 성은 같다. 예를 들면 파평 ‘윤씨’의 시조 신달(莘達)의 후손이면서 남원, 함안, 덕산, 신령 등으로 각각 다른 본을 사용하나 성은 같은 ‘윤씨’를 사용한다. 신라 알지왕의 후손으로 강릉, 안동, 광산 등도 본은 달라도 성은 같은 ‘김씨’를 사용한다.

④동조 이본 이성(同祖異本異姓)

원래 동족이지만 성과 본관을 다르게 쓴다. 김해 ‘김씨’와 양천 ‘허씨’, 인천 ‘이씨’와 문화 ‘류씨’, 연안 ‘차씨’ 등이 그 예다. 이들은 성과 본이 전혀 달라 다른 조상인 것 같지만 하나의 조상을 둔 성씨들이다.

⑤이조 동본 동성(異祖同本同姓)

시조가 다르면서 본과 성이 같다. 수로왕계의 김해 ‘김씨’와 일본계로 임진왜란 때 귀화한 김충선계의 김해 ‘김씨’가 그러하며, 남양 ‘홍씨’에는 시조에 따라 ‘당홍(唐洪)’과 ‘토홍(土洪)’이 있다.

⑥이조 동본 이성(異祖同本異姓)

시조가 각각 다르므로 성도 다르지만, 시조의 발상지가 같아서 본이 서로 같다. 경주 ‘이씨’와 경주 ‘손씨’, 청주 ‘이씨’와 청주 ‘한씨’ 등이 그렇다. 이런 예는 대단히 많다. 안동을 본으로 하는 여러 갈래의 성씨들도 그렇다.

⑦이조 이본 동성(異祖異本同姓)

시조가 다르므로 본도 다르나 성은 같다. 예를 들어 파평 ‘윤씨’와 해평 ‘윤씨’, 안동 ‘장씨’와 덕수 ‘장씨’, 광주 ‘이씨’와 연안 ‘이씨’ 등이 그러하다. 이족이라면 성과 본관을 다르게 쓰는 것이 마땅하지만, 한 지방에 여러 성씨가 연고를 두는 일이 많아서 생긴 상황이다.

이렇듯 한국의 성씨는 대단히 복잡하다. 그것은 오랜 기간 동안 좁은 국토에서 복잡한 역사를 통해 탄생하고, 성장하고, 쇠락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존재하며 그 구분도 매우 복잡하다. 따라서 앞으로 ‘뿌리를 찾아서-한국의 성씨 이야기’는 성씨에 대한 총괄적인 이해의 글로 ▲성씨의 유래 ▲시대에 따른 성씨 특징(삼국시대, 신라말 여초, 조선조, 조선 후기 등) ▲각 성씨의 유래와 가계도 및 인물의 순으로 연재하고자 한다.

한국다문화센터 사무총장 kshky@naver.com

>>김성회(48)씨는 연세대 행정학과와 동 대학원 사회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홍보국장, 세계화포럼 운영위원을 역임하고 현재는 거버넌스 21클럽 실행이사와 한국다문화센터 사무총장, 시사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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