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우여곡절의 아나운서 시험 (1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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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아나운서 박종세 회고록 - 우여곡절의 아나운서 시험 (1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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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의 아나운서 시험 (13회)

  제3장 대학 진학과 방송국 입문




“당신 학생이지?”


1956년 겨울, 연극 ‘플레이보이’의 공연준비에 여념이 없는 내게 서울중앙방송국(KBS),에서 아나운서를 모집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입사원서를 써가지고 정동(貞洞)에 있는 중앙방송국에 갔는데, 접수창구에서 퇴짜를 맞고 말았다. 재학생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정동 골목을 빠져나오다가 최계환(崔季煥) 선배인가 전영우(全英雨) 선배인가를 만났다. 한 분은 고향 선배이고, 한 분은 학교 선배인데 어느 분이었는지는 기억이 분명치 않다. 선배는 내 얘기를 듣더니 원서에 대학을 졸업했다고 써서 다시 접수시키라는 것이었다.


그 원서를 서무과 직원이 받아주어서 나는 아나운서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1차 시험, 2차 시험을 모두 통과하고 마지막 면접시험을 치르던 날 나는 학생 티를 내지 않으려고 나는 새로 마련한 ‘료마이’로 불리던 감청색 양복에 넥타이를 맨 차림으로 면접실에 입장했다.


시험관은 이운용 국장, 윤길구 방송과장 서리, 최승주 아나운서 계장(실장)이었는데, 우물쭈물 하는 나에게 윤길구 과장이 “당신 학생이지?” 하고 소리를 쳤다. 재학생이라는 것을 어떻게 변명하나 하고 그것만 생각하면서 들어선 나는 너무나 큰 목소리에 그만 기가 질리고 말았다.


“네, 그렇습니다.”


엉겁결에 나온 내 대답에 “학생은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왜 왔어? 나가!” 하는 것이었다. 변명이 통할 형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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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운서 시험에 응시했을 때의 나 / 처음으로 맞춘 신사복을 입고 서울대 배지를 달았다 


“죄송합니다.” 하면서 나가려고 하는데, “이쪽으로 와봐.” 하며 누군가 나를 불러 세웠다. 사대 선배인 최승주 아나운서였다.


그는 어깨가 축 쳐진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아니면 면접에까지 올라온 수험생에 대한 배려였는지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이봐, 교육이 무어지? 교육에 대해 말해봐.”


나는 다소 엉뚱한 그의 질문에 “교육은 경험이고 어쩌구 저쩌구.......” 횡설수설했는데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없다.


‘됐어. 나가봐!“


최승주 실장의 말에 인사를 했는지 안 했는지, 땀에 흠뻑 젖어서 나는 면접실을 나왔고 실망을 안은 채 집으로 내달렸다.


나는 그날 이후에 연극 준비에 정성을 쏟으면서 아나운서 시험에 응시했던 일은 잊고 지냈다. 나와는 달리 아들의 취업시험에 관심을 거두지 못하신 아버지는 고향이 장단 분으로 공보실에 계셨던 강문수 선배를 만나셨는데, 경쟁률이 자그마치 1,000대 1이나 되었으니 기대하지 말라는 말을 하더라며 한숨을 쉬셨다.


마침내 1956년 12월, 살을 에이는 추위 속에서 연극 ‘플레이보이’의 막이 올랐다. 동숭동 서울대 극장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정신이 없던 내게 생각지도 않았던 우편물 하나가 배달되었다. 서울중앙방송국에서 보내온 아나운서 합격통지서였다. 나는 세상이 모두 내 품안에 들어온 듯 너무나 좋아서 껑충껑충 뛰었다. 그렇게 나는 꿈에 그리던 아나운서가 되었다.


나와 함께 이광재 군과 임동순 군이 합격해서 내 동기는 세 사람이었는데, 이광재 군은 그동안 시경(市警)방송국에서 아나운서 생활을 하고 있었고, 임동순 군은 안국동 임내과 아드님으로 서울대 치대를 나온 치과의사였다.


학생 아나운서 생활


첫 직장인 서울 중앙방송국에서 나는 본격적으로 아나운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학교에 다니면서 방송국에도 출근을 해야 하는 이중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힘이 들었다. 그래도 내가 그 벅찬 생활을 큰 탈 없이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방송국 선배들 배려의 덕이었는데, 그들은 한결 같이 시간에 쫓기는 초년생인 나를 따뜻이 감싸주었다.


윤길구, 최승주, 장기범, 강익수, 강찬선, 황우겸, 임택근, 최계환, 전영우, 최세훈, 강영숙, 김인숙, 장금자, 윤영중 선배 등이 그 무렵 자상한 충고와 함께 나의 부족한 점을 메워주신 분들이다.


대학에서는 교육학과의 한재영, 김기석, 윤태림, 서명원, 정범모, 주정일, 원홍균, 이홍배 교수님, 국어교육과의 김형규, 이하윤, 이탁, 이응백, 이두현 교수님이 초보 아나운서인 내게 각별한 관심을 보여주셨다. 그 중 윤태림 교수와 이하윤 교수는 우리나라의 초창기 아나운서이기도 하다.


동기들인 교육학과의 강신웅, 김윤태 군, 국어과의 정동호, 한정식 군 등도 강의시간에 노트한 것을 빠뜨리지 않고 빌려주고 보충 설명을 해주는 등으로 도움을 주었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나는 기별시험에 제대로 대비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강신웅 군은 홍익대, 김윤태 군은 서강대의 대학원장을 마지막으로, 정동호 군은 교교 교장을 끝으로 각각 정년퇴임하였고, 한정식 군은 중앙대 교수를 지낸 우리나라 사진계의 거목으로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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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신웅 군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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